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5화 (11)
영의는 두 사람이 어느 줄의 어느 칸에 있는 비둘기를 빼 가는지 정확하게 봐 둔 뒤, 둘이 떠나고 나면 그 비둘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아내려 했다.
‘뭐 이것만 안다고 다 알아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안 맞는 정보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다 됐습니다.”
“그래, 나도 마침 다 끝났다. 어서 가자.”
이내 둘은 셈을 치르기 위해 비둘기들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갔고, 영의는 둘이 떠나는 것을 확인한 뒤 빠르게 비둘기들의 목적지를 확인했다.
‘하남, 그리고 사천이라.’
비둘기의 목적지를 알아낸 영의는 곧바로 하남과 사천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새장에서 빠져나왔다.
‘저 둘 중에서 사문의 위치와 다른 곳이 있다면 뭔가 수상쩍은 면이 드러나겠지. 뭐…… 그게 고향집이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굳이 유명한 문파가 아닌데 먼 곳으로 갈 이유는 없지 않나?’
영의가 위치를 알아내고 바깥으로 나왔을 때, 이미 비둘기를 날려 보낸 듯 저 멀리로 사라지는 비둘기들이 보였다.
‘……빠르게도 날리네.’
그러나 그때, 갑작스럽게 아래에서 뛰쳐나온 검은 그림자가 비둘기를 낚아챘다.
“뭐야?”
영의는 갑자기 벌어진 돌발 상황에 당황하여 그 그림자가 뛰쳐나온 곳으로 황급히 달려갔다.
“대체 무슨 일이지?”
영의가 해당 장소로 달려가는 와중에, 그림자가 낚아챘던 비둘기는 갑작스럽게 다시 날아올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시…… 날아가잖아? 누가 장난으로 잡은 건가?”
영의는 순간적으로 혼란에 빠졌지만, 일단 직접 가 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하지만 비둘기가 푸드덕거리는 소리도 없고, 깃털마저 발견할 수 없었기에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봤던 잠깐의 위치뿐이었다.
‘어디였더라…….’
그렇게 한참을 헤맨 끝에 영의가 도착한 곳은 골목의 한구석이었다.
‘여기가 대충 맞을 텐데.’
자신이 봤던, 그림자가 튀어나왔던 위치를 대략적으로 계산한 것과 알림이의 조언을 듣고 수색한 결과였다.
[약 80센티미터의 오차 범위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사용자가 목격했던 위치와 방향 및 이곳과의 거리, 그리고 대략적인 각도 등을 계산해 보면 이곳이 거의 확실합니다.]
위치는 확실하지만 단서나 흔적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골목을 살펴보던 그때, 영의의 눈에 흙에 묻힌 종잇조각이 보였다.
“……이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그저 바람에 의지해 길거리를 굴러다니던 종이일지도 몰랐지만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확인해 보는 영의.
[신직 보게나, 나는 자네와 싸운 이후 또다시 승리를 쟁취했네. 그런 만큼 자네의 부담감이 줄어들었기를 바라며…….]
신직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이상, 자네의 무공에 더욱 성취가 있기를 바라네. 공운문 조관인]
보낸 사람은, 관인이었다.
신직에게 보낸 편지를 가로챈 누군가가 있었다는 정황은 확실했다.
‘확실한 증거……라기에는 애매한데.’
하지만 비둘기는 잠깐 붙잡혔다가 다시 날아가기 시작했고,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누가 편지를 바꿔치기라도 했나……?”
예전에 봤던 추리나 범죄 계열 작품 등에서, 어디론가 이송되는 물건을 중간에 탈취해 바꿔치기하는 경우는 많이 봤던 영의.
하지만 명확한 물증이 없었다.
가진 것은 바닥에 떨어진 작은 서신 하나였고, 그마저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안부 인사 정도에 불과한 서신이었다.
보내도 그만, 안 보내도 그만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 정도의 내용이었기에 유도신문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영의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서신 조각을 들고 돌아가려던 그때, 문득 코를 찌르는 악취가 느껴졌다.
“무슨 냄새지?”
이내 주변을 킁킁대며 냄새를 맡는 영의.
그리고 그는 이내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가 든 서신에서, 묘한 악취가 풍기고 있었던 것이다.
“……미심쩍은 게 한두 개가 아닌데.”
영의는 야율천락이 말했던 썩은 내와 악취에 대해 생각하며, 찜찜한 마음을 가득 담고 골목을 떠났다.
