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7화 (3)
세준이 집에 도착한 때에는 대략적인 치료법이 발견된 이후였고, 대부분 조치하여 살려 낼 수 있었다.
다만, 살아났다고 해도 병을 앓기 이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 주지는 못했다.
고열과 어린 나이로 인해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가 살아난 세준의 동생, 세진.
그녀는 본래 말도 유창하게 하고 자주 웃고 뛰어다니는 명랑한 아이였지만 병을 앓고 난 이후 말수가 줄었다.
당시 의약당주의 판단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는 정도였다.
-흐음…… 사고 능력에는 별문제가 없네. 다소 공감 능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아, 아니. 사파나 마교의 졸자들 정도는 아니고.
-다만 생각을 그대로 말로 꺼내는 데에 그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있는지 모르지만, 생각을 하는 그대로 내뱉고 있네. 그 외에 또 어떤 문제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최대한 위험하게는 살게 하지 말아야지.
다소 무뚝뚝해지고 조금 많이 솔직해졌지만, 어디까지나 특이하다는 범주에서 끝날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당가는 혹시나 모르니 세진을 보호하며 키웠고, 그녀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있다고 하면 너무 과하게 솔직하고 격식을 안 차린다고 해야 할까.
“저기, 오빠 못 봤어?”
“오라버니라고 하셔야죠, 아가씨.”
“왜? 오빠랑 오라버니. 둘 다. 같은 뜻인데. 난 긴 단어 싫어. 말하기 힘들어.”
이런 경우가 일상이었으니, 아무리 교정하려 해도 그녀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도 복식이나 예의의 경우에는 지켰으니, 다른 사람들도 ‘저 정도 특이한 점은 뭐 그럴 수 있겠지’ 정도로 넘어가는 추세였다.
그때만 해도 나름 말을 길게 하는 편이었고, 몇몇 단어만 핵심적으로 축약해서 말하는 정도였다.
굳이 차려야 할 격식을 차리지 않고 본론만 말하는 정도였기에, 세가의 아가씨라는 점에서는 그다지 이상한 편도 아니었고.
그렇게 몇 년 정도 멀쩡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자, 당가는 세진에게 본격적으로 무공 수련을 시켰다.
기본기야 원래 하던 것이었으니, 별문제가 없었지만 암기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본격적으로 당가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 암기 수련장으로 간 세준과 세진.
“자, 세진아. 여기가 당가의 수련장이란다!”
“……똑같은데?”
세진은 일반적인 무공을 수련하던 수련장과 그다지 다를 바 없고, 특별한 구석이 없다고 생각하였고 그 생각한 바를 그대로 짤막하게 똑같다는 한마디로 내뱉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직설적 발언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세준.
“아니지! 암기를 수련하는 수련장이지! 그래도 이 오라비는 네가 독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는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단다. 주변이 죄다 독인데 혹여나 문제가 생길 수도 있잖니.”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저 동생에게 친절한 오라버니에 불과했다.
애초에 마지막 남은 형제이기도 했으니, 어느 정도는 당연한 모습이기도 했고.
“자, 우선 암기들에 대한 지식부터 배워 보자꾸나! 요즘도 독에 대한 지식과 내성은 잘 수련하고 있지?”
“응, 어제도 배우고 먹었어.”
독에 대해 배우고 내성을 키우기 위한 독과 약을 먹었다는 말이었지만 핵심만 축약해서 말하는 세진.
세진은 옛날에 병을 앓았던 아이였으니, 그녀의 몸에 약한 독이라도 어떤 지대한 영향을 끼칠까 우려했던 당가.
결국 그들은 언제나 의약당주와 해독제, 피독주를 구비해 두고 세진의 독 수련을 진행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세진은 독에 대해 약한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고, 오히려 제법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기본적인 독들에 대한 취약성이 없다는 것이 입증되자, 어느 정도 경계가 풀렸다.
그래서 암기를 수련하기 위해 세준과 단둘이 온 것이고.
암기는 잘만 다루면 별문제가 없고, 본인도 다치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어련히 조심할 거라 생각했던 당가의 인물들은 세준에게 세진을 맡겼다.
세진이 그나마 가장 잘 따르는 것이 세준이었고, 세준 또한 세진을 아꼈기 때문에 서로 좋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 일단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면…….”
