#제244화 (20)
독고휘와 혁련무강이 대회장 내부에서 황룡강시들을 박살 내고 있었지만, 황룡강시는 대회장 바깥에도 있었다.
턱, 터턱.
“짜증 나는군.”
턱, 터억.
“젠장…… 뭐 이래?”
-우오오오!
“온다!”
콰앙!
지금 권마, 강자성과 갈성천은 대회장 바깥에서 난동을 피우는 황룡강시와 맞서고 있었다.
거대한 덩치와, 금방이라도 터질 것같이 부풀어 오른 근육들이 서로 맞부딪치고 있었다.
“맞을 때마다 호신강기를 뿜어내는군. 그렇다고 그냥 때릴 수도 없으니…….”
그들이 상대 중인 황룡강시는 강기를 버텨 내고 있었고, 공격을 받을 때마다 몸에서 호신강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소모전이 되겠군. 저 안에 있는 팽가 놈이 나와 주면 좋겠지마는…….”
“저런 놈들이 한가득 몰려갔으니 기대는 못 하겠지. 차앗!”
콰앙, 쾅!
-크아-하하하하! 부순다!
둘은 연신 전력을 다한 일권, 일각을 강시에게 쏟아부었지만 강시는 그들의 공격을 비웃듯 그저 몸으로 받아 내며 싸우고 있었다.
“몸 안에 무슨 내단이라도 쌓아 놨나? 호신강기가 멈추질 않는구만.”
갈성천은 빠르게 이기기 위한 수단을 찾아봤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점은 별로 지능이 높지 않다는 것이겠지.”
눈앞의 강시는 정말 말 그대로 무식하게 싸우고 있었다.
공격이 오면 받아치고, 먼저 돌격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공격이 들어오면 거기에 반응하여 반격을 시도했다.
“나도 똑똑하게 싸우는 편은 아닌데.”
들어오는 자극에만 반응하는, 생각이라는 게 없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그들은 방심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힘 앞에 계략 따위 필요 없다고 믿고 수련했으니 평생 이렇게 살았겠지, 네놈이나 나나.”
“그 면에 있어서는 이 양반이 더 선배라고 봐야겠지. 만쇄문의 문소길이 당시 주먹 좀 쓴다는 놈들한테는 전설이었으니.”
그들이 상대하고 있는 황룡강시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만쇄문의 옛 문주, 양참권 문소길이었다.
-와라! 애송이들!
문소길 이외에도 다른 황룡강시들이 대회장 바깥에서 고수들과 대치중이었다.
금우의 내기판 주변 시장 거리.
“피해라! 서리가 온다!”
꽈드득, 까드드드득!
바닥을 타고 새하얀 서리가 재빨리 뻗어 오고 있었다.
-흐으으윽…… 흐윽…….
“으아악! 사, 살려…….”
한 무인은 그것을 피하려 했지만 발을 헛디뎠고, 피하지 못하고 서리에 발이 닿고 말았다.
쩌저저적.
얼음을 깨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얼어붙고 만 무인.
서리의 중심에는 하얀 머리와 새하얀 피부를 가진 사내가 있었고, 사내에게서는 엄청난 한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궁주님! 정신을 차려 보십시오! 당신의 후예들입니다!”
-흐으으…… 크아아아악!
한차례 괴성 이후, 서리가 빠른 속도로 땅을 타고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크윽! 이성이 없나!”
“물러나라.”
검마, 혁련무성이 검에서 강기를 뿜어내며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서리를 전부 부수고 있었다.
“한빙백귀(寒氷白鬼) 북중연…… 내 검을 버텨 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뒤에는 설득을 포기하고 싸움을 준비하는 북설란과 북주혜를 비롯한 고수들이 태세를 정비하고 있었다.
“초대 궁주님이라 하여 봐주지 말거라. 어떻게 북해의 만년빙 속 영묘에 안치되어 있어야 할 시신이 강시가 되어 나타난 건지는 몰라도…… 적이다.”
“소녀가 어찌 그러겠습니까.”
-그우우우…….
쩌저저적.
“온다! 피해라!”
-크아아아!
팽가의 별채 옆, 민가.
“흘흘흘…… 독하구나, 독해!”
마의, 백천정이 눈앞의 광경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지금은 감탄할 때가 아니라 싸워야 할 때요!”
운광은 태극검이라는 이름답게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눈앞의 상대와 맞서 싸우고 있었으나, 상대방의 이런저런 수법을 겨우 피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키히히, 캬하하하하!
콰득, 카앙!
붉은 옷차림의 강시가 옷과 같은 붉은색의 기운으로 운광을 공격하고 있었다.
