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3화 (9)
다소 수상쩍은 면이 많은 유골이었지만, 우선 관청에 인계하며 적당히 각색한 이야기를 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여러 곳이 부러져 있는 데다 완전히 백골이라……. 일반적으로 죽은 시신은 이렇게 되지 않을 텐데…….”
관의 사람들도 유골에 모발이나 최소한의 살점이 없는 깔끔한 상태인 것에 약간의 의심을 품었지만, 유골을 가져온 이들의 신분이 신분인지라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무연고자 같으니 나중에 묘지에 묻고 합동 제사를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시신을 넘겨준 뒤, 독고휘는 비무대회장으로 와 객석에 앉아서 영의가 한 말을 머릿속으로 곱씹었다.
-신직이라는 사람의 옷 조각이에요.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셔도 저는 답해 드릴 수 없지만, 옷 조각의 주인만은 확실해요. 그리고…….
‘옷 조각이 신직이란 청년의 것이라…….’
독고휘도 신직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비무에서 참으로 허무하게 탈락하는 그 모습이 강한 인상으로 남았기에 불쌍한 청년이라 생각하여 이름이 기억에 남았던 것이다.
‘흐음…….’
물론 그렇게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으면 일반적인 후기지수들은 창피해하며 복수를 다짐하거나 숨으려 할 것이다.
‘복수라고 하기에는, 그 복수의 대상이 너무 멀쩡하게 돌아다니는군. 시도했건 아니건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인다.’
시신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신직과 관련된 인물 중 복수의 대상으로 가장 의심 가는 인물이 있다면 바로 눈앞의 무대 위에서 비무를 벌이고 있는 조관인이라는 후기지수다.
“타앗!”
“아니, 나의 홍린편을?!”
붉은 채찍을 사용하는 상대방의 채찍 끝을 요리조리 재주 좋게 피하며 조금씩 접근하고 있는 관인.
‘복수를 했다고 하면 성공해서 신직이란 녀석이 그 시신을 파묻었거나, 아니면 복수에 실패하고 죽어 버려 그 시신을 관인이란 녀석이 묻었거나인데…….’
하지만 두 가지 모두 별로 가능성이 없었다.
첫 번째의 경우, 복수에 성공했다고 하면 신직은 곧바로 도망쳤어야 한다.
만에 하나 변용술을 극성으로 익혀서 상대방의 얼굴을 베껴 냈다고 하더라도,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
거기다가 관인은 소속된 문파가 있었고, 비무대회에서 본선까지 올라왔으니 그의 존재감은 더욱 커지게 된다.
관인의 행세를 해도 금방 들통나서 붙잡히게 될 터.
두 번째의 경우, 복수에 실패해 살해당했다고 하면 그럭저럭 말이 된다.
의도치 않게 신직이 죽었고, 살인의 죄를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그의 소지품과 옷을 불태워 파묻었다고 하면 될 테니까.
‘물론 자그마한 죄라도 생기는 것이 두려워 그랬을 수도 있지만…….’
하지만 굳이 증거를 없애고 시체를 파묻을 이유가 없다.
무림이란 특성상, 피를 피로 씻는 복수는 얼마든지 있었기에 복수를 하겠답시고 칼을 들고 찾아온 대상은 죽어도 할 말이 없었다.
‘무림에서 복수하겠다고 설치는 놈들은 복수 대상이 찌른 칼에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지.’
본인이 먼저 죽이겠다고 달려든 것을 죽인 것이니,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리고 비무대회에서 꼴사납게 졌다는 명분까지 있으니, 어지간해서는 참작을 해 줬을 것이다.
독고휘가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던 찰나, 그의 옆으로 누군가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오셨소, 도둑 선배 나리?”
“공경을 하든, 평대를 하든, 둘 중 하나만 하지? 흐하하하!”
독고휘의 옆으로 다가온 것은 광소비야신투였다.
“하나 알아다 줄 것이 있소.”
“다짜고짜 보자마자 용건이라…… 크하하! 뭐, 네놈답구나. 뭘 알아 와 주면 되는 거냐? 천마의 낯부끄러운 비밀? 아니면, 작당모의나 하는 속 시커먼 놈들?”
비록 정면 돌파 후 당당한 도둑질(?)이 특기인 비야신투였지만, 그가 산적이나 강도라고 불리지 않는 이유는 신투다운 정보망 및 깔끔한 흔적 지우기와 방금 전 독고휘에게 접근할 때 보여 준 비밀스러운 침투에 있었다.
물론 침투 후 바로 정면 돌파를 선택하기에 큰 의미는 없었지만.
“얼마 전, 신직이란 녀석이 비무대회에서 어이없이 졌소. 그때 그 녀석이 어디로 갔는지, 누구와 만났는지를 좀 조사해 주시오.”
