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4화 (10)
시신을 발견한 날 밤.
영의와 야율천락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정보를 다 모았을 때 연락하라고는 했지만, 그날 바로 연락할 줄은 몰랐거늘.”
혁련무강은 마교의 인원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경우에 수상쩍게 보일 가능성이 매우 컸기에 정보 수집에 끼어들 수 없었으므로 수사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었다.
다만 하루 만에 정보가 모일 줄은 생각도 못 했기에, 자신을 불러오게 만든 정보원인 비야신투와 무성사신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참고로, 혁련무강에게 연락하는 담당은 영의였다.
“흐하하! 원래 도둑놈들은 발이나 손보다 정보가 빨라야 하는 법이지.”
스슥. 슥.
[살수 또한 마찬가지다.]
비야신투와 무성사신은 혁련무강의 그 말이 칭찬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정보가 그만큼 없었거나, 저 늙은이들이 모아 온 정보가 빈민가 거지들의 동냥 그릇처럼 보잘것없었겠지.”
하지만 독고휘는 그런 둘에게 신랄한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이 자식이……?”
부탁한 대로 기껏 정보를 모아 왔더니 감사는커녕 까 내리기 바쁜 독고휘를 보며 발끈하는 비야신투.
하지만 독고휘로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도둑 선배는 그렇다 쳐도, 저 살수 놈은 옛날에 야습하러 와서 마음에 안 들 수밖에.”
비야신투와는 크게 부딪친 적이 없었지만, 독고휘가 명성을 얻고 떠오르던 시절에 무성사신이 야습을 감행한 적이 있었다.
물론 누가 죽지는 않은 무승부의 야습이었지만 독고휘도 무성사신도 그 일을 서로 없던 것으로 치부하고 살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당사자를 마주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슥, 스윽.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살수의 업이었으니.]
“나는 감정이 생겨 버렸지.”
그렇게 두 노인 간의 갈등이 조금씩 심화되려던 찰나, 영의가 둘을 제지했다.
“자, 싸우는 건 나중에 하세요. 일단 모여서 처리할 일부터 다 하고, 그거 끝내고 싸우시죠.”
제지라기보다는 문제를 뒤로 미루는 것에 불과했지만, 둘은 일단 영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내가 모아 온 정보부터 풀어 보도록 하지!”
비야신투는 정보를 상당히 잘 모아 온 건지 자신만만하게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그는 신투라는 이름답게 다양한 도주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도주 수단 중 하나가 바로 변장.
수많은 인피면구와 축골공 및 변용술을 익혀 둔 그는 어떤 인물로든 변장하는 것이 가능했다.
“대체로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을 알려 주기는 꺼리지만, 그게 상대방의 가족이나 친구 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할 때 그 말이 거침없이 나오는 법이지.”
-저, 혹시 신직이란 청년이 여기 없었습니까? 비무대회에 나온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그 녀석의 형입니다만…….
그렇게 때로는 신직의 형, 때로는 신직의 친구나 친척 등의 지인으로 변장하여 탐문을 한 비야신투.
-월하장의 신직이라는 친구가 비무대회에서 계속 이겨 나간다는 말을 듣고 도박을 해 보러 왔는데, 그 친구는 어디 있소? 한번 보고 전 재산을 걸어 보겠소!
거기다가 아예 다른 신분이 된 후 잘못된 정보를 일부러 흘린 뒤 정보를 아는 사람이 그것을 지적하게끔 하여 이런저런 정보를 얻기까지 했다.
무성사신은 비야신투처럼 탐문을 할 수 없었으므로, 그의 흔적을 쫓아 이런저런 추적술을 사용했으나 별 성과는 없었다.
외곽 지역에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는 하더라도 아침과 저녁에는 비무대회를 보거나 다 본 뒤 야숙을 하는 장소로 돌아가기 위한 상당한 인파가 오갔으므로 흔적이 별로 남지 않았다.
다만 시신이 묻혀 있던 흙 부근과 이런저런 정보를 모아 왔던 무성사신.
비야신투는 그렇게 긁어모으고 종합한 정보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일단, 신직이란 녀석이 패배했을 때 대회장을 나가는 건 봤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신직은 패배한 이후 곧바로 비무대회장을 떠났다.
“그런데 어째선지 관인이란 녀석과 동행해서 술을 마셨다는군.”
중간의 경로는 길 가다 마주친 행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애매했으므로, 상당 부분 건너뛴 채 술을 마시게 된 시점으로 건너뛰었다.
