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화 (10)
와아아아아-!
엄청난 환호성의 틈새에서, 누군가가 매서운 눈빛으로 무대 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분명히 뇌섬문의 내부에는 저런 이가 없었는데. 누구지? 그보다, 저 뇌기를 그대로 받아내 하늘로 쏘아내다니…….’
하지만 그 눈빛의 주인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주변인과 똑같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흐음…… 그저 구경만 하고 가려 했지만, 계획을 조금 바꿔야겠군.’
눈빛의 주인은 여느 관객들처럼 환호성을 지르다, 이내 도중에 뇌섬문에 대한 응원까지 외쳤다.
“와아! 멋지다, 뇌섬문!”
“와- 응? 뇌섬문에서 준비한 건가?”
“그렇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멋지게 끝낼 리가 없잖나.”
“와아! 뇌섬문, 최고다!”
환호성만 내지르던 관객들도 누군가의 외침에 무대 위로 난입한 것이 뇌섬문이 준비한 일부인 줄로만 알고 뇌섬문을 외치기 시작했다.
“뇌섬문! 뇌섬문!”
대회장에 있는 대부분 무인들이 방금 것이 사고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참사가 벌어지기 직전에 겨우 수습한 거란 걸 알았다.
‘하지만…… 너무 자연스럽다.’
‘우리가 봐도 너무 깔끔하게 끝났으니까.’
‘진짜 뇌섬문에서 사전에 얘기 안 하고 한 건가?’
도중에 무대에 난입한 영의가 뇌기를 기가 막히게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수습해 내자, 몇몇 무인들은 사고임을 알고 있음에도 머릿속에 계획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란 걸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애초에 영의가 뇌섬문 쪽에서 출전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사고는 터지지 않았으니 다행이군.’
애초에 본선 진출자들의 퍼포먼스 자체도 발표 직전에 거의 즉흥적으로 이루어졌으니.
정말 엄청난 우연의 일치로 좋게 끝난 거라는 생각밖에 하지 못한 그들.
사고가 나지 않았기에 생각이 진정되자 이성적인 판단력이 조금씩 돌아왔고, 이내 대회장에 모인 무인들은 무대 위로 난입한 남자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이 가득해졌다.
-대체 누구이길래 누구보다 빨리 뛰어 올라와서 저 뇌기를 처리한 건가?
본래 뇌기란 건 빠르고 강하지만 천방지축처럼 사방팔방으로 뛰쳐나가려는 성질을 지닌 기운이다.
그래서 중원에서 뇌기를 주로 다루는 무공이 별로 없는 것이고, 독고휘가 젊었던 시절 동급이나 살짝 우위인 상대와 대전할 때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다.
본인이 의도하지 않아도 약간의 부수적 피해가 생기게끔 했으니.
그리고 뇌기의 특성상 맞고 버티거나 흘려 내기 또한 힘들다.
가능이야 하지만, 뇌기를 흘려 내려면 자신의 내력을 쏟아붓듯이 사용해야 하며 맞는 순간 몸에 마비가 온다.
그런 뇌기의 덩어리와도 같은 것이 엄청난 속도로 돌고 있었고, 이름난 고수가 와도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막아 낼 순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방금 무대 위로 난입했던 한 후기지수는 그것을 동네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돌멩이나 나뭇가지를 빼앗아 던지듯 자연스럽게 하늘로 던져 버렸다.
“대체 누구지……?”
“뭔가, 아는 사람 있소?”
상석의 무인들은 서로 수군대며 정보를 알아내려 했지만,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형님!”
그들은 팽소운이 독고휘에게 뭔가 따지러 가는 걸 목격했지만 독고휘의 숨겨진 제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에 저러는 것일 거라 판단했다.
‘감히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제자라고 자랑을 하고 싶었구만, 독고휘……!’
혁련무강은 팽소운의 뒤를 따라 따지러 가고 싶었지만, 차마 체면 탓에 나서지 못하고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관심의 중심에 서 있는 영의는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걸 튀어? 아니면 말아?”
