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0화 (6)
당가의 숙소에서 대회장으로 가는 길에서, 세진은 의외로 영의에게 달라붙지 않았다.
“당신이…… 나, 고쳤다고 들었어. 어떻게?”
“그게, 이야기가 조금 복잡합니다. 그리고 고친 게 아니라 임시방편으로 치료한 것이라…….”
“괜찮아. 시간…… 많아.”
평소에 자신의 병에 대한 신경을 별로 쓰지 않는 듯이 행동했던 세진이었지만, 누군가가 깔끔하게 치료했다고 하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옆에서 말없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세준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었던 세진.
혁련운과 영의가 도와줬고, 거기서 혁련운이 지대한 역할을 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상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으니, 그녀로서는 궁금한 것을 이동하며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여기서 할 이야기도 아니고, 알아도 따라 할 수 없는 방법입니다.”
나름 예의를 갖추고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혁련운이었지만, 세진은 그의 말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럼…… 내가, 알아볼게.”
이내 궁금한 것은 스스로 알아보겠다며 오른손을 들어 올리는 세진.
세진은 손에 감긴 붕대를 풀고 거기에 남은 미약한 화상 흉터들을 살펴보며 물어보았다.
“상처, 불로 막았어?”
이제 막 분홍색의 새살이 올라오고 있었고, 주변 피부와 색이 다른 만큼 더욱 민감한 부분이었으니 바깥의 공기에 닿자 조금 쓰라리기 시작했다.
“상처를 다시 바깥에 노출시키면 어떡합니까? 어느 정도 아물었으니 덧나지야 않겠지만, 다시 상처가 나기는 쉬우니 붕대를 다시 감으시지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의원으로서의 조언을 하는 혁련운.
본인 스스로의 몸을 치료하는 것은 그의 기준에서 의술이 아니었으며 단지 죽지 않기 위한, 자신의 몸을 정상으로 되돌려 생존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을 뿐이다.
마의와의 가혹한 수행과 자신의 몸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병행한 의술은 이론으로만 만들어 뒀던 오행환류공의 완성을 이끌어 내기도 했기에, 그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살면서 자신 이외에 제대로 치료를 해 본 사람은 세진이 처음이었다.
그는 첫 환자가 다소 특이한 인물인 데다 정파인 게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환자라고 나름 신경을 썼다.
하지만 환자 본인이 스스로 상처를 감싸 둔 붕대를 풀고 이런저런 것을 묻는다는 일이…… 불편했다.
‘왜 자신의 치료를 방해하는 행위를 하는 걸까? 물론 모든 인간이 이지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내 혁련운은 세진에게 야단치듯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냥 의원이 하라고 하면 ‘예, 알겠습니다’ 하고 하십시오. 궁금해하시는 것이야 이해합니다만 굳이 지금 물어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세진은 혁련운의 말을 듣고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그럼…… 해 줘.”
“예? 뭘 말입니까?”
혁련운의 대답에 이내 붕대가 걸쳐진 오른손을 들어 올리는 세진.
“혼자서…… 못 묶어. 해 줘.”
나름 치료해 준 사람이니 말을 순순히 듣는 세진이었지만, 그래도 혼자 못 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테이프나 클립 같은 것도 없는 시절이었으니, 붕대를 고정하는 방법은 묶거나 매어 두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세진은 왼손 하나만 있었고, 그건 오른손에 붕대를 묶기에 다소 불편을 겪기에 충분했다.
“하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골치 아픈 인생의 첫 환자와 누군가에게는 새롭게 발견한 재미있는 사람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비무대회장으로 향했다.
“……잘 노네. 둘이 뭔가 맞나 봐.”
“세진이도, 자신을 치료해 줄 사람이 있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겠지요. 상처를 지지는 것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 부작용을 깔끔하게 없애 줄 인물이 흔하진 않으니 말입니다.”
