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1화 (7)
영의는 최대한 뻔뻔하고도 자연스럽게 모른다고 잡아뗐다.
“엄밀히 따져 보면 저랑 관계가 없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알고 지내는 그런 사이는 아닌데요?”
적당히 거짓 사이에 진실을 섞어,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거짓말을 하는 영의.
하지만 그런 거짓말은 야율천락에게 통하지 않았다.
“거짓으로 관계를 부정한다……라. 나쁘지는 않은 판단이다. 하지만, 나는 밀림의 부족원들처럼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야율천락은 중원의 북쪽, 초원 지대에서 나고 자랐던 인물이었고 지금은 남만의 야수궁주가 되어 있었지만 그 전까지는 이런저런 일들을 다 겪었었다.
“대략적인 정황과 주변인과의 관계, 그리고 네 행동들의 대부분은 다른 인물들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이겠지.”
다소 그럴듯한 추리까지 해 가며 영의의 거짓말을 간파하려 하는 야율천락.
“가장 결정적으로, 네게서 나는 냄새와 그들에게서 풍기는 냄새가 같았다. 내가 지금껏 맡아 본 적 없었던 향이었기에 판단하기는 쉬웠지.”
그는 결정적인 증거로 냄새를 주장했다.
“냄새……?”
“단순히 비슷하기만 하면 모를까, 너와 그 둘에게서 비슷한 향이 느껴졌다. 때로는 모두에게서 같은 향이 느껴지기까지 했으니, 부정할 수는 없겠지.”
영의는 야율천락의 말에 냄새와 연관된 뭔가가 있었던가를 떠올리려했고, 그때 그의 일과가 떠올랐다.
‘영감님들 식사……!’
치킨과 자장면, 둘 다 향으로 따지면 구분하기 쉽고 특징적인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남들의 눈을 피하는 겸 영의의 이동을 간편히 하기 위해 그들이 좁은 방 안에 모여서 먹어야 했으니, 냄새가 배기도 쉬운 환경이었을 것이다.
물론 남들이 맡기에는 그저 향긋한 음식 냄새라거나 흔히 요리에 쓰인 기름 향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야율천락은 야수궁주였고, 야수들과 함께하며 그들과 동화되어 살다 보니 후각까지 발달하였기에 그 냄새의 미세한 차이를 구별할 수 있었다.
“단순히 살면서 맡아 본 적 없는 향이라면 모르겠지만, 그 향이 너와 그 둘에게 공통적으로 난다면 연관이 있다는 것이겠지. 안 그런가?”
야율천락의 결정적인 추론에, 영의는 이마를 탁 하고 쳤다.
“참 나, 이걸 냄새로 들켜 버리네.”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뗄 수도 있었지만, 이미 들킨 거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솔직하게 말하는 영의.
그리고 그는 상대방이 별다른 감정이 없다는 믿음이 있었다.
‘말 그대로 대련이라고 했으니까…… 영감님들이랑 한 번쯤 싸워 보고 싶다, 이런 마음에서 날 찾아온 거겠지.’
영의는 한숨을 내쉬며 야율천락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에휴, 그래요. 뭐 전달만 하는 저한테 말해 봐야 별 의미도 없겠지만 영감…… 아니, 그분들한테 말이라도 전해 줄게요.”
관계가 있다는 것은 들켰지만, 제대로 된 내막까지는 감출 생각으로 단순히 부하나 전령 정도로 행세하기로 한 영의.
‘뭐 어차피 싸우자고 말을 해도 영감님들이 들어줄 것 같지도 않고, 고수들이 싸우는 비무대회는 따로 있으니까.’
야율천락 또한 무림의 고수들이 겨루는 용호박투전에 참가하는 인물이었기에, 본인의 실력만 확실하다면 그 둘과 싸울 수 있을 것이다.
“말을 전해서는 안 된다. 내가 직접 찾아봐야 한다.”
하지만 야율천락은 그것마저 기다리기 싫다는 듯, 직접 찾아가겠다고 말을 했다.
“……쯧.”
그리고 이렇게 될 것이란 걸 직감했던 영의는 역시나 싶은 마음에 혀를 찼다.
‘하긴, 기다릴 인물이었으면 나를 통하지도 않았겠지.’
일단 나름의 도움을 받기는 했고, 또 대련도 쌍방의 동의 없이는 시작되지 못할 것이란 걸 알았기에 영의는 그냥 이 막무가내인 인간을 데려가자고 생각했다.
‘영감님들이 알아서 정리하겠지. 내가 안 된다고 하면 본인이 직접 쳐들어갈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해 보면, 그냥 영의가 조용히 데려갔다가 당사자들끼리 얘기하게 두는 게 더 좋은 방법 같았다.
“좋아요, 일단 따라와요. 마침 시간도 딱 적당하니.”
영의는 뒤를 돌아 곧바로 팽가의 별채로 향했다.
별채에 있는 약속의 방(?)과 가장 가까운 부분의 담을 몰래 넘어 들어가는 둘.
“읏차.”
타닥.
평소대로 가볍게 넘어가 착지한 영의.
