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238화 (238/325)

#제238화 (14)

영의의 눈앞에는 몸에서 검은 기운을 피워 올리는 혁련강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후욱, 후욱-!”

격한 움직임이나 오랜 시간의 운동같이 칼로리를 많이 소모한 사람의 몸에서는 열이 나온다.

그 열을 식히기 위해서 몸은 땀을 배출하여 체온을 낮추는 것이고.

그런 자연스러운 생리 활동은 추운 겨울날 또는 갑작스럽게 외부 온도가 낮아질 때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땀이 체온으로 인해 증발하며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겨울에 자주 봤었지…….’

지금 혁련강의 모습이 딱 피어오르는 김을 검은색으로 물들인 모습으로 보이고 있었다.

다만 핏발이 서다 못해 붉은 점이 찍히기 시작한 눈과 마찬가지로 모세혈관이 터져 붉은 점들이 올라오고 있는 피부만이 다르다면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엄청나게 무리를 하고 있거나 먹어선 안 될 걸 먹은 것 같은 모습을 보이자, 영의는 한숨을 내쉬며 허리에 매단 물건을 꺼냈다.

“하아…….”

철컥, 척.

영의는 허리께에서 꺼낸 보호구 겸 무기인 수갑을 착용했다.

혁련진과의 시합 이후 잔소리를 들었기에, 제대로 사용할 무기로 등록했지만 지금까지 쓰지 않던 것을 꺼내 든 것이다.

“크윽……! 온몸이 욱신거리는구나.”

혁련강은 타락해서 정신이 나간 것 같은 겉모습과 달리, 제대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영의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아프면 그냥 기권해…….”

영의는 진심을 어느 정도 담아 혁련강에게 기권하라는 권유를 했다.

이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말로 하는 설득도 먹힐 수 있겠지만, 상대가 본인 때문에 이성을 잃었다는 점을 간과한 영의.

“하지만, 이 아픔도 네놈을 죽이기 위한 고통이라 하니 오히려 상쾌하구나. 흑룡출수!”

-아! 혁련강! 재빠르게 달려들기 시작합니다! 과연 아까보다 빠릅니다!

혁련강은 곧바로 영의에게 달려들며 일권을 날렸고, 영의는 그 주먹을 흘려 내기 위해 그의 손을 옆으로 쳐 내려 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집안에서 수련받은 무술을 연마하며 수도 없이 사용했던 흘리기 기술.

“버들잎 쳐 내……?!”

하지만, 그의 세월을 부정하듯 혁련강의 흑룡투기에 의해 튕겨 나가는 영의의 손.

-호신강기인가요?! 하지만 그걸 쓸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을 텐데! 어쩌면 비장의 수단이 일시적인 호신강기일지도 모릅니다!

“겉모습만 그럴듯한 게 아니었나?”

영의는 기술이 실패하자 곧바로 옆으로 몸을 피했고, 혁련강이 그를 따라 공격 수단을 계속 권법과 조법, 각법을 섞어 다채롭게 바꿔 가며 달려들었다.

아직 속도는 우위에 있었던 영의였지만, 이대로 흘러가면 소모전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빠르게 시합을 끝내려 했다.

“등걸차기!”

파악!

-거리를 벌렸습니다! 좋은 판단이군요!

뇌기와 묵직한 힘이 담긴 발 차기로 혁련강의 움직임을 잠시 제지하는 영의.

하지만 흑룡투기가 확실히 제 역할을 해 주고 있는지, 혁련강은 곧바로 다시 영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다시 달려듭니다! 이제 버틸 수 있게 되니 두렵지 않다 이거겠지요!

쿠웅!

그러나, 힘센 황소처럼 달려들던 그의 맹렬한 돌격은 영의에게 도달하기 직전에 멈추고 말았다.

-아니?! 혁련강!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맙니다! 바닥에 무릎 꿇고 넘어졌습니다!

“이건……. 네놈……! 언제 본교의 무공을……! 신공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혁련강은 원수를 보는 눈빛으로 영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뇌신군림보. 내가 어지간하면 그냥 싸워서 제압하겠는데…… 갑옷 같은 걸 둘러 버리면 난 좀 억울하거든.”

