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5화 (16)
마교의 대공자와 남궁가의 직계가 겨루는 싸움.
두 유명인의 대결이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 치러진 제4시합.
그러나 그 시합이 치러진 시간은 엄청나게 짧았다.
“마교 녀석, 대남궁의 창천을 보여 주마!”
“……너한텐 관심 없다.”
호승심을 불태우는 남궁우와 달리, 이런 시합 따위 시시하다는 듯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혁련강.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이는 둘이었지만 시작하기 전부터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시작!”
이내 시작 신호가 울리고, 남궁우는 남궁의 창천을 보여 주겠다는 그 말 그대로 시작하자마자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남궁의 섬전십삼검뢰를 받아라!”
이름에 뢰, 즉 번개가 들어가긴 하지만 뇌섬문처럼 뇌기를 주축으로 한 무공은 아니었다.
다만 하늘을 바탕으로 한 남궁의 무공이니만큼 하늘에서 가장 빠른 번개같이 빠른 움직임을 중점으로 한 작명이었을 뿐.
실제 뇌기를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검뢰라는 이름 그대로 번개처럼 빠른 검이 곧바로 혁련강에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혁련강은 그렇게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는 검날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을 뿐,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았다.
남궁우는 혁련강이 반응하지 않는 것을 호기라고 생각하고는 검끝에 모든 것을 집중하며 자신의 무공, 남궁의 무공에 대한 자부심이 끓어넘치는 것을 느꼈다.
‘남궁의 검법은 제일이다! 유, 쾌, 변! 그 어떤 것이든 이겨 내고 나아가는 제왕의 검이란 말이다!’
그렇게 매섭게 날아드는 검 앞에서, 혁련강은 기수식을 취했다.
“……시시하군. 흑룡단공(黑龍斷空).”
마치 보이지 않는 공을 쥔 것처럼 둥글게 말리는 손.
쐐액-!
남궁우의 검이 그에게 닿기 일보 직전의 순간,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검은 물체가 있었다.
빠각.
남궁우는 푸른 옷을 입고 있었기에 이 무대 위에 검은 것이라 하면 그들의 머리칼과 혁련강의 옷뿐이었다.
티잉.
그리고, 바닥에 맑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 뒤 한번 튕겨 오르는 남궁우의 검날.
“……무슨?!”
검이 닿기 직전, 혁련강은 매우 빠른 속도로 출수하여 검날을 치운 뒤 역으로 부러뜨린 것이었다.
“형편없군, 창천이라고? 번개라고? 용은 그 모든 것을 아우르고 지배할 뿐!”
혁련강은 이내 부러진 검을 보며 당황하는 남궁우의 머리를 잡은 뒤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콰앙!
“커헉!”
“하늘은 용의 앞마당이며!”
콰앙!
“번개는 용이 부리는 도구일 뿐이다!”
두 번의 과격한 공격 이후, 무대를 이루고 있는 석판이 부서졌다.
그리고 그런 충격을 머리로 전부 받아 낸 남궁우는 완전히 의식을 잃은 듯, 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럼에도 그의 손에는 부러진 검이 쥐여 있었고, 혁련강은 그것을 알아차렸다.
“……꼴에 검수라고, 검은 놓지 않는 건가.”
이내 혁련강은 그런 남궁우를 조롱하듯, 손안에 있는 검을 빼낸 뒤 바닥에 던졌다.
땡그랑.
“스, 승자-”
누가 봐도 승자와 패자가 명확해 보이는 모습에, 승리 선언이 나오려는 순간 혁련강은 남궁우를 바깥으로 집어 던졌다.
“장외로 보내 주겠다. 처참한 패배보다는…… 장외로 졌다는 게, 변명할 거리가 되겠지.”
그렇게 내던져진 남궁우의 몸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무대 옆 참가자들의 객석.
그리고 남궁우가 던져진 그대로 날아온다면 맞는 것은 영의가 될 예정이었다.
“오라버-!”
“위험-”
모두가 날아오는 남궁우를 막으려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그때, 거짓말처럼 공중에서 남궁우가 사라졌다.
“-니?!”
“-한…….”
갑자기 날아오던 남궁우가 사라지자, 모든 사람들이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그들 중 단 두 명, 맞는 것을 보기 위해 영의 쪽으로 시선을 유지하고 있던 혁련강과 그 대상인 영의만이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다.
“네놈……!”
무대 위에서 영의를 노려보는 혁련강.
