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223화 (223/325)

#제223화 (24)

쐐애액-!

검붉은 핏빛의 모래바람이 대회장의 무대 위를 가로지른다.

카드드드득.

이런저런 이유로 부서지는 무대의 조각들이 또 부서진 부스러기들과 신발에 묻어 자연스럽게 쌓인 흙들, 그리고 바람이 불어 쌓인 먼지들이 모여 만들어진 아주 적은 양의 모래.

카득, 카드득.

또다시 무대의 일부분이 깎여 나가며, 적은 양의 모래가 또다시 생겨났다.

한 줌이나 될까 싶은 그 모래는 바람에 이끌려 떠오르더니 이내 검끝에서 피어오르는 검기에 뒤섞이며 모래바람을 더욱 흉악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혈사풍검의 열네 번째 초식.

초식이라 부르지도 못할 만큼 야성적이고 무자비한 폭력, 혈사만천(血沙滿天)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크아아아악!”

미칠 듯한 속도로 휘둘러 대는 검의 끝에서, 모래바람은 더욱 빠른 속도로 무대 위를 휘젓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직-!

그러나, 그런 모래바람마저도 따라가지 못하는 속도로 연신 움직이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저건 조금 성가시겠는데.”

마치 회오리폭풍처럼,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는 검기의 바람을 만들어 둔 혁련진.

영의는 그것을 뚫을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위로 가야 하나.”

공중을 날아다니는 모습만큼은 아직 감추고 싶었지만, 높게 뛰어올라 한 번에 끝내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이내 땅을 박차고 위로 뛰어오르는 영의.

무대 위에서 이리저리 날뛰는 모래바람과 달리 혁련진의 주변에 있는 바람은 확실하게 회오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회오리의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위에서부터 접근하기로 한 것.

‘태풍 같은 큰 회오리바람은 중앙이 텅 비었다고 했지. 실제로도 봤었고.’

고등학교 때의 수업 중, 과학은 4교시였기에 그나마 안 자고 듣던 과목이었다.

물론 수업을 듣는다고 공부를 한 건 아니었지만, 최소한 기억에는 남아 있는 짤막한 지식이 몇 개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기상에 관한 내용이었다.

“태풍의 눈이라고 했었나.”

회오리바람의 위로 뛰어오르자, 모래가 회오리치고 있었기에 확실히 구별할 수 있었다.

회오리의 중심에 있는 혁련진의 주변에는, 모래가 없었다.

“지금이다!”

영의는 그대로 회오리의 중심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혁련진도 영의의 접근을 감지한 건지 위를 올려다보고 검을 들어 올렸다.

“크윽, 크아아아!”

위에서 내리꽂히는 벼락과, 지상에서 솟아오르는 회오리바람.

두 자연현상의 대결과도 같은 모습에, 관객들은 환호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무대를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번쩍!

눈을 부시게 하는 섬광과 함께, 승부가 결정지어진 듯 소리가 없어졌다.

“모래 먼지 탓에 보이지는 않지만! 소리가 없어진 것을 보니 승패가 결정 난 듯합니다!”

용준이 소리치며 무대 쪽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뿌옇게 낀 먼지가 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권왕 팽소운과 권마 강자성이 동시에 무대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흠!”

“흐읍!”

휘오오오.

단순히 주먹에서 나온 권풍만으로 먼지를 날려 보낸 둘.

“쿨럭, 쿨럭!”

“아이구, 이게 웬 먼지야!”

물론 건너편에 있던 관객들은 먼지를 조금 뒤집어썼지만…… 나머지 3면에 있던 관객들은 그런 먼지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먼지가 걷히고, 무대 위에는 서 있는 사람이 한 명, 쓰러진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리고 서 있는 사람은 대부분의 예상대로, 영의였다.

“후우, 또 옷을 찢어 먹었네.”

마치 갈고리 같은 것으로 잡아다가 찢은 듯, 너덜너덜해진 상의를 툭툭 털어 내는 영의.

그의 다른 쪽 손에는 쓰러진 혁련진이 붙들려 있었다.

“승자! 최…… 섬전뢰, 최영의!”

심판을 맡은 무인은 영의의 승리를 선언했고, 그제야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영의는 환호성에 손을 흔들어 주고는 혁련진을 들쳐 메고 무대 아래로 내려오며 작게 중얼거렸다.

“의외로, 대충 하면 안 되겠는데, 이거?”

물론 상대방이 마교의 이공자에다가 무리수까지 써 가며 자신과 싸웠다고는 해도 뇌기를 개방하고도 금방 끝내지 못했다.

