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8화 (4)
영의와 혁련운은 세진이 실려 갈 때만 해도 그저 그러려니 했었다.
큰 소리로 동생의 이름을 외치며 달려와서는 곧바로 업고 의원을 부르짖으며 뛰쳐나가는 모습이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도 동생을 아끼는 수준을 넘어서 과보호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 주었던 세준이었으니까 나름 그럴듯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세준의 행실과 세진에 대한 태도는 들은 소문과 직접 본 바가 있었기에 큰 문제로 삼지는 않았다.
그리고 영의의 옆에 있던 혁련운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다음 비무를 관전하려던 순간 영의가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깐 어디 좀 갔다 올게.”
“예? 어딜 가시는 겁니까?”
갑자기 자리를 뜨려는 기색을 보이자 의아해하는 혁련운.
“휘우(어디 가요)?”
혁련운의 손길에 어느새 몸을 완전히 맡기기 시작한 뇌영 또한 영의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의문을 표했다.
“그냥, 갈 데가 조금 있어.”
영의는 목적지도 이유도 말해 주지 않고 자리를 떴고, 그가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하자 움찔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도 눈에 띄게 움직일 마음은 없었는지, 움찔하기만 하고 그 이상으로 뭔가 행동하려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유일하게 그를 따라 몸을 움직인 사람이 있다면 혁련운이었다.
“귀인, 저도 가겠습니다!”
뇌영을 놓아준 뒤, 영의를 뒤따라가는 혁련운.
그가 영의를 쫓아 도착한 곳은 당가의 숙소였다.
‘……여기를 어떻게 알고 오신 거지?’
영의에게는 언제나 길을 알려 주는 편리하면서도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혁련운으로서는 그저 신비할 뿐이었다.
“귀인, 이곳에는 왜…….”
“뭐…… 이러나저러나, 자주 봤으니까. 다친 것 같으니 적어도 안부라도 물으려고. 어차피 그다지 심하지도 않겠지만.”
지금까지 계속 세진과 함께 있으면서, 나름의 정이 들었던 영의였기에 혹시나 싶어서 따라와 본 것이었다.
거기까지는 걱정의 단계에서 그쳤지만, 영의는 누군가에게 전음으로 어떠한 이야기를 듣자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출혈이 잘 안 멈춘다는 게 묘하게 꺼림칙하단 말이지.’
본래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격한 활동, 격투나 전투 시에는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이 나름의 지혈 효과가 있다.
물론 그만큼 심장박동과 혈압도 강해지기에 큰 부상에는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작은 상처의 지혈 효과는 눈에 띌 정도가 된다.
‘옛날에도 종종 쓸 만했었지…….’
영의 또한 아드레날린이 도움이 되었던 부상들을 겪어 본 적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집안 특유의 실전 대련 등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출혈도 동반되던 그런 경우에 어느 정도의 지혈 효과를 본 적이 있었다.
그렇게 아드레날린이 분비될 상황인데, 누군가의 전음을 듣고 난 뒤 해 봐야 침들에 찔린 상처에서 피가 찔린 상처 이상으로 흘러나오는 것은 확실히 이상하다고 느꼈던 영의.
“경비도 없네.”
“대체 누가 대놓고 쳐들어오겠습니까? 당가입니다, 당가. 아무도 없는 창고를 터는 것도 아니고 안에 사람들이 있기까지 합니다.”
당가의 독심은 유명했고, 그들이 은원에 목숨 그 이상을 건다는 이야기와 사례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렇기에 무림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미치지 않은 이상 그 누구도 당가와 척을 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무도 없는 것은 확실히 이상했다.
“-라고 하더라도, 손님이나 외부의 어중이떠중이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이 없을 이유가 되진 않겠지요.”
아무리 후환이 두렵다 해도 일을 저지를 인간은 있는 법이고, 솔직히 말해서 손님을 맞이할 인원은 있어야 정상이다.
“아무래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게 확실해 보이네? 그런 의미에서라면 우리가 제대로 찾아온 게 맞는 것 같다. 의술 좀 한다며?”
