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0화 (16)
영의는 원조온이 혼세궁의 끄나풀 내지는 공손환 본인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잘되면 그놈이고, 안 돼도 최소한의 단서는 나오겠지.’
의원이라 사람의 신체에 해박한 데다 천재성까지 있는 혁련운이 알 수 없다고 말할 정도라면, 흔히 쓰이는 무공은 절대 아닐 것이다.
물론 조온이 황궁의 무공을 쓴다는 소문은 암암리에 퍼져 있었고, 어지간한 고수들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지만 정종무공의 느낌이 강하니 황궁 쪽이라 확신했었다.
당장 그가 온 곳이 어디인지만 생각해 봐도…… 가능성이 매우 높았으니까.
‘황궁 무공도, 굳이 따져 보면 정파 같은 곳에서 쓰는 걸 가져다가 개량해서 쓰는 거니 아무리 특이해져도 듣도 보도 못한 수준이 될 리가 없지.’
영의는 아무리 황궁에서 쓰는 특이하고 비밀스러운 무공이라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무공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보통 듣도 보도 못한 무공들은 대부분 마교나 혈교…… 가끔 별 이상한 세력이 들고나오는 경우가 많지. 근데 이번엔 정작 그 마교도 모른다고 했으니 거의 확실하다.’
그러한 확신을 가슴속에 품은 영의는 곧바로 준비를 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해가 지고 나서야 모든 준비가 끝났다.
다음 날, 용봉비상전의 결승전.
마지막 비무인 데다, 용봉비상전의 결승이 끝나고 수상을 한 뒤 곧바로 용호박투전이 열리기에 사람들이 수도 없이 몰려 있었다.
“제발…… 대박이 나야 하는데…….”
“이번 대회가 끝나면 발주 물량이 늘어야 하는데…….”
일이 잘 풀려 장사가 잘되기를 고대하는 상인들은 서역의 인물부터 저 머나먼 북부의 땅까지 오가는 방랑 상인까지 모두 같은 마음이었고.
“오늘은 엄청난 날이군! 용봉비상전의 결승과 용호박투전의 개시라니!”
“정말 엄청난 기대가 되는군그래!”
비무대회가 어떤 곳인가 궁금해져 찾아온 관리들과 일반 평민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대결의 연속에 오늘도 손에 땀을 쥘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정파의 기둥! 섬전뢰!”
“낭인의 힘을 보여주어라!”
“낭인은 아니지 않나?”
“소속이 없잖나, 그럼 낭인이지.”
“아니,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그래도 낭인과 소속이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지.”
“아무튼! 힘내라! 섬전뢰! 저 꼴 보기 싫은 놈을 눌러 버려!”
영의를 응원하는 사람들과…….
“힘내요, 섬전뢰 대협!”
“오늘도 멋지시겠지!”
“그 얼굴로 왜 무공을 연마하는 거람…….”
“무공을 연마하니까 이런 곳에도 나오는 거지.”
영의를 응원하는 더 많은 사람들과…….
[뇌기의 힘을 보여 주어라!]
[검황의 상징은 꺾이지 않는다!]
[당가의 은인이자 촉망받는 후기지수 섬전뢰 최영의 대협의 승리를 응원합니다.]
영의를 많이 응원하는 문구들이 써진 현수막들이 있었다.
반면에, 조온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수준이 달랐다.
“일동, 응원.”
“원가의 장자! 원조온 대협의 승리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한 중년인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에 객석의 일부가 그대로 솟구치더니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괜찮군. 이대로 계속하도록.”
“예, 성주님!”
하북성주와 그 휘하의 병력 일부라든가.
“장 도독도 온다고 들었는데…… 없군?”
“일전의 비리 사건 때문에 급히 조정으로 불려 가신지라…….”
“흥, 그런가.”
자신들만의 대화를 나누는 조정의 대신들.
“호호, 제법 괜찮은 행사로군요. 다음에는 황궁 가까이에서 열어 보도록 하지요.”
“서역의 상인들도 꽤 보이는 것을 보니…… 진귀한 물건을 구할 수도 있겠군요?”
“저 간악한 마교란 놈들이 끌고 온 상인들이겠지요. 저런 부분에서만큼은 도움이 되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수는 얼마 안 되지만, 특유의 복장과 화장, 그리고 말투로 인해 존재감을 과하게 드러내고 있는 환관들이 보였다.
조온의 아버지가 조정의 고위 관리였으니, 도련님이 어딘가의 대회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면 와서 얼굴도장을 찍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그다지 의심스럽지 않았다.