예전에 혁련무강에게 배웠던, 천마군림보를 응용한 뇌신군림보를 사용한 영의.

그 당시에 천마군림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뇌신무를 창안하고 사용했던 영의였지만, 천마군림보의 원리는 대충 이해했다.

내력이 모자라 강대하고 폭력적인 압박을 가해 주변 일대를 지배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뇌기를 끼얹듯 사용해 그 흉내를 낼 수는 있었다.

-아앗! 저게 뭡니까! 최영의! 그 등 뒤에 뭔가 있습니다! 대낮에 귀신이?!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영의의 뒤로, 그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거인의 형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뇌기로 이루어져 잠깐잠깐 형상이 흐릿해지거나 투명해지기도 했지만, 대략적인 모습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나 참, 안 그래도 유리 몸뚱이라 서러운데. 저건 사기 아니냐고.”

영의는 강화계의 각성자도 아니었고, 무공도 호신 계열의 무공은 익히지 않았으니 몸의 내구성은 일반적인 각성자의 것과 별다를 바 없었다.

물론 평균을 상회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공격력에 비하면 방어력은 형편없는 편이었기에 혁련강이 흑룡투기로 방어를 때워 버리자 억울함을 느꼈다.

대부분 무림인들이 들었다면 뇌전지체가 백만 배는 더 좋다고 반박할 말이었지만, 여기서 영의의 말과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 이것도 실험해 봐야지.”

영의는 혁련강에게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고, 혁련강은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으나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나를 놔두고 네놈에게……!”

‘대체 왜 나에게는 무공 한 자락도 알려 주지 않고 아들로서의 관심도 가져 주지 않았던 아버지가 저놈에게는 무공을 전수했는가?’

-아아! 혁련강!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그리고, 왜 바깥에서 온 사생아 놈에게는 관심을 가지고 행동을 지원해 주는 건가? 나는…… 아들이 아니었나?’

혁련강은 수많은 생각을 하며 벗어나기 위해 더더욱 힘을 끌어 올렸고, 이제는 더 큰 혈관이 터져 피부 아래로 붉은 피가 번지기 시작했다.

“나한테 따지지 마. 그리고, 좀 아플 거야.”

철컥. 차르륵!

영의는 수갑의 한 부분을 조작하였고, 그 안에 내장되어 있던 작은 징이 바깥으로 드러났다.

“반칙 같지만…… 시험용으로 조금만 뺀 거니까 참아 봐.”

등 뒤에서 수호령처럼 굳건하게 버티고 있던 뇌신의 형체가 영의의 몸 안으로 스며듦과 동시에 오른팔의 수갑을 감싸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직-!

스파크를 튀기며 오른손 정권을 그대로 혁련강의 가슴팍과 복부, 이마에 연달아 날리는 영의.

“정중선 연타.”

뻐억, 뻐억!

본래라면 미간, 인중, 목젖, 명치, 복부 및 국부 같은 급소들을 연타하는 반쯤 살인용 기술이었지만 영의는 적당히 타협해서 급소에서 한 치씩만 빗나가게 쳤다.

-아아! 치명적인 부분만 맞고 있습니다! 잘못하다가는 사망할 수도 있을 텐데요!

해설 중인 만박자도 영의가 정확하게 급소에서 비껴나게 때리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기에 다소 걱정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진짜 튼튼하네. 그래도…… 효과는 있어.”

영의는 때리던 것을 잠시 멈추고 혁련강의 몸을 바라보았다.

“크흑, 쿨럭.”

기침을 하는 그의 찢어진 옷 틈새로는 작고 붉은 점들이 몸의 중앙을 따라 나 있었고, 그것들은 수갑에서 나온 징에 찔려 흐른 피였다.

하지만 겉모습이 비교적 멀쩡하다고 하더라도 내부는 그렇지 못했는데, 지금 혁련강의 체내는 대부분의 장기가 전기 충격에 마비를 일으키고 있었다.

“찔러 넣고 흘리니 더 확실하긴 하네.”

영의는 독고휘의 방식인 상처 부위로 뇌기를 쏟아 넣는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 그의 무기에 적용했다.

지석에게 부탁해 만든 수갑은 호엔하임이 가공한 금속으로 만든 징과 칼날을 약간의 조작으로 수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칼날의 수납 기능에 대해서는 지석과 영의 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기에, 영의가 잘만 숨긴다면 들키지 않을 것이다.

