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8화 (19)
비무대회 본선의 1일 차를 끝낸 영의는 지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무림에서 얻은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확실하게, 무림 쪽이 평균적인 레벨이 높네.”
각성자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싸움을 벌이지는 않는 영의.
하지만 그는 나름의 눈썰미가 있었고, 정확한 승패는 알 수 없어도 대략적인 견적은 낼 수 있었다.
지난번에, 화연이 패트리어트의 기습 방문으로 인해 급히 길드로 복귀했을 때 아주 잠깐이지만 패트리어트를 보긴 했다.
물론 뭔가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그런 시간은 없었지만 적어도 살펴볼 시간만큼은 있었고, 그때엔 몰랐지만 나중에 소식들을 접하면서 그 정체를 알게 되었다.
‘미국의 최강인 사람도 무림에서는 최상위로 갈 수 없을 것 같았지…….’
방어력이나 화력 면에서 서로 다른 비중을 두는 무림인과 각성자였지만, 적어도 절대고수가 되면 둘이 균형을 이루게 된다.
강기를 뿜어낼 수 있는 순간부터 그걸 몸에 두르면 절대적인 방어요, 상대에게 들이대면 절대적인 공격의 수단인 셈이니.
영의가 보았을 때, 확실히 어지간한 고수들보다는 강하겠지만 절대의 위치에 올라설 순 없을 거라 판단했다.
“광선검 앞에 뭘 들고 와도 썰리는 거랑 마찬가지지…….”
SF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떠올린 영의는 굳이 비교해 봐야 별 쓸모가 없을 거라 생각하고는 이내 비교를 그만두었다.
“흐음…… 뒤처리 걱정 없이 자유자재로 싸울 수 있으니까 좋기는 한데 실력들이 다 고만고만한걸…….”
영의는 독고휘에게 가르침을 받은 이후부터, 뇌기를 조금씩 축적하고 상한을 늘리며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어 왔다.
그 덕에 번개로 계속 뇌기를 충전했다지만 칼라미트를 빈사 직전까지 몰아넣을 수 있었고.
하지만 그 덕에 그는 지금 불균형해져 있었다.
‘말 그대로 유리 대포지…….’
화력만큼은 눈에 띄게 상승했지만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거기서 거기였다.
뇌기의 운용 또한 최대한 창의력을 발휘해도 현대에 있는 몇몇 시범 예시의 응용이 한계였을 뿐, 영의만의 특별한 것이 없었다.
‘뇌룡보도, 사실상 영감님들이 만들어 준 보법이지.’
뇌룡보는 영의만의 독문무공이라 칭해도 될 정도의 것이었지만, 기본적인 틀은 독고휘를 비롯한 고수들이 짜 준 것이었다.
“흐음…….”
물론 현대의 기술들과 무림의 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한 가지 목적만을 주로 추구하는 실험적인 무공들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영의로서는 그 차이점을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런 지식과 경험의 부재가, 영의를 더욱 불균형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했고.
하지만 영의는 자신이 겨루거나 타인이 겨루는 여러 번의 비무와 그것을 보며 대략적으로 감을 찾아가고 있었다.
“후우…… 알림아, 다른 쪽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
[현재, 개체명 그룬은 아직도 연회를 진행 중이며…….]
그룬이 시작한 연회가 아직까지 지속된다는 얘기에, 영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직까지 술을 마신다고?”
[덧붙여, 아직 종료된 적이 없습니다. 연회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알림이는 거기에 한술 더 떠 연회가 종료된 적마저 없다는 말을 했다.
“……여러모로, 대단하네. 다른 쪽…… 치료제 쪽은?”
난쟁이들이란 종족이 대단한 건지, 그룬이 대단한 건지 나름의 감탄을 한 영의는 호엔하임을 비롯한 세계의 근황을 물어보았다.
[표본이 없어 연구의 진척이 없습니다. 사용자, 표본을 채취해야 한다는 것을 잊으셨습니다.]
“아, 맞다. 머리카락 뽑아 갔어야 하는데. 나중에 꼭 좀 알려 줘.”
[네, 알겠습니다. 그 이외에…… 특이 사항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사용자가 무림이라 부르는 차원에 대해서도 조사는 진행 중입니다만…… 사용자로 인해 역사 변형이 발생하며 변수가 늘었습니다.]
“어…… 나 때문에 망한 건가?”
물론 영의가 다소…… 아니, 상당히 많이 눈에 띄긴 했다.
하지만 무림이란 세계의 특성상 은거한다는 한마디만 남기고 사라지면 해결될 줄로만 알았던 영의.
‘그리고 그 정도까지는 나름 허가된 거 아니었나?’
