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2화 (8)
대략적인 상황 파악이 끝났으니, 이제 그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가릴 때였다.
혁련무강과 독고휘는 죽립을 눌러쓰고 기척을 죽인 채 야율천락을 앞장세우고 시체를 발견했다던 외곽지로 향했다.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일이 상당히 복잡해질 수도 있다.”
독고휘는 골치가 조금씩 아파 오기 시작하자 짜증을 내며 말했다.
“교의 인원이 당하진 않았다. 매일 아침 약식으로나마 모든 인원이 모여 인사를 하니, 결원이 있다면 눈치챌 수 있지.”
혁련무강 또한 상당히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피해자가 본인의 사람들이 아니란 것에 약간 안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단순히 서로 시비가 붙어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해도 마교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으니.”
영의의 말에, 독고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것도 그렇군, 무슨 일이 있으면 곧바로 마교의 탓으로 돌려 버릴 테니. 지금 젊은 녀석들도 우리 눈치를 보는 데다 갈라놨기에 싸움을 일으키지 않고 있을 뿐이지 뭐라도 하나 터진다면 일이 커질 게야.”
두 수장들과 고수들이 나중을 벼르며 가만히 있는데 본인이 눈치 없이 난리를 치면 도움 될 게 없다는 사실을 익히 아는 무림인들이었기에 일단은 가만히 있었다.
작은 문제라도 일으키면 양쪽의 고수들에게 찍히는 데다가 문파와 본인의 명예에 금이 심각하게 갈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누군가 하나가 죽었고 용의자로 상대 세력이 지목된다면 그건 명예를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었다.
“우선, 확인부터 하지. 단순 사고사로 인한 시신인지, 아니면 적대적인 목적으로 일으킨 살인으로 만들어진 시신인지는 알아야 하니.”
‘단순 사고사라면 관에 알리는 동시에 수사를 맡겨야 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몇몇 인물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정말로 서로 간에 시비가 있었다면…… 누군가 하나를 희생하는 일이 있더라도 일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 부대주급의 인물 정도는 되어야 할 터인데…….’
혁련무강과 독고휘는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시체를 보기 전에는 모두 마땅히 쓸 만한 생각들이 아니었다.
이내 야율천락의 걸음이 멈추었고, 그는 발아래의 흙을 가리켰다.
오랜 시간 사람들이 지나다녀 다져지거나 비바람으로 인해 무거운 부분만 남은 흙이 아닌, 불과 얼마 전에 새로 덮은 듯 깔끔한 흙이었다.
야율천락은 흙에 코를 대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스읍- 여기였소. 냄새로 보아 정확하군.”
기억으로 한 첫 번째 인증과 냄새로 한 두 번째 인증이 모두 끝나자, 독고휘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럼, 확인을 해 보도록 하지.”
직접 흙에 손을 댈 마음은 없었는지, 공중에 손짓을 하며 허공섭물로 흙을 떠올리기 시작하는 독고휘.
그가 바위만 한 크기의 흙을 떠내자, 흙덩어리의 중간에서 백골이 드러났다.
“찾았군.”
이내 혁련무강 또한 독고휘처럼 허공에 손짓을 했고, 백골의 주위로 뭉쳐 있던 흙들이 주변으로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영의는 그 모습을 보며 다소 황당해하고 있었다.
“……굳이 허공섭물로 해야 할 작업인가요?”
물론 손에 흙을 묻히기 싫은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너무 엄청난 재주를 사소한 일에 사용하는 것 아닌가.
‘아니, 진작에 밥 먹을 때도 저러던 양반들이긴 했지마는…….’
“내가 파도 됐을 텐데…….”
야율천락 또한 그것이 낭비라고 생각한 건지, 아까운 듯이 날리는 흙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두 노인들도 그러는 이유가 있었으니.
“네 녀석 같으면 저놈이 오줌 싼 흙을 만지고 싶겠느냐? 비위도 좋다, 이참에 그걸로 손도 씻지 그러냐?”
“기밀을 요하지만 않았더라도 본좌가 부하들을 데려왔을 것이다. 본좌가 손에 묻혀도 되는 것은 적의 피와 요리의 양념뿐이니라.”
“……아, 네.”
더러움이 첫 번째 원인이었고, 본인의 체통과 권위가 두 번째 이유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대부분의 흙이 치워진 이후, 살점이 다 타들어 간 시체가 그들의 앞에 드러났다.
