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4화 (25)
혁련운은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어린 나이부터 이미 알고 있었기에 어지간한 일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엄청난 재능을 타고났음에도 그것을 갈고닦거나 빛낼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저 약간의 편의를 위한 용도나, 누이인 연화에게 선물을 하는 용도로 사용했을 뿐.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한 가지 취미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새 관찰이었다.
처음에는 자유로이, 하늘을 스스로의 힘으로 날아다니는 새에 대한 동경과 그 자유로운 삶에 대한 부러움에서 시작되었다.
자신도 새가 되어 보면 어떨까 하는 일종의 흥미와 어릴 적의 공상에 불과한 그 생각.
물론 야생동물들이 자연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생존하는 그 어려움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비행과 자유로움에 대한 환상이 더 컸다.
하지만 사람은 새가 될 수 없었고, 그런 마음은 새에 대한 큰 관심으로 이어졌다.
어린아이가 미래에 공룡이 되고 싶다며 공룡에 대한 책과 지식을 무작정 습득하는 것처럼, 혁련운은 새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물론 사막에서는 새라고 해 봐야 정말 가끔 보이는 독수리 정도와 전서구 정도가 끝이었지만, 다행히도 관련 자료나 서적은 충분히 많았다.
거기서 수많은 새와 새 영물에 관한 정보를 보았고, 가장 현실적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면서도 희귀한 영물은 뇌령조였다.
-가장 신출귀몰하면서도 동시에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그럼에도 접근할 수 없는 영물!
중원에서 가장 빠른 조류이면서, 천둥번개가 칠 때 폭풍우를 따라가며, 그 안에서 알을 부화시키기 때문에 다가가기 어려운 뇌령조.
그러나 그런 뇌령조가, 얼마 전에 직접 실물을 보았던 그 뇌령조가 저 멀리에 있었다.
예전에 영의를 처음 만났을 때에는 혁련무강이 바로 앞에 있었기에 차마 무슨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리고 영의가 새와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에 너무 놀라고 매혹된 나머지 그저 실물로 보거나 만지는 것도 꿈에서나 그릴 수 있는 환상의 영물 뇌령조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고.
영의가 떠나간 이후, 혁련운의 마음속 한구석에는 언제나 그때 뇌령조를 만져 봤으면 하는 소망이 남아 있었다.
스승인 마의 백천정의 극독과 약을 먹고 수명이 깎이는 느낌을 실시간으로 느낄 때에도, 수련을 하며 지쳐 죽을 것 같은 때에도, 심지어 비무대회를 하는 중간에도 언제나 그 소망은 남아 있었다.
첫 대면의 자리에서 헤어질 때 별로 좋지 못한 꼴을 보였기에, 자신이 선뜻 말을 꺼내기에는 부담되었던 혁련운.
그러나 지금은…… 오늘은, 그런 것 없이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다.
이미 혁련무강이 자식들에게 영의와 자연스럽게 후기지수처럼 어울려도 된다는 이야기를 해 두었고, 그 말인즉슨 영의의 옆에 있는 뇌령조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를 옥죄고 있던 마음속 걸림돌들이 모두 사라지자, 혁련운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욕망이 깨어났다.
“……만질 거야.”
무심코 중얼거린 말과 그 내용의 이상함에 고개를 갸웃하는 원무.
“뭐라고?”
뜬금없이 비무 중 만진다는 말을 한다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나도 만질 거야!”
뇌령조, 뇌영을 만지겠단 의지를 입 밖으로 드러낸 혁련운은 곧바로 양손을 치켜들고 원무에게 돌격하기 시작했다.
“그래, 모든 걸 동원해서 마지막 승부를 내자 이건가!”
혁련운이 예선 당시 사용했던 광혈술에 대해 들었고, 방금 전 혁련진이 사용하는 것 또한 보았기에 지금이 마지막 승부를 낼 때라고 생각했다.
꽈드드드득.
양손에 얼음을 얼리며, 혁련운의 돌진에 대비하는 원무.
“이 두꺼운 얼음이라면 오행환류도, 태극반전도 소용없을 거다!”
빙공에서 나오는 극음지기의 수기를 다른 기운으로 바꾸려 해도 얼음의 물리적 충격은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고, 역으로 극음지기를 극양지기로 바꾸려 해도 얼음이 두꺼워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 틈에 일격을 꽂아 넣으면 된다고 생각한 원무.
“그으오오오!”
이내 혁련운이 괴성을 지르며 돌격하자, 원무는 곧바로 공격해 왔다.
“설빙수(雪氷手)!”
순간 무대 아래에서 그 초식의 이름을 들은 영의는 무심코 침을 삼켰다.
“……꿀꺽.”
“응? 왜, 군침 삼켜?”
“아냐, 아무것도.”