여기서 곧바로 도주를 선택하느냐, 아니면 이것저것 귀찮은 것을 감수하고 명성을 얻어 좀 더 활동하기 쉬워지느냐를 고민하는 영의.
하지만 그런 그의 고민도 오래가지 않았다.
예선 1차 시험 당시, 그를 주의 깊게 봤었던 용준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고 이내 크게 외쳤다.
“다음으로! 개인 참가자들을 소개하겠소! 사문 없음, 최영의!”
자연스럽게 진행을 이어 가기 시작하는 용준.
“와아아아!!”
그리고 관객들은 용준이 자연스럽게 다음 사람들을 소개하기 시작하자, 사고가 생길 뻔했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사람들이 환호하는 사이에, 용준은 급히 영의에게 전음을 보냈다.
‘간단한 인사를 하거나…… 아니면 조금 서 있다가 바로 내려가도록 하게. 개인 참가자들은 짧게 한다고 할 테니.’
용준은 일단 상황을 깔끔하게 덮기 위해 영의를 비롯한 개인 참가자들은 소개 시간을 짧게 설정하기로 했다.
영의 또한, 과도한 관심은 별로 바라지 않았기에 용준의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여 주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손을 흔들었다.
“아, 하하…… 네. 감사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영의가 짧게 인사를 한 뒤 무대를 내려가자, 용준은 다음 참가자를 급히 찾아 호명했다.
“다음!”
용준은 일단 급하게 아무나 손으로 짚어 무대 위로 올려 보내 시간을 끄는 동시에 다른 개인 참가자들의 정보를 머릿속에 떠올리려 애썼다.
“에, 그러니까…… 우와아아아!”
지목당한 무인은 갑자기 올라오게 되어서 당황한 듯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양팔의 근육을 불끈거리며 함성을 질렀고, 관객들은 그에 화답하듯 더 크게 환호했다.
와아아아아-!
그렇게 일단 위기를 넘긴 영의가 무대에서 내려오자, 그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보시오, 소협. 방금 그 뇌기는 어떻게…….”
“실례지만, 소협의 사문이 어딘지 여쭈어봐도…….”
영의가 보여 주었던 활약에 감명받아 오는 무인들.
여러 가지로 물어볼 게 많은 상석의 무인들과 달리, 무대에 모여 있는 것은 대부분 후기지수였다.
그들은 정체가 뭐냐느니, 독고휘와 무슨 관계냐느니 묻기보다는 그저 어떻게 그 뇌기를 깔끔하게 정리한 건지 궁금해서 아니면 뭔가 친분 쌓을 만한 게 없는지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 도리가 없는 영의는 갑자기 많은 무인들이 그를 향해 다가오자 뭐라 할 말이나 행동이 딱히 없었다.
“음…… 하하.”
그저 멋쩍게 웃음을 보이며 시간을 끄는 영의.
그리고 그런 그를 구해 주러 온 이가 있었다.
“이보시오, 소협. 말이 적은……. 윽?!”
“응? 이봐, 자네 왜 그러……. 어억.”
영의에게 달라붙어 이런저런 질문을 해 대던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고, 그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위험을 느낀 사람들이 영의에게서 멀어졌다.
그러자 영의의 주변에는 이미 쓰러진 무인들과, 세 명의 남녀만이 남아 있었다.
“재미있는 사람. 오랜만. 귀찮은 사람들…… 처리했어.”
영의를 발견하고 곧바로 그에게 다가오며 귀찮았던(?) 무인들을 모두 독으로 기절시킨 당세진.
“세진아, 위험할지도 모른다. 후기지수들끼리의 이야기는 이 오라비가 할 테니 너는 그냥 쉬고 있거라, 응? 사람들 기절시키지 말고……!”
세진이 쓰러뜨린 사람들에게 해독제를 일일이 놔주며 급히 따라와 세진을 돌려보내려 하는 세준.
“정말 간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무탈하셨는지요? 사숙…… 아니, 대협.”
