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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220화 (220/325)

#제220화 (21)

영의는 갖가지 유형의 무인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대협! 잠시만 이야기를 들어 주십시오!”

“와아아! 멋져요!”

단순히 그를 추종하는 듯, 별 목적 없이 쫓아오기만 하는 젊은 후기지수들.

“섬전뢰 소협, 잠시만 멈춰 주시게!”

“우리 세가에 와서 이야기만! 이야기만 좀 들어 주시게!”

다소 나이가 있고 그만큼 무공과 경험이 쌓인 어딘가에 소속된 중년의 무인들.

“으하하하! 자네 인기가 아주 엄청나구만그래! 흐하하하하!”

“크하하! 거지놈아! 상황 돌아가는 꼴이 재미있어 보이는데 무슨 일이냐?”

“아, 선배님들 왔소? 그냥 한번 보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흐하하하하!”

영의와 비슷한 속도를 내거나, 오히려 더 빠르게 앞질러 가서 그의 진로를 방해하는 노년의 고수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머리칼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검은색으로 통일한 말없는 마른 노인과 중간에 난입하여 계속 따라오는 근육질의 노인이었다.

그 와중에 개방의 방주라고 밝혔던 화운이 그들을 통제할 거란 기대를 가졌지만 화운은 그들을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 동참하여 영의의 뒤를 쫓아 달리고 있었다.

“무성사신에 광소비야신투라니…… 참 재밌지 않소!”

의뢰를 받을 때에도, 암살 시도가 들켜 정면 싸움을 할 때에도 절대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고 하여 무성(無聲)사신이라 불리는 살수계의 전설이자 은거기인.

그리고 밤에 몰래 찾아와 털거나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털지 않고 대낮에 당당하게 쳐들어가 미친 듯이 웃으면서 누구보다 빠르게 돌파한 뒤 금고를 부수고 딴다고 하여 광소비야(狂笑非夜)신투, 줄여서 비야신투라 불리는 여러모로 전설의 도둑.

빠르게 움직이는 부분에 있어서는 남들이 따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른 둘은 영의와 비슷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뇌룡보의 속도를 따라오다니 대체 뭐 어떻게 되어먹은 거야?’

물론 최고 속력은 아니었지만 어지간한 차량의 일반 주행 속도보다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던 영의.

덕분에 뒤따라오던 후기지수들이나 중년 무인들은 금방 나가떨어졌지만 이들은 계속 따라붙고 있었다.

그렇게 달리던 도중, 흑의 차림인 무성사신은 품에서 숯 조각과 종이를 꺼낸 뒤 그 위에 뭔가를 써 내려갔다.

“……뭐 하는 거지?”

무성사신은 이내 영의보다 앞질러 뛰어가더니 그의 앞에서 종이를 보여 주며 같은 속도로 맞춰 뛰기 시작했다.

[그 압도적인 빠름, 적당한 체형. 마음에 든다. 제자, 하지 않겠는가?]

“아뇨! 제가 살수는 취미가 아니라서!”

영의는 거절의 뜻을 밝힌 뒤 옆으로 꺾어 도주하기 시작했고, 무영사신은 급히 다른 내용을 종이에 써 내려가느라 그를 뒤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온몸이 근육질인 노인, 비야신투가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으하하! 이봐, 애송이! 나랑 같이 도둑질해 볼 생각 없냐!”

“죄송한데 없습니다!”

“왜? 그냥 아무도 못 막을 힘과 속도만 있으면 넌 뭐든 털 수 있다! 황궁도 가능하다고! 내가 잘 가르쳐 줄게! 도둑질의 참맛을 알면 너도 매일 웃으면서 살 수 있다! 하하하!”

비야신투는 도둑질을 할 때마다 생겨나는 아드레날린과 도둑질을 하고 있다는 희열을 주체하지 못해 웃음이 터졌었다.

그가 매번 말할 때마다 웃는 이유가 바로 그런 웃음을 너무 자주 터뜨린 나머지 아예 버릇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럴 마음이 없다고요!”

어째서인지 노인들에게 인기 만점인 영의는 오늘도 노인들의 러브 콜을 받고 있었고, 결국 그들이 쫓아오지 못하는 공중으로 도망치고 나서야 그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으하하, 하…… 허어. 허공답보는 못하는데…….”

웃으면서 이야기하려 했으나 아직 허공답보를 할 수는 있지만 뇌룡보처럼 공중에서의 방향 전환과 속도 증감을 자유자재로 할 경지는 되지 않았기에 웃음을 멈추는 비야신투.

그는 허공으로 날아가는 영의를 보며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고, 그 옆의 무성사신은 영의에게 보여 주기 위해 써 놓은 종이를 바닥에 던졌다.

[살수의 정점에 선다면 암살 한 건당 금 한 관을 받을 수 있다. 그래도 안 할 건가? 이렇게나 벌이가 좋은데?]

그리고 이내 종이에 다른 내용을 쓰는 무성사신.

“놔둬, 벙어리 놈아. 너는 뭐 허공답보나 능공허도 막 자유롭게 안 되냐?”

