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2화 (18)
갑작스러운 강시들의 난입과 살육의 현장이 펼쳐지자, 대회장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밀치고 어딘가를 뛰어넘으며 도망가기 시작했고, 객석의 높이도 낮고 출입구가 굳이 정해져 있지 않았기에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 혼란이 가중되었다.
“으아아악! 살인이다!”
“광인이 나타났다!”
그들 중에는 단순히 놀라 도망가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교가 본색을 드러냈다!”
“주화입마에 빠진 무인들이 나타났다!”
패닉에 빠진 나머지 확인해 볼 생각도 없이 들은 것이나 본인이 생각하는 결론을 내뱉으며 도망치는 사람들.
“두 번 다시 없을 만큼 많은 무인들이 모여 있는데, 사태는 금방 가라앉겠지. 근데…… 조금 길어지는데?”
“대체 어떤 간 큰 놈들이 천하제일인이 있는 곳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건지. 그, 금방 진정되겠지?”
이곳에 모인 세력들과 그 소속 무인들을 믿고 침착하게 대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애써 냉정을 유지하며 조금씩 눈치를 보던 그들도 이내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크아악!”
“사형!”
“으와아악!”
영웅처럼 달려들어 날뛰기 시작하는 괴한들을 제압하려던 무인들이, 모두 역으로 제압당하거나 죽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로서는 저 괴한이 강시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 이곳을 지키는 이들이 밀리는 모습만이 뇌리에 깊게 남았다.
그나마 무림인들의 행패나 난동에 익숙하고 몸을 피해야 산다는 것을 익히 아는 민간인들과 하류 무인들은 재빨리 도망쳤다.
어느 정도 실력은 있지만, 자신보다 강한 게 틀림없는 무인들이 벌레처럼 픽픽 죽는 것을 본 무인들 또한 빠르게 도망쳤다.
하지만, 무림인들의 힘과 진심으로 살육을 위해 펼치는 무공을 본 적 없는 관리들은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흥, 천박한 놈들이 그럼 그렇지. 그새를 못 참고 사고를 치는구나.”
“이보게, 하북성주. 군사들을 보내 저놈들을 진압시키게.”
북경에서 온 몇몇 고위 관리들은 하북성주에게 명령해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다.
사고가 벌어지는 바람에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인 조온이 다른 이로 변하는 것을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일단 현장의 소란을 수습하라는 명을 내려야 나중에 문책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많은 병사들로 기껏해야 열 명도 안 되는 놈들을 제압하기는 쉽겠지. 나름 열심히 하겠다고 맞서 싸우는 놈들도 있고…….’
‘만에 하나 진압을 실패하더라도 그건 병사들의 능력 부족이지, 내가 잘못한 건 아니지. 나는 군의 장수가 아니라고.’
하북성주 또한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 건 맞았지만, 일단 명분이나 최소한의 책임 분배를 위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병사들을 이끌고 날뛰는 무림인들을 모두 진압해라!”
물론 그는 무림인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팽가의 전대 가주인 팽소운을 비롯한 수많은 고수들이 있으니 금방 해결될 거란 믿음을 가졌다.
그는 그저 돕는 시늉 정도만 한 뒤, 적당히 생색을 내기만 하면 될 거라 판단했다.
“예!”
“흐음…… 다소 밀리는 모습인데…….”
달려드는 무림인들이 속속들이 당하고 있었지만, 일단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잡아 두고 있었으니 머릿수로 밀어붙이면 해결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도 무공에 조예가 깊은 동창의 환관들은 시간이 지날 때마다 표정이 조금씩 바뀌었다.
“호호…… 상황이 복잡하군요.”
“큰 무리를 하지 않는 선에서 해결이야 가능하겠지만…… 이게 다가 아닐 것 같군요.”
동창의 환관들은 그 자리에서 슬그머니 몸을 뺐고, 다른 이들의 주의가 강시들에 몰려 있을 때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그때, 대회장 바깥에서 누군가가 뛰어 들어왔다.