대신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부담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속이 너무 쓰립니다……. 조정의 높으신 분들을 시중들라니 사소한 것 하나에도 따질까 봐 너무 신경 쓰입니다.”
“조금만 참게. 이기든 지든, 용봉비상전만 끝나면 다들 떠나갈 테니.”
바깥에서 오신 손님들이자 조정의 관리들을 시중들게 된 팽가의 젊은 시종이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나마 같은 지역에다 팽가와 연이 있는 하북성주가 있는 것만으로도 두려운데, 저 복마전과도 같은 황궁의 관리들이니 오죽 두려울까.
그나마 나이를 먹은 시종이 그런 후배를 격려해 주었고, 오늘만 참으면 된다며 잘 다독여 주고 있었다.
“용봉비상전이 끝나면이 아니라 저 원조온이란 북경 녀석이 떠나가야 떠나가겠지요…….”
“그러니 조금만 참게. 적어도 오늘 그 결과가 나올 터이니. 그리고,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여기 오래 있을 이유가 없지 않나. 결승만 끝나면 떠나갈 사람은 바로 자리를 뜰 게야.”
“정말이겠죠……? 저, 북경 사람들은 전부 이상한 취미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당장 저 조온이란 분도 매일 밤 혼자 있는 방에서 알 수 없는 신음과 고함 소리가 들린다고 하는데……. 하루빨리 안 봤으면…….”
“무림인이지 않나, 침소에서도 수련을 하는 거겠지. 그러니 빨리 돌아가서 하던 일이나 마저 하게.”
“하지만 진짜 무서운걸요……!”
사람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시간이 지나며 결승전의 시작이 목전에 가까워질수록 응원의 열기는 조금씩 고조되어 가고 있었다.
무림인들, 그리고 관에 몸담은 이들이 서로 편을 가르듯 나누어 각자의 진영을 응원하는 모습은 참으로 신비하면서도 기이했다.
마치 누가 보면 황궁과 무림의 대리전이라고 착각할 법한 상황이었지만, 정작 겉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무인이긴 하지만 어느 곳에도 소속하지 않아 딱히 무림에 적을 두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최영의.
마찬가지로 무인인 데다 황궁에 소속감을 가지고 있지만 황궁에 적을 올려 두지 않아 아직까지는 단순히 백수(?)인 원조온.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실질적인 사정과, 대외적인 설명이 모두 불일치하고 있는 혼란스러운 현장이었다.
“천하제일비무대회! 용봉비상전! 그 결승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럼 우선! 두 참가자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용준은 평소처럼 말하려 했으나, 아무래도 참석자들 중 고위 관리가 있다 보니 언행에 다소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소속 없음! 경력 없음! 하지만, 전적은 화려합니다! 이차 예선에서 곧바로 본선으로 왔고! 북해의 제자와 비무에서 두각을 드러낸 맹자들! 그리고 마교의 이공자와 대공자를 모두 꺾은! 섬전뢰, 최영의!”
와아아아-!
수많은 사람들의 환성 소리 속에, 영의는 무대를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하지만 평소에 옅게나마 미소를 지어 주던 그는 이번에는 어째선지 표정이 굳어 있었다.
“얼굴이 굳었는데? 평소에는 웃으면서 손도 흔들었는데.”
“결승이잖나. 이기면 엄청난 영약과 명예가 있지만, 지면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초라한 보상밖에 못 받는데.”
“그것도 그렇겠군…….”
그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그저 그가 부담감에 긴장했다고 여길 뿐이었다.
“이어서! 소속 없음! 경력 없음! 하지만, 실력만은 확실합니다! 이차 예선에서는 안타깝게 떨어졌지만, 삼차부터 줄줄이 연승을 이어 온 남자! 이름 없는 상대만을 만나 운이 좋다고 평가받기도 했지만 이미 결승까지 온 몸! 운과 실력을 두루 갖춘! 원조온!”
조온의 경우엔 별다른 특징이나 화려함이 없었기에 별호가 붙지 않았다.
본인도 누군가 떠받들어 주기를 원했지 직접 그것을 유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별호가 붙지 않았던 조온.
“응원 개시.”
“북경의 자존심! 최고의 지역에서 온 최고의 남자! 원조온! 원조온! 원! 조! 온!”
단순히 환호성과 이런저런 응원 문구가 섞이는 바람에 함성 소리 정도밖에 들리지 않았던 영의.