뇌섬문의 인원들과 함께 있지 않고, 영의에게 다가와 그동안의 안부를 물어 오는 장우형.
특이하기로는 어디 가도 꿀리지 않는 그들이 모이자 무대의 아래는 상당히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저기, 이 사람 누구? 알아? 그리고…… 대협?”
“사…… 아니, 대협. 당가와 인연이 있으셨습니까?”
“분명히 뇌섬문의 일원인데……. 혹여 뇌섬문의 제자인지?”
무대의 아래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자, 용준은 급히 3차 예선을 시작하기 위해 소리를 쳤다.
“자, 소개는 여기까지! 진정한 무인이라면 그 힘으로 자신을 보여야 하는 법! 지금 바로, 삼차 예선을 시작하겠소!”
“어? 잠깐, 내가 보여 주려는 게 있었는데!”
한 무인이 소매 속에서 뭔가 거창한 걸 보여 주려는 듯 천 조각과 반지 등을 꺼냈으나 용준이 급히 마무리하려 했다.
“그것은 무공으로 보여 주시오! 자! 삼차 예선! 그 첫 번째 시합!”
그렇게 얼렁뚱땅 3차 예선이 시작되었으나, 관객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미 최고의 구경거리는 봤고, 그다음으로 흥미진진한 비무와 그에 따른 내기 결과가 중요했을 뿐.
* * *
한편, 영의는 운영진 측에서 보낸 관리 무인들에게 이끌려 대회장 바깥으로 나와야만 했다.
“미안하지만 소협을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계시니, 잠시만 따라와 주시게. 불이익 같은 건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관리 무인들은 시험관이나 심판으로 있는 일반적 무인이 아닌, 상당한 긴급 사항에 해당하는 무인들의 분쟁을 중재하거나 진압하기 위한 고수들이었다.
각 문파와 세가에서 선별하여 차출한 이들은 최소가 절정의 경지였고 뒤에 거대 문파들이 있었으니 후기지수들은 그들이 찬 완장을 보고 곧바로 물러나 줄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는 사람, 독 못 줬어…….’
‘사…… 아니 대협! 나중에 찾아가겠……. 아니, 그냥 대협께서 찾아와 주시는 게 더 빠를 것 같습니다!’
세진과 우형도, 관리 무인들이 나서자 어쩔 수 없이 물러났고 영의는 그들의 반응을 보고 순순히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자, 다 왔네.”
그들이 향한 곳은 대회의 운영 본부로 사용되는 팽가의 별채 중 하나.
그곳으로 들어가자, 여러 명의 중년인들이 모여 있었다.
“명을 완수했습니다.”
“수고했네.”
영의를 데려다준 관리 무인들은 포권을 한 뒤 물러갔고, 이내 그 자리의 고수들과 대면하게 된 영의.
“반갑네, 나는 팽가의 가주 팽자성이라 하네. 이쪽은…… 다른 세가와 문파의 주요 인사들이지.”
각 세가의 가주, 문파의 장로, 심지어 마교의 원로까지 이곳에 모여 영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의 중심에 서 있는 영의는 부담감은커녕,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 이런 느낌이지. 나 의외로 나이 있는 분들하고 지내는 게 편한가?’
그동안 마주친 무림인이라고는 절대고수와 노인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역으로 고수와 노인이 아니면 어색함을 느꼈던 영의.
“저 녀석 보게…… 하나도 안 쫄잖아? 쯧.”
사도련의 사천 지부장, 홍기록이 그런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찼다.
“쫀다니…… 기세가 눌리지 않는다고 하시오.”
“지금 초절정의 무인들이 모여서 노려보고 있는데 긴장하는 기색이 없는 건 사실이지 않나.”
기록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은 있어도, 영의가 당당하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무인들이 상당했다.
“……기개는 쓸 만한 애송이로군. 하지만 기개만으로 살 수 있었다면 개죽음이란 단어는 없을 거다!”
