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3화 (14)
비무대회 용봉비상전.
후기지수들이 참여하는 일종의 주니어 내지는 아마추어 대회의 개념에 가까운 대회였지만, 그 열기만큼은 상당했다.
“자, 자! 얼른 빨리 돈을 거시오! 다음 시합은 당가의 독봉(毒蜂) 당세준과 만쇄문의 맹돌저(猛突猪) 나종신이오!”
그리고 그 상당한 열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장소가 있었으니, 바로 내기 판이었다.
“독봉에 은자 둘!”
“맹돌저에 금자 하나!”
“자, 자! 아직 시작까진 시간이 있으니 천천히들 하시고! 줄을 좀 서시오!”
승자를 예측하며 돈을 걸고 있는 내기 판은 어느 정도의 배당이 있었다.
무명의…… 소규모 문파에서 올라온 자신 없어 보이는 무인의 경우엔 높은 배당을, 이름 높은 구파일방이나 세가 또는 예선에서 엄청난 모습을 보여 줬던 무인의 경우에는 낮은 배당을.
그리고 그런 배당표에서 평균적으로 가장 낮은 배당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마교의 일원들이었다.
[마교 대공자 혁련강 배당 영 할 영 푼 영 리]
거의 무조건 승리를 확신한다는 느낌의, 내기가 성립되지 않는 배당표.
물론 이것들이야 과거의 전적으로 나온 값이니, 쟁쟁한 상대와 맞붙게 된다면 배당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내기 판에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흐음…… 금우, 장사 잘되어 가냐?”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사도련주, 갈성천이었고 이 내기 판은 대부분 사파에서 운영 중이었기 때문에 온 듯했다.
본인 또한 시찰 삼아 잠깐 나왔다는 듯이 내기 판에 써진 내기 현황을 슬쩍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갈성천.
“어이쿠, 패왕님. 예, 물론입죠. 아주 성황리에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요.”
내기 판의 관리자, 금우(金牛)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파의 무인이었지만 무공보다는 상재에 더 집중하기 시작하며, 무공으로 단련된 신체에 살과 근육이 같이 올라오더니 소처럼 변해 버렸다.
그리고 돈을 밥보다 좋아했고, 금이나 은이 있다면 더더욱 기뻐하는 남자였기에 반쯤은 놀리듯이 금우라 불리는 남자였다.
“역시 사람들은 재밌어 보이는 게 있으면 누구든 간에 주머니를 열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중원의 사람들은 더욱 말이지요!”
내기와 유희 등을 좋아하는 중원인들의 특성상, 이런 재미나 보이는 것이 있다면 누구나 호기심에서라도 참여했기 때문에 상당히 장사가 잘되고 있었다.
“흐음, 그래. 나도 참여해도 되겠지?”
“네, 네! 물론입니다!”
어차피 여기서 번 돈의 일부가 상납될 예정이었기에 갈성천이 돈을 잃든 말든 별문제는 없었다.
잃어도 어지간해서는 회수되는 거고, 얻으면 그것대로 좋은 일이니까.
하지만 책방 주인이 자신의 가게에 있는 책을 읽으면 안 된다는 법이 없듯이, 자신의 소유라 해도 즐길 수는 있는 법.
“예, 어디에 거시겠습니까? 지금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는 신예인 맹돌저에 걸고 있지만, 제 예상으로는 독봉이 이길 것 같습니다. 당가 정도가 된다면 저럴 때 쓰는 방안도 알고 있겠지요.”
갈성천이 내기를 하겠다고 하자 금우는 그에게 은근히 배당률이 높은 쪽을 추천하였다.
‘어차피 재미로 오신 것일 테니까…… 절대고수들이 본다면 결과야 뻔하겠지. 은원보 하나 정도 거시려나…….’
지금 가지고 있는 자금을 계산한 뒤, 적당한 수준의 금액을 추정해 보는 금우.
하지만 의외로, 갈성천은 소매에서 다른 빛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것을 꺼내 내려놓았다.
