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1화 (17)
뇌격공은 본디 무공과는 다소 궤를 달리하는 성질의 기술이다.
호흡을 통해 단전에 저장한 내기를 이용하여 사용하는 일반적인 무공과 달리, 온몸이 단전인 동시에 온몸이 흡기 및 저장 수단인 것이다.
흡수 및 저장 효율이나 가부좌 및 운기 없이도 활용 가능하기에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정말 좋아 보이는 무공이다.
다만 자연의 기운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인 뒤 취할 것만 취하고 나머지는 내보내는 기존의 내공과 달리 뇌격공은 뇌기에만 한정된다.
무림의 기준에서 뇌기란 일부 뇌기 발출 무공 및 번개 외에는 어딘가에서 접할 수단이 없었다.
뇌기를 발출하는 무공도 체내의 내력을 이용해 가공해서 만드는 것이지, 순수한 뇌기가 아니었다.
뇌기의 독보적인 일인자, 천하제일인 검황 독고휘가 창안하고 직접 접목시켜 만든 뇌령심법이 세상에 드러난 이후로는 뇌기를 사용하는 무공에 대한 연구가 깊어졌고, 뇌기 또한 다른 기운들처럼 사용할 수 있는 기운의 종류가 되었다.
그 또한 처음에는 일반적인 내공을 통해 무공을 쌓아 갔고, 어느 순간 천재성이 폭발해 뇌기를 다루는 무공을 만들고 쓰게 된 것이지 처음부터 뇌기를 쓰지는 않았다.
그렇게 독고휘는 처음부터 뇌기를 이용해서 만들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뇌격공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대부분은 그가 쓸 수 있는 무공이 되었으나 초보에게 어울리지는 않았다.
애초에 기본 전제부터가 단전이나 운기 없이 몸에서 생성, 소비되는 극미량의 뇌기를 증폭시켜 쓴다는 개념이었으니.
영의는 반쯤 편법과 우연으로 뇌전지체의 몸을 얻게 되었고, 뇌기에 민감해지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기에 뇌격공을 성공적으로 전수받을 수 있었다.
당장 독고휘가 그 명성으로 천하에 널리 수많은 사람들 중 뇌전지체 후보를 찾지 않은 이유도, 못 찾을 거란 확신이 있었기에 하지 않은 것이고.
영의를 통해 연구 표본이 생기자 뇌격공은 순식간에 발전해 가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모든 연구가 끝나고 비급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그 뇌격공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번쩍! 번쩍!
정말 빛이 번쩍이며 이리저리 뇌기가 날리는 대회장의 무대 위.
“크하하하! 널 죽이고 연구하면 독고휘의 비밀을 더 알아낼 수 있겠지! 비밀에 싸여 있던 뇌격공은 나의 것이 될 것이다!”
“못 알아낼 텐데.”
“일단 해 보고 알아내겠다!”
영의는 지금 원조온…… 정확히는 원조온이었던 인물을 상대하고 있었다.
* * *
불과 10분 전.
“신직이라니? 무슨 소리지?”
원조온은 영의의 말에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듯 자세를 풀고 고개를 갸웃하기까지 하며 되물었다.
방금 전까지 싸우고 있던 사람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싸우는 것을 멈출 정도로 황당했거나 의문스러워한다는 뜻이겠지만, 영의는 그 능청스러움에 오히려 감탄했다.
“이야~ 연기 잘하네. 내가 너 때문에 매일매일 얼마나 신경 쓰는 게 많았는데.”
“정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무림인들은 다 이렇게 이상한 괴짜들뿐인가? 북경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이렇게나 무림인들이 특이하고 재밌는 족속인 걸 알았으면 자주 구경할 걸 그랬어.”
영의의 말에도 얼굴에 웃음을 지은 채 계속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조온.
하지만 영의는 결정적인 말을 내뱉었다.
“똑같은 뇌기더라? 너랑, 지난번에 나랑 닿았던 애랑. 뼈랑 덩치랑 목소리랑 얼굴은 다 어떻게 했을지 몰라도…… 몸 안의 장기를 다 바꿀 순 없잖아. 안 그래? 공.손.환. 씨.”
영의가 의심하고 있는 대상의 본명을 꺼내자, 조온은 움직임을 멈추고 웃음을 거두었다.
“…….”
‘먹힌다!’
허세와 연기를 대부분 섞어 조온을 떠보고 있는 영의.
조온이 갑작스럽게 침묵하고 웃음까지 거두자, 영의는 이 방법이 먹히고 있다고 확신하며 더 진행하기로 했다.