몸 안에서 가시의 형태로 튀어나오거나, 손에서 발톱의 형태로 뻗어 나오기도 하는 붉은 기운.
“조금만 기다려 봐라, 도사 놈아. 금창약을 발랐다고 상처가 바로 낫겠느냐? 뭐든 다 필요한 만큼 기다려야…….”
-캬아아악!
“기다리다가 죽겠소! 에에이! 떨어져라!”
운광은 겨우 달려드는 강시를 떨쳐 버리고 태세를 재정비했지만, 마의는 여유로운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뭐…… 그래도 나쁘진 않겠지.”
“내가 어쩌다가 이런 곳에 와서는! 옛 혈교의 무공을 상대해야 하다니!”
운광은 불평하면서도 계속 눈앞의 강시와 대치를 이어 갔는데, 그것은 지금 마의가 열심히 뭔가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남았소?”
“글쎄…… 열심히 하고는 있지. 그보다 재촉하는 건 안 좋다고. 할 마음이 안 든다니까?”
-키하하! 죽어라!
강시가 붉은 기운으로 촉수 같은 것을 생성하여 달려들기 시작하자, 운광은 다급히 그것들을 베어 내며 마의를 다독였다.
“조금 더 열심히 해 주면 고맙겠소!”
대회장의 외부, 갈성천과 권마가 있는 반대편에서도 황룡강시는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다만 이곳에 있는 강시는 다른 곳의 강시들과 상태가 다소…… 많이 달랐다.
-방!
죽립을 눌러쓰고 도복을 입은 강시가 어딘가로 손을 가리키며 외치는 소리에 몸을 여기저기로 날리는 무인들.
“피해라!”
콰앙!
강시가 손을 가리킨 위치에서 폭발이 일어나 흙이 사방으로 날렸고, 미처 피하지 못한 무인이 날아가기도 했다.
“아미타불. 술법이나 차림새를 보아 분명히 수행을 깊이 쌓은 도사였을 터인데…… 어찌 이런 모습으로 그런 행동을…….”
신승, 혜윤은 다 찢어진 가사를 허리에 질끈 묶은 채로 극한까지 단련된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게 말로 될 것 같나? 어디 한군데라도 끊어 놔야 말이 통하겠지.”
늘 들고 다니던 식도와 함께, 바닥에서 주운 반쯤 부러진 검을 들고 투덜거리는 장화관.
“젠장, 적당히 아들 자랑하고 무위 자랑하면서 으스대러 왔다가 이런 꼴을…….”
“다음에는 오지 말아야겠군.”
남해의 태양궁주 강진갑과 야수궁주 야율천락 또한 불평을 늘어놓았다.
크릉!
-나는 별들에게서 미래를 보았지만, 자네들은 그러지 못한 것 같군. 이곳에서 눈을 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성을 잃고 날뛰는 모습을 보이는 다른 강시들과 달리 차분하고 이지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도복 차림의 강시.
강시는 패용하고 있던 검을 꺼내 들었고, 그 검의 검신에는 일곱 개의 별 문양이 박혀 있었다.
강시가 든 검을 보자, 혜윤은 깜짝 놀라 상대방의 정체를 물어보았다.
“검에 있는 일곱 별의 문양, 설마 백 년 전에 무림에 나타나 전진파의 건재함을 알리고 사라지신 칠성진인이십니까……?”
-과거에는 그렇게도 불렸지. 하지만, 지금은 그저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한 노인일 뿐.
칠성진인은 평온한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검을 겨누었다.
“누군지 모르겠군.”
장화관은 칠성진인이 누군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상대방이 검을 자신에게 겨누자, 살기를 풍기며 칼을 쥐고 있는 양손에 힘을 더욱 주었다.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던 전진파에서 그나마 이름이 알려지신 분이지. 백여 년 전에 잠시 나타나 활동하시고 다시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혜윤이 그나마 알아볼 수 있었던 것도 검에 새겨진 특유의 문양이 그때 칠성진인을 목격했던 기록의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 이상한 술법을 쓰고 있었군. 재밌겠어, 크하하하하!”
장화관의 살의는 계속해서 치밀어 올랐고, 어느덧 살기가 광기로 변질되어 있었다.
그런 광기에 가득 사로잡힌 장화관은 곧바로 검을 들고 칠성진인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검이 매섭군. 곧바로 약점을 찾아 파고드는 손길이라니. 깔끔하면서도 간결하군. 천부적이야.
칠성진인은 장화관의 검을 피하며 그의 행동을 관찰했다.
-하지만, 너무 간결해서 오히려 당혹스럽군. 결!
칠성진인은 검을 앞으로 내밀며 손바닥을 펼쳤고, 그러자 그의 앞에 반투명한 막이 생겨나 장화관의 검을 가로막았다.