작은 크기의 타원형 그릇과도 같은 형태에, 둥글게 튀어나온 구의 형태가 인상적인 노란색의 금속 물체.
바로 금원보였다.
“자, 금원보다. 마음 같아선 많이 걸고 싶지만…… 장사는 해야겠지.”
금우는 얼마 안 쓸 거라 생각한 갈성천이 갑자기 금원보를 내놓자 당황하였다.
‘왜지……? 아니지, 금원보를 거는 거야 오늘 처음 보긴 했지만 금자는 상당히 많이 들어왔었잖아? 련주님의 씀씀이를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게 적당히 건 게 아닐까?’
장사꾼은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상대가 갈성천이니만큼 나름 납득하고 자신의 업무에 집중했다.
“어, 어어…… 그, 그럼 독봉으로 걸겠습니다……?”
조각이 새겨진 목패를 들어, 거기에 금액을 써 넣은 뒤 내기 내용을 적으려던 금우.
그러나 갈성천이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그를 제지했다.
“잠깐, 잠깐. 그 녀석이 아니야.”
“네? 그럼, 맹돌저에게 거신다는 겁니까?”
“아니, 그 두 애송이는 관심도 없어. 다른 시합에 걸겠다는 거지.”
금우는 갈성천의 말에 뒤를 돌아 오늘 예정된 다른 시합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제이 시합, 당세준 대 나종신 - 마감 중]
[제삼 시합, 당세진 대 모용산산]
[제사 시합, 혁련강 대 남궁우]
[제오 시합, 혁련운 대 강정갑]
[제육 시합, 북주혜 대 최영의]
오늘 예정된 여러 시합을 살펴보며, 갈성천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게 뭘까 고민하는 금우.
“아, 사 시합에 거십니까?”
‘남궁의 소가주와 마교의 대공자의 싸움, 상당히 높은 확률로 마교 쪽이 이기겠지만 남궁의 검이 갖고 있는 순간적인 폭발력을 생각해 보면 해볼 만하지.’
제법 배당이 잘 나올 것 같은 시합이었기에 4시합이라 예상한 금우.
“아니, 더 뒤에 있는 것.”
하지만 갈성천은 고개를 저으며 더 뒤쪽이라 가리켰다.
“아, 그럼 오 시합을…….”
“아니, 육 시합. 최영의에게 건다.”
“예?”
금우는 갈성천의 판단에 당황하여 되물었다.
물론 영의가 무대에서 나름 인상 깊은 모습도 보여 줬었고, 예선에서 마주친 모든 상대를 한 방에 탈락시켰다는 것도 풍문으로 들었다.
하지만 상대는 빙궁의 인물이었고, 궁주 북설란의 제자 중 으뜸인 빙화 북주혜였다.
그녀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한 게 많았기에 금우는 당황하여 갈성천을 설득하려 해 보았으나, 갈성천의 의지는 굳건했다.
“그냥 걸게. 제일 재밌을 테니.”
갈성천의 입에서 나온 재미라는 말에, 금우는 그제야 뭔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목패에 글을 써 내려갔다.
“그럼, 재밌게 즐기십쇼!”
“그래, 나중에 찾으러 오지.”
갈성천은 뒤로 돌아 인파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고,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금우는 혼잣말을 했다.
“그래…… 재미, 재미로 거시는 거겠지. 진짜 돈을 따실 생각이었으면 금을 궤짝으로 가져오셨겠지.”
생각해 보면 다른 무인들은 대부분 예전에 가끔씩 보던 유형이거나 이름 있는 이들이었지만 유독 영의의 시합만 특이한 상대끼리 붙여 놓았다.
“음, 재미를 위해서라……. 하긴.”
금우는 그렇게 계속 손님들을 받으며 내기의 금액에 따라 종이나 천, 목패 등에 글을 써 내려가며 장사를 이어 갔다.
나중에 유독 머리와 얼굴을 감싼 노인과, 유쾌해 보이는 뇌섬문의 제자나, 샌님 같아 보이지만 귀티가 줄줄 흐르는 어린 청년과 팽가의 무인까지 와서 영의에게 상당한 금액을 걸고 사라졌다.