투쾅!
“이놈들! 밥 먹고 힘쓰는 게 그것밖에 안 되느냐!”
대력강체술을 최대치인 네 번째 단계까지 끌어 올린 갈성천이 한 손에 버둥거리는 강시를 끌고 오고 있었다.
-그으읍! 으읍!
“에에이! 닥쳐라!”
쾅!
갈성천이 바닥에 강시를 던지고 가슴에 주먹을 내리꽂자, 강시의 가슴이 움푹 파이고 터져 나간 뒤 움직임이 멈추고 말았다.
“패, 패왕님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장산이 팔을 잘라 낸 강시도 팽소운의 주먹을 맞고 나가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퍼억, 투둑.
머리가 부서지자, 움직임을 멈춘 강시.
갈성천은 방금 바닥을 구르던 강시와 자신이 부순 강시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 결론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머리랑 가슴이라? 알기 쉬워서 좋군! 이것들을 잡으려 들지 마라! 강시다! 강기나 검기 아니면 흠집도 안 나니, 그냥 잡아만 두어라!”
갈성천은 큰 목소리로 그리 소리쳤고, 대회장에 있던 모든 무인들이 그의 말을 들었다.
“강시라니, 이런 걸 우리가…….”
“옛 사마외도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하지만 그들 또한 강시라는 말에 대략적인 상황을 이해했고, 곧바로 전법을 바꾸기 시작했다.
“공격하지 마라! 방어랑 회피에만 전념해라!”
“야! 칼도 두 손으로 잡아! 어차피 찔러 봐야 의미 없다!”
여러 가지 전법이 있어 방어적인 움직임과 회피 기동에 주력하는 정파의 무인들과 즉석에서 새로운 방식에 적응하는 사파인들.
“그대로 잡아만 둬라! 마무리는 우리가 짓는다!”
그들이 대회장 안에서 벌어지는 혼란을 수습하고 있을 때, 대회장 바깥에서는 더 큰 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아아아!
“으아아악! 여기도 있다!”
“사람 살려! 강시야!”
공손환이 낸 휘파람 소리가 작용한 범위는 상상 이상인 듯, 이미 대회장 바깥에서도 제법 많은 수의 강시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위장용으로 여기저기를 싸맨 뒤 죽립까지 씌워 객석 사이에 둔 강시들과는 달리 단순히 몸만을 천으로 감싸 둔 강시들.
하지만 그 천들도 그리 튼튼하지는 않았는지, 강시들의 입 부분 주변 천이 찢어져 있었다.
“흐어억, 흐윽! 독이……!”
“시독(屍毒)인가!”
대회장 내부와 달리, 바깥의 강시들은 누가 봐도 강시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금방 정체를 알아챘다.
그런 혼란 속에서, 대지를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두두두두두두.
“수라대! 앞에 적들이 보이나!”
저 멀리에서 달려오기 시작하는 수많은 군마들과 그 위에 올라탄 검고 붉은 옷의 사내들.
“예!”
“돌격해라!”
혁련무강이 호위 겸 잡부로 데려온 마교의 부대, 수라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맨 앞, 선두에는 권마가 자리하고 있었다.
“왜 대기를 시키나 했더니,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그는 수라대가 강시들과 충돌하기 직전 말에서 뛰어내려 강시 하나를 낚아채 곧바로 박살 냈고, 그 시체를 바닥에 던지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찔러라! 무기가 들어간다!”
“꽉 잡아라! 무기를 튕겨 내는 놈도 있다!”
“대주님! 여기입니다! 검기도 막아 내는 놈입니다!”
수라대의 무인들은 합을 맞춰 강시들을 처치하기도 하고, 그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강시를 붙잡아 두고 강시를 절명시킬 수 있는 고수인 대주를 기다리기도 했다.
-으어어어!
“꺄아악!”
“또 강시가!”
아직도 어딘가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하는 강시들과 그들에게 맞서 싸우다 한 명씩 죽어 가는 무인들, 그리고 공포에 질려 도망치는 사람들까지.