“하아…… 귀찮은데, 근데 또 이게 재밌네.”

[사용자, 가끔 저는 사용자가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할 때의 공통점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영의는 혁련진을 들고 아래쪽 객석으로 내려오다가 갑자기 들려온 알림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뇌영과 전룡은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바깥에 풀어 주고 있어 함께 시간을 못 보내더라도, 알림이는 항상 그와 함께였지만 비무대회 동안 대화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갑자기 알림이가 그에게 대화를 걸어오자, 의외다 싶은 생각을 하며 대화에 응해 준 영의.

‘뭔데?’

[사용자는…… 보상 심리가 있는 것 아닙니까?]

알림이의 말에, 영의는 침묵했다.

“…….”

그리고 그때, 객석에서 혁련운이 영의에게 급히 달려오기 시작했다.

저 멀리에서 마의까지 천천히 걸어오는 것을 보면, 혁련진을 치료하기 위함인 듯 보였다.

“귀인, 그래도 형님을 깔끔하게 기절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정신이 있으면 더 귀찮…… 아니, 힘들 때도 있으니…….”

터억.

“받아.”

혁련운은 영의에게 나름의 감사를 표하며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자신에게 무언가 날아오자 반사적으로 받아 냈다.

“네? 아, 네!”

받으라고 말하기 전에 혁련진을 무심하게 던지고는, 대회장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하는 영의.

혁련운은 그런 영의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이내 품속의 혁련진이 꿈틀거리자 그를 치료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급히 마의에게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대회장의 바깥.

-다음 비무는 마교, 혁련운과……!

내부에서 외치는 소리가 작게나마 들리고 있었기에 영의는 더 먼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내 인적마저 드문 외딴 곳까지 오자 영의는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어? 아니, 너한테는 물어볼 이유가 없겠네. 어지간하면 다 알 테니까.”

[……그렇습니다. 사용자의 행동들을 분석해 본 결과, 통칭 멋진 활약을 할 때나 무공을 사용해야 할 때, 사용자는 이성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 보상 심리가 있었지. 한때는 격투계에서 유망주로 꼽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쓸모없어져 버렸으니까. 그리고 그런 게 10년이나 이어졌으니까.”

10년 전, 세상에 게이트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각성자들이 생겨날 때 유행하던 일종의 문화가 있었다.

-기존의 세상에서 효율적인 것이 과연 각성자에게도 효율적일까?

방탄복과 같은 보호구, 총기와 같은 무기, 이동 수단, 하다못해 식품에서 생활 습관까지.

SNS에서 인기를 끌던 영상들은 이내 반은 연구로, 반은 예능 삼아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으로 변했고 그 결과 연구 기관 등에서 제대로 임하는 연구들도 있었다.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이 ‘현대의 격투기가 각성자에게 먹힐까?’ 하는 주제.

물론 ‘각성자가 총을 맞고 버틸까?’ 하는 주제도 있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격투기 쪽이 방송되어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그 방송 이후로, 격투계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메달리스트나 현역 챔피언들이 피와 땀을 흘리며 평생 쌓아 올린 기술이 압도적 힘 앞에 무릎 꿇는 장면밖에 없었으니까.

물론 시간이 지나고 각성자 인구가 늘어나자 오히려 각성자 간의 격투계가 부흥하고 무술 도장도 나름 성행했지만, 영의에게는 그리 호재가 아니었다.

그의 몸놀림과 각성자로서의 기본적인 신체 능력을 잘 살려 강화계의 각성자를 이겨도 별 이득이 없었기 때문이다.

형인 영웅은 격투의 기술을 각성자들에게 가르치는 길을 택했고, 영환은 그저 모든 것을 잊고 회사원으로 취직했었다.

하지만 영의는 아직 젊었기에 자존심이 강했고, 차마 힘을 날로 먹듯 얻은 사람들에게 가르친다거나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렇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니 이런저런 일을 전전하다 이내 능력을 살려 배달업으로 취직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10년이 지나자 그 당시의 좌절감도 잊힐 즈음, 영의가 독고휘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것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랑 해묵은 감정도 조금 해소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그렇게 힘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지연을 제자로 받은 것도,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누구 하나에게라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뭐…… 물론 지금은 그냥 아끼는 제자가 다 됐지만. 이제는 딱히 그런 감정이 없어. 대신 제대로 힘을 쓰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그런 면에서 여긴 딱 맞는 곳이지.”

이곳 무림에서는 정체를 숨길 일이 없었고, 조금 몸을 사려야 하긴 하겠지만 뒤처리가 쉬웠다.

“그 암중 세력인지 뭔지만 아니었어도, 한바탕 할 텐데 말이야.”