“비둘기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가……?”
어쩌면 비둘기들을 너무 빽빽이 몰아넣은 새장으로 인한 냄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 영의였다.
* * *
그 이후로도 이런저런 조사를 거듭했지만, 영의는 명쾌하게 해결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신직의 사문인 월하장은 서신을 보낸 두 지방이 아닌 다른 곳에 위치해 있었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멀지도 않았기에 애매했다.
영의는 야율천락에게 의지해 썩은 내와 의문스러운 악취가 나는 곳을 조사해 보기도 했지만, 거짓말처럼 그 악취가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결국 시간이 흘러 대망의 준결승전이 시작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네 명은 의외이면서도 예상대로의 인원들이었다.
영의는 당연하게도 올라가 있었으며 그 이외에는 혁련강과 혁련운, 마교의 두 형제였다.
마지막 네 번째 인물은 정말 뜻밖에도, 비무대회 이전에는 무명에 가까웠던 무인이었다.
“아-하하하하! 이 원조온 님의 무공이라면 우승도 따 놓은 당상이지!”
도대체 어떻게 저런 성격과 언행으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싶은 인물이었지만, 운영 측에서 알아 온 정보와 비야신투가 슬쩍 알아본 정보를 들어 보면 이해가 갈 만했다.
조정의 명망 높은 학사 가문인 원씨 가문에서 무재를 타고난 아이로, 아버지의 인맥으로 황궁의 고수들에게 무공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황궁 무공은 외부에 반출되어서는 안 되었기에 그 가르침은 매번 원씨 가문의 집에서 이루어지거나 황궁 무인들의 연무장에서 이루어졌다.
그 때문에 그 나이대에 으레 할 법한 타 무인과의 교류를 거의 할 수 없었던 조온.
거기서도 그럭저럭인 재능이면 또 모를까, 상당한 재능을 가졌기에 황궁의 고수들에게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렇게 재력과 상승무공을 모두 겸비하여 미래에 황궁에 몸담을 일만 남았던 조온은 자연스럽게 거만해질 수밖에 없었다.
불과 약관에 그보다 오래 수련한 황궁의 무사와 싸워 이겼고, 장군들이나 황제의 호위 무사들에게도 미래의 후임 재목이라고 칭찬받았던 조온.
실제로 황궁 소속으로 입신(入臣)만 하지 않았지, 거의 반쯤 황궁의 무사였던 조온은 북경까지 전해진 천하제일 비무대회의 소식을 듣고 아버지와 그의 지인들에게 간청했다.
-저도 저의 강함을 한번 알아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황궁을 무시하는 저 건방진 무림인들의 콧대를 누르고 오겠습니다!
그의 요청에 황궁의 인물들과 무사들은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슬슬 무림인들의 기강도 다질 겸 황실의 힘을 보여 줄 때가 되었고, 비교할 거라면 모든 무림인이 모이는 거대한 대회에서 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물론 정말 중요한 전력인 호위 무사나 동창, 금의위의 무사들은 기밀 유지와 체면상 보낼 수 없었지만 조온은 이야기가 달랐다.
아직 입신도 하지 않았고, 집안 인물과 본인 모두가 황궁에 충성하여 말을 잘 들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젊어서 비무대회에 참여하기 딱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가서 그 힘과 충심을 보이고 돌아오라! 높은 성적을 거둘수록 상과 합당한 관직을 내리겠다!
결국 황제마저도 그에게 명을 내렸고, 조온은 곧바로 하북으로 와 비무대회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실력과 오만함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비무대회에서 날뛴 조온은 이렇게 준결승까지 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뒤에 황제의 명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모두 비밀에 부쳐졌으므로 그가 학사 집안의 아들과 황궁의 무공을 전수받았다는 정도밖에 알려지지 않았다.
무공이야 그게 어떤 형태라도 습관적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귀신같이 알아채는 진성 무공광들이 널려 있었으니, 감추려야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유명 고관대작의 자제들이 호기심이나 젊은 날의 혈기로 무공을 배울 때에 어지간해서는 소림의 기본적인 무공이나 황궁 무고의 하급 무공을 배운다는 것은 대부분 알았으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흥, 저런 듣도 보도 못한 놈이랑 겨루게 되다니. 마음에 안 드는군.”
하지만 혁련강으로서는 그런 조온이 못마땅한 듯했다.