세진이 영의를 잠시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으나, 이내 다시 무대로 고개를 돌렸다
한편 무대 위에서는 원무의 얼음으로 이루어진 양손이 혁련운에게 날아들었다.
쩌엉!
“크윽!”
“하하! 얼어붙어라!”
양손으로 날아드는 일격에, 어째서인지 한 손으로 맞상대를 시도한 혁련운.
원무는 혁련운이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웃으면서 추가타를 넣기 위해 팔을 빼려 했다.
하지만, 그의 팔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어……?!”
아니, 오히려 점점 더 얼어붙고 있는 그의 양손과 혁련운의 손.
꽈드득, 꽈드드드득-
“이 자식, 미친 거냐!”
혁련운은 극음지기와 그 수기를 양기로 반전시키거나 다른 기운으로 바꾸는 대신, 오히려 거기에 자신이 음기를 더 끼얹어 버리고 있었다.
“크흐흐, 이제 양손은 못 쓰겠군요……?”
웃으면서 얼어붙고 있는 자신의 손을 쳐다본 뒤, 원무와 눈을 마주치는 혁련운.
원무는 그런 그의 웃음에서 승리에 대한 집념, 그 이상의 광기를 느꼈다.
‘마교, 마교 하더니…… 괜히 그런 이름이 아니었어! 겉모습은 곱상하더니, 내면에는 괴물을 키우고 있었나!’
이내 혁련운은 남은 한 손을 원무의 오금 뒤로 집어넣더니, 그대로 들어 올리며 밀어붙였다.
“슬거. 당신도 당해 보면 알겠지요. 별것 아닌 동작 하나로 사람이 얼마나 어이없게 탈락하는지.”
종신에 의해 예선에서 탈락한 적 있는 혁련운이었고, 또 대진과 세준과의 싸움 또한 제법 유명해졌기에 원무 또한 이 수법을 알고 있었다.
“쉽게 당해 줄 수 없다!”
탓, 탓, 지이이익-!
두어 번 바닥을 디디기 위해 뛰다가 이내 바닥에 발을 내리꽂아 밀려나는 것을 막으려 하는 원무.
하지만 한쪽 다리로 버티는 것과 두 다리로 밀어붙이는 차이는 어떻게 해결할 수 없었다.
“제길……!”
“얼음으로 발을 묶을 생각 하지 마시죠, 괜히 신발만 뜯겨 나갈 테니.”
이미 영의와 주혜의 싸움을 본 혁련운은 바닥에 냉기로 발을 고정할 경우까지 계산했고, 천으로 되어 있으니만큼 밀어붙이면 문제가 없을 거라 판단했다.
원무는 점점 장외에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했다.
방금 말한 대로 얼음으로 바닥에 발을 고정하려 했지만, 혁련운이 곧바로 걷어차 무산시켰다.
뻐억!
“크윽!”
“이제 더 버티기 힘들 것 같군요? 하하하하!”
오히려 고통 탓에 버티기에 더 힘들어지는 결과만 초래했다.
양손의 얼음을 녹여 보려고도 했지만, 이미 혁련운의 얼음이 그의 양손 위로 덮이고 있는 처지였다.
원무처럼 빙공을 다루지도 않으면서 극음지기를 계속 운용하는 혁련운의 손은 이미 동상을 입은 듯 붉게 변해 가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두 손은 묶였고, 한쪽 발은 중심만 잡기에도 바빴다.
그리고 몸이 닿아 있는 만큼 한기로 방해를 해 보려 해도 그 기운을 바꾸어 버리니 소용이 없었다.
‘아, 극음이든 극양이든…… 이놈 앞에서는 소용이 없구나. 거리를 두어 봤자 이렇게 나와 버리면…….’
이내 원무는 싸울 의지가 사라졌고, 바닥에 한쪽 발로 조금씩이나마 하던 저항도 멈추고 그의 손에 몸을 맡겼다.
파지직.
무대의 가장자리에 다다르자, 손 위로 얼어붙은 얼음들을 모두 흩어 버리고 원무를 바깥으로 던지는 혁련운.
털썩.
원무는 허탈한 표정으로 무대 바깥에 떨어졌고, 이내 승부가 결정 났다.
“승자! 마교, 혁련운!”
혁련운은 손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무대에서 내려갔다.
“……못 쓰진 않겠지만, 다소 치료에 시간이 걸리겠군요.”
붉게 물든 것을 본 시점부터 동상이라고는 짐작했지만,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심하다고 판단 내린 혁련운.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그는 곧바로 영의에게 달려갔다.
객석에서 비무를 구경하던 영의는 혁련운이 무모한 수를 썼다는 것에 의외라고 생각하던 찰나, 그 혁련운이 자신에게 달려오기 시작하자 의문이 들었다.