“말 그대로 혼세로군. 대비를 안 해 뒀다면 더한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되었겠어.”
권마는 그 자리에서 권강을 쏘아내 사람들 앞에 갑자기 튀어나온 강시 두 구를 더 처리하고는, 바깥을 수라대에게 맡긴 뒤 대회장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회장의 내부는 어느 정도 혼란이 수습되어 있었다.
애초에 내부에서 활동하던 강시들도 얼마 되지 않았고, 팽소운과 장산, 갈성천이 최대한 빠르게 강시들을 제압했기 때문이었다.
“젠장……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안에서 일이 터질 줄은.”
“그래도 장산이 있어서 다행이네. 녀석이 안에 없었으면 몇 명은 더 죽었겠지.”
갈성천과 팽소운은 어째서인지 외부의 혼란을 수습하러 갈 생각이 없는 듯 이 안에 남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는 건데, 빨리 비켜라.”
“안 됩니다. 잡아 두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바깥으로 갈 수 없었다.
병사들이 모두 달려들어 팔이 잘린 강시 하나를 붙잡고 있었고, 강시는 그들을 떨쳐 내려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있었다.
-그윽, 그아아악!
하지만 가뜩이나 팔도 없는 데다가 수십 명이 달려들어 붙잡아 두자 버텨 내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 강시.
“그걸 빨리 처리해야 한다. 팔이 없다고 그게 허수아비가 될 것 같나?”
장산은 사파의 인물답게 곧바로 검을 꺼내 들어 겨누었고, 병사는 눈앞에 검이 겨누어지자 겁에 질렸지만 그도 물러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좋아! 잘했군, 하북성주! 아주 잘했어!”
“……과찬, 이십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조정의 대신들이, 강시를 붙잡아 두라고 명령한 것이다.
애초에 절망적인 상황이었다면 병사들도 인정사정없이 강시를 처리했겠지만(그럴 능력이 있지는 않았지만), 고수들이 너무 빠르고 깔끔하게 강시들을 정리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수많은 피해를 불러올 대참사를 막아 낸 것이 아닌, 다소 사람이 희생됐지만 금방 멈춘 사태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이들.
만일의 경우에도 고수들이 막을 거라 생각했고, 일도 금방 수습되어 정상화될 거라 생각했으니 그들은 직업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명령에 따랐다.
“일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군……. 이것들보다 더 강력하고 독한 강시들이 올 거란 말이다. 빨리 나가라!”
장산은 외부에서 온 팽소운과 갈성천과는 달리 진작부터 대회장에 있었기에 공손환의 대화를 들었었다.
“이놈들은 급이 낮은 놈들이다. 더 낮은 놈들도 있겠지만, 여기 올 놈들은 확연하게 급이 높단 말이다!”
까앙!
장산이 그렇게 화를 내며 강시에게 검을 내밀고 있을 때, 그의 검을 가로막는 손길이 있었다.
“어머, 뭘 그리 화를 낼까 모르겠네?”
“일이야 금방 수습되었고…… 여차하면, 명망 높은 고수분들께서 나서 주시면 되잖습니까? 정사칠룡의 인물이 셋이나 있는 것을.”
동창의 환관들이, 그들의 검을 가로막은 것이다.
“이것은 저희가 수거하여 면밀히 조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잘못 사용하면…… 나라를 뒤집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이니…….”
강시의 처리를 막는 것을 보자, 갈성천은 화가 치밀어 올라 그들에게 욕을 했다.
“이 내시 놈들이……! 밑의 걸 떼면서 머리도 떼었느냐!”
“어허! 동창에게 말이 심하군! 감히 이 호부좌시랑 설종려의 앞에서 그런 말을! 어딜 하찮은 무림인 놈들이!”
조선의 육조처럼, 여섯 개의 행정기관 중 하나인 호부의 시랑인 설종려.