독고휘는 신직의 행방에 대해서 물었고, 비야신투는 그 말에 의문스러워했다.
‘하고 많은 대상 중에 이름 없는 애송이를 조사하라고? 그것도 나한테?’
신투라고 불리던 자신을 하오문의 정보팔이처럼 대하는 것이야 그럴 만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하찮은 것을 조사하라고 시킬 줄은 몰랐던 비야신투.
“아니, 그런 건 거지들한테-”
그가 뭐라고 따지려 들 때, 독고휘는 혹여라도 누가 들을까 봐 아주 작은 소리로 전음을 날렸다.
‘사람이 죽었소. 일단 시신의 수습을 했지만, 유일한 단서가 신직이란 녀석의 옷 조각이었지.’
“-맡기면 안 되겠군.”
아주 일부분의 이야기만 들었음에도, 비야신투는 이것이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란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옷 조각에서 술의 흔적을 발견했었다고도 하더군. 그 부분이 조금 젖어 있었기 때문에 불에 덜 탔던 걸지도 모르지.’
독고휘의 전언에, 비야신투는 빠르게 지금 받아들인 정보를 정리하고 자신이 어느 방향에서 정보를 수집해야 할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신직이란 녀석을 찾되, 녀석이 술을 먹었단 정황이 확실하니 술집을 찾아봐야겠군.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비싼 술을 먹었을 리는 없고…….’
“대략적으로, 싼 술을 마셨을 테고 옷에 흘릴 정도라면 다소 신나게 먹거나 많이 먹어서 취했을 때겠군. 그 정도로 오래 있었다면 찾기는 쉽겠어.”
비야신투는 가진 정보와 자신의 연륜으로 대략적인 정보를 추론해 냈고, 그 정보가 제법 맞는지 독고휘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옷 조각에 곡물의 흔적과 약간의 주정이 있었다고 하더군. 싼 술은 맞을 테지만, 그 이상을 알 수는 없었소.’
“대충 조사해 봐야겠군……. 그러고 보니, 내가 이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원하는 게 있는데 말이지…….”
비야신투는 독고휘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조건을 제시하려 했다.
그 또한 신투란 이름답게 다소 욕심이 있었고, 무보수로 일을 하기에는 걸맞지 않은 인물이기도 했으니까.
“내가 부탁하는 것으로 보이시오?”
독고휘는 다소 기세를 끌어 올리면서 반쯤 위협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을 했지만, 상대는 무공은 상대적으로 약할지라도 독고휘보다 더 오래 살아온 노괴였다.
“거, 참. 사람 하나만 소개해 달라는 거다. 내가 은거하는 사람의 돈을 빼먹을 정도로 돈에 눈이 멀진 않았어. 꽤나 젊은 녀석에다 연이 있어 보이니 어렵지도 않을 거다.”
태연하게 독고휘의 기세를 받아 내며 부탁의 내용을 넌지시 언급하는 비야신투.
독고휘는 비야신투의 용건이 무엇인지 다 듣지도 않고 고개를 저었다.
“이 일 자체가 그 녀석이 부탁한 것이니, 선배가 해결하면 녀석도 얼굴을 비칠 것이오. 영감님이라고 부르면서 뺀질거리는 그 영의라는 녀석 찾으려던 것, 아니오?”
“……맞지.”
비야신투는 영의에 대한 흥미가 있어서 찾아가려 했고, 직접 찾아가봐야 지난번처럼 떨쳐 내면 그만이니 정식으로 자리를 마련하려 했다.
그리고 자리를 마련하기에 가장 걸맞은 사람으로 정파의 배분 높은 인물 중 하나인 독고휘를 선택한 비야신투.
하지만 의외로 일이 조금 이상하게 풀려 가고 있었고, 비야신투는 묘하게 속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 독고휘의 말대로 조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럼 얼른 가서 알아 오시오. 술을 먹었던 흔적까지는 그 녀석이 알아냈으니, 나머지는 선배가 발품 팔아 알아 오시는 게 낫지 않소.”
“젠장, 다 늙은 늙은이를 부려 먹기나 하고…….”
독고휘를 설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단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비야신투는 투덜거리며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그런 그의 투덜거림에 일침을 날리는 독고휘.
“나도 늙을 만큼 늙었소. 억울하면 무공을 더 수련해서 반로환동이라도 하시지 그러셨소?”
“……쳇!”
비야신투는 더 말해 봐야 별 이득이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소심하게 삐졌다는 표현을 한 뒤 곧바로 기척 없이 사라졌다.
독고휘는 비야신투가 사라지자 몸을 숙여 작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불길하군. 하필이면 암중 세력이 있다는 정보까지 있으니…….”