“……쟤 왜 나한테 오지?”
“원래, 이쪽. 근데, 왜 뛸까?”
원래 혁련운이 영의 주변에 있었던 것을 상기시켜 주며, 뛰는 것에 대한 의문을 품는 세진.
“휘로로, 휘욱(그건 모르겠고, 풀어 줘요).”
그리고 영의의 양손 안에 잡혀 눈과 고개만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 뇌영까지.
“-인! 귀인!”
이내 영의를 몇 년 만에 만난 친구 만나듯 반갑게 웃으며 다가온 혁련운.
“귀인!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 그 손안에 있는 멋지고 아름답고 고귀한 자태를 자랑하며 하늘에서의 모습이 그 무엇보다 멋지며 신비롭기 그지없다는 영물 중의 영물! 날짐승 중의 날짐승! 뇌기의 신비로움을 몸 안에 지니고 있다는 멋진 뇌령조를 조금만 맛…… 아니, 만져 보아도 되겠습니까!”
그는 새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지대함을 드러내듯 엄청난 기세로 말을 쏟아 내고 있었다.
“……이미 만지고 있지 않아?”
영의는 이미 뇌영의 머리에 손가락을 올리고 깃털의 촉감을 만끽하고 있는 혁련운을 보며 당황했다.
그리고 뇌영 또한 갑자기 웬 정신 나간 인간이 다가와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자 놀라서 울부짖기 시작했다.
“끼우욱! 끼욱(얘 뭐야! 뭔데)!”
“이런! 정말 죄송합니다! 뇌령조를 실물로 본 것은 처음이라 그만!”
혁련운은 그 와중에도 뇌영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연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사람, 이상해. 엄청.”
엄청난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봤으니 누가 봐도…… 아니, 그만한 호들갑은 누군가 생애 처음으로 사람이 하늘을 나는 걸 봤어도 보여 줄 수 없었을 것이다.
“뭐야, 저 녀석…….”
“쉿, 눈 마주치지 마. 미친 게 확실해.”
“마교의 공자들 중에 제일 멀쩡하게 생겨서는 제일 미쳤어…….”
“역시 마교야…….”
하지만 의외로 혁련운의 그런 호들갑은 주위 사람에게 제대로 먹힌 듯했다.
물론, 그게 뇌령조를 처음 봤다는 반응이 아니라 마교니까 무슨 기행을 해도 그러려니 하는 쪽으로 먹혔지만.
“하아…… 만지기만 해. 맛보지는 말고.”
영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으나, 혁련운이 새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았기에 뇌영을 건네주었다.
“휘이익?! 삐요오(잠깐만?! 나를 넘기겠다고요)?!”
뇌영은 팔다리…… 아니, 날개와 다리를 휘저으며 저항했지만 영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얌전히 있어. 너를…… 아니, 새를 과하게 좋아할 뿐이지 해를 끼치진 않을 테니까.”
“삐이이익(먹는다고 했는데)!”
뇌영은 고통스럽고 원망 섞인 비명을 내질렀지만, 그와 반대로 황홀하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 혁련운.
“아아…… 부드럽다, 부드럽고 동시에 깃의 세기가 살아 있다…….”
혁련운은 뇌영의 깃털을 조심스레 만지며 그 질감과 촉감, 온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으으…… 이상해…….”
세진은 그런 혁련운을 정말 이상한 무언가를 보듯이 쳐다보았다.
그리고 문득 다음 시합 순서를 떠올린 영의는 세진이 자신의 옆에 있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응? 근데, 너 다음 순서 아니었나?”
이다음은 세진과 남만의 무인이 시합할 예정이었고, 세진은 지금쯤 이미 무대에 나가 있어야 했다.
“응? 어? 음…… 아. 어어?”
당황, 당혹, 고민, 깨달음, 그리고 놀람의 표정을 마치 연극하듯이 바꿔 가며 보여 준 세진은 이내 급히 자리에서 일어서 무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 참, 정말 특이해…….”
“스으으읍-!”
“삐이익, 삐익(냄새 맡지 마! 만지기만 한다며)!”
특이하기로는 지지 않는 인물이 옆에 있었지만, 적어도 새만 없으면 나름 평범한 모습을 보여 주니 영의는 세진 쪽이 더 특이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자, 다음 시합은! 당가의 당세진과 남만의 소민의 대결이오!”
옆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뇌영의 비명을 애써 무시하며 무대에 시선을 고정하던 영의.
그러나 그때 그의 뒤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있었다.
쿠웅.
쿠웅.
‘발소리치곤 너무 크고 묵직한데……?’
영의가 뜻밖의 발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자신을 쳐다보는 호랑이의 얼굴이 있었다.
그르릉…….
“호랑이?”
그것도, 아주 큰 호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