그를 따라온 야율천락은 초행길임에도 불구하고 고양잇과 맹수가 나무를 타듯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담을 넘었다.
착.
그리고 그 육중한 몸이 무색하게, 아무런 소리 없이 사뿐히 착지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한 마리의 표범과도 같다고 느낀 영의.
“……들어가죠.”
영의는 별채에 있는 약속의 방의 문을 열었고, 그 안에는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마교와 정파의 고수들이 모여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양로원 모습이네.’
다수의 노인들이 모여 있지만 자기네들끼리만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이 정말 노인 회관과도 같았다.
“어서 오시오, 최 시주. 오늘 비무는 잘 봤소.”
“그보다 뭔가 도구를 쓸 거라면 미리 운영 측에 말을 해 두어라. 보호구인 수갑이어서 망정이지, 검이었다면 실격이었다.”
그리고 영의가 들어오자, 그들 모두가 그에게 고개를 돌려 맞이해 주었다.
마치 자주 오는 봉사자나 동네 청년을 맞이하는 듯, 작은 미소까지 지으며 영의를 바라보는 고수들.
“그런데…… 뒤에 그놈은 뭐냐? 남만 녀석 같다만?”
“아니, 뭐…… 독고휘 영감님을 보러 왔다ㄱ-”
영의는 별문제 아니라는 듯 단순한 내방자라고 이야기하려 했지만, 야율천락이 그의 말을 끊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천마와 검황은 어디 있는가. 중요한 일을 이야기하러 왔다.”
야율천락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그 자리의 노인들은 모두 미소를 거두고 흉흉한 기세를 피워 올리기 시작했다.
“……이놈이?”
“얘야, 중원에는 존칭이라는 게 있단다. 남만의 원시인이라 잘 모르나 본데…….”
야수궁주를 맞이했기에 그의 특징과 면식이 있던 팽소운이 하필 지금 해설을 하러 나간 참이었기에 그나마 그 행동을 이해해 줄 인물마저 없었다.
그렇게 분노한 고수…… 특히 마교 쪽의 검날이 날아들 것만 같던 상황에 이야기의 당사자인 독고휘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래…… 네가 본좌를 보고 싶어 한다고? 왜냐? 뭐, 싸움이라도 해보게?”
즐거운 식사 시간을 방해받은 데다가, 자신보다 어린데도 불구하고 반말을 하자 기분이 상한 독고휘가 직접 나온 것이다.
물론 아직 영의가 뭘 꺼내지도 않았기에 방해가 아니었지만 독고휘의 기준으로는 평소보다 1초라도 늦어졌다면 방해받은 것이 맞았다.
“그것도 원하지만, 검황께 드릴 더 중요한 말이 있소. 비무대회에 연관된 일이오.”
“……뭐?”
누가 봐도 싸움이나 걸러 온 것 같은 남만의 인물이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나름의 예의를 지키며 말하자 당황하는 독고휘.
그는 갑작스러운 태도 전환에 놀랐지만, 주변인들과 영의는 그 말에 담긴 내용에 놀랐다.
“……무슨 중요한 말이란 거지? 만약 같잖은 일로 본좌를 찾은 것이라면, 그 누구도 세상에서 네놈을 찾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겠다.”
그리고 부하들의 체면을 살리고 자신의 권위 탓에 이름이 불려도 가만히 구경하던 혁련무강마저 분위기가 갑작스럽게 바뀌기 시작하자 거기에 끼어들었다.
두 절대고수가 다가와 압박하기 시작하자, 아무리 야수궁주인 야율천락이라 할지라도 상당한 위압감을 느꼈지만 그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할 말을 끝까지 내뱉었다.
“……여기엔 눈이 너무 많소.”
정말 중요한 내용이라는 듯, 이 작은 방에 모인 인원들마저 많다고 표현하는 야율천락.
그의 올곧으면서도 의지가 선명한 눈빛에, 독고휘와 혁련무강은 서로 시선을 한 번씩 주고받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좋다, 모두 나가 있거라.”
“존명.”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장화관과 검마.
“너희도, 잠깐 나가라.”
“알겠습니다, 독고 시주.”
“아, 시간 길어지면 변명거리 늘어나는데…….”
이래저래 할 말을 늘어놓으며 바깥으로 나가는 정사칠룡 출신의 고수들.
그렇게 방에 네 명만이 남게 되자, 야율천락은 영의를 쳐다보았으나 그는 나가지 않았다.
야율천락은 영의는 왜 내보내지 않냐는 듯 독고휘와 혁련무강을 쳐다보았지만,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저 녀석은 믿을 수 있다.”
“저 친구가 뭘 들어도 문제가 되진 않는다.”
‘혹시나 싶어서 추적해 본 인물이었는데…… 확실히 연이 있긴 한가 보군. 그것도 상당히 깊은 연이.’
이내 자신의 직감과 추리가 상당히 잘 맞았다고 판단한 야율천락.
“좋소,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번째 비무대회만을 기다리며 잠만 자고 있었소.”