“……정말 깔끔하게 불태웠네.”
살점이나 털이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은, 그야말로 백골 시체였다.
“이러니 들개들도 파헤치다가 그만둔 것이겠지.”
그들은 시체를 살펴보던 도중, 왼쪽 정강이와 오른쪽 상완골, 그리고 갈비뼈가 여럿 부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리 부분과 팔, 그리고 가슴 부분의 뼈가 여럿 부러져 있다만, 죽기 전 강한 공격을 받은 건가? 아, 하나는 빼야겠군. 죽은 시각을 확인하기 위해 부쉈다고 했나?”
물론 저 중에 하나는 야율천락이 시체의 사망 시각을 확인하기 위해 고의로 부러뜨린 것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야율천락에게서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전부 내가 부쉈소. 교차로 검증을 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소.”
놀랍게도 전부 그가 저지른 짓이었다.
“피가 심장에서 나오니 위치별로 다르게 확인하는 게 맞긴 하겠지만…….”
하지만 혁련무강과 독고휘는 그 말에 별로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심장에서 멀리 떨어진 부분일수록 피가 다소 약하게 흐르는 부위라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골격이 제법 훌륭하군. 무인이었나?”
혁련무강은 사망한 시체가 무인이라고 추정했지만, 영의가 그것을 부정했다.
“피부나 근육이 남은 게 없으니, 그걸 추정할 수는 없겠죠. 살가죽하고 근육을 벗겨 놓으면 인간은 대부분 다 똑같으니까요.”
인체 해부도나 방사선 사진을 자주 접한 영의였기에 치아를 제외하면 대부분 똑같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뼈 말고 그나마 차이점을 알 수 있으려면 이빨…… 그러니까 치아를 봐야 하는데, 그걸 기록으로 남겨 뒀을 리는 없고…….”
현대에서도 불에 타서 백골만 남은 시체의 경우 치아의 치과 진료 기록과 대조하여 신원을 찾지만, 치과 진료는커녕 치아 건강을 신경 쓰지도 않는 무림인들에게 그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흐음…….”
“갑자기 사라진 이들을 찾아봐야 별 소용도 없겠군. 비무대회가 진행 중이니 오가는 사람도 한둘이 아닐 테고, 북경의 황궁 주변처럼 오가는 이들을 죄다 검문할 리도 없으니 말이야.”
그렇게 의문만이 가득해지려던 무렵, 야율천락이 입을 열었다.
“이 시신이 가지고 있던 소지품인지는 모르겠지만, 타다 남은 천 조각이 하나 있었소.”
“천 조각? 의복인가?”
“의복이라면 신원을 추정하기도 쉽겠지. 꾀죄죄하면 개방, 부티 나면 명문세가, 무명천이면 색에 따라 구별할 수도 있을 테니.”
물론 무인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만, 적어도 단서라고 부를 만한 것이 하나 생겼으니 독고휘와 혁련무강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그들의 밝아진 표정은 불과 차를 한 모금 마실 시간 정도만 지속되었다.
손가락만 한 크기의 천 조각에, 물 빠진 황색의 무명천 조각이었다.
“황색이면…… 제법 많지. 소림의 승복도 황색이고, 저 멀리 황제의 옷들도 황색이고…….”
“조금 얼룩덜룩한 것을 보아, 흙의 물이 든 것 같군. 흰색이었다가 흙으로 인해 황색으로 보이게 된 것 같다만.”
“그럼 더 많지. 저기 하북성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구 할이 다 물든 흰 바지를 입고 있을 것이 뻔하니까.”
단서를 잡았나 싶었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자 포기한 듯한 독고휘와 혁련무강.
“솔직히, 모르겠다. 이렇게 단서가 없으면 황제가 수사하라 명해도 못 찾을 게야.”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하북, 그리고 옷 조각 하나 외에는 아무런 단서가 없는 백골 시체, 자세한 사망 시각이나 현장마저 밝혀지지 않은 시체의 신원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흐음…….”
영의 또한, 이런 시체의 본 주인을 찾으라고 하면 알림이가 와도 못 찾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체의 신원은…… 모르지?’
[충분한 단서와 적절한 인물이라면 가능합니다만, 이름 모를 농부 A의 시신 같은 경우라면 알 수 없습니다.]
알림이 또한 정보를 저장된 곳에서 불러오는 방식이었기에 저장될 만한 인물이 아니라면 모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못 하려나.”