[사용자, 비록 제가 인간도 아니고 한바탕의 범주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이미 한바탕 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아하하, 그렇긴 하네. 뭐…… 그래도 들은 사람은 없지?”

대회장을 나온 뒤, 영의는 그 나름대로 외딴곳으로 이동했고 주변의 인기척을 다 상세하게 살펴본 다음에야 소리 내어 알림이와 대화를 했다.

[예,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좋아, 그럼 다시는 못 할 한바탕을 또 하러 가 볼까?”

그렇게 알림이의 확인까지 받은 영의는 다시 대회장으로 돌아갔고, 진행 중인 비무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무대의 위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혁련운과 북해의 한 청년.

무대의 임시 보수에 시간이 조금 걸린 건지, 아니면 혁련운이 혁련진의 치료에 시간이 걸린 건지 몰라도 영의가 제법 긴 시간을 나갔다 왔음에도 비무는 끝나지 않았다.

‘……저기 있는 바닥들이 갈려 나가 있는 걸 보면 아마 보수를 대대적으로 해야 하거나 아니면 치료에 시간이 좀 걸렸던 거겠지?’

영의가 이곳저곳을 확인하며 어째서 다음 차례인 혁련운의 비무가 아직 안 끝났나 싶은 생각을 하던 무렵, 무대 위에서 한차례의 충돌이 벌어졌다.

채앵!

“칫!”

“네 무공에 대해서는 이미 파악했다. 근접하지만 않으면 그 잘난 오행 뭐시기도 못 쓰겠지.”

“그래서 선택한 게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 방법이다, 이겁니까?”

이제 보니 혁련운과 북해의 주원무의 비무는 상당히 오랜 대치를 이어 온 듯했다.

“사내답지 않게 그게 뭡니까?”

“승리를 위해서라면, 다소 꼴사나워도 어쩔 수 없다. 주혜가 탈락했으니, 우리라도 북해의 위상을 높여야지.”

혁련운이 도발을 했음에도 원무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상대방과 그 발끝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상당히 귀찮게 된 것 같은데?”

영의가 무심코 혼잣말을 내뱉었지만, 그의 말에 대답해 주는 누군가가 있었다.

“응. 절대로, 안 잡혀.”

“넌 언제 왔길래…….”

언제 영의를 발견하고 그에게 다가온 건지는 몰라도, 어느새 옆에 서 있는 당세진.

“나, 대회장에 섬전뢰 없으면 계속 찾아.”

그녀는 아까 영의의 혼잣말에 대답해 줬듯, 이번에도 그의 말에 대답했다.

“비무는 안 보고?”

“끝까지 찾아. 계속. 찾을 때까지.”

“……그래, 그렇구나. 어차피 안 갈 거지?”

“섬전뢰, 잘 알아. 내 마음…… 들어갔다 나왔어?”

“아니, 그게 됐으면 내가 고생을 덜 하고 살겠지……. 으으.”

영의는 지난번 지구에서 화연과 겪었던 5시간의 진검 승부를 떠올리며 진저리쳤다.

“……그보다, 마음…… 정리했어?”

“뭐?”

“아까 나갈 땐…… 복잡한 눈빛. 지금…… 깨끗한 눈빛.”

세진은 평소의 맹한 모습과는 달리, 의외로 눈썰미가 뛰어났다.

“섬전뢰…… 당신, 가슴에 뭔가 있구나.”

그녀는 영의의 심리 상태마저 알아챈 것도 모자라 그의 가슴 속에 든 것도 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없어, 그런 거.”

“아냐, 난…… 알아.”

영의는 부정했지만 세진은 그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영의의 가슴, 너덜너덜해져 적당히 고쳐 맨 무복에 손을 갖다 댔다.

꾸욱.

“-끼웁.”

“응, 뭐가 있어. 살아 있는…… 생물. 토끼? 강아지? 새?”

문자 그대로 가슴 속에 뭔가 있다는 것을 알아낸 세진은 그 종류에 대해서도 묻기 시작했다.

“…….”

영의는 세진의 물음에도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그의 가슴 속에 있던 것은 그렇지 않았다.

“휘우우(들켰다)…….”

품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작게 우는 뇌영.

“아, 새다.”

세진은 뜻밖의 동물이 나타나자 기쁜 듯 미소 지었다.

그러나 그때, 그 새의 존재를 눈치챈 인물이 하나 더 있었다.

“저건……!”

새에 미친 남자, 혁련운이 영의의 품속에 있는 뇌영을 새 덕후 특유의 직감으로 귀신같이 알아챈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