준결승을 위한 축하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 아래에 마련된 좌석에 앉아서 투덜거리는 혁련강.
“하하하, 맞붙는 것은 저인데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혁련운은 그런 혁련강을 보며 웃었다.
혁련강은 영의와 맞붙게 되어 있었고, 조온은 혁련운과 맞붙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흥, 말도 못 걸던 놈이 뺀질거리는구나.”
“제가요? 뺀질거린단 말입니까? 이야, 하하. 그런 말은 또 놀랍군요.”
“잔재주가 아무리 많아 봐야 진정 강한 자는 이길 수 없다. 네놈의 무공도 어설프게 쌓아 올린 결과물일 뿐이야. 오백년하수오와 뇌령조의 내단, 그리고 교의 소교주 자리는 나의 것이 될 예정이다.”
혁련강은 야망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무대의 옆, 단상에 마련된 상들을 바라보았다.
사 등에는 각 상단에서 마련한 상금, 금원보 스무 개.
삼등에는 한철과 현철을 섞어 만든 보검과 금원보 열 개.
검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천하철방에서 그 검을 녹여 다른 무기로 제조해 줄 수 있다는 확언까지 있었다.
이등에는 소림의 소환단과 금원보 스무 개, 그리고 북해에서 내건 만년한철 반 근이 있었다.
본래 더 많은 재물과 보물들이 모여들었으나, 그 대부분은 용호박투전에 쏠려 있었다.
여긴 어디까지나 후기지수들을 위한 무대였으니 다소 소박할 수밖에 없었지만…… 우승자에게만큼은 상상을 초월하는 상품이 걸려 있었다.
일등, 즉 우승자를 위한 물품은 오백년하수오와 뇌령조의 내단 절반이었다.
본래 이등상이 일등상이었지만, 검황이 통 크게 오백년하수오를 내놓았고 거기에 자극받은 천마, 혁련무강은 뇌령조의 내단을 하필 쪼잔하게 반만 내놓았다는 이야기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물론 귀한 정도로 본다면 뇌령조의 내단이 더욱 귀했기에 반이라도 비슷한 가치였지만, 쪼잔하게 반밖에 안 줬다는 이야기가 마교를 은근히 까 내리기에 좋았으니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다.
물론 당사자들로서는 안전 자산인 우승 상품을 받아 갈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넘겨줄 방법으로 걸어 둔 것이지만.
하지만 그 사실은 모른 채 자신이 이길 거라 굳게 믿고 있는 혁련강은 저 두 개의 영약이 자신의 것이 되고 그것이 소교주의 직위를 굳건하게 다져 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내가, 저 마음에 안 드는 놈을 이기고 난 뒤에는 저 이름 없는 잡놈이랑 싸우게 되겠지. 그리 보면 내가 저 잡놈과 싸우는 게 맞다. 네놈이 저 잡놈에게 패할 것이 뻔하니까.”
혁련강은 혁련운을 깔보며 그가 질 것이라 단언했지만, 혁련운은 그 말에도 그저 웃을 뿐이었다.
“후후, 하긴 둘이 맞붙긴 하겠습니다. 저와 귀인이 우승을 두고 다투는 동안, 두 분은 한철과 현철이 섞인 검 하나를 두고 경쟁해야 할 테니까요.”
혁련운은 영의가 혁련강을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자신 또한 조온에게 질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놈이……? 하, 내가 이기는 모습을 본 네놈의 그 의기양양한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마음껏 감상해 주마. 네놈이 잘 그리는 그 그림으로 그 얼굴을 남기게 해 주지.”
혁련강은 순간적으로 화를 내려 했지만, 화를 내면 자신의 승리를 의심한다는 모습을 보여 준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차분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혁련운은 그런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대전 상대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었다.
‘황궁 무공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어서 다소 불안하지만…… 일단 정파의 무공에 가깝겠지. 오행환류공은…… 못 쓰겠군.’
황제를 호위해야 하고 범용성과 효용성이 보장되어야 하므로, 황궁 무공은 정공에 가까울 것이라 추측하는 혁련운.
정공에 가까울수록 오행의 기운을 사용하거나 양기나 음기를 쓰는 무공이 없었기에 오행환류공은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최대한 실력으로 승부를 보라, 이건가.’
혁련운이 그렇게 상대와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끝내 갈 무렵, 축하 공연이 모두 끝났고 이내 준결승전이 시작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