그리고 그 판단은 상당히 괜찮았는지, 세준은 세진을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쳤고 세진은 그런 세준의 가르침을 열심히 받아들였다.
“자, 흔하고 던지기 쉬운 것이 있는데 그게 뭘까?”
암기를 늘어놓은 탁자 위에서 양손을 펼치고 묻는 세준.
“돌.”
이 지구상에 무엇보다 흔하고 인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던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물체이긴 하다.
“그렇지! 바로 돌…… 아니, 아니지. 비수란다. 그리고 이 탁자 위에 있는 걸로 대답해야지?”
“탁자 위에…… 돌 있는데?”
세진은 탁자 한구석에 놓인 작은 돌멩이를 가리켰고, 세준은 왜 이런 게 여기 있는가 싶은 의문을 가지면서도 일단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 일단 맞긴 하구나. 마을에서 동네 꼬마들이 던져 대는 개수와 과거에 던진 개수를 생각해 보면 무엇보다 많고 흔하긴 하겠지.”
세준의 강의는 그 이후로도 이어졌고, 이내 세진이 암기의 대략적인 종류와 효능 등을 다 외우자 그는 감탄했다.
“역시, 똑똑하구나.”
“나는 말만 짧아. 생각은 안 짧아.”
말만 짧게 하지, 생각까지 짧게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자 세준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런 다음 다른 것들에 대해서 물어봤을 때에는 세진이 제대로 대답했었으니, 세준은 조금 엉뚱한 구석만 뺀다면 세진이 나름 재능이 있다고 판단했다.
‘나이만 조금 더 먹으면…… 제법 여유를 가지고 분별할 수 있겠지.’
누구나 나이가 들면 젊던 시절에 비해 어느 정도 인내심이나 분별력이 길러지는 경우가 많았기에, 세진 또한 약관만 넘어간다면 스스로 말을 자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식 부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교육이 끝나자, 나름 실전으로 들어가기로 한 세준.
“그래, 그래. 그럼 과녁으로 쓰는 나무를 가져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거라.”
암기 수련장이니만큼 과녁으로 사용할 목각 인형이나 허수아비 같은 물체가 있어야 했지만, 어째선지 오늘따라 그런 것이 주변에 없었다.
물론 수련장 구석의 창고에 들어가면 얼마든지 있지만 바깥에만 없었던 상황.
세진이 다른 수련장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세준이 창고에서 목각 인형과 초보자용 나무 과녁을 가지고 바깥으로 나왔을 때, 비로소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세진아, 이제 과녁에 연습을……. 응? 아니, 피가…….”
“베였어.”
그가 없는 사이에 암기를 만지다가 부상을 입은 듯, 손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세진을 발견한 세준.
“그러니 더더욱 조심해야지. 뭐, 적어도 교훈을 일찍 얻기는 했구나. 적에게 위협적인 만큼 자신에게도 위협적인 게 암기란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저 특이한 구석이 있는 동생이 암기의 날카로움을 얕본 결과라고만 생각했다.
오히려 몸으로 상처를 입었기에 더더욱 기억에 잘 남을 교훈을 얻었으니 잘됐다는 감상까지 품었던 세준.
“다행히 상처가 그리 크지는 않으니, 이것으로 지혈을 하고 있거라. 나는 약을 가져올 테니.”
세준은 적당한 천을 건네준 뒤, 잠시 자리를 비우고는 의약당에서 적당한 금창약 하나와 붕대로 쓰기 위한 깨끗한 무명천을 받아 왔다.
그러나, 제자리로 돌아왔음에도 세진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전혀 멎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오빠…… 피가 안 멈춰.”
그의 얕은 지식으로도 피가 흘러나오는 양이 적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독 중에, 사람에게 주입했을 때 상처의 피가 멈추지 않게 하는 출혈독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치사성의 독은 엄중하게 관리되고 세진이가 접할 수도 없었을 텐데!’
세진이 언제 그런 독에 중독된 것인지는 모르고 있었지만, 일단 중요한 것은 세진의 손에서 흐르는 피를 멎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세준은 당황하였음에도 일단 세진을 급히 의약당으로 데리고 갔으며, 이내 세진을 살리기 위해 의약당의 모든 인원들이 달려들었다.
