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9화 (15)
혁련강을 심문하는 모습은 생각보다 충격적인 면이 있었다.
그 장소부터 상당히 충격적이었는데, 대체 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팽가의 지하에 비밀 뇌옥이 있었다.
사용한 흔적이 없는 그 뇌옥에서 권왕을 비롯한 무림의 최고수들이 모여 경계를 서고 있었고, 가장 깊은 곳에서 심문이 진행되고 있었다.
“말해라, 대체 어디서 그런 잡스러운 기술을 배웠지?”
“크윽…… 크아아악!”
망가져도 상관없다는 태도가 허세가 아니었다는 듯, 혁련무강은 자신의 맏아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말, 하라고!”
독고휘는 점혈 등을 통해 고통을 주며 심문하던 도중에 짜증을 이기지 못하고 혁련강을 때렸다.
퍼억!
“크흐흐…… 중원 놈에게…… 말할 것 같나……. 퉤!”
혁련강은 피 섞인 침을 독고휘에게 뱉었고, 그걸 맞아 줄 독고휘는 아니었지만 기분이 나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분근착골을…….”
최후의 수단 중 하나인 분근착골을 시도하려는 독고휘.
하지만 혁련무강이 독고휘의 어깨를 붙잡았다.
“거기까지.”
“뭐냐, 그래도 아들이라고 그런 꼴은 못 보겠다는 건가?”
“본좌가 직접 심문하지. 대공자, 대체 어떤 계기로 그런 무공을 익히게 된 거지? 누가 가르친 건가?”
혁련무강은 자신의 맏아들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대공자라 칭했고, 그 모습에서 지금 그가 아버지인 혁련무강이 아닌 교주 혁련무강으로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답하라.”
쿠웅.
혁련무강은 혁련강에게 압박감을 주며 대답을 재촉했다.
“큭, 커흑. 교의 원수와 붙어먹어 놓고…… 이제 와서 교주 행세라니……. 부끄럽지 않습니까?”
“붙어먹었다라…… 불쾌하군. 대체 어떤 놈에게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놈은 위험한 놈이다. 일이 커지기 전에 잡아야 하니 얼른 불어라.”
혁련강은 그 말에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입을 천천히 열었다.
“……수상하긴 했지. 수상한 구석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전체적으로 수상했지. 한밤에 온몸을 야행복으로 칭칭 감싸고, 목소리도 괴상하게 낸 데다 홀연히 나타나고 사라졌으니. 하지만, 나에겐 힘이 필요했고…….”
힘이 필요하다는 말을 할 때, 혁련강은 구석에 있던 영의를 노려보았다.
“놈은 추후에 말 잘 듣는 개가 필요했던 건지 아니면 단순히 주의를 끌 목적이었던 건지는 몰라도 아무런 대가 없이 내게 환단 하나와 조언을 해 주었지…….”
혁련강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독고휘는 조언에 대해 물었다.
“그 조언이라는 게 뭐냐?”
“……환단은 독일 경우를 대비해 조금 떼어 놓아 내 방에 놔두었고, 탁자의 아래를 살펴보면 천에 감싸진 종이가 붙어 있을 거다.”
혁련강은 독고휘의 말을 무시한 채, 자신이 할 말만 계속 이어 가고 있었다.
“이 자식이……?”
“잠깐만. 이야기를 계속 들어 보자고요.”
영의는 독고휘를 붙잡아 진정시키고는, 혁련강의 말을 계속 듣기로 했다.
“그리고…… 조언이라, 뇌섬문을 상대하는 방법과 독고휘의 뇌격공에 대한 전법을 알려 줬지만…… 별 쓸모가 없더군. 뇌기를 상대하는 방법 외에는 별 쓸모가 없더군. 아무래도 그리 정보에 밝지는 못한 모양이야. 크흐흐흐…….”
혁련강은 말을 끝내며 웃기 시작했다.
“흐하하! 흑룡투기는 내가 고안해 낸 방법이오, 아버지. 다른 모든 걸 희생해서라도 뇌기를 막기 위해 그런 방법을 선택했지. 어떻소? 친우와 본인이 개량해 준 상승무공과 교의 수행을 충실히 따른 인재가, 듣도 보도 못한 놈 하나 때문에 이렇게 망가지는 것이!”
혁련무강은 흑룡투기가 의문의 인물에게서 비롯된 무공이 아닌, 혁련강이 스스로 고안해 내고 쓴 무공이라는 말에 움찔했다.