비무대회의 예선 날부터, 야율천락은 관심 없다는 태도를 유지하며 계속 가만히 잠만 자는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애초에 궁주에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던 남만의 무인들도, 자신의 비무에만 신경 쓰며 야율천락의 태도를 나무라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매일을 나태하게 시간을 보내던 무렵, 그는 어제부터 수상한 냄새를 감지했다.
“수상한 냄새라?”
“그렇소, 매우 괴상한…… 썩은 시체를 뜯어 먹는 짐승들에게서 풍기는 고약한 향이 났지.”
남만의 기준으로, 지성이 없거나 사냥하지 않고 남들이 먹다 버린 썩은 부산물들을 주워 먹는 것들은 야수가 아니라 짐승으로 판별했다.
물론 나이가 들어 사냥을 할 기력이 없다면 모를까, 한창 젊을 때에도 그런 행위를 하는 동물들은 동반자인 야수가 아니라 그저 짐승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런 짐승들에게서 나는, 고약한 향을 느꼈다고 말하는 야율천락.
“그 향은 정말 이상하게도, 공기 중에 미약하게 남아 퍼져 있기만 하고 그 근원이 어딘지 알 수 없는 향이었소. 마치 어딘가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향이 아니라 무언가가 지나갔던 흔적이 남은 것 같았지.”
그는 그 향의 근원지를 추적하며 이리저리 떠돌아 보았지만, 정작 냄새가 강해지거나 이어지는 부분이 없어 골치가 아파졌다.
“그래서 그냥 포기한 채 마지막으로 하북성이란 곳의 외곽을 한 바퀴 돌고 들어가려던 그때, 뭔가를 찾았지.”
“……뭔가를 찾았다고?”
야율천락은 외곽 지역의 사람이 드문 곳에서 땅이 파헤쳐진 곳을 발견했다.
“누군가가 파내고 다시 제대로 메운 모양이었지만, 잘 발달한 들개의 후각은 그마저도 알아낼 수 있지.”
들개가 파헤친 한 장소를 발견한 야율천락은 그곳에서 사람의 향을 맡았다.
“중원에서 누군가 죽는 것이야 비일비재하니, 그거야 별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소. 다만 누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시체를 파묻었는지 궁금해서 파헤쳐 봤지.”
야율천락은 들개들이 헤집다 만 그 구덩이를 다시 파냈고, 그는 거기에서 타다 남은 옷가지와 거의 백골이 된 시체를 한 구 발견했다.
“어디의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뼈를 부러뜨려 보니 그 안에는 피가 아직 덜 응고되어 있더군. 불태워서 뼈만 남기긴 했지만 죽은 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소.”
시체의 뼈를 멋대로 부러뜨리긴 했지만, 남만에서는 그것이 별로 실례가 되는 행위가 아니었다.
숲속의 짐승들에게 죽은 사람이 있을 때 살점으로 알 수 있는 게 없다면 뼈에서라도 정보를 알아내야 했으니까.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사람이 죽었다, 이 말인가?”
혁련무강은 야율천락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충 알 것 같았다.
“맞소.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고, 살해 현장도 발견되지 않지 않았소?”
얼마 전 살해된 시체를 발견하였고, 그 시체에 대한 정보를 알리고 싶으니 직접 찾아왔던 것이다.
“그럼 왜 그것을 곧바로 관이나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지?”
독고휘는 야율천락이 왜 굳이 이런 번거로운 방법을 쓰면서까지 찾아온 것인가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야율천락은 자신을 보라는 듯이 양팔을 벌렸다.
“나를 보시오. 내가 뭘로 보이시오? 아니, 물을 것도 없지. 내가 들어오자마자 내가 온 곳을 알았으니.”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독고휘.
“……그렇군, 누명을 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나.”
비록 남만 출신은 아니지만, 오랜 남만 생활로 그들과 비슷한 외모가 된 데다 복색부터가 남만의 것이었다.
“아직도 중원의 어딘가에서는 남만인은 사람을 먹는다는 소문이 돌겠지. 무인들이야 어느 정도 정보를 알지만 무인이 아니라면 내가 죽이고 먹었다는 소문이 있을지도 모르니, 두 분들을 찾아온 것이오.”
무인들이야 남만의 야수궁이 있으니 그들이 다소 야만적이라도 사람 사는 곳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걸 몰랐다.
미신을 다소 많이 믿는 중원인들 특성상, 아직도 그곳에는 무서운 짐승들과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 그건 알겠네. 그 시체는 어디에 있나?”
“그 자리에 온전히 다시 묻고, 들개가 오지 못하도록 영역 표시를 해 두었소.”
“좋아, 일단 가도록 하지. 가서 그것을 보고 진위를 따져 봐도 되는 일이니.”
독고휘와 혁련무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하제일 비무대회라는 거대한 축제의 장에서, 아무도 몰래 살인이 벌어졌다는 일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으니까.
그렇게 셋이 방을 나갈 때, 영의는 문득 야율천락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잠깐…… 결국 시체를 다시 파묻은 데다가 거기에 오줌까지 쌌단 얘기 아니야?’
객관적으로 본다면…… 그 말은 다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