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3화 (19)
공손환과 영의는 고수들의 합류로 주변의 강시들이 하나둘 정리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쩌나? 강시들도 다 끝나 가는데.”
“아직 황룡강시가 안 오긴 했습니다만…… 생각보다 협력하는 고수들의 수가 많군요.”
“그러니까 암약하고 그런 걸 하지 말았어야지.”
영의와 공손환은 서로 치열하게 맞붙었지만, 섣불리 결판이 나고 있지 않았다.
“뇌기로 인한 공격은 대부분 의미가 없고…… 그렇다고 이분혼환(移分混換)공도 크게 먹히질 않으니……. 몸에 단전은 있습니까? 그렇지 않은 이상에야 이렇게 무용하지 않을 텐데.”
공손환의 공격 수단 대부분이 영의에게 큰 타격을 주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체내에 있는 정순한 내기의 흐름과 성질, 그 모든 것을 이리저리 나눈 뒤 뒤바꾸고 섞어 혼란스럽게 만드는 교의 비밀스러운 무공 이분혼환공.
무인들이 최대한 노력해서 정순한 기를 쌓는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다른 성질의 기가 섞여 있다.
아무리 적은 성분이라도 그 구성 성분이 바뀌면 타격이 크다.
심지어 내기의 흐름을 제멋대로 흘러가게 만들어 정해진 혈도를 우회하거나 역류시킨다면, 그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뜩이나 위협적인 이분혼환공에 뇌기를 접목하여 그 속도와 체내 침투성을 올린 공손환이었지만, 영의에게는 큰 효과가 없었다.
애초에 혼란스러워질 체내의 기는 뇌기밖에 없었고, 평소에 기가 정해진 혈도를 타고 흐르지도 않아 혼란을 줘 봐야 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분홍…… 뭐?”
주변 소음으로 인해 말을 잘 못 들은 영의가 되묻자 공손환은 얼굴이 잠시 일그러졌지만, 이내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뭐, 그래도 상관은 없습니다. 저희의 주군께서 오고 계시니 말입니다.”
“아깐 그런 말 없더니?”
“그 전에 죽을 테니 말해 줄 필요는 없을 거라 여겼지요.”
“나 참…….”
영의는 최대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 또한 공손환에게 유효한 타격을 주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독고휘의 제자였기 때문인지, 뇌기를 맞아도 제법 버텨 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공격을 맞기 직전에 수상한 움직임으로 뇌기를 흩어 내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못 잡는 상황인데…….’
지금까지의 대치로 영의가 알아낸 공손환과 그 무공의 특징은 다소 특이했다.
‘일단, 단전이 있는 무인을 단순 신체 접촉만으로 무력화시키거나 마비시킬 수 있고.’
이 사실은 우형의 말과, 공손환을 함께 공격하기 위해 왔던 무인들을 한 번에 무력화시킨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아직도 무대 주변에서 바닥에 쓰러진 채 부들거리고 있었는데, 상당히 큰 고통을 겪고 있는 모습이었다.
‘몸 자체가 튼튼한 데다 어떤 기운을 흩어 버리거나 뒤섞을 수 있는 것 같은데…… 원격으로는 불가능해 보이고.’
영의의 뇌기를 맞기 직전에 대부분 흩어 버리는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때로는 그런 과정 없이 뇌기를 맞고도 멀쩡한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몸 자체도 튼튼한 것 같았다.
그리고 공손환이 영의와 접촉했을 때 체내의 뇌기를 이리저리 진탕시키려 시도한 것에서도 알 수 있었다.
‘공격할 때에는 기운을 뒤섞는 것 이외에도 뇌기를 이용한 무공을 쓰기도 하지만 크게 적극적이지가 않다.’
영의가 뇌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뇌기로 이루어진 공격 대부분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 내며 접근했기에 곧바로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결정적으로…… 일반적인 무인한테는 치명적이지만, 나는 단전이 없어서 큰 효과가 없다.’
방금 전 공손환이 무심코 내뱉은 말이기도 했지만, 영의는 체내에 단전이 없음에도 무공을 발현할 수 있는 다소 특이한 무인이었다.
그렇기에 한 번에 무력화된 다른 무인들과 달리 공손환과 이런저런 공격을 주고받았음에도 나름 멀쩡할 수 있었던 것이고.
공손환과 영의, 둘 다 서로 무의미한 일격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끌기만 하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영의는 공손환이라는 명확한 적을 마주한 데다가 그가 무인을 쉽게 무력화하는 모습을 봤기에 더더욱 보내 줄 수 없었다.