알림이가 정보를 알아내기 어렵다는 말에 무심코 입 밖으로 자포자기하는 듯한 말을 내뱉은 영의.
“그래, 다만 중요한 인물은 아닌 것 같으니 관에 연락하여 무연고자의 죽음 정도로 해야겠지. 아마 다른 무연고자들과 같이 어딘가에 함께 묻히겠지.”
이름을 알 수 없는 외부인의 죽음이나 산속에서 발견한 시신의 경우 단서를 최대한 끌어모아 아는 사람을 찾지만 그런 것이 없다면 관에서 자체적으로 어딘가에 묻는다.
물론 그렇게 단서 없고 아는 이 없는 죽음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종종 녹림에서 모든 걸 털린 이후 호환을 당한 경우가 가끔 있기에 어느 지방에서건 그런 묘지를 하나씩 마련하고는 있었다.
“괜히 시간만 낭비한 것 같군.”
“그래도 큰 문제가 아니었으니 다행이지. 큰 문제가 생겨서 쉴 틈이 없는 게 나을까? 아니면 사소하고 시시한 일로 김새는 게 나을까?”
“조금 찜찜하긴 하지만, 큰일은 아니라니 다행이로군.”
영의를 제외한 셋은 시신을 적당히 수습하여 다시 돌아가려 했다.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 정도는 보이기 위해 형식적으로나마 장례를 치러야 했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유품이라고 할 수 있는 천 조각은 챙기지 않았고, 영의가 그것을 집어 들고 그들을 따라갔다.
“이 천 조각은 안 챙겨도 되는 건가요?”
“그걸 가지고 가 봐야 어디에 쓰겠느냐. 가문이나 문파의 장식도 없고, 이름을 수놓은 것도 아닌 데다 타다 남은 천 조각이면 그냥 같이 묻혀 있던 쓰레기일 수도 있지.”
독고휘는 이제 정말 더 이상 신경 쓰기 싫다는 듯 단서의 하나인 천 조각을 무시했다.
애초에 그들의 상식선에서는 본래 주인을 특정할 만한 단서가 없는 이상 시체는 그저 객사한 누군가의 시체일 뿐이었다.
본래 무림에서 그렇게 객사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약간 무관심한 면도 없지 않았고.
“흐음…….”
다만 작은 단서 하나로도 범인을 찾던 세상에서 온 영의는 뭔가 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천 조각을 들어 유심히 살펴보고 있을 무렵, 그의 귓가에 알림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용자, 이 천 조각은 정보가 있습니다.]
알림이가 알려 준 뜻밖의 소식에 깜짝 놀라는 영의.
‘어?! 진짜로? 그런 게 있어? 뭐 유명한 장인이 만든 옷이라거나 그런 거야?’
영의는 알림이가 이 자그마한 천 조각 하나에서 정보를 뽑아낸 것도 놀랐지만, 이 천이 대체 무엇이었길래 정보가 나온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불과 얼마 전 사용자가 직접 접촉한 적이 있는 천입니다.]
“……뭐?”
얼마 전 마주치거나 접촉한 적이 있는 천이라는 소리에 당황하여 되묻는 영의.
[저장되지 않은 인물들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과거 기록에 접속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 판단해 사용자의 과거 기록에서 대조하던 도중, 일치하는 천을 입은 인물을 발견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피했던 영의와 접촉한 적이 있다고 하면 잠깐이나마 그가 마주쳤던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신직이라는 이름으로, 사용자에게 질문을 던지던 인물이 입었던 옷의 조각입니다. 시체에서는 해당 인물이라고 특정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만, 이 옷 조각은 사용자와 접촉했던 옷의 조각이 맞습니다. 설명을 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알림이의 말과 함께, 이내 영의는 옷 조각에서 알림 창이 떠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옷 조각 : 완전히 연소되지 않음, 연소를 방해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 미세한 액체의 흔적이 남음. 증발 정도가 균일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혼합물로 추정. 곡물의 흔적 발견됨.]
영의는 알림이의 말에 시체의 주인을 알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옷 조각을 집어 든 뒤 앞서간 이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한편, 유골을 들고 걸어가고 있던 세 사람.
그중 유골을 드는 담당이 된 야율천락은 문득 공기 중에서 느껴지는 악취에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냄새가…… 아직도 나는군.’
유골을 발견하게 된 계기였던 묘한 악취가, 유골을 발견해 들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느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