“아마 중간에 관인이란 놈이 위로 차원에서 술을 사 준다고 했을 것이야. 둘이 술을 마실 때에 악감정이나 짜증 내는 모습은 없었다고들 하더군.”
그렇게 둘이 신나게 술을 마신 뒤, 신직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고 관인이 그 뒤를 따라 외곽까지 갔다.
“거기까지가 신직의 마지막 목격 정보야. 아마 고향이나 사문인 월하장으로 갔을 거라는 생각이 대부분이더군.”
거기에 더해, 비야신투는 관인에 대해서도 나름 조사해 봤는지 정보를 더 늘어놓기 시작했다.
“관인이란 녀석은 일각도 안 되어 금방 돌아왔고, 술을 마실 때 서로 웃고 떠들던 모습이 제법 친밀해 보였다는 증언이 많았다. 아마 복수는 아니겠지.”
[외곽지에서도 서로 싸움을 벌인 흔적은 없었다.]
둘은 마치 절친한 친구 사이처럼 서로 즐겁게 술을 마셨고, 복수라기에는 시간상으로 조금 무리가 있었다.
“그 잠깐 동안 사람을 죽이기에는 충분하지 않나? 뒤처리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그것도 그렇긴 한데, 뒤처리를 하기에는 모자란 시간이지. 관인 녀석은 곧바로 자기네 사문이 머무는 곳으로 갔고 그 뒤로 계속 수련만 했다는군.”
“만난 사람은?”
“없을 게다. 다만 전서구를 구했다고는 하는데, 전서구의 경우에는 멀리 날아가는 게 일반적이니 뒤처리 용도로는 걸맞지 않지.”
[전서구의 기록을 뒤져 봤지만, 백 리 이상 떨어진 지역으로 연락하였다. 신법이 뛰어난 무인이 아닌 이상에야 이곳으로 오는 데엔 무리가 있겠지.]
관인은 신직을 배웅한 뒤, 사문의 숙소로 돌아오며 전서구를 몇 마리 구해다가 상당히 먼 곳으로 날렸다.
하지만 그것 이외에는 별다른 이상행동을 보이지 않고 곧바로 숙소로 돌아온 데다 오늘 비무도 시작 한 시진 전까지 수련을 하다 나왔다고 했다.
“사문 녀석들도 대부분은 어중이떠중이야. 관인이란 녀석이 그나마 싹수가 보이는 놈이었고, 혼자만 본선에 나온 거지.”
[기록을 뒤져 봤지만, 관인 이외에 출전자는 없었다.]
그나마 그 한 시진 간의 여유 시간에도 사문의 인원들과 함께 휴식 겸 식사를 하고 있었고.
그나마 가장 유력하게 의심해 볼 만한 인물이 관인이었지만, 털어도 별 건덕지가 나오지 않자 이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복잡하군. 후우…….”
독고휘와 혁련무강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이쯤 되자 그냥 영의가 사실 암중 세력이고 뭐고 전부 거짓말이었다고 외쳐 주기를 바라기까지 했다.
하지만 영의는 그런 말을 할 낌새가 보이지 않았고, 방금 전 들은 정보에 진중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으니 아마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모아 오고 아는 정보를 모두 털어놓은 비야신투는 영의를 쳐다보며 능글맞게 웃었다.
“좋아, 그럼 난 내 할 일을 다 했으니 내가 요구할 것을 요구해도 되겠지? 흐흐흐.”
비야신투는 다시 영의에게 도둑질을 권유하기 위해 슬쩍 자리를 옮기려 했으나, 독고휘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건 안 되오.”
“아, 왜?”
“저 살수 놈을 데려왔기 때문이지. 내 기분이 안 좋아졌으니 안 되오.”
“아니, 야! 그걸 네가 정하냐! 저 녀석이 정하는 거지!”
비야신투는 영의와 자신과의 일을 독고휘가 마음대로 개입하려는 모습에 짜증을 내며 그를 무시하고 영의에게 다가갔다.
“만난 사람 없음…… 전서구…… 잠깐……!”
하지만 영의는 그런 그들에게 관심이 없는지, 뭔가를 중얼거리다가 뭔가 눈치챈 듯 고개를 번뜩 들더니 이내 곧바로 방을 나가 버렸다.
“저 녀석 어디 가는 거냐?!”
“나도 모르지.”