그러나 조온은 그와 달리 절도 있고 힘찬 관군들의 응원을 받고 있었다.
그런 군인들의 응원을 받으며, 영의와 마찬가지로 느릿하게 무대 위로 올라오는 조온.
다만 그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고, 그 모습이 영의와는 정반대로 비쳐 보였다.
“이봐…… 겉으로 봐서는 저 조온이란 녀석, 벌써 이긴 것처럼 굴고 있지 않아? 시종일관 웃기만 하는데.”
“원래 오만하긴 했잖나. 지금 응원하는 이들이 관의 인물들이라 밀리지 않는 거지, 만약 저 관군들도 없었으면 아마 엄청 조용했을걸.”
“그래도…… 실력은 인정해야지.”
“그래, 당가의 독화와 마교의 삼공자를 이기고 올라왔으니…….”
관객들은 조온의 무례함과 오만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실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이내 무대 위에서 결승을 위한 특별 심판, 검귀 장산이 둘 사이에 섰다.
“에…… 그러니까, 준비!”
본래 길치…… 아니 방랑벽이 있어 사방천지를 떠돌아다니는 검귀였으나, 어쩐 일로 얼마 전 하북으로 흘러들어 오게 되었다.
장산은 사람이 많은 것을 보아 뭔가 큰일이 진행 중이라고 생각해 와 봤더니 옛날의 그리운 얼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러나 구경만 하다 가려던 그를 독고휘를 비롯한 옛 지인들이 붙잡았고, 결국 여기서 뜬금없는 심판 역을 맡게 되었다.
-그냥 시작 선언이랑 승리 선언만 해 주면 돼! 뭐 이상한 수작 부리는 거만 잡아내고!
-왜 그런 시시한 일을 내가 해야 하는 거요?! 당신들이 하시오!
-야! 길치 놈 노잣돈이랑 밥 좀 챙겨 주겠다는데 그걸 대놓고 거절하고 있냐! 받아들여!
-크흑…… 그대들이 나를 이만큼이나 생각해 주고 있었다니, 젊은 날의 고생이 헛된 것이 아니었구려!
이런저런 이유와 미끼로 장산을 붙잡아 두는 데 성공한 이들은 그를 곧바로 심판으로 기용했고, 마침 결승전이기에 특별 인물이 있어도 그리 큰 이상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당장 사회자 옆에 있는 해설 담당들이 그와 같은 고수들이었으니까.
“네놈을 이기고 저 영약들을 다 가져가 주지. 고귀하고 품위 있는 인물에게 어울리는…… 그런 상등품들이니까.”
조온은 영의를 바라보며 잘난 체하듯 턱을 들어 올려 그를 깔보듯 쳐다보았지만, 영의는 침묵한 채 그의 말을 무시했다.
“…….”
“뭐, 좋아. 그 입이 열릴 때는 비명을 지를 때가 어울리겠지.”
아무런 말과 반응도 없는 영의와, 여유 가득한 조온.
“시작!”
하지만 시작 신호가 떨어지자 둘은 방금 전의 모습이 모두 연기였다는 것처럼, 동시에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시작하자마자 서로가 서로에게 주먹을 날려 부딪치는 영의와 조온.
“호오……!”
“……익숙한데.”
조온은 제법이라는 듯 입가를 씰룩이며 영의를 노려보았지만, 영의는 주먹이 부딪친 순간 느낀 기묘한 느낌이 거슬렸다.
“그래, 맞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영의가 한 말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공격 일변도로 나오는 조온과 맞받아치며 대치하는 영의.
그리고 무대의 아래에서 영의와 조온이 계속해서 주먹을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는 혁련운은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저게 중요한 게 아닌데……. 저 다음에 나오는 기괴한 수법이 문제인 것을……. 설마 내가 한 얘기를 못 들으신 건가?”
“했던, 얘기?”
혁련운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세진이 고개를 갸웃했고, 혁련운은 영의가 부디 제대로 대처하거나 최대한 빠르게 조온을 쓰러뜨리길 바랐다.
콰앙!
촤아악.
한 번의 격돌 이후, 서로 거리를 벌리며 물러나는 영의와 조온.
“쓸 만하군.”
“……기억났다. 너, 정확히는 네 몸이.”
“뭐? 뭐라는 거냐.”
“너…… 나랑 만난 적 있었잖아? 내 몸도 만져 놓고. 안 그래? 신직이라고 말하면서 나한테 들러붙던.”
영의는 눈앞의 인물과 주먹을 맞대면서, 상대방의 정체를 알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