세준은 어느새 영의에게 당가의 은인에 대한 예를 갖추고 있었고, 영의 또한 그런 그의 태도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내 그들이 대회장에 도착했을 때, 영의는 아직도 객석 주변에 앉아 있는 호랑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텅 빈 무대 위와 다소 웅성이는 객석들을 미루어 보아 때마침 다음 시합을 준비하는 시간인 듯했다.
“……근데, 그 아저씨는 어디 있지?”
다만 그곳에 있는 것은 호랑이뿐, 그 위에 타고 있던 남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야수궁주가 없어졌군요. 어디론가 가더라도 항상 야수들과 함께일 텐데…….”
세준은 영의와 같은 의문을 가졌는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의는 가장 쉬운 해결 방법을 실행하기로 했다.
“저기, 네 등에 타고 있던 남자 어디 있는지 알아?”
바로 주변 관계자에게 말을 걸어 보는 것이다.
느닷없이 거대한 호랑이에게 말을 거는 영의를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세준이었지만, 남만의 영물이니 사람의 말 정도는 당연히 알아들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적어도 어디론가 방향 정도는 가리키겠지…….’
-그르르릉…….
그러나 호랑이는 그의 기대와 달리 작게 그르렁거리기만 했고, 세준은 그것이 거절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진작 알려 줄 생각이 있었다면 인간이 알아듣게 소통을 했을 터.
“은인, 원체 자유로운 인물이라 어딘가를 방황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딘가에서 습격당할 인물도 아니니, 다음 시합이나 관전을…….”
세준은 딱히 걱정할 만한 상대도 아니고, 걱정하는 게 오히려 손해에 가까운 인물이었기에 무시하고 비무나 구경하자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영의는 호랑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 어디 가십니까?”
“얘가 말해 준 곳으로.”
세준은 영의가 마치 호랑이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말하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제아무리 영물이라 해도 사람의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물론 남만의 무인들은 그런 영물들과 의사소통을 하지만 그건 경험에서 우러나온 추측이나 서로 간의 합의에 가까운 의사소통이었다.
하지만 영의는 작은 그르렁 소리 하나에 장소를 알아낸 것처럼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이내 대회장의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세준은 그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세진이 영의를 따라갈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떠나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인지 계속 객석에 남아 있었기에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아무리 세진이 먼저 약조를 어기고 스스로 상처를 냈다고는 해도, 그녀를 지켜야 한다는 세준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영의는 홀로 대회장 바깥을 나갔고, 이내 호랑이…… 천호가 말해 주었던 위치에 도착했다.
대회장 바깥, 가장 크고 높은 나무.
그 나무의 가지 위에 한 남자가 몸을 편히 누인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남자…… 야수궁주 야율천락을 발견한 영의는 곧바로 나무 위로 올라갔고, 그와 대면할 수 있게 되었다.
야율천락이 있는 곳까지 올라오자, 영의는 냅다 자신이 할 말을 꺼냈다.
“아저씨죠? 저한테 말 건넨 거.”
세진이 부상을 입었을 당시, 영의는 그녀를 다소 걱정하기는 했지만 따라갈 마음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에게 전음을 날려 경고를 주었고, 그 말을 듣고 난 이후 이상한 점이 몇 개 보였기에 세진의 뒤를 따라간 것이었다.
그리고 전음을 누가 보냈는지는 느낌으로 바로 알 수 있었다.
묘하게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 낮게 울리는 목소리와 영의가 처음 듣는 목소리,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대화의 내용이었다.
-방금 손에서 피가 나기 시작한 중원 여자의 출혈에 심상치 않은 냄새가 난다.
세진의 이름을 모르는 인물인 동시에 중원 바깥의 인물이라는 티가 팍팍 났다.
후보자는 새외의 세 세력들의 인물이겠지만, 남해나 북해의 경우 적어도 사람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들을 제외하고 가장 확률이 높고 특성이 비슷한 목소리의 주인은 야수궁주 야율천락밖에 없었고.