그리고 그중 한 명, 마교에서 온 제삼수라대, 귀참수라대주 염칠성만이 직접 손톱을 세우고 달려들었다.
마교의 수많은 무공과 그에 통달한 고수들 중, 유달리 조법은 절대고수가 없었다.
그나마 조법을 가장 잘 쓰는 인물이라고 하면 체술 대부분을 통달한 권마나 손으로 직접 환부를 찢어 치료하는 마의.
하지만 그런 조법의 황무지 속에서도, 무공 서고 안에서 쓰이지 않는 조법을 찾아 직접 익히고 개량해 가며 대성한 인물이 있었다.
소림의 용조수를 뛰어넘는 조법을 직접 만들어 보려다가 실패한 전대 마교 고수가 남긴 이름 없는 조법.
그리고 권마를 비롯한 마교의 무인들 몇몇이 익혔으며, 다른 상위 무공이 있음에도 종종 사용한다는 흑불진권을 섞어 사용했다.
다만 그것에 맞는 심법이 없어 때로 내기가 역류해 뇌로 치밀어 광기를 보여 주기도 하였으나, 오히려 조법의 강맹함을 배가시켜 주었기에 더욱 좋은 성과가 나왔다.
염칠성의 광혼혈조(狂溷血爪)가 흉흉하게 검붉은 빛을 띠며 영의에게 날아들고 있었고, 주위의 고수들은 갑작스러운 그의 돌발 행동을 막기 위해 뛰쳐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뭔가 하기 전에 그 자리를 덮치는 거대한 압력이 있었다.
쿠웅-
“크헉?!”
“으윽……!”
갑작스러운 압력에 바닥에 쓰러지는 칠성과 고수들.
“이, 이건……!”
그들 중, 과거에 이런 것과 정확히 같은 것을 겪어 본 적 있는 한 노고수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정체를 아는 또 다른 한 사람인 칠성 또한 떨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저항을 하기 위한 떨림이 아닌 공포로 인한 떨림이었다.
“지, 지존이시여……!”
칠성의 말을 듣자, 그 자리의 모두가 지금 이 현상의 정체를 깨달았다.
‘천마군림보……!’
그때 바닥에 쓰러진 고수들의 뒤로 천마, 혁련무강과 권마, 검마 등의 절대고수들이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천마 영감님, 그리고 다른 영감님들.”
“오랜만이군, 그래. 그동안 날 보러 오지 않아서 섭섭했지.”
바닥에 쓰러진 고수들은 혁련무강과 영의가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혼란에 빠졌다.
그냥 소속 없이 유망해 보이는 후기지수 한 명 데려다가 어디가 제일 좋으냐고 물어보고 영입하려고 한 건데, 갑자기 천마가 끼어들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염칠성이 영의에게 달려든 것도, 협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애초에 살기도 그리 담지 않았던 공격이었고.
하지만 거기에 천마, 혁련무강이 직접 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흐음…… 이 녀석들을 어떻게 죽여야 할까…….”
죽일지 살릴지도 아니고, 어떻게 죽일지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혁련무강.
바닥에 쓰러진 고수들은 생명에 위협을 느끼자 도망가기 위해 몸부림 쳤으나, 그들의 몸을 압박하는 압력은 더더욱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 팽자성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는 데에 성공했다.
“뭐지?”
본인마저 놀란 듯, 자신의 아래와 혁련무강을 번갈아 쳐다보는 팽자성.
“……왔나.”
혁련무강은 자신의 천마군림보가 무력화되었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기대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좋긴 다 좋은데, 정파 구역에서 문파의 고수들을 죽인다는 건…… 다시 정마대전을 하겠다는 말인가?”
“이 자식이…… 내 아들을 건드려?”
혁련무강의 반대 방향에서,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하는 독고휘와 팽소운.
그 뒤로 운광이 검집에 손을 올린 채 걸어오고 있었고, 혜윤과 갈성천이 그 뒤를 따랐다.
옛 정사칠룡의 다섯과, 마교의 최고수 넷이 모이는 진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