하지만 금우는 별로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 북해의 예쁜 처자에게 은자 둘!”
“그 잘생긴 후기지수에게 은자 다섯!”
“그 멋진 남자에게 은자 하나!”
제6시합이 의외의 외모 대전이 되어 버려 양측에 큰 금액을 거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 * *
비무대회장.
영의는 무대에서 약간 떨어진, 참가자들을 위한 객석에 앉아 비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추첨으로 정해진 대진표였기에, 누가 누굴 만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추첨의 결과는 가끔 동문끼리의 대결을 유도하기도 했다.
“사형! 사형에게 검을 겨눠야 한다니, 저는 힘듭니다!”
“약한 소리 하지 마라! 죽이는 게 아니다! 대련을 한다고 생각해라!”
아직 시작 선언은 안 했기에, 서로 바라보고 있는 대전 상대 둘.
둘은 동문인 데다 사형제지간인지라 서로를 공격하는 것을 상당히 꺼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사부님의 가르침을 떠올려라!”
“사부님의 가르침…….”
“그래!”
“네, 알겠습니다. 사형.”
“좋아.”
둘은 사부님을 언급하며 나름의 결의를 다진 듯 보였고, 이내 심판을 맡은 무인이 다가와 시작 선언을 했다.
“시작!”
“좋다, 유풍래운!”
사형으로 보이는 남자가 시작 선언이 떨어지자마자 기수식을 취하며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뇌령지검(雷領之劍)!”
그러나, 사형이 움직이는 것보다 사제가 움직이는 게 더욱 빨랐다.
사제인 쪽이 먼저 기습을 가했으나, 사형은 그것에 대해 대비하고 있었던 듯 검을 들어 막아 냈다.
채앵!
“하, 기습은 좋았지만 아직은 이르…….”
“뇌운권!”
뻐억!
검이 가로막히자, 사제는 검을 곧바로 버리고 사형의 옆구리에 전력을 다한 주먹을 꽂아 넣었다.
“크헉, 이 녀석…….”
옆구리를 얻어맞자 호흡에 곤란함을 느끼기 시작하는 사형.
“사부님의 가르침…… ‘무슨 수를 써서든 빈틈을 만들고 전력을 다해 공격해라!’였습니다. 다시 한번, 뇌운권!”
뻐억, 뻑!
사제는 무자비하게도 사형의 옆구리를 다시 때렸고, 두 번의 권격은 거짓말처럼 동일한 부분에 반복해서 꽂혔다.
“그건…… 사부님의 가르침이 아니잖……. 우형…… 이 자식……. 큭.”
털썩.
이내 사형은 바닥에 쓰러져 기절했고, 승리하게 된 사제는 양손을 하늘로 치켜들며 외쳤다.
“와! 이겼다!”
“그…… 스, 승자! 뇌섬문, 장우형!”
뇌섬문 소속이자…… 독고휘의 늦은 제자가 된 장우형.
그의 천하제일 비무대회 본선의 첫 상대는 동문의 사형이었고, 사형의 말에 따라 사부…… 즉 독고휘의 가르침을 충실히 이행한 결과 그는 승리했다.
그리고 무대 주변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참가자들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였다.
“허어…… 어찌하여 사형을 저리 무자비하게……! 물론 비무에서 봐주는 게 안 좋다는 건 알지만! 크흠, 대협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아무리 비무라지만 사형을 저렇게 대놓고 이기는 건 조금 아니라는 의견.
“잘했어! 아무리 사형이라고 해도 싸울 때는 싸워야지! 봐주다가는 괜히 골로 가는 거야! 안 그렇소, 대협?”
사형이니 뭐니 필요 없고 이겼으니 된 거 아니냐는 의견.
“그건 그렇고…… 저 우형이란 사내, 조금…… 자유분방하지 않소? 대협의 생각은 어떻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우형이 이상하지 않냐는 의견.
그리고 그 모든 의견의 중심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영의였다.