평소였다면 영의의 말을 부정하며 겸손을 떨었을 혁련운.
하지만 그동안 그는 무공 실력 이외에 다른 면도 성장했었고, 의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스승님만큼은 아니지만, 귀인의 말씀대로 조금 합니다.”
“그럼, 한번 가서 의학적 소견을 말해 봐. 멋대로 들어가는 건 실례지만…… 뭐, 적어도 걔랑 지인 정도의 면식은 있으니까 깨어나면 도와주겠지.”
“의술의 학문적인 소견이라……. 그보다, 그러다가 당가의 여식이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의학적 소견이라는 말에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던 혁련운은 문득 세진이 잘못되었을 경우를 떠올렸다.
“……그건 생각 못 해 봤지만, 몸이야 빼낼 수 있게 해 줄게.”
“귀인이 때로 무책임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거나 결단력이 상당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아무래도 뒷일을 생각하지 않으시는 게 틀림이 없군요.”
[그 말에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혁련운과 알림이가 둘 다 영의의 돌발 행동에 대한 비난을 시작하자, 평소에 그런 것을 크게 개의치 않던 영의도 뭔가 느꼈는지 헛기침을 했다.
“……크흠, 아무튼! 일단 들어가자고.”
그렇게 당가의 숙소 내부로 들어간 둘은 이내 큰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천! 천과 막대를!”
누군가의 명령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건물 주변을 지키고 있던 호위 무사들이 외치는 소리였다.
그런 그들이 곧바로 뛰쳐나가 천과 막대를 구해 오려 할 때, 귀신같이 그들의 틈새로 지나가 건물의 안쪽으로 들어간 혁련운과 영의.
건물의 안을 슬쩍 보자, 세진이 쓰러진 상태로 피를 계속 흘리고 있었다.
‘떠날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기절한 건가?’
하지만 아직 세진의 혈색이 멀쩡한 것으로 보아 기절할 정도로 출혈이 많지는 않았다고만 추정했다.
호흡도 제법 고른 것으로 보아, 모종의 이유로 잠들게 했거나 스스로 잠드는 것을 선택한 듯 자고 있는 세진의 모습을 본 영의.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도움을 좀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는 곧바로 용건을 꺼냈고, 갑작스럽게 들린 말소리에 송현과 세준은 고개를 돌렸다.
“자네는……?”
“섬전뢰…… 그리고 소마의(小魔醫)인가?!”
비무대회에 구경을 잘 안 간 송현은 둘을 잘 모르는 낌새였다.
“소마의?”
“그렇게들 부르더군요. 살활공을 쓰는 모습이 인상 깊었나 봅니다.”
둘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송현은 경계심을 드러냈다.
“여긴 어떻게 온 거지?”
송현의 물음에, 영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걸어서요. 아, 이렇게 둘이 걸어왔어요.”
“귀인,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잖습니까!”
영의의 대답에 핀잔을 주는 혁련운의 말에, 영의는 고개를 갸웃했다.
“흠, 분위기를 좀 살려 보려고 했는데. 안 웃는 걸 보니 진짜 심각한 상황이 맞긴 한가 봐.”
혁련운은 영의의 대답에 자신이 대신 이야기를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저희는 귀인…… 섬전뢰 대협께서 당가의 영애가 부상 입은 것이 심각해 보였기에 그것이 걱정되어 이렇게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일단 세진이 걱정되어 온 것은 맞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걱정해서 와 준 것은 고마우나, 아무리 자네가 마의의 제자이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없네. 그리고…… 세진이에 대한 것을 바깥에서 말한다면…….”
세준은 둘이 세진과 나름 가깝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 말을 믿었고, 적당히 잘 말해서 돌려보내기로 했다.
“환자의 정보를 바깥에서 말하고 다니는 것은 의원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서려 하는 혁련운.
한편 영의는 피가 계속 나오고 있는 세진의 손을 쳐다보았다.