“최고의 환경, 최고의 무공, 최고의 스승과 그 가르침들! 그것들을 삼십 년간 수련해도 그…… 찢어 죽이고 싶은 뇌기 하나 때문에 모두 포기해야 했소. 그래, 기분이 어떤가? 나를 이렇게 파멸로 몰아가고 얻은 승리는?”
혁련강은 영의를 쳐다보며 미소 지으며 물어 왔다.
씨익 웃는 그의 입가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
이마에서 흐르는 피는 조금씩 흘러 내려가다 이윽고 눈을 거쳐 아래까지 내려갔고, 그 모습은 마치 그가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어쨌든, 약은 빨고 싸웠다는 얘기 아니야?”
“크흐. 그랬지, 그럼에도 패배했지만.”
혁련강은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한 건지, 영의를 앞에 두고도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달관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치? 근데 말이야, 그런 거 없이 그냥 졌으면 단순히 패배자인데…… 그것까지 해 놓고 진 너는 진짜…… 허접한 패배자가 되는 거야.”
“…….”
영의는 혁련강을 자극하려는 듯이 도발적인 말을 계속 내뱉었고, 혁련강은 화를 참으려는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영의가 앞으로 몸을 기울여 그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넌 앞으로도 이런 말을 듣고 살겠지. 별짓 다 해 놓고도 진 패배자라고. 대공자는 무슨, 그대로 집 나가는 게 덜 부끄러울 거야.”
그 말에 혁련강은 참던 화가 폭발했는지 몸을 일으키려 했다.
“이노옴……!”
촤르르- 쩔그럭!
그러나 그의 몸에 묶인 사슬 때문에 그 이상 움직일 수는 없게 된 혁련강.
혁련강이 몸부림치며 날뛰기 시작하자, 혁련무강과 독고휘가 빠르게 그의 혈을 짚어 바닥에 쓰러트렸다.
“그럼, 저는 가 봅니다. 좋은 정보는 없었지만…… 좋은 모습은 봤네요.”
“……! ……!”
바닥에 쓰러진 채, 나오지 않는 말과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영의만을 노려보고 있는 혁련강의 귀에 독고휘와 혁련무강의 대화가 들려왔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살려 놔야지. 자기 딴에 명예와 생각이란 게 있다면…… 스스로 죽을 것이고, 복수하겠다는 의지와 아집만이 남는다면…… 객기를 부리다 죽겠지.”
혁련무강은 혁련강을 이대로 풀어 준다면 두 가지 행동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실추된 명예와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자결하거나, 그 부끄러움에 복수를 시도하다 역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어떻게 하더라도 죽는 건가? 그럴 거면 지금 죽이는 게 편할 것을.”
스르륵-
독고휘는 여기서 혁련강의 목을 치려는 듯,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작게나마 희망을 하나 걸어 봐야지. 진실된 깨달음을 얻었다면 객기도 부리지 않고, 명예를 생각하지도 않고 쏟아지는 비난을 감내하며 살아갈지도 모르니.”
하지만 혁련무강에게는 작게나마 하나의 희망 사항이 있었다.
자결도, 복수도 아닌 그저 목숨을 이어 갈 뿐인 삶임에도 불구하고 살아가 주는 것.
“너무 기대가 큰 것 같은데.”
독고휘의 말마따나 자존심 강한 혁련강이 영의에게 처참하게 패하고 조롱까지 들었음에도 얌전히 살아갈 확률은 거의 없었다.
“한 명…… 아니, 두 명을 바꾸었으니 세 명이라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뿐이다.”
혁련무강은 연화와 운의 행동을 바꾸었던 영의가 이번에도 한 명을 바꿔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도 머리를 좀 식힐 필요는 있겠지.”
“그건 맞는 말이군. 대회가 끝날 때까지, 여기에 구금해 두도록 하지.”
하지만 살려 둔다고만 했지 잘 대접한다고는 일언반구도 없었던 둘.
둘은 혁련무강을 비밀 뇌옥에 계속 가두기로 생각했고, 이내 지하 뇌옥을 떠나며 뒷정리를 맡겼다.
한편, 영의는 팽가의 비밀 뇌옥을 떠나 대회장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별 도움 안 되는 정보만 털어놓을 거면서 왜 그렇게 뻗댄 건지…….”