“……졌어도 힘내라. 물 마실래? 아, 아직 기절해 있나?”
그리고 그런 혁련강은 무시한 채, 정신을 잃고 있는 남궁우에게 물을 건네는 영의.
영의는 혁련강이 자신에게 남궁우를 던졌을 때,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여 남궁우를 받아 낸 뒤 옆자리에 앉힌 것이었다.
주변 자리가 비좁긴 했지만 어떻게든 해냈다.
사람들도 이내 남궁우가 영의의 옆에 안전히 있다는 것을 본인들의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나, 남궁우! 장외! 승자, 혁련강!”
혁련강은 승리 판정을 받고 천천히 무대에서 내려오고 있었지만, 그 표정이 승자의 표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는 혁련무강이 신경 쓰는 인물이었고,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괜히 난동을 피우는 게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네놈…… 언젠가 만나기를 기대하지.”
“나도 기대해. 아, 그리고 좀 웃어. 왜 이긴 사람이 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혁련강의 사나운 위협을 농담으로 받아치는 영의.
‘마음에 안 드네, 저 인간. 마교에서 커서 그렇다기엔 다른 쪽들은 멀쩡한데.’
영의는 혁련강이 다소…… 아니,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영의와 약간의 거리를 두게 되었다.
“석판이 파손되기는 했으나! 진행에 문제없다는 판단이 내려졌으므로 예비 시합장 대신 여기서 계속 진행하겠소!”
이어진 제5시합은 혁련운과 남해의 강정갑의 시합이었고, 생각지도 못한 이변이 일어났다.
초기에는 혁련운이 상당히 밀리는 듯한 모양새를 보였고,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게 당연해 보였다.
어중이떠중이들이나 예상치 못한 것에 당황한다면 몰라도, 이번에 마주친 상대는 그런 애송이가 아니었으니까.
남해의 무공은 극양지기를 사용하는 무공답게, 정갑의 검이 스칠 때마다 혁련운의 옷자락이 그을리거나 불이 붙었다.
“하하! 마교의 삼공자도 별것 아니군! 남해의 무공은 최강이다!”
기세등등한 정갑의 모습에 발걸음을 멈춰 서고 손을 아래로 늘어뜨리는 혁련운.
“후우…… 이제 됐습니다. 제대로 상대하도록 하지요.”
“지금까지 도망친 건 제대로 상대한 게 아니었나 보군? 나도 제대로 상대한 게 아니다!”
정갑은 곧바로 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고, 혁련운은 그런 도에 맞서 자신의 손을 내뻗었다.
“흐음, 일단 보고 생각하시죠?”
쩌엉!
화륵.
도와 장이 부딪치는 순간, 공중에 작은 불길이 솟아올랐다.
그 모습을 본 정갑은 혁련운과 자신의 도를 번갈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어떻게…….”
그리고 그런 정갑의 모습에 미소 지으며 답하는 혁련운.
“본디, 사람의 몸에는 오행의 기운과 태극, 음양이 다 담겨 있다고들 하지요. 물론 저는 그것들이 모두 맞다고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몇 개인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오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생명 그 자체를 이루는 목기, 사람의 온기와 활동력을 이루는 화기, 모든 것을 조화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수기, 온기는 없지만 몸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금기와 수기와 조화하여 목기를 이루게 하는 토기.”
사람의 몸에는 다섯 종류의 기운이 존재하며, 그것들은 서로 간에 상호작용을 한다고 설명하는 혁련운.
“다섯 개는 모두 서로 간의 작용과…… 약간의 변화로 다른 기운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 변화를 어느 정도 임의로 조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혁련운은 오랜 세월 동안 무공 수련이나 학문 공부 대신 다른 공부에 시간을 쏟았었고, 그중 도교의 지식을 비롯한 여러 지식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경험은 마의 백천정을 만나 더욱 빛나기 시작했고, 이내 놀라운 무공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보여 드리지요, 저만의 무공이자…… 스승과 거듭한 연구의 산물을.”
오행의 다섯 가지 기운을 체내에서 바꾸어, 한 가지 기운으로 정제하여 그 힘을 증폭시키는 무공.
“오행환류(五行幻流). 모든 오행은 변화하며 흐를지니.”
오행환류공이 무림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때였다.
하지만 정갑은 약간의 흉내만으로 극양지기를 얻어 낸 것이라 판단했고, 맞대결을 위해 더욱 강한 힘을 부딪치려 했다.