공손환으로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변수였던 영의를 어떻게든 배제하거나 포섭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포섭의 가능성은 시간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둘의 대치가 이어지고 있을 때,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조금 힘들어 보이는데, 도와줄까!”
“빨리 끝내는 게 제일 좋지.”
대회장 내부의 혼란을 수습한 팽소운과 장산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권마와 갈성천은 대회장 바깥을 통제하기 위해 내부의 정리가 끝나자마자 떠났다.
굳이 절대고수가 넷씩이나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네!”
영의는 도움을 제안하는 그들의 말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둘만 있어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이분혼환공으로 상대를 무력화시킨다 하더라도, 영의가 공손환을 붙잡고 늘어지면 다른 부분은 고수들이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대로 잡고, 머리든 어디든 영감님들이 공격만 해 주면……!’
“좋아, 대부분은 술사만 처리하면 해결이 되는 법이지.”
공손환만 어떻게든 처리한다면 상황이 해결될 거라 판단한 팽소운은 주먹을 쥐며 무대 위로 올라왔다.
“글쎄요…… 본교가 그렇게 쉬운 곳은 아니라서. 대부분의 강시는 명령을 우선하지만, 대부분은 스스로 알아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움직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뭐? 자율형이라고? 쓸데없이 고급지네.”
영의는 강시란 대부분 술사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만 봐 왔기에, 자율 행동형이라는 말에 놀랐다.
“그렇습니다. 자율형이라, 마음에 드는 말이군요. 바로 본교의 소속이 아닌 이들을 우선적으로 죽이는 것이 각자의 역할입니다.”
“그럼 네놈을 죽이고 멍청하게 사람들을 따라가는 놈들만 쫓아가서 죽이면 된다는 거군. 쉽지.”
뚜두둑.
팽소운은 손의 관절을 꺾으며 공손환에게 다가왔다.
“……그게 그렇게 쉽게 해석이 되나요?”
“어렵게 생각하니까 어려운 거지, 쉽게 생각하면 쉽다고.”
공손환은 팽소운과 장산이 별것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하자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절대고수 둘을 눈앞에 두고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여 주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런…… 하지만 그사이에 올 분들이 다 온 것 같군요.”
“뭐? 그게 무슨…….”
공손환의 말에 제대로 된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대회장 안에 무언가 큰 것이 떨어졌다.
쿵.
갑작스러운 큰 물체의 등장에 놀라 돌아보는 장산.
그것은 아까 보았던 것과 같은, 죽립을 쓴 강시였다.
“강시다!”
“바깥에서 들어온 건가!”
아직 대회장 내부에 남아 있던 무인들이 강시를 발견하고 곧바로 포위했고, 장산이 그들을 도우려 했다.
“별것 아니군. 처리하고 있어라. 내가 해결하고 오지.”
겉보기에는 아까 봤던 백룡강시와 흡사했기에, 장산은 빠르게 검을 뽑아 들고 강시에게 접근했다.
“참!”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적당하게 힘 조절을 해서 강시의 목을 향해 휘두른 검.
까앙.
하지만 강시의 팔을 잘라 냈던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 휘두른 검은 여타 다른 무인들이 강시를 상대할 때처럼 쇳소리를 내며 칼날이 가로막혔다.
“무슨…….”
물론 체력의 분배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약간의 힘 조절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한 치도 안 들어갈 줄은 몰랐건만…….’
하지만 장산은 평생 휘둘러 온 자신의 검이 상대적으로 약한 부위인 목을 제대로 파고 들어가지도 못한 채 그대로 가로막힐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흐으.
그리고 자신의 차례라는 듯, 강시는 웃음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며 주변의 무인들을 떨쳐 내었다.
후두둑.
“으아아악?!”
“더 강하다!”
마치 옷에 붙은 먼지나 흙 조각을 털어 내듯, 제멋대로 날아가 버리는 무인들.
단순히 떨쳐 내는 동작만으로도 죽은 무인이 있었으니,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봐, 소운이. 자네 여기 좀 도와주면 안 될까?”
장산은 눈앞의 강시가 아까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팽소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것 하나 제대로 처리를 못해?”
팽소운은 장산이 알아서 해결하리라 믿고 강시 쪽을 보고 있지 않았기에 정확한 상황을 알 수는 없었다.
“잠깐만 기다려라. 금방 끝내고 올 테니.”
하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것으로 보아 상대가 심상찮다는 것은 알았는지 영의와 공손환을 한번 번갈아 쳐다보고 나서 곧바로 무대에서 내려갔다.