영의는 자신이 한 행동이 과했나 싶어 우려를 표했지만, 알림이의 대답은 영의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사용자 덕분에 변수를 차단할 수 있는 안전책이 생겨났으니까요. 개체명 독고휘 및 혁련무강은 사용자가 있을 때 이성적인 판단을 할 확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그래…… 내가 목줄이라 이거지?”
두…… 맹견 세력의 대장들을 통제할 수 있는 목줄의 역할이라 생각하는 영의.
[인간을 상대로 그다지 적절한 표현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만, 그들의 특성을 고려해 보면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판단합니다.]
실제로 따져 봐도 그리 큰 차이는 없었기에, 맞는 말이라고 봐도 될 것 같았다.
“그럼, 정리해 보자. 우선 그 공손환이란 첩자 놈이 있단 가정하에…….”
-영의가 한 행동들은 역사 변형의 일환이었으나 더 큰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차라리 작은 소란으로 끝내는 게 낫다.
-끄나풀이 있다고 하면, 가장 눈독을 들일 것은 뇌섬문과 관계가 있을 것 같지만 소속이 없는 영의나 우승 상품일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대로만 가면 된다는 거지?”
[맞습니다. 덧붙이자면, 사용자가 조금 더 판을 키워 배후의 세력을 끄집어내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영의는 알림이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부터는 더 화려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뒤 지구에서의 휴식을 취했다.
무림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까지, 영의는 지구에서 여러 가지 할 일들을 끝마쳤다.
“드디어 완성됐나요?”
“네, 완벽합니다. 근데 가능하면 지난번에 소재를 구해 줬다는 아는 분은…….”
지석에게 천에 싸인 꾸러미를 받는 영의.
어지간해서는 그냥 주고받겠으나, 지석은 아직 면허정지 상태였기에 공적으로 주고받을 순 없었다.
[사용자, 혹시 모를 기밀 유출에 대해서는…….]
‘나도 알아, 그 정도는.’
그리고 영의는 정보를 요청하는 지석에게 고개를 저으며 거절…… 정확히는 불가능의 뜻을 알렸다.
“죄송합니다, 저도 그걸 끝으로 연락이 안 되네요.”
“아…… 그래도 알려라도 주시면…….”
“그게, 알려 드려도 못 만나실 거예요. 저도 찾아가 본 몸이라.”
“이런…….”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알려 줘도 못 만나고, 영의가 호엔하임의 집에 다녀오긴 했던 건 진실이니까.
지석에게 의뢰했던 무기를 받아 챙기고, 영의는 다른 것도 이것저것 신경 써서 챙겼다.
“세트 메뉴 2번으로 20인분이요.”
“네?”
“아, 빨리요. 20인분.”
“그, 세트 메뉴 2번은 짜장면 둘에 탕수육이 들어 있는 건데…… 그걸 20인분이나……?”
“네, 사람이 좀 많아서. 인원별로 나눠야 해서요.”
독고휘를 비롯한 노인들에게 가져다줄 음식을 구매하기도 하고.
“치킨 30마리요.”
“네?”
“이것저것 다 섞어서 30마리요. 거기에 순살로 10마리만 더.”
“아, 네!”
다행히, 치킨은 대량 주문이 드문 일이 아니어서인지 주문을 바로 접수해 주었다.
“하아…… 좀 바꿔 먹기라도 해 보시지, 괜히 자존심 세운다고 먹던 것만 찾으니…….”
서로 상대방의 음식을 보며 순간적인 식욕이 들고, 차마 먼저 달라고 말할 순 없었기에 자신이 먹던 것만 더욱 빠르게 먹은 무림인들.
음식을 위해 자존심을 팔기는 했지만, 전부 다 팔아 버린 건 아닌지 상대방에게 세울 자존심은 남아 승부하듯 먼저 말을 꺼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것은 자신들이 먹던 음식에 대한 자부심으로까지 이어져, 영의가 다른 음식을 구해 와 내밀어도 고개를 저어 거절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어허! 이 요리가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는 자네도 알지 않나! 다른 것을 먹으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이 녀석아, 나도 고기 요리는 온 중원을 돌면서 다 먹어 봤다. 매운 거, 짠 거, 단거, 더 매운 거, 맛없는 거, 온갖 종류를 전부! 그러니까 먹던 거로 가져오너라.’
치킨을 뜯다가도 짜장면을 먹는 후루룩 소리에 눈알을 굴리는 혁련무강과 양념치킨의 살이 뜯어지는 모습을 보며 군침을 삼키던 독고휘의…… 설득력 없는 말이었다.
그렇게 무림 쪽에 대한 준비를 끝마치고, 영의는 주변인들을 찾아가는 시간 또한 가졌다.
“……별일 없지?”
“왜, 별일 있으면 뭐 안 돼?”
“아니, 그냥. 우리 남매는 참 괜찮은 남매다 싶어서.”