암중 세력이 없었다면 단순히 누군가 죽은 문제는 별문제가 아니었다.
운영 측의 눈을 피해 누군가가 사사로이 문파의 원수를 갚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치부하면 되는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영의에게서 입수한 암중 세력에 대한 정보가 신경 쓰였고, 무엇보다 시체의 상태가 더더욱 신경 쓰였다.
‘어째서 백골일까……. 인간의 몸은 그리 쉽게 재가 되지 않는다.’
극양지기를 사용하는 무공에 얻어맞아 몸이 타들어 가고 녹아내린다 해도, 실제로는 어느 정도 탄 찌꺼기가 남기 마련이다.
화재에 휩싸여 죽은 시신도 어느 정도 시체의 형상은 하는 법이지만, 야율천락이 발견했었던 시신은 완전한 백골이었다.
그럼에도, 뼈의 안에는 완전히 응고되지 않은 피가 있었고.
누군가가 살을 깔끔히 뼈까지 발라낸 이후에 불태웠든가, 아니면 화장하듯 엄청난 화력으로 불태웠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그러면 필시 눈에 띈다.’
정마대전 당시, 불가에서 합동으로 화장을 하는 모습을 본 적 있는 독고휘는 한 사람에 체중 이상의 장작을 사용하여 불태우는 것을 보고 다소 놀란 감이 있었다.
제대로 된 소각 시설 없이 야외에서 뼈만 남기고 불태우기 위해서는 많은 장작이 필요했으니까.
‘결국, 남는 것은 살을 다 발라내고 불태웠다든가…… 삼매진화가 아닌 이상에야 방법이 없는데…….’
후자의 경우에는 가능성이 너무 희박했다.
삼매진화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고수가 그런 무명 후기지수를 죽일 이유도 없었고, 그 정도 고수라면 죽여도 별 탈 없이 현장을 이탈하거나 무마시킬 수 있는 지위에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뭔가 치부를 봐서 입막음을 할 용도가 아닌 이상에야……. 음?’
독고휘는 생각을 이어 가던 무렵, 문득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가 하나로 모이는 느낌을 받았다.
‘암중 세력, 이름 없는 후기지수의 갑작스러운 죽음, 삼매진화가 아니라면 설명되지 않는 백골 시체, 죽음의 은폐…….’
독고휘의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그는 곧바로 무대 위에서 양손을 치켜들고 환호하는 관인을 쳐다보았다.
“와아아아-!”
순수하게 기뻐하는 듯이 미소 짓는 그의 모습에 환호를 보내 주는 관객들.
“대단하십니다, 사형!”
“장하다! 관인아!”
그리고 그와 동문인 듯, 소리 높여 응원하는 후기지수들.
‘저 녀석이 뭔가를 안다면…… 신직에게서 조금이라도 수상한 모습을 발견했었더라면…….’
독고휘는 처음에 폐기했던, 관인에 대한 조사를 다시 고려해 보기 시작했다.
* * *
한편, 영의는 대회장의 바깥에서 야율천락과 함께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체 무슨 냄새가 난다고 이러는 건지…….”
“확실하다, 악취가 다시 났었다.”
영의와 야율천락은 본래 독고휘와 함께 있었으나, 그에게 술에 대한 단서를 이야기해 준 뒤 술집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적어도 한번 봤던 물건은 다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으니, 정확히 같은 술이야 몰라도 비슷한 물건은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 생각은 다소 잘못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객잔이나 식당에서 술을 대형 술도가…… 주조장에서 얻어 와서 사용하고 있었고, 그 술도 성분이 제각각 다른 경우가 있었으니 같은 성분의 술을 찾아도 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허탕을 치고 돌아가려던 그때, 야율천락이 악취를 맡았다며 어디론가 급히 이동하기 시작해 따라온 것이었다.
“……냄새가, 끊겼다.”
“그러니까 그냥 돌아가죠? 영감님이 인맥으로 조사하게.”
영의는 독고휘와 그 주변 인물들의 인맥을 믿고 의지해 보려 하고 있었다.
잘나가는 인맥 하나만 있으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되는 한국 출신이었기에, 그 인맥을 제법 믿고 있었던 영의.
“그렇지만…….”
야율천락은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길거리를 돌아보았지만 영의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냥 갑시다, 예? 중간에 끊긴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이미 여러 번 비슷한 행동을 한 적이 있었고, 매번 허탕을 쳤기 때문이다.
“……알겠다.”
그렇게 영의와 야율천락은 대회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런 둘의 뒷모습을 골목 구석에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
위잉-
그리고 그 수상쩍은 이의 주변에서는, 파리가 두어 마리 맴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