[저걸 쫓아가려면- 그게 됐으면 이러고 있지도 않았겠지.]

무성사신은 쓰던 내용을 멈춘 뒤 비야신투의 말에 대한 대답을 곧바로 적은 듯 하나의 종이에 두 개의 내용이 공존하고 있었다.

“후우, 후우……!”

그때, 그들의 뒤로 취광개 화운이 도착했다.

“녀석은, 어디로…….”

“날아갔지. 저~~~ 멀리로. 으하하하! 아주 그냥 승천하는 용처럼 날아가 버렸어!”

끄덕끄덕.

화운의 물음에, 비야신투와 무성사신이 동시에 하늘 너머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미 잡을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렸단 이야기를 듣자, 화운은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아…… 제발 저 친구가 사파나 마교로 넘어가지 말아야 하는데…….”

털푸덕.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한 듯, 거지답게 그 자리에 드러눕기까지 하는 화운.

비야신투는 그런 화운을 내려다보며 영의에 대해 질문했다.

“흐흐흐. 야, 거지야. 저 녀석은 뭐냐?”

슥, 스윽.

무성사신 또한, 묻고 싶은 게 있는지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모르셨습니까? 이번 비무대회에 갑자기 튀어나온 후기지수입니다. 정보로는 뇌섬문과 관계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어울리는 사람들을 보면 다른 곳도 관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슥, 스윽.

“어울리는 사람이라면?”

직, 지익.

“정파의 후기지수와도 어느 정도 접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의외로 마교의 인물들과도 접점이 있는 듯합니다.”

“하하, 애매한데……?”

“그렇지요.”

슥슥, 스윽.

“후기지수들 말고, 다른 인물들은?”

지이익.

“마교의 마의와 무당의 태극검, 그리고 일전에는 옛 정사칠룡과 마교의 수뇌부끼리 대면한 자리에도 있었다고 합니다만…….”

슥, 스윽.

“좋아……. 다른 정보는?”

“없습니다. 진짜 말 그대로 튀어나온 녀석입니다.”

지- 와직.

툭.

무성사신은 자신도 질문을 하기 위해 종이에 이것저것 써 내려갔지만 질문을 작성해서 완성하기 직전에 비야신투가 같은 내용을 질문했고, 그 때문에 매번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이 계속 반복되자 짜증이 폭발한 듯 종이를 바닥에 내팽개친 무성사신.

“왜 그러냐, 벙어리야? 하하하!”

비야신투는 무성사신이 내던진 종이를 들어서 펼쳐 보았고, 그 안에는 거짓말처럼 그가 했던 질문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저 청년은 누구- 어떤 쪽과 어울리고 있는- 혹시 중진의 자리에 있는 무인들과는- 그 외에 다른-]

“아…… 그러니까 네가 할 말 내가 뺏어서 화났다 이거냐? 흐후후.”

끄덕끄덕.

무성사신과 비야신투는 서로 활동 영역과 시기가 겹치긴 했지만, 각자의 업무는 달랐기에 의외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종종 목표가 동일할 경우, 어느 한쪽이 주의를 끌면 다른 쪽이 수월하게 일을 처리하기도 했으니 우정이라고 할 만한 마음이 있는 둘.

“카-핫핫핫! 화 풀어라! 그래도 알아낼 건 다 알아냈잖아? 생각해 보니, 그 독불장군 놈이랑 비슷한데…….”

끄덕끄덕.

바닥에 누워 있던 화운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둘의 이야기를 듣다가 흥미로운 부분이 나오자 솔깃해졌다.

“독불장군……?”

“그래, 팽가의 그 녀석 전에 주먹이랑 왈패 짓으로 이름 좀 날리던 녀석 말이다! 하하하!”

“혹, 양참권(兩斬拳) 문소길 말씀이신지?”

끄덕끄덕.

양참권 문소길, 모든 것을 둘로 베어 버리는 주먹이라는 말대로 뭔가를 부수기보다는 베어 내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만쇄문의 옛 문주로 만쇄문의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올려 버린 원흉이기도 한 그는 독고휘 이전의 무림 깡패였고, 정말 하고 싶은 대로 살다가 정마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잠적해 버렸다.

그가 사라짐과 동시에 만쇄문의 악명 또한 사라졌지만, 그 영광까지 사라져 만쇄문의 명성이 그리 높게 유지되진 않았다.

그리고 비야신투는 그런 문소길과 연락이 닿던 은거고수였다.

“사파고 정파고 뭐고 신경 쓰지 않고 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던 그놈! 하하! 분명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락이 됐는데…….”

무성사신과 비야신투, 둘은 비무대회의 소식을 듣고 구경 겸 업무(?)를 하기 위해 심산유곡에서 은거 중 내려온 이들이었다.

물론 소식이야 비야신투가 먼저 들었고 연락을 돌려 꼬드겼으나 여러 명의 은거고수 중 제대로 응한 것은 무성사신 혼자뿐이었다.

“좀 옛날얘기도 할 수 있는 녀석들한테 죄다 연락을 해 봤었는데 정작 온 건 말 못하는 벙어리 놈 하나뿐이고…….”

째릿.

