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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236화 (236/325)

#제236화 (12)

준결승전 시작 전, 영의는 멍하니 앉아 무대를 구경하고 있었다.

출전자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투자한 상단과 무인이 아닌 관객들을 위한 여흥용에 가까운 경극 같은 무대가 계속 이어졌다.

물론 무인들 중에서도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즐기는 사람도 제법 있었지만, 영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애초에, 준결승전 진출자들 모두가 그것에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흥…… 역시 촌구석이라 시시하군.”

북경에서 더 화려하고 재밌는 구경거리를 많이 본 적 있었기에 팔짱까지 낀 채 시시하다는 듯 무대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지역별로 언어가 조금씩 다르듯이 문화 또한 달랐기에 북경에서 본 적 없는 새로운 내용 같은 건 의외로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리고 영의는 정말 관심이 없었기에 옆에 있는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네가 떨어질 줄은 몰랐었는데.”

영의의 옆에는 준준결승…… 즉 팔강에서 아쉽게 떨어진 세진이 있었다.

암살을 막아야 하는 황궁 무인들로서는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이 투척물과 독이었기에, 조온은 세진의 암기와 독들을 완벽하게 막아 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최후의 수단인 육방만화까지 피해 내거나 쳐 내는 모습을 보여 준 조온을 보고, 세진은 기권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나, 아깝게 졌어. 그리고…… 다치지, 말랬어.”

물론 소민과 싸울 때처럼 무리하여 본인의 부상을 감수했더라면 이길 수 있었겠지만, 세진은 또다시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적당히 그만두었다.

“네 오빠가 좀 과보호하는 그런 감이 있긴 하지.”

세진을 챙기는 모습과 지금도 세 발짝 뒤에서 세진을 쳐다보고 있는 세준을 슬쩍 돌아보는 영의.

“아니…… 혁련, 소협이 그랬어.”

오빠인 세준의 말보다 자신을 치료해 줬던 혁련운의 말을 더 잘 듣는 모습을 보이는 세진.

영의는 그 모습을 보고 자식 키워 봐야 다 소용없다는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보니 세준도 세진이 아니라 무대 건너편의 혁련운을 보는 것 같았지만, 정작 혁련운은 그의 형과 말싸움을 하고 있었기에 모르는 것 같았다.

“……대회, 끝나기 전에 또 만나야 하는데.”

얼마 전 세진은 영의와 혁련운을 마주쳤을 때 독을 준 적이 있었고, 그때 혁련운이 무심코 그것을 받아 마셨다가 다급히 해독하러 달려가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또 독 주고 그러지 마라. 쟤는 약으로 독을 치료하는 거지, 나처럼 내성이 있는 게 아니니까.”

영의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고는 혹시나 싶어 세진에게 주의를 주었다.

“응. 그러고 보니, 비무…… 불공평해. 독침 몇 개, 맞았었는데…… 내성으로 무시했어.”

세진은 내성이란 말에 뭔가 떠올랐는지, 조온을 째려보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물론 겉모습은 평온하고 표정도 무표정한 상태였지만, 목소리에 묘한 짜증이 섞여 있었다.

“뭐…… 너도 진 게 아깝고 그렇겠지. 규칙 정해 놓고 싸우라면 손발 잘린 느낌이니까.”

실전과 같은…… 아니, 실전 격투와 링 위에서의 싸움은 다른 법이었으니.

실전에서는 급소란 건 먼저 노릴수록 좋지만 링 위에서는 건드려선 안 되는 부분이었으니까.

비무대회에서도 성능이 좋은 독이나 무기를 쓸수록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겠지만, 순수한 실력을 겨룬다는 이름하에 그것을 균일화시켰다.

그 때문에 독이나 암기류는 다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그런 약한 암기와 독을 가지고 최후의 여덟 명까지 남은 것이 대단한 지경이었다.

세진 또한 그 부분은 자랑스러운지, 자랑하듯 자신의 전적을 언급했다.

“그래도, 곰…… 이겼어.”

“곰? 아아.”

맹돌저라는 별호가 있었지만, 세진은 종신을 곰이라고 불렀다.

곰 같은 덩치와 다소 우둔한 모습을 보면 정말 곰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싸움에 들어서면 보여 주는 기지와 순간적인 판단력은 곰 이상이었다.

하지만 오빠가 지는 모습을 봤던 세진은 종신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었고, 두 번 연속으로 이어지는 사방만화와 그녀의 독에 종신은 패배하고 말았다.

영의는 그 대전을 상당히 주의 깊게 봤었다.

‘분명히 종신이 이긴 상대가 관인이었지…….’

요주의 인물이었던 관인을 이긴 상대가 종신이었기 때문이다.