“웃기지 마라! 남해의, 우리의 태양은 무엇보다 뜨겁고 강렬하다!”
그렇게 온 힘을 집중한 일격이 날아오는 순간, 혁련운은 방금 전처럼 주먹을 내뻗었다.
도와 권, 두 개가 맞붙은 순간 지금까지 뜨거운 양기를 뿜어내던 손은 갑작스러운 한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쩌적, 쩌억.
“뭐, 뭐냐!”
상대의 손과 거기에 잡힌 도가 얼어붙으며 서리가 내려앉았고, 이내 서리가 자신의 팔 쪽으로 내려오는 모습에 급히 도를 손에서 놓는 정갑.
“그리고, 그것에는 음양과 태극 또한 접목시킬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무공이라면 모르겠지만…… 특징이 강한 무공이라면,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지요.”
혁련운은 정갑의 도와 부딪치자마자 오행환류공으로 체내에서 수기와 화기의 성질을 음양을 적용시켜 바꾸어 버렸고, 이내 양기를 띤 정갑의 도 또한 함께 바뀌기 시작한 것이었다.
“태극반전. 본래라면 이렇게 쉽게는 안 되고 그저 내기의 흐름에 영향을 주는 정도지만, 극양지기를 사용하는 무공이니 편했습니다.”
서로 대치한 상태에서 자신의 마음대로 양기를 바로 음기로 바꿔 버린다.
사람의 몸으로 쉽게 할 수 없는 엄청난 재주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든 무인들은 할 말을 잃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순간적인 성질의 역변은 어떻게 이론상 할 수 있더라도 그에 따른 여파와 다시 되돌리는 까다로운 난이도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그리고, 오행환류공을 만든 당사자이자 사용자인 혁련운도 자신의 재능으로 어떻게 가능케 한 것이지 실제로 배워서 사용하려면 불가능에 가까운 무공이었다.
“자, 계속하시겠습니까?”
혁련운은 미소 지으며 정갑을 바라보았고, 그의 양손에서는 극양과 극음의 서로 다른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아니, 포기하지. 내 내공을 잃고 싶지는 않으니.”
정갑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도를 주워 들고는 뒤돌아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방금 전에야 도에서 그쳤기에 망정이지, 실제로 몸에 닿는 순간 십수 년간 쌓아 온 내공이 음기로 바뀌며 막대한 손해를 볼 수도 있으니까.
정갑이 스스로 기권을 하자, 혁련운의 승리 판정이 대회장 안에 울려 퍼졌다.
“승자! 혁련운!”
“살기 위해 연구하던 것이…… 무공이 되다니,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군요.”
혁련운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무대 아래로 내려갔고, 거기서 자신에게 박수쳐 주는 연화와 영의를 만날 수 있었다.
이어서, 오늘의 마지막 시합이자 제6시합의 막이 올랐다.
북해의 빙궁주, 북설란의 제자이자 빙화라는 별칭을 얻은 북주혜.
그리고 의외성으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자 잠재된 능력이 기대되는 화제의 인물, 최영의.
둘은 무대 위로 올라와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당신은, 뭔가 다른 시선을 갖고 있군요.”
주혜는 영의가 중원의 사람들과 뭔가 다른 점을 갖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처음에야 다 낯선 중원인이었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중원인들 사이에서도 영의는 특히 뭔가 눈에 띄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물론 외모 탓도 있었겠지만, 그런 게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새외에서 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차별적인 시선이나 외모로 인한 마음고생이 상당히 있었던 그녀에게 새외든 마교든 중원이든 다 똑같이 바라보는 영의는 특이했다.
“내가 눈이 조금 좋은 편이긴 해도, 그렇게 좋진 않은데.”
영의는 농담을 섞어 가며 대답했지만, 그는 지금 마음속으로 약간 심란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 냉기를 쓰는 데다가 별명까지 빙화…… 얼음꽃? 너무 화연이 같은데.’
물론 외모야 안 닮았지만 둘 다 미인이었고, 별칭까지 같았으니 영의는 주혜를 상대하는 데 약간의 거북함을 느끼고 있었다.
“흐음, 혹시 이 비무가 끝나면 잠시 대화나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딱히 북해인들에게 편견이 없는 듯하니.”
“뭐, 마음대로 해.”
둘의 대화가 이어지던 중, 심판을 맡은 무인이 다가왔다.
“준비됐나? 시작!”
한 명은 꺼림칙함을 안고 한 명은 뭔지 모를 감정을 안은 비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