“그래…… 뭐 천하를 혼란스럽게 만들겠단 계획은 아직 잘 진행 중이야? 설마 중간에 망한 건 아니지?”
영의의 질문에도 침묵을 유지하던 조온은 이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뭐가?”
‘좋아, 다 됐어!’
“어떻게 알았지?”
‘낚였다!’
영의는 조온…… 공손환이 허세와 낚시에 걸려든 것을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난 다 알고 있지. 그래서 여기 온 거고.”
여유롭게 양손을 들어 올리며 미소 짓는 영의의 말에,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하는 공손환.
“그래…… 갑작스러운 비무대회, 마교와 정파의 합작, 쓸데없이 화려하고 큰 보상까지…… 이게 다 덫이었나?”
“그럼, 덫이지. 세상에 어떤 멍청이가 여기 걸릴까 싶었는데…… 진짜 걸릴 줄은 몰랐는데.”
“하, 하하하! 우리의 대업이…… 이딴 허술한 덫에 걸려들 줄이야.”
본래라면 끝까지 잡아뗐어도 영의가 공손환의 정체를 밝혀낼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다.
계속 잡아뗐으면 그만이고, 그의 변용술이 시중에 떠도는 잡기술 수준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본명이 불린 것과, 그가 몸담은 세력의 기밀 유지 능력, 그리고 영의가 보여 준 뭔가를 알고 있는 태도가 일이 틀어졌다는 확신을 주었다.
‘내 이름을 아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래전부터 추적했고, 대외적으로 절대 발설하지 않는 우리들의 목적을 아니 이미 알 부분은 다 알겠군.’
거기다가, 그는 독고휘가 연구하는 뇌격공의 존재만 알고 있었지 그 실상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다.
“뇌기가 같다라……. 변용술도 완벽했고, 무공도 완벽하게 흉내 냈거늘.”
공손환은 이제 조온의 흉내를 내는 것도 지치는지, 얼굴이 물결치듯 꿈틀대며 이목구비의 형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잘 변장하고 떠나는 모습까지 연출해서 숨어 봐야 본질을 찾아낸다는 건가? 뇌격공, 참으로 탐나는구나.”
“그래, 탐나는 건 알겠는데…… 이제 빨리 할 일이나 하지? 보통 정체를 드러내고 다 엎어 버리라고 해야 하지 않나?”
“네 말대로다.”
조온은 손을 입에 넣고 곧바로 휘파람을 불었고, 그 소리가 매우 커 대회장의 바깥까지도 들릴 수준이었다.
삐이익-
대회를 구경하던 관객으로서는 둘이 갑자기 왜 저러는지 알 겨를이 없었다.
“뭐야, 갑자기 휘파람?”
“대체 무슨 대화를 하는 거지?”
둘의 대화 소리가 작았고, 관객들이 내는 잡음이 컸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둘의 대화를 들을 수 없었다.
그들로서는 한참 박 터지게 싸우던 둘이 갑자기 대화를 하더니, 한 명이 휘파람을 부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대체 뭐지?”
“뭔가 내기를 하는 게 아닐까? 이긴 사람에게 상품을 몰아준다거나…….”
“나쁘지 않은데…… 그걸 굳이 지금 해야 하나?”
관객들은 둘의 싸움이 멈춘 이유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시 싸워라! 뭐 하는 거냐!”
“그래! 싸워! 대화는 나중에 하라고!”
관객들 중 일부는 둘의 싸움이 멈춘 것에 항의하듯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객석에 있던 몇몇 인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일어선 관객보다 큰 덩치에 몸 여기저기를 감싼 옷에 죽립까지 눌러썼으므로, 그 수상함이 무림인으로 보여 더 큰 소리를 쳐 줄 거라 생각한 한 관객.
“어? 뭐야, 형씨. 형씨도……. 으읍?!”
하지만 그 관객은 일어선 상대에게 입을 붙잡혀 들어 올려졌다.
뚜둑, 우두둑.
불길한 소리와 함께, 붙잡힌 관객의 두개골과 머리가 악력에 의해 부서지기 시작했다.
퍼억.
“으아아악!”
“꺄아악! 살인이야!”
그런 살인은 객석의 이곳저곳에서 벌어졌고, 그것을 목격한 운영 측의 무인들과 객석에서 구경하던 의협심 높은 무인들이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달려들었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힘을 그렇게 헛되이 쓰다니!”