방 안의 네 노인은 밖으로 뛰쳐나가는 영의를 보며 잠시 침묵에 빠져 있었다.
“……이제 할 말 다 했으면 나가시오.”
그렇게 고요하던 방 안에, 갑작스럽게 독고휘의 축객령이 내려졌다.
“내가 왜?!”
“?!”
나가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독고휘를 돌아보는 비야신투와 무성사신.
“정보를 모아 달라 했고, 정보를 모아 왔으니 이제 더 이상 볼일이 없지.”
“아니, 이 자식아! 야! 잠깐만!”
스슥, 슥! 스스슥!
비야신투와 무성사신은 쫓겨나기 싫은 듯 급히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그 말을 듣기 전에 행동에 나선 독고휘.
독고휘는 무자비하게 그 둘을 들어다가 방 밖으로 내던졌고, 두 노인은 야밤에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는 뭘 해 달라고 한 적도 없고 그냥 있었는-]
“젠장…… 저 자식이 부탁을 들어줄 거란 생각을 한 내가 등신이지.”
비야신투는 투덜거리며 바닥의 돌을 걷어찼다.
슥, 스윽.
[이제 어쩔 거냐?]
“어쩌긴 뭘 어째, 계속 조사해 봐야지. 생각보다 찜찜한 게 많단 말이야……. 그 관인이란 놈이 겉으로는 약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고수거나, 거기에 조력자가 하나 정도 있으면 딱 말끔하게 설명이 되는데 말이지.”
비야신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답을 맞혔지만,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힘이 곧 정의인 무림 사회에서, 굳이 자신을 약하게 숨기고 사는 강자가 무슨 목적으로 약자를 죽이는지에 대해 알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슥, 스스슥.
[그건 허무맹랑한 소리라는 걸 본인도 알겠지? 일단 관인이란 녀석을 끝까지 주시하기만 하도록 하지.]
“그래야지, 그나마 유일한 단서가 그 녀석인데.”
비야신투와 무성사신은 관인을 예의 주시하기로 결정하자마자 곧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편, 갑작스럽게 뛰쳐나갔던 영의는 전서구들이 들어가 있는 새장 쪽에 잠입해 있었다.
작은 닭장만 한 크기의 우리에 빽빽이 들어차 있는 비둘기들에, 그 옆에는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새장에 가득 찬 비둘기들이 보였다.
비둘기들의 발에는 지역의 이름이 적힌 천이 하나씩 묶여 있었는데, 그것들은 목적지…… 즉 전서구들이 집이라고 인식하고 날아갈 방향을 뜻했다.
‘……정말 징그럽게도 많네.’
평소라면 제법 여유 있게 배치되어 있었겠지만, 비무대회라는 대목에 제대로 한탕 하기 위해서인지 전서구를 대량으로 들여온 듯했다.
‘안 되겠어, 이놈들에게 뭘 물어봐도 모를 게 틀림없어.’
영의는 처음에 전서구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전서구들 본인에게 정보를 얻어 보려 했다.
자신이 동물의 말을 다소 알아듣는 편이었고, 정 못 알아먹겠으면 뇌영을 통한 번역을 하면 됐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가득 차 있는 전서구들을 보자 그럴 생각이 사라졌다.
‘이만큼 많으면 어떤 놈이 그때 있던 놈인지 모를 텐데…….’
“……텄네.”
영의는 고개를 저으며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때, 새장으로 다가오는 의문의 인물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급히 몸을 숨겼다.
“귀찮게…… 사형은 왜 이 늦은 밤에 심부름을 시키시는 거람……?”
“그 귀찮음을 감수하더라도 우리는 사문에 승전보를 알려야 한다. 관인 녀석이 비무를 복기한다고 방금 전까지 계속 방 안에 틀어박혀 있지 않았더냐. 녀석이 직접 쓴 서신이어야 사문에 보낼 만하지.”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관인의 사형제들인 듯했다.
그들은 전서구들이 다리에 매달아 전달할 수 있도록 작은 종이에 글을 옮겨 쓰며 작게 중얼거렸다.
“하나는 사문으로…… 하나는 왜 이런 곳으로 보내는 건지…….”
“신직이란 친구에게 알리려는 의도인 거지. 너를 꺾은 사람이 이만큼 대단한 사람이었으니 위축되지 말라고.”
“아아, 그렇군요!”
영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그들이 어느 곳에 있는 비둘기들을 빼 가는지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