“노 코멘……. 아니,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참가자용 객석에서 끝부분에 앉아 있는 영의였지만, 그럼에도 옆에는 자리가 있었기에 그에게 다가온 후기지수들은 많았다.
뒤에 앉은 정파 어딘가의 검수.
옆에 앉은 사파 어딘가의 권사.
앞에 앉아서 뒤를 슬쩍슬쩍 보며 눈치 보는…… 설명을 안 들어서 어디의 누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중 가장 압권은, 없는 자리의 옆에 의자를 만들어서 착석한 이들이었다.
“저 사람도…… 재밌네. 저기, 혹시 저 사람이랑 알아?”
원래 빈자리였던 곳에 의자를 갖고 와서 자리를 잡은 당세진.
“세진아! 이 오라비가 무대에 나가는데 관심 좀 가져 주지 않겠니……?”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다가 제2시합을 위해 무대로 가며 처량한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는 당세준.
“오빠, 알아서 잘해.”
“크윽, 동생의 기대를 배신하다니! 이 오라비는 못난 오라비였구나!”
세준은 세진의 한마디에 눈물이 터졌는지, 소매로 눈가를 가리며 무대 쪽으로 나아갔다.
세준과 세진은 단순히 의자만 갖고 온 것이기에 별문제가 없었다.
몇몇 인원…… 특히 돈이 많은 세가의 자제들의 경우 천을 깔고 와서 그 위에 앉는 경우도 있었고, 자신의 전용 의자를 갖고 있는 듯한 인원도 있었다.
심지어 북해의 인원과 남만의 인원만 해도 모피가 깔린 각자의 의자와…… 그냥 모피 그 자체…… 아니, 짐승을 깔고 앉았다.
그러나 의자와 의자 비슷한 것을 가져온 이들과 달리, 아예 객석 자체를 가져온 이들이 있었다.
“귀인, 혹여나 시장하시거나 목이 마르시진 않으신가요?”
“아니…… 괜찮아……. 괜찮아요.”
“어머, 그럼 혹시 더우시다거나…….”
“괜찮아. 하지 마. 내가 안 괜찮아.”
영의의 옆, 참가자용 객석의 옆에 더 크고 화려하고 안락한 객석을 만들어 버린 마교 측.
-우리도 의자를 따로 쓰도록 하지. 다만…… 가져온 게 없으니, 사거나 만드는 정도야 허용해 주겠지?
몇몇 참가자들이 개인 의자를 사용하는 것을 본 마교 측에서 한 말에 사람들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쉴 때 더 편하게 쉬는 거야 개인 자유고, 또 안 된다고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얼마 전의 일로 알고 있었으니까.
-뭐, 해 봐야 하북에 있는 고급 목재랑 가죽이 동나는 게 제일 큰 문제가 아니겠어?
그리고 의자 하나 잘 만들어 봐야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닐 거라 생각한 그들은 흔쾌히 그것을 허락해 주었다.
그러나 마교의 대범함과 과감함은 그들의 생각 이상이었다.
작은 목재가 아니라, 아예 나무를 벌채해 와 열양지기를 사용하는 무공으로 즉석에서 건조시킨 뒤 아예 객석 단위로 만들어 버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객석에는 마교의 출전자들이 앉았고, 거기에 연화와 와룡이 끼어들었다.
“누님…… 제발 체면을 좀…….”
자신의 누이를 어떻게든 말리려 하는 혁련운.
물론 그녀의 의도가 나쁜 것도 아니고, 그 결과가 그리 싫은 것도 아니었지만 장소는 가려야 하지 않겠는가.
“운아야, 네 시합의 상대는 남해의 고수란다. 열양지기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게 어떨까? 나는 내 일을 알아서 할 거란다.”
“누님…….”
“형님, 포기하시죠. 애초에 귀인도 별 관심이 없으신데.”
와룡은 운에게 그냥 포기하는 게 현명할 거라는 현실적인 조언을 했고, 그 말을 슬쩍 들은 첫째와 둘째 혁련강과 진.
“……흥.”
“저런 녀석이 뭐가…….”
그들은 주위에서 몰려드는 관심에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이는 영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