상대 또한 손으로 사람의 머리를 부수는 인물들이었기에, 무인들은 다소 경계하는 동시에 빠르게 각자의 무기와 권을 내질렀다.
하지만 상대는 그 공격들을 피할 생각마저 없다는 듯이 무기가 다가옴에도 태연하게 서 있었다.
까앙!
콱.
뚜둑.
인간의 몸에서 나서는 안 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공격을 가한 무인들은 놀라거나 고통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여 주었다.
“으아악! 내 손!”
“거…… 검이?”
그렇게 객석이 혼란스러워질 무렵, 무대 위에서 공손환이 또다시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익-!
두 번째 휘파람이 울려 퍼지자, 가만히 서 있던 죽립의 인물들은 돌아서더니 자신을 공격했던 무인들에게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아아아아!
어느덧 조온의 모습에서 키와 덩치, 얼굴까지 모두 바뀌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공손환.
그는 이마에 흉터가 나 있는 중년인의 외모를 하고 있었다.
“강시? 휘파람으로 조종한 건가?”
“정답이다. 그것도 우리 교의 작품인 백룡강시들이지.”
영의는 공손환이 더 이상 뭔가를 하기 전에 그를 막기 위해 곧바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안 어울리는 이름인……데!”
“놀라긴 이르지. 저것들은 시신과 재료, 시공 과정까지 모두 최상급으로만 이루어진 황룡급에 비해 떨어지는 강시들이다. 황룡급은 모두가 한때 이름을 날렸던 은거 고수들이다. 머잖아 곧 이곳으로 도달하겠지.”
객석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는 강시들은 모두 공손환이 몸담은 교에서 만든 것으로, 핵심 전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사람 써, 사람. 왜 강시를 써? 인건비가 아까워?”
“시체는 배신이나 생각이란 것을 하지 못하니까.”
“무섭네.”
무대 위의 둘이 서로 치열한 공방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강시들의 난동을 막기 위해 여러 무인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둘러싸라! 차륜전으로 간다! 약한 놈은 빠져! 일류 이상만 붙어라”
“진법을 펼쳐라! 삼재진이든 뭐든, 할 줄만 안다면 서로 붙어라! 일류 밑으로는 대피나 도와라!”
강자를 상대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파의 인물들과, 함께 협동하는 기술에 절륜한 정파의 인물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강시들에 대처하고 있었다.
그나마 검증된 일류무인 이상만을 끌어모아 강시들과 대처하는 무인들.
-그어어! 크아아아아!
하지만 강시들은 그런 그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 주고 있었다.
뚜두둑.
“으아악!”
한순간에 팔 하나를 날린 무인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자, 강시는 그 무인을 끝장내기 위해 팔을 뻗었다.
“참(斬).”
투욱.
하지만 그 팔은 누군가가 붙잡았던 손을 놓은 물건처럼 기세를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륵!
강시는 자신의 팔을 베어 낸 상대에게 돌아섰고, 그곳에는 검귀 장산이 검을 들고 서 있었다.
“평소라면 갈 일 없던 큰 도시에 흘러들어 오게 된 이유가 있었군……. 하늘이 인도한 것인가.”
사실 그가 이곳에 있게 된 이유는 지인들이 붙잡아서였지만, 그 목적이 공손환과 그 세력을 저지하기 위함임을 감안하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오! 검귀님이다!”
“저 단단한 몸을 단칼에!”
지이잉-
“검이 우는군. 베는 맛은 있겠어.”
장산은 검을 치켜들고 강시와 대치했다.
-그어어어!
“와라!”
강시가 장산에게 달려들기 시작하고, 장산은 검에서 선명한 강기를 뿜어내며 강시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퍼억!
하지만 그때 옆에서 뛰어 들어온 누군가가 강시를 멀리 날려 버렸다.
멋들어지게 강시를 베어 내고 다른 강시들도 정리할 생각이었던 장산으로서는 치켜든 검이 무색해지는 상황이었다.
“뭘 기다리고 있냐?! 뛰어가서 하나라도 빨리 정리해도 모자랄 판에!”
난입한 인물은 권왕, 팽소운이었다.
“아니, 달려드는 상대를 베어 내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서…….”
“강기로 지지면 거기서 거기야! 움직여!”
강기를 두른 손을 휘적거리며 장산을 재촉하는 팽소운.
그가 강시를 날려 버린 자리의 바닥에는 강시의 윗머리 일부분이 남아 있었다.
“아, 알겠네.”
영의와 독고휘가 준비해 둔 보험이 빛을 발하고는 있었지만, 썩 좋게 빛나고 있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