팽소운은 양손에서 권강을 뿜어내며 곧바로 장산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크흐흐흐, 황룡강시가 한두 구가 아닙니다만.”
쿠웅!
하지만 장산에게 도달하기 직전, 또다시 큰 물체가 바닥에 내리꽂혔고 그 위치는 장산과 팽소운의 중간 지점이었다.
피어오르는 먼지 속에서 죽립을 본 팽소운은 장산에게 작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젠장…… 못 도와주겠는데? 미안하다.”
“상황이 좋게 굴러가지를 않는군…….”
쿵, 쿠웅.
그들이 그런 말을 하는 사이에도 뛰어오른 것인지, 하늘을 날아온 것인지는 몰라도 대회장의 안으로 착지하는 강시들.
“한둘이 아닌데…….”
“권마 놈이 보고 싶어질 줄이야.”
점점 황룡강시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팽소운은 권마가 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놈이 바깥에서 못 막아서 이것들이 들어온 거 아닌가?”
하지만 장산이 권마가 바깥에서 강시를 막았다면 이렇게 늘어날 일이 없었다는 말을 하자 팽소운은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그럼 고쳐서 말하지. 그놈은 형편없는 놈이야.”
팽소운과 장산은 그런 농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지만, 대회장의 안에 있는 다른 무인들은 그럴 여유마저 없었다.
“젠장…….”
“내 생의 마지막은 아내 셋과 자식 넷을 두고 평화롭게 장원에서 숨을 거두는 것이기를 바랐는데…….”
“일단 혼인부터 하고 그런 꿈을 품어라.”
강시들을 앞에 두고, 그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하! 우리에겐 황룡강시가 있다!”
공손환은 승리를 확신한 듯,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때, 대회장 내부에 있는 황룡강시들 중 둘이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다.
콰앙!
강시 중 하나는 붉은색과 흑색이 섞인 거대한 형체가 찍어 눌렀기에 사라졌다.
그 형체에는 팔이 여섯 개 달려 있었으며, 머리 또한 세 개가 달려 있어 불교의 아수라와도 같은 형상이었다.
다른 하나는, 몸 전체가 섬광과 함께 터져 나가며 사라졌다.
그리고 그 섬광의 중심에서, 흐릿한 형체가 나타났다.
“과연 튼튼하군. 파편이 남을 줄이야.”
섬광의 중심에서 나타난 형체는 바로 독고휘였다.
흐릿한 모습이던 그는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형체가 명확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본좌의 무공이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이겠군. 흔적마저 남기지 않고 갈아 버렸으니.”
거대한 아수라의 형상, 그 아래에 서 있는 혁련무강.
혁련무강과 독고휘는 서로 위압감 있게 등장했지만 혁련무강의 말에 독고휘가 반응했다.
“아니지, 본좌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으니.”
“사실 본좌는 전력의 삼 할도 쓰지 않았다.”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독고휘와 반의 힘도 쓰지 않았다는 혁련무강.
“삼 할? 본좌는 전력의 일 할도 쓰지 않았다. 본좌의 승리군?”
“새로 창안한 무공이라 잘못 말했군. 본좌의 새로운 무공, 아수라파천무의 삼 할이란 소리였다. 계산해 보면, 삼 푼만큼 썼다고 볼 수 있지. 본좌의 승리로다.”
말을 번복하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돌려 가며 말하고 있는 두 고수들.
“본좌는 천뢰검도 안 썼다. 뇌신무도 쓰지 않았지. 본좌의 승리…….”
“뇌신무는 네놈의 것이 아니지 않나?”
독고휘는 은근슬쩍 뇌신무를 끼워 넣었고, 혁련무강이 그것을 곧바로 잡아내 딴지를 걸었다.
“제자가 개발한 것이지만 본좌가 쓸 수 있으면 쓰는 거지.”
“제자라니? 임시 제자일 텐데?”
“젠장, 그걸 잊고 있었네. 어쨌든 내가 더 세다!”
“아니, 내가 더 세다!”
이젠 본좌라고 말하는 것까지 까먹고 유치하게 자신이 더 강하다고 주장하는 두 노고수.
“보여 주지! 저걸 형체도 못 알아보게 갈아 버리는 모습을!”
“아니, 아예 가루로 만들어 보이겠다!”
콰앙!
쾅!
두 고수들은 그렇게 대회장 내부에 있는 황룡강시들을 물색하여 때려 부수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영의는 작게 웃었다.
“……아까 뭐라고 했지? 황룡강시가 있다고? 우린 저 영감님들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