‘지혈이 안 된다라……. 보통 그런 경우는 약물의 영향이거나 유전적인 영향인데…… 유전적이었다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고…… 약물이면 당가가 알았겠지. 그럼 해결 방법이…….’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싸우는 것에 대한 지식은 제법 있었던 영의였기에, 출혈과 지혈에 관해서도 제법 해박한 지식이 있었다.
그렇게 세진의 출혈에 대한 고민을 하던 영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물리적으로 막아야 하나.”
“예?”
“아까 말한 천이랑 막대로 지혈하는 방법은 다 좋은데 지혈 부위를 못 쓰게 돼.”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불 같은 거로 지져서 틀어막으면 더 손해가 적을 텐데.”
영의는 상처 부위를 뜨거운 것으로 지져서 틀어막는 방법을 이야기했으나, 송현이 그 말에 곧바로 반박했다.
“달군 금속으로 지질 경우 잘못하면 화상이 심해져 염증이 올라오고 심하면 화상이 큰 흉으로 남는다. 우리가 그런 것도 생각하지 못할 것 같았는가?”
손에 난 상처였으니 실수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손에 흉터가 있는 것과 혹시 모를 감염으로 인한 2차 출혈 및 염증을 우려하여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맞습니다, 정말 최악의 경우에나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상처의 크기에 걸맞은 적절한 크기의 금속과 적절하게 열을 가할 방법이…… 있지…… 않다면…….”
혁련운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뭔가 마음속에 짐작 가는 바가 있는지, 말끝을 늘이기 시작했다.
이내, 빠른 속도로 뭔가를 중얼거리는 혁련운.
“상처, 화상, 화기…… 원하는 대로 조절이 가능하게끔 한다면…….”
그는 세진의 손과 영의, 자신의 손을 세 번 정도 번갈아 쳐다보고는 이내 영의의 손을 잡았다.
“귀인, 혹시 뇌기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으십니까? 굳이 따지자면 뜨거운 물을 잠시 맞았을 때의 수준으로?”
“그 정도야 가능하지. 아니, 쉽지. 그보다 너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한 거야?”
영의는 뇌기로 상처를 지질 생각을 하고 있었고, 혁련운 또한 생각 끝에 그런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맞습니다. 불로 달군 금속은 화상의 정도를 조절하기도 어렵지만, 뇌기라면 가능합니다.”
뇌기는 혁련운이 다루는 오행의 기운에 속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은 화기의 결과물과 동일하다.
영의가 뇌기를 방출하는 도구가 되어 주고, 혁련운이 그 정도를 잘 조절하기만 한다면 세진의 상처 또한 단순한 화상으로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화의 흐름을 알아챈 세준.
“그래, 분명 뇌기를 이용한 무공에 맞은 이들은 특유의 무늬와 화상이 남았었지.”
“화상에 대해서는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상처의 화기는 제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세준은 비무대회에서 혁련운이 음기와 양기, 오행의 기운을 자유자재로 바꿔 대는 모습을 보았고 영의의 뇌기 방출과 그 조절 능력 또한 보았다.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하늘에서 내리치는 번개처럼 얼마든지 출력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는 모습을 보았던 세준은 둘의 말이 가능성이 있다고 깨닫고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그래…… 그거라면…… 그거면 가능하다! 부탁이오! 아니, 부탁드리겠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보답을 할 테니! 세진이를 살려 주시오!”
송현은 갑작스러운 세준의 행동에 잠시 당황했지만, 둘의 대화에서 영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말한 대로의 능력만 보여 줄 수 있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계획이었고, 또 세준이 이렇게 부탁하는 것을 보아 그런 능력도 되는 인물들로 추정됐다.
하지만 그는 세준과 세진의 백부이기 이전에 당가의 의약당주이자 핵심 인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말은 위험하다, 세준아.”
“저는 믿습니다! 무욕하던 섬전뢰의 태도를! 세상천지에 다시없을 어여쁜 세진이에게도 흑심을 드러내지 않던 그 평온함을!”
세준은 필사적인 태도로 송현에게 자신의 믿음을 외쳤고, 그것을 옆에서 듣는 영의는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자기 동생한테 작업 안 걸었다고 날 믿겠다는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