관인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종신과 맞서 싸웠지만, 그는 종신이 맷집과 몸을 앞세워 무식하게 밀고 들어오는 것을 막을 최후의 절초가 없었기에 안타깝게 패배하고 말았다.

관인은 패배 이후 사문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곧바로 떠났지만, 그의 동문들은 아직 이곳에 남아 있었다.

‘……뒤를 쫓아간 사람들의 보고에 따르면 하남으로 갔다고 했지.’

공운문은 하남에 있었고, 패배한 후기지수들이 곧바로 사문으로 돌아가는 것은 흔한 일이었기에 뒤따라간 이들도 금방 다시 돌아왔다.

그렇게 관인에 대한 정보도 끊겨 버려 미궁에 빠져 버린 사건은 해결되지 못했고 결국 비무대회가 준결승전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이내 영의는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어쩌면 암중 세력은 여기 사람들이 해결해야 하는 거고 나는 그냥 밑밥만 깔아 주고 가는 역할인 게 아닐까? 그 녀석도 미래에 일이 벌어졌다고 했으니…….’

아무리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 어쩌면 미래의 우형이 말했던 것처럼 두 번째나 세 번째 비무대회가 열려야 암중 세력의 끄나풀이 나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사숙조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리고 우형이 한 말을 생각하자 거짓말처럼 그 당사자가 영의의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본선에 남아 있었을 때는 사문의 제지와 수련으로 인해 영의와 그리 큰 접점이 없었지만, 탈락하자마자 거짓말처럼 그에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예? 호랑이 말입니까? 남만의 그 큰 호랑이는 저기 있습니다만?”

그 과정에서 특유의 친화력으로 영의 주변의 인물들과도 나름의 친분을 쌓게 된 우형.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영의는 우형과 말을 진지하게 하려면 피곤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저으며 설명을 포기했다.

“이야, 하하하. 그렇게 강한 상대와의 대전을 목전에 두고서도 어떤 긴장도 하지 않으시다니! 역시 사숙조님이십니다. 멋지십니다!”

“넌 네 이를 나가게 한 놈한테도 웃어 보이겠다……?”

웃으면서 영의에게 멋지다고 칭송하는 우형은 앞니가 하나 빠져 있었다.

우형이 준준결승에서 맞붙은 상대는 혁련강이었고, 여태껏 어지간해서는 한 방에 상대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던 그가 다소 과격해졌던 무대였다.

뇌섬문의 인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상당히 분노한 혁련강은 힘을 조절해 한 대씩 치고 마는 식으로 우형을 괴롭혔고, 그 결과 우형의 이가 하나 부러지게 되었던 것이다.

“아하하, 이 하나면 싸게 먹힌 것 아닙니까! 그래도 좋은 경험이 되었으니,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고 더 심한 것에서 끝날 수도 있었던 혁련강과 장우형의 싸움.

그러나 우형은 혁련강을 상대로 뜻밖의 일격을 성공시켰고, 그에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혁련강이 힘 조절을 잊고 그를 기절시키는 바람에 시합이 끝나 버리고 말았다.

“그래, 뭐…… 앞으로도 그렇게만 하면 이가 다 빠지기 전에 절대고수 되겠다.”

영의는 다소 순수하고 바보 같은 모습에 손해 본 것을 비난하듯 얘기를 꺼냈지만, 우형은 그 말에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절대고수가 되면 환골탈태로 새로운 육체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때 이가 전부 다시 자라나니, 절대고수만 된다면 다 빠져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래라.”

우형 또한 상당한 천재과에 속했다.

혁련운과 엇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재능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그 재능의 성질이 조금 달랐다.

혁련운은 모방에 능숙하고 거기서 발전시키는, 시대가 원하는 천재상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모든 것을 금방 깨치고 본 것을 곧바로 체득하였고, 거기서 베껴 낸 것을 그 이상으로 바꿔 내는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오행환류공이나 음양반전 같은, 고도의 집중력과 세밀한 조절 능력을 요구하는 기술을 만들고 능숙하게 사용하기까지 했다.

반면에 장우형은 괴짜에 모든 것에 연연하지 않는 천재상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 주었다.

사문에서 가르치는 초식들을 자기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뇌기와 내기를 균형 있게 운용해야 했지만 본인이 원하는 구성대로 조합했다.

뇌섬문에서는 그런 그를 다소 모자란 녀석, 또는 무공에 재능이 없는 녀석이라고 깔보는 이가 적지 않았지만 독고휘는 달랐다.

-모양이나 기술의 숙련도야 떨어지는 면이 많지만…… 성능은 괜찮다!