그리고 그의 말에 세진을 따라간 이후 그녀를 치료하였으니, 나름의 감사라도 표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그렇다. 내가 이야기를 하긴 했다.”
“……이유가 뭐죠?”
무림의 자세한 정세는 모르더라도, 새외가 중원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애초에 차별을 받지 않는 이들이었다면 새외라는 이름으로 따로 분류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특히, 북해나 남해와는 달리 남만(南蠻)은 남쪽의 오랑캐라는 의미로 대놓고 낮춰 부르는 이름이었다.
남만의 사람들이야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막 불러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남만의 지도자에 가까운 인물이라면 썩 좋은 감정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네게 관심이 있었으니, 호의를 사 두려 했다. 그리고, 취미도 즐길 겸.”
“네?”
야율천락은 영의에게 관심이 있었다고 말하며, 개인적인 취미의 목적까지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여기서 권왕에게 들었다. 비무대회를 뒤집어 놓을 엄청난 녀석이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 엄청난 녀석은 너일 거라고 확신했다.”
영의는 마음속으로 팽소운에 대한 원망을 작게 하면서도 일단 이 대화에 어울려 주기로 했다.
나름의 도움을 받은 건 있었으니까.
“……제가 그 엄청난 녀석일 거란 근거는요?”
“감이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근거로 직감 같은 것을 제시하면 무시당하기 딱 좋지만 상대방은 그 감이라는 것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어지는 인물, 야수궁주였다.
“취미는…….”
“강자와의 대련과 포식. 그리고 새로운 친우와의 만남과 교류지. 네 친우는 어디에 있나?”
“친우?”
영의가 친우라고 부를 법한 사람을 하나둘 떠올리기 시작하였다.
‘연화? 아니면 그 밑의 동생들? 아니지, 정파 쪽일지도?’
그렇게 후보군을 추리던 도중, 야율천락이 추가적인 설명을 해 주었다.
“극도로 희귀하며,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 천둥과 폭풍의 새. 중원에서는 뇌령조라 부른다 하였나?”
그의 말을 듣자, 영의는 곧바로 납득했다.
“아아…….”
상대방은 야수궁주다.
살아 숨 쉬는 야생인 남만 밀림의 제왕이자 지배자.
온갖 수많은 영물들과 함께 지내는 만큼, 새로운 영물이 보이면 마음이 동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지금은 대회장에 있을 텐데.”
하필이면 지금 영의는 뇌영을 혁련운에게 맡기고 온 참이었다.
“그렇다면 취미는 나중으로 미루고 본론으로 들어가야겠군. 나와 싸워라. 아니면, 검황이나 천마에게 안내해라.”
실질적으로는 거의 초면이나 다름없는 관계에 싸움을 요구하는 거야 의외로 드문 일이 아니었다.
눈이 마주쳤단 이유만으로 시비를 걸고 서로 싸우는 게 사람이고, 무림인이란 족속들이었으니까.
독고휘에게 안내하라는 말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영의가 뇌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독고휘가 사용하는 뇌창이나 기타 뇌섬문의 무공과 유사한 부분이 많으니 어느 정도 접점이 있을 거라 추측하는 건 쉬웠으니까.
하지만 천마, 혁련무강에게 곧바로 안내하라는 말은 조금 이상했다.
물론 영의가 혁련운과 연화같이 혁련무강의 자식들과 나름 가깝게 지내고 있었지만, 그런 모습은 그들만 보여 준 것이 아니었다.
무심코 사숙조란 말을 자꾸 꺼내 버려서 다가오지 말란 명령을 내리기전까지는 우형도 그에게 자주 접근했었고, 말을 못 붙일 뿐이지 여러 후기지수들이 영의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으니까.
거기다가, 혁련진과는 대판 싸우기까지 하고 혁련강과도 기 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사람들도 그리 관계가 좋을 거란 생각은 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야율천락은 영의가 독고휘와 혁련무강에게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가 그들에게 자신을 안내해 줄 수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전 모르겠는데요.”
영의는 일단 발뺌을 시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