무성사신은 계속 자신을 벙어리라 부르는 비야신투를 째려보았지만, 비야신투는 그 시선을 일부러 무시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뭐, 그래도 내려온 보람은 있어! 하하하하! 재밌는 녀석도 봤고! 물론 내가 마교에 감정이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싸우러 나갔다가 괜히 창피만 당할 것 같아서 말이야! 죽기는 싫거든! 그러니까 이 나이까지 목숨 줄 붙여 가며 사는 거지! 크하하하하!”

끄덕.

사실 둘은 비무대회에 흥미가 생겨 내려왔고, 참가할 의사는 있었지만 참가자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포기했다.

암살과 침투가 특기인 살수와 비록 도둑답지 않은 정면 돌파가 특기인 신투라고는 하지만 맞서 싸우는 게 특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 맞다. 혹 검황님은 만나 보고 오셨는지요?”

“검황? 독고 녀석? 그 녀석은 왜?”

다른 무림인들이 봤다면 놀라서 펄쩍 뛸 말버릇이었지만, 놀랍게도 비야신투와 무성사신은 독고휘보다 윗세대의 무림인이었다.

그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던 은거고수들이 연락을 안 받아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연세라는 것이다.

“그…… 오늘 아침에 들어온 이야기에 따르면, 검황께서 혹여나 은거고수 출신의 인물인 사람이 있다면 얘기를 하라고 하셔서 말입니다.”

독고휘는 영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그리 가볍게 여기지 않았고, 혹시나 모를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는 목적 겸 우군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재인 은거고수들을 찾기 시작했다.

물론 말년의 대부분을 숨어 지낸 이들이니만큼 아직 세력이 건재한 몇몇 이들을 뺀다면 무성사신처럼 가만히 대회를 지켜보던 인물이 많을 것이다.

“독고 녀석이 은거고수를 찾는다라……. 좋아, 내가 좀 찾아 주도록 하지! 핫핫하!”

비야신투는 화운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대신 아까 그 녀석을 다시 보게 해 달라고 해라.”

끄덕끄덕.

“예? 그, 그건 저도 조금 힘든데…….”

“으이구…… 쯧쯧. 거지야, 너 개방은 맞니? 하하! 겉모습은 누가 봐도 개방은 맞다만!”

도리도리.

비야신투는 화운을 보며 혀를 찼고, 무성사신 또한 한심하다는 듯 느릿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졸지에 개방주에서 뭔가를 하려고 해도 그럴 힘이 없는 인물이 되어 버린 화운은 서러움이 마음속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 * *

한편, 영의가 아직 도망 다니던 시점에도 비무대회는 진행되고 있었다.

“승자! 원가장! 원조온!”

“하하, 패자는 바닥을 기는 게 어울리지!”

다소 자만심이 가득해 보이는 청년이 승리했고, 그것을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지켜보는 노인들이 있었다.

“예, 원조온이 이겼군요.”

다소곳한 자세로 조심스럽게 경기의 결과를 말하는 용준.

지금 그는 평소의 쩌렁쩌렁한 목소리 대신, 아주 침착하고 낮은 스님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가 그런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좌우에 위치한 인물들 때문이었다.

“가전무공이라고 했나? 나름 특색은 있지만, 그리 고절한 무공은 아니군.”

용준의 오른쪽에서 승리자, 원조온의 무공을 보며 평가를 내리는 천마 혁련무강.

“아직 후기지수에 불과하니, 이야기는 다를 수 있지. 그리고 가전무공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강해질 여지는 있지.”

용준의 왼쪽에서, 원가장의 무공을 신랄하게 까 내리는 혁련무강의 의견에 반대를 표하는 독고휘.

둘은 영의의 요청에 따라 해설 역을 맡아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강해질지 어쩔지는 몰라도, 오래 살진 못하겠군. 자만심은 빠르게 죽는 지름길이니.”

“그건 맞는 말이군.”

해설로 적당한 고수…… 팽소운이나 운광 정도의 고수를 앉히겠지 싶었던 영의의 예측과는 다르게 본인들이 직접 앉아 있는 독고휘와 혁련무강.

그 사이에 낀 용준은 죽을 맛이었지만, 둘만 있으면 안 된다는 모두의 만류와 사회 역할을 맡았다는 이력 탓에 어쩔 수 없이 이 자리에 남게 되었다.

“다, 다음 시합은! 월하장의 신직과! 공운문의 조관인의 대결이오!”

용준은 다음 시합을 알려 주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목소리가 좀 크군.”

혁련무강의 나지막한 한마디에, 용준은 곧바로 목소리를 낮추었다.

“……부디, 많은 응원을…… 부탁드리오…….”

“괜찮네, 크게 말해야 사람들이 알아듣지.”

하지만 독고휘가 그에게 목소리를 높여도 된다고 이야기했고, 용준은 다시 크게 외쳤다.

“그리고! 패배한 후기지수에게도 열렬한 성원을 부탁드리오!”

용준은 둘 사이에 끼인 자신의 신세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미타불, 부처께서는 왜 저에게 이러한 시련과 고행을 안겨 주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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