우형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꿰뚫어 본 독고휘였고, 실제로 마음 가는 대로 초식을 운용하라 시켜 보자 제법 괜찮다는 판단을 내렸다.

물론 본인이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데다 내기의 운용과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지만, 그 부분만 조정해 주면 야생마처럼 제대로 날뛸 수 있을 거라 판단한 독고휘.

그는 그렇게 우형을 훈련시키기 시작했고, 하북으로 들어올 때 그를 업고 들어오게 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내력이고 초식이고 근골이고 다 필요 없다. 일단 남의 눈치를 안 보는 습관부터 길러야겠다!

우형은 뇌섬문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왔고, 주변인들의 눈치와 핀잔으로 인해 다소 행동이 교정된 상태였다.

물론 말이야 생각하자마자 튀어나오는 것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지만, 몸은 나름의 통제가 가능했다.

하지만 독고휘의 훈련으로 인해 그 통제가 풀리게 되었고, 그 결과 그와 같은 항렬의 제자들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면모를 보이게 되었다.

그렇게 통제와 제한이 풀린 우형은 비무대회 본선에서도 승승장구하며 올라가게 되었지만, 결국 혁련강이라는 벽 앞에 멈추게 된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을 독고휘에게 들었던 영의는 한 끗 차이로 높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우형을 보며 약간의 동정심을 품었다.

‘……얘도 영감님 밑에서 한 반년 정도만 빨리 수련 시작했으면 우승했을 텐데.’

그리고 그때, 무대 위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준결승을 시이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겠소이다!”

무대나 기타 다른 행사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영의였지만, 용준의 우렁찬 목소리만큼은 그의 정신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자! 양 참가자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소!”

용준은 큰 소리로 양팔을 벌렸고, 그에 무대 아래에서 한 중년인과 노인이 올라와 섰다.

사람들은 무대 위로 올라오는 둘에 놀라 잠시 수군거렸으나, 그들을 째려보는 눈빛에 이내 조용해졌다.

마교의 수라대주 중 한 명, 참철수라대의 대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크흠! 본교의 대공자이시자! 권마 강자성 님께 사사하고 교 내에서 이립 이전에 가장 먼저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대공자! 혁련강 공자께서 올라오십니다!”

대주의 소개와 함께, 혁련강이 무대 위로 천천히 걸어 올라왔다.

그리고 영의 쪽의 소개 담당……인 노인은 놀랍게도 패왕, 갈성천이었다.

“에…… 뭐라고 해야 하냐? 그, 어디 출신인지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 아. 이건 안다. 스물여덟에…… 무공은 누구한테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앞선 혁련강의 소개와 달리, 다소 늘어지고 성의 없어 보이는 소개문이었지만 그런 소개를 한다고 비난할 사람은 없었다.

갈성천은 최대한 영의에 대해 미화를 하려 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정체를 나름 숨기려는 두 상반된 행동을 하려다가 짜증을 내며 외쳤다.

“에이, 집어치워! 야! 저런 미사여구가 다 무슨 소용이냐! 센 놈이니까 여기 올라왔지! 안 그러냐!”

이내 대력강체술로 몸의 크기를 키우더니, 목소리를 더욱 높이기 시작하는 갈성천.

“예선에서 바로 통과하고! 북해 빙궁주의 제자를 꺾고! 마교 이공자도 꺾고! 멋진 모습만 보여 주면서 올라온 녀석이다! 다들 박수나 쳐라! 섬전뢰, 최영의다!”

갈성천은 화끈한 방식으로 소개를 끝냈고, 그의 말에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영의는 무대 위로 올라와 능글맞게 웃으며 혁련강을 바라보았다.

“이야, 이거 시작 전부터 이긴 것 같은데?”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거다, 어린놈……!”

혁련강은 방금 전 영의의 나이를 들었기에 어린놈이라 말했지만, 영의는 무림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나이가 벼슬인 한국 사회에서 살다 왔기에 지지 않고 맞섰다.

“그래, 삼십 대라 좋겠어. 늙은 놈. 아, 키는 내가 더 큰 거 알지?”

[사용자의 키를 이곳의 기준에 맞추면 대략 6척 하고도 1촌입니다.]

영의의 키가 184센티미터였으니, 한 척이 30센티미터에 촌이 그것의 일 할 정도임을 감안하면 거의 정확한 수치였다.

알림이의 적절한 조언에 힘입어, 영의는 정확한 치수까지 말해 주었다.

“내가 한 육 척 일 촌쯤 되거든.”

“이……놈이……!”

혁련강은 영의의 말과 행동에 더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육안으로 보았을 때 본인이 영의보다 조금 더 작게 보이는 것은 확실했기에 더욱 열불이 뻗치는 혁련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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