“으으…… 갑자기 왜 그래? 뭐 원하는 거라도 있어?”
당가의 남매를 본 뒤, 자신의 집안이면 정말 평화롭고 괜찮은 사이였구나를 깨달은 뒤 수연에게 서로 간의 관계를 확인하기도 했고.
“쌤, 지난번에 구해 주신 검 너무 좋은 건데…… 어떻게 돈이라도…….”
“괜찮아, 넣어 둬. 제자한테 그런 거 좀 해 줄 수도 있지. 그보다, 다음 자세!”
“오늘은…… 타이트하게 안 하시나요?”
“가끔은 가볍게 하기도 해야지.”
만쇄문의 호건과 종신을 본 뒤, 사제 관계에 대해서 다시금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수연을 조금 더 정성들여 가르치기도 했다.
“자, 가볍게 진심 대련 30분만 하자. 검도 새로 생겼으니까, 더 빡세게 해도 되겠지?”
“네에에?!”
물론, 힘들지 않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선배?”
“왜?”
“아니, 그냥 조금 궁금한 게 있는데…… 왜 저랑 조금 떨어져서 걷는가 싶어서요. 그리고, 왜 자꾸 제 시선을 피하세요?”
“별로 그런 적 없는데?”
영의는 지금 화연에게서 약 30cm 정도 떨어져 걷고 있었고, 그 거리는 멀다고 하기에도 가깝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거리였다.
하지만 평소의 거리에 비하면 확실히 먼 거리가 맞았기에, 화연은 이상함을 느끼고 그것에 대해 질문했다.
“흐음…….”
무림에서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화연에게 묘한 죄책감을 품게 된 영의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알림아, 이런 건 조언해 줄 수 없어?’
[사용자, 저한테 조언을 구하는 게 상식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개체명 신화연은 사용자의 사정을 잘 아는 편이니 사실대로 말하는 게 나을 거라고 판단됩니다.]
알림이는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는 영의를 조금 나무라면서도 솔직하게 말하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
“좋아, 말할게. 사실…….”
“뭐, 저 몰래 여자라도 만났어요?”
영의가 제대로 이야기를 하기 전, 화연이 먼저 선수를 쳤다.
“그게…… 그러니까…… 결론적으론 맞네.”
뭐라 둘러대거나 변명할 거리를 찾던 영의는 그냥 알림이의 조언대로 솔직하게 답하기로 했다.
“지난번에 만났던 그 베키라는 키 작은 사람은 아니죠? 선배 취향이…….”
화연은 수상한 사람을 보는 눈빛으로 영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니, 그런 취향 아니야. 키 크지.”
다급히 손을 내저으며 부정하기 시작하는 영의.
“솔직하게 말해 봐요, 예뻐요?”
“……응.”
무림 쪽에서 영의의 주변을 맴도는 인물들 중 세진과 연화, 주혜는 확실히 외모가 뛰어난 편이었다.
“선배한테 관심 있고?”
“그런 것 같긴 해.”
세진이나 주혜는 몰라도 연화는 확실히 그런 쪽으로 영의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뭐, 됐어요.”
“……어?”
화연은 이내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영의의 손을 붙잡고는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뭐 변명이라도 하고 있었으면 모르겠는데…… 솔직하게 말하니까, 선배가 그럴 마음이 없다는 건 잘 알겠네요. 저는 선배를 믿어요.”
영의에 대한 믿음과 별다른 변명 없는 짤막하고 빠른 대답에 만족한 듯, 화연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누가 뭘 어떻게 하든, 선배는 제 거니까.”
영의는 그런 화연의 대답에 고마움을 느끼는 동시에, 작은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음, 근데 우리 어디 가는 거야?”
계속 화연에게 끌려가고 있었기에 행선지라도 물어보는 영의.
애초에 별다른 목적 없이 나온 데이트였지만 굳이 데이트에 적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 아닌가.
“네? 아, 길드 훈련장이요.”
“거긴 왜…….”
영의는 훈련장이란 말을 들은 순간, 아까의 작은 불안감이 강하게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간만에 스파링이나 하려고……. 왜, 싫어요?”
화연은 웃으면서 영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입과 달리 눈에서는 웃음 특유의 긍정적인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아니야…… 응. 가자.”
“그리고…… 시간 좀 오래 보내 주세요. 알겠죠?”
“오래 보내야지, 물론! 나도 그러고 싶어.”
영의는 화연에게 무조건적인 대답을 해 주며,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단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란 걸 체감했다.
‘아니, 얘는 진짜 서리를 내릴 수 있었지…….’
그리고 동시에, 영의는 북주혜에 대한 평가를 상당히 수정했다.
본래의 ‘화연과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자세한 면에서는 다른 여자’에서 ‘그냥 외모 빼고 거의 다 화연과 닮은 여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