“네……노옴…….”

한편, 혁련강은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영의를 노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내가 맏형은 아니지만, 그래도 집이 삼남 일녀거든? 가끔은 동생도 챙기라고.”

영의는 혁련강에게 충고 아닌 충고를 해 주었고, 혁련강이 그 말을 조금이라도 신경 쓰기를 바랐다.

‘교주는 못 될 것 같은데, 숙청이라도 안 당해야지.’

“닥……쳐라……!”

하지만 혁련강은 여전히 영의에게 달려들 의지가 가득했고, 영의는 빠르게 시합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콰앙!

혁련강의 머리를 붙잡고 곧바로 바닥에 내려찍은 영의.

그는 곧바로 그를 집어 들어 무대 바깥으로 던졌고, 혁련강은 비록 겉모습은 나름 멀쩡했지만 그 내부는 호흡을 하고 있는 게 용할 정도의 상태였기에 무력하게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장외! 승자! 최영의!”

혁련강이 무대 바깥으로 떨어지자 심판의 판정이 내려지고, 관객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하지만 영의는 지금까지처럼 약간의 서비스나 무대 매너 같은 것 없이 곧바로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그는 무대에서 내려와 대회장 바깥으로 향했고, 그가 가는 방향에는 혁련무강과 독고휘가 앞서 이동해 기다리고 있었다.

“왔군.”

“네, 왔죠.”

그리고 셋이 모인 장소에, 뒤이어 권마가 혁련강을 들쳐 메고 마의와 함께 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긴가민가했었는데…… 이걸로 확실해졌군.”

“승리에 대한 갈망이 너무 커진 나머지 손대선 안 될 것에 손을 댈 생각을 했고, 그때 때마침 다가온 누군가의 감언이설과 약간의 도움으로 힘을 얻는다라……. 너무 작위적이군. 영웅지에나 나올 법한 상황이야.”

“그렇지만 대체 누가 마교의 대공자한테 그런 감언이설을 하고 또 적절한 도움을 주겠어요? 이제 확실히 있겠죠, 암중 세력이라는 게.”

혁련무강과 독고휘, 영의는 암중 세력에 대한 의심이 사그라들고 있었으나 오늘 갑작스러운 혁련강의 폭주를 보자 그 의심이 최고조로 치솟았다.

“마의, 보고해라.”

“예, 지존이여. 전신의 세맥이 다소 손상을 입었고 눈과 심장 부근에 출혈이 있으며, 전신의 장기가 다소 활동이 부진합니다.”

영의는 장기의 활동 부진이란 말에 슬쩍 시선을 돌려 모른 체를 했다.

“그런 보고가 아닌, 수상한 점에 대한 보고 말이다.”

“흘흘흘…… 갑작스러운 내력의 증진, 혈류의 속도와 기존 무공의 질서를 깨뜨리는 운용까지…… 누가 봐도 대공자가 스스로 할 짓은 아니지요.”

“흑룡제천권은 제가 직접 검수하고 개량에 도움을 준 무공입니다. 호신강기의 개념으로 가르쳐 준 것은 있지만, 아까 보았던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마의와 권마는 각자 알고 있는 것과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했고, 혁련무강은 그들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이 녀석을 깨워라. 이야기를 들어야겠으니.”

“그게…… 머리를 다소 강하게 부딪혀서, 깨우려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마의의 말에 혁련무강과 독고휘는 영의를 바라보았고, 영의는 또다시 시선을 돌렸다.

“후우…… 얼마나 걸리지?”

한숨을 쉬며 대략적으로 필요한 시간을 묻는 혁련무강.

“일각입니다.”

“반 각 안에 해결하도록.”

혁련무강은 마의의 능력을 익히 알았기에, 그녀가 반 각 안에 해결을 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존명, 하지만 머리가 조금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

마의의 섬뜩하면서도 어느 정도 현실적인 경고.

“상관없다. 자신의 힘을 의심하고 사도를 택한 녀석 따위…….”

하지만 혁련무강에게는 아들의 부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에, 혁련강에게 약간의 장애가 남더라도 일을 강행할 필요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