시랑이 결코 낮지만은 않은 직책인 데다 관리이긴 하지만, 동창을 신경 쓰고 편들어 줄 이유는 없었다.
물론 뒤로는 서로가 어느 정도 주고받는 게 있었고, 황실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한 핑계에 가까웠지만 갈성천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대체 왜 동창 욕에 조정의 관리가 화를 내지?”
“모르지, 나야. 그보다 시랑이면 얼마나 높은 거냐?”
“……나도 모르지.”
둘의 대화를 듣던 설종려는 그들이 자신을 무시한다 생각해 화를 냈고, 이내 그들을 체포하려 했다.
“이이익! 병졸들은 저놈들을 체포해라!”
본인의 상사도 아니고, 군의 높으신 분도 아닌 분이 명령을 내리자 당황하는 병사들.
“예? 저희로서는 무림인을 당해 낼 수 없습니다. 마땅한 체포 사유도 없는지라…….”
병사들 중 나름 계급이 높은 부장들이 다가와 뭐라고 말을 했지만, 설종려는 팔을 휘두르며 성을 내기 시작했다.
“황실과 조정의 관리에 대한 모욕이다! 체포해!”
정작 모욕당한 당사자인 동창의 환관도, 어쩌다 황실까지 모욕하게 된 인물인 갈성천도 가만히 있었는데 설종려 혼자만 화를 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참고로 환관들이 모욕에도 가만히 참고 있던 이유는 여기서 그들과 싸워 봐야 이기지 못할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으어어?!”
그 어이없는 상황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고, 그때를 틈타 강시가 몸을 일으켰다.
-그아아아아!
강시는 곧바로 주변에 달라붙은 병사들을 모두 떨쳐 내고 설종려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으, 으어어! 막아라! 막으란 말이다! 히이익?!”
그는 다급히 자신에게 달려오는 강시를 막으라 명령했다.
하지만 평소에 그의 명령에 바로 따르는 병사를 두는 인물도 아니었고, 동창의 환관들도 그를 굳이 구할 이유나 의리가 없었기에 가만히 보고 있었다.
금방 움직일 수 있는 갈성천을 비롯한 고수들은 일부러 방관했고, 그렇게 설종려의 목에 강시의 이빨이 닿으려 할 때.
콰앙!
하늘에서 내리꽂힌 무언가가 강시의 머리를 박살 냈다.
“으……으으! 히이익?!”
그리고 박살 난 강시의 살점 조각과 체액 비슷한 것을 뒤집어쓰게 된 성종려는 기겁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뭘 멀뚱히 보고 있는 거지? 빨리 정리해라. 바깥은 여전히 강시들로 넘쳐 난다.”
막 대회장의 내부로 들어와 상황을 모르던 권마로서는 살아 있는 강시를 굳이 안 잡고 있기에 자신이 처리했을 뿐이었다.
“그걸 위해서 다른 녀석들이 있는 건데……. 그보다 명줄이 질기군.”
팽소운이 고개를 저으며 권마를 쳐다보았다.
“내 명줄이야 당연히 질기……. 응? 뭐야, 이놈들은?”
권마는 자신의 명줄이 질기다는 말로 알아듣고 의아해했으나, 옆에 있는 설종려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자, 장하다! 내 목숨을 구하다니! 나를 여기서 안전하게 빼내어 준다면 내 폐하께 건의하여 그대에게 큰 상을……!”
퍼억!
권마는 다급히 말을 늘어놓는 설종려를 때렸고, 설종려는 화려하게 회전하며 멀리 날아갔다.
“설 좌시랑님!”
설종려가 날아가는 모습에 다급히 달려 나가는 병사들과 다른 관리들.
“뭐야, 저건? 황실 관리인가?”
“그래.”
권마는 팽소운의 긍정에 표정을 구겼다.
“내가 눈치 없이 너무 빨리 온 것 같군.”
죽기 직전의 그를 구했다는 것을 금방 알아챈 권마는 작게 투덜거렸고, 그의 주변에 있던 고수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