뭔가 의도가 있어서 도발적인 언행을 한 것 같았던 영의는, 단순히 혁련강이 시간을 낭비하게 한 데다가 쓸모 있는 정보를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보복으로 그를 도발한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두 번째 비무대회를 할 때 또 와야 하는 건가……? 일단 이번에는 혁련운이랑 내가 결승에서 붙을 것 같은데.’
영의는 이번 대회에서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고, 일단 비무대회를 끝내기 위해 대회장으로 복귀부터 하기로 했다.
결승은 내일이었지만, 혹시나 모르는 수상한 인물을 찾을 수도 있었으니까.
‘별로 찾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지만…….’
와아아아-!
그 순간 큰 환호 소리가 대회장의 안쪽에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겼나 보네.’
영의는 혁련운이 승리했다고 생각하며 대회장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대회장의 내부로 들어서자 영의의 눈에는 상당히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하하! 내가 이 정도지!”
무대 위에 서서 양팔을 위로 들어 올리고 웃고 있는 것은 혁련운이 아닌 그 상대, 원조온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비되듯, 무대 바깥에 주저앉아 패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혁련운은 팔에 부상을 입은 듯 왼팔을 부여잡고 있었다.
“……뭐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영의는 자세한 사항을 캐묻기 위해 혁련운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이미 그의 옆으로는 대회의 의료진이 다가가고 있었다.
그 의료진 중 당가의 송현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걱정하여 올 만큼 이런저런 부상을 입은 듯했다.
‘어디…….’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를 것이라 생각했던 영의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고, 이내 그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해 줄 수 있는 인물들을 발견하였다.
장우형, 당세준, 당세진, 혁련연화.
영의와 주로 어울리거나 마주친 적이 많았던 인물들이었다.
물론 세진은 지금 백부인 송현과 함께 혁련운에게 갔기에 그 자리에 없었다.
“다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 좀 해 줄 수 있는 사람?”
오늘도 한결같이 모여 있던 그들에게 다가간 영의는 문득 그들의 옆에 북주혜와 나종신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일단 더 친분이 있는 이들에게 질문을 했다.
“아, 사숙조님. 오셨습니까?”
우형은 예의 바르게 포권을 하며 인사했지만, 다른 이들은 영의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게, 이야기를 하자면 조금 복잡해질 수도 있고 믿기지 않는 부분도 있으실 거예요.”
설명이 난해할 것을 우려하는 혁련연화.
“은인, 직접 보셨어야 대비를 할 터인데…… 말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소. 직접 본 우리로서도 알 도리가 없는 무공이오.”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고 하면서도 머릿속으로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정리를 하는 당세준.
“본 적이 없는 무공인데……. 스승님도 저런 건 말 안 해 줬었는데. 막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니까 이렇게 돼서 움직이지를 못하고…….”
일단 손짓과 발짓으로 뭐라고 설명하고는 있는데 손짓이고 말이고 둘 다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게 말하는 나종신.
“……나도 뭔지는 모르겠어. 다만, 다만…… 기괴했어. 마치 시체를 만드는 것처럼…….”
북주혜는 자신이 보고 느낀 바를 이야기했지만, 영의는 현장을 본 적이 없었기에 이들이 뭘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다른 애한테 물어봐야 하나.”
영의는 그들의 중구난방인 설명에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였고, 그때 저 멀리에서 왼팔에 붕대를 감은 혁련운이 돌아오고 있었다.
“귀인!”
오른팔은 멀쩡한지, 손을 들어 올리며 영의를 부르는 혁련운.
“움직이지 마. 팔, 다쳤으면서.”
그런 그의 옆에 당세진이 붙어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혁련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저도 의원이니 어디가 성한지는 알고 있습니다.”
혁련운은 영의를 부를 때부터 계속 웃고 있었고, 영의의 옆에 다가올 때까지만 해도 그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으나 몸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오게 되자 그 웃음이 곧바로 사라졌다.
“주의하셔야 합니다. 상당히 기이하고 위험한 무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건데?”
“중반까지는 그럭저럭 할 만했는데, 나중에 꺼낸 무공이 위험합니다. 혈을 짚지 않았음에도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아마 황궁 쪽의 비밀스러운 무공인 듯합니다. 그리고 또…….”
혁련운은 영의에게 최대한 경고하기 위해 이런저런 정보를 털어놓고 있었지만, 영의는 그의 말을 중간부터 듣지 않았다.
“……찾았다, 거지 같은 놈.”
“예? 개방은 여기 없습니다만?”
혁련운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영의의 입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말에 의문을 표했지만, 영의는 그것을 대답해 주지 않은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