그 이후로 두 시진이 지나서야 세진의 손은 비로소 나을 수 있었다.
세진의 출혈 사건 이후, 당가는 출혈독에 대한 조사를 철저히 진행했으나 아무런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온 결론이 병을 앓은 이후, 세진의 몸이 변화된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어릴 때에는 넘어져서 까져도 피가 철철 흐르진 않았지. 분명히 병으로 인해 고비를 넘기는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생긴 듯하다.”
“백부님…… 아니, 의약당주님. 그렇다면 세진이는 평생 저렇게 살아야하는 겁니까?”
세준과 의약당주 송현은 치료를 끝내고 잠들어 있는 세진의 옆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겠지. 지금부터라도 무공에서 손을 떼게 하고, 양갓집 규수처럼 살게만 한다면 평생 피를 볼 일은 없겠지.”
당시 당가의 인물들은 세진을 무공에서 떼어 놓고, 평범한 가문의 딸처럼 키우려고 생각했다.
어차피 딸이 혼인을 할 경우에는 남자를 데릴사위로 들여오는 당가였으니까.
독이야…… 내성 정도만 키워 둬도 되는 일이었고, 세진이 요리를 할 일도 없었으니 별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때, 둘의 대화에 끼어드는 이가 있었다.
“싫어.”
“세진아?”
“나, 무공 할 거야.”
세진은 무공을 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고, 일단은 의원인 송현은 그를 말리려 했다.
“세진아, 백부로서가 아니라 의약당주로서 말하는 것이지만 그 작은 상처로도 위험했는데 혹여나 칼에라도 찔리게 된다면…….”
“할 거야, 무공.”
송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세진은 의지로 활활 타오르는 눈빛을 보이며 무공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하아…… 자꾸 그렇게 고집부린다면 내가 가주에게…….”
결국 가주에게 말한다는 최후의 선택지를 꺼내 드는 송현이었지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세준이 끼어들었다.
“좋아, 어디 마음대로 해 봐라! 이 오라비가 도와주마!”
의외로, 세준은 세진의 의견을 지지해 주며 얼마든지 해 보라며 격려하는 모습까지 보여 주었다.
“아니, 이 녀석이? 뭐 하나 잘못해서 베이기라도 하면 죽는다니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제가 세진이를 지키겠습니다! 제가 강해진다면! 세진이가 다칠 일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세진이 다칠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자신이 세진을 지키겠다고 말하는 세준.
“대신! 세진아, 너도 암기를 다룰 때에는 절대 다치지 않겠다고 약조하여라! 이 오라비가 너에게 날아드는 칼날은 막아 줄 수 있지만 네가 스스로 칼날에 다가가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으니!”
그는 이번에 세진이 다치게 된 계기가 본인의 부주의였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에 절대로 스스로 다치지 말라고 했다.
“응, 오빠. 알겠어. 약속할게.”
세진 또한, 자신을 믿어 주는 오빠인 세준을 실망시키기 싫었기에 그렇게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동생에 대해 집착하는 오빠가 되어 버린 세준.
그리고 그 대상인 세진은 대외적인 출입을 자제하느라 말수가 더 줄어들고 말았다.
그동안 세진을 보호하기 위해 세준의 집착이 극에 달했지만, 그가 마음속에 품은 신념과 세진이 부상을 입었을 경우 벌어질 참사에 비하면 가두지 않는 것만으로도 양반이었다.
당가로서도 세준의 무공이 강해지는 계기가 되고 남매가 둘 다 이상한 모습을 보이니 오히려 이상한 시선이 줄어드는 효과가 생기자 그것을 그냥 두었다.
하지만, 천하제일 비무대회 날 스스로 다치지 않겠다는 세준과 세진 사이의 약조가 깨지고 만 것이다.
그 책임을 묻는 것은 나중으로 미룬 채, 세진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세준과 송현.
“백부님! 아직도 피가 많이 흐르고 있습니다!”
“젠장, 어쩔 수 없지. 가서 천과 막대를 가져와라!”
송현은 결국 손 하나를 포기하더라도 지혈을 하기 위해 마지막 수단을 사용하려 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도움을 좀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그때, 그들의 뒤로 나타나는 누군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