카드득.
“칫, 결계인가?”
콱, 콱!
장화관은 칠성진인이 생성한 결계에 연달아 검을 꽂아 넣었지만, 바위에 칼을 내리치듯 건조한 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 뒤에서 혜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권(神拳).”
쨍강!
-호오!
혜윤의 일권에 칠성진인의 결계가 깨졌고, 칠성진인은 뒤로 물러나며 경계하는 동시에 흥미로워했다.
퍼엉!
그리고 그제야 공기를 타고 퍼져 나가는 충격파와 거기에 섞인 주먹 휘두르는 소리.
“젠장, 맞을 뻔했잖아! 대머리 놈아!”
장화관은 혜윤의 권이 자신의 옆으로 스쳐 지나가자 짜증을 내며 따졌다.
음속을 뛰어넘는 공격이 그의 옆으로 지나갔으니, 고막이 파손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미안하지만, 시주도 머리는 벗겨져 있소.”
그리고 대머리라는 말에 침착하게 대처하는 혜윤.
중으로 살아온 지 한평생, 혜윤은 대머리라는 말과 그 비슷한 모욕에 대한 내성이 충분히 쌓여 있었다.
“내 주방은 머리칼 하나도 조심히 다뤄야 하는 장소다. 네놈처럼 어릴 때부터 머리가 벗겨지는 바람에 평생의 진로로 중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이 말이야.”
“……소승도 그런 이유로 귀의한 것은 아니오.”
어릴 적부터 머리가 벗겨졌다는 말에 혜윤은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평온하게 대답했다.
“그 머리 부분은 나중에 얘기해라. 일단 저 칠성진인이라는 자부터…….”
야율천락이 둘의 다툼을 중재하고 싸움에 집중하기 위해 말에 끼어들었다.
“넌 빠져 있어, 털 많은 놈아.”
“소승이 얘기 중이잖소, 시주.”
하지만 장화관과 혜윤은 어째서인지 그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며 그의 의견을 묵살했고, 이내 고개를 돌려 칠성진인을 쳐다보았다.
“멀리 두면 술법, 가까이 가면 결계라…….”
“허리춤에 있는 보패는 아직 꺼내지도 않았소.”
장화관과 혜윤, 모두가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칠성진인은 지금까지 검을 제대로 휘두르지도 않았고, 술법을 위해 뭔가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화륵-!
“……이 내가 어떻게든 해 봐야겠군.”
열화섬권, 강진갑이 양손에서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며 앞으로 나섰다.
그의 열기로 인해 양팔의 소매가 타들어 가고 있었지만, 그는 그 정도 뜨거움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무덤덤한 모습이었다.
“이것도 결계로 막을 수 있을지 보자꾸나!”
진갑은 양손에서 솟아 나오는 열양지기로 타오르는 불꽃을 조종했고, 그의 불타는 권이 다가오자 칠성진인은 방금 전처럼 결계로 그 공격을 막아 내었다.
“저게 짜증 나는 거지. 방패처럼 쓰는 결계라니.”
장화관은 칠성진인의 손에서 계속 나오는 결계를 보며 불평하면서도 함께 달려들어 검을 날렸다.
그리고, 진갑의 공격이 효과가 있었던 건지 칠성진인의 죽립과 도복 소매가 끝부분부터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이 뜨거운 열양지기와 나의 열화섬권은 막아 내지 못하는 것 같군!”
-옷과 죽립은 언젠가 스러질 것. 하지만, 이 육체는 아직까지 쇠하지 않았네.
죽립의 절반이 타오르자 칠성진인은 머리를 털어 죽립을 날렸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난 칠성진인의 얼굴은 그림에서 나올 것만 같은 도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길게 기른 흰 수염과 마찬가지로 길게 기른 백발.
“진짜 도사같이 생겼군.”
그리고 그 백발은 매우 풍성해, 흰색만 아니라면 노인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머리칼이었다.
“……내 알기로 백 세가 넘었다고 들었건만.”
“처음 나타났을 때에도 어느 정도 나이는 있었으니, 적어도 두 갑자는 넘소.”
장화관과 혜윤은 칠성진인의 나이를 대략적으로 계산하고 자신들의 나이에 대조해 보았다.
그리고, 그 나이에 걸맞지 않은 풍성한 머리칼을 보던 장화관과 혜윤이 무심코 자신들의 머리를 매만졌다.
“어째선지, 죽이고 싶어지는데?”
“소승 또한, 살계를 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고 있소.”
“크아-하하하하하!”
장화관과 혜윤은 각자의 무기인 검과 양 주먹에서 엄청난 양의 강기를 방출하며 칠성진인에게 돌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