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7화 (8)
독화, 당세진.
기행과 광기가 그리 드물지 않은 무림이었지만, 당가의 여식이자 무림의 사화 중 한 사람인 그녀는 상당히 특이했다.
“벌써. 가려고? 나. 조금 아쉬운데.”
도중에 생각하는 것이 많은지, 말을 중간중간에 끊어 완전한 문장으로 대화를 하지 않는 습관.
“독. 좀 더…… 먹을래?”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도 제법 괜찮다고 판단한 상대에게 서슴없이 독을 권하는 태도.
“아니, 괜찮아. 다음에 먹을게.”
“응. 다음에는. 더 독한 거…….”
그리고 어떻게든 상대가 독을 받거나 섭취했을 때, 다음에 또 만나면 다른 종류 또는 더 강한 종류의 독을 내민다.
그런 기행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무림에서 독화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유는, 신묘한 암기술과 외모 덕분이다.
평소 식솔이나 당가의 무사들은 평소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종종 뭔가 공상하는 듯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서 귀여움과 보호 본능을 느낀다고들 한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그런 모습을 가장 자주 접해 왔던 그녀의 오빠 당세준은 그런 보호 본능이 너무 과했던 탓에 팔불출이 되었다는 소문이 있다.
-오라비가 동생을 지키는 것이야 당연하지. 그리고, 당가는 본래 서로 간의 유대가 중요하오.
본인과 당가가 스스로 부정하고 있기에 그 주제를 공공연히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와아아! 독화 당세정! 최고다!
……공공연히 말로 하는 사람은, 없었다.
쉽게 정리하자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데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도중에도 그 생각이 멈추지 않아 말이 끊어진다.
그리고 누군가와 만나 상대방이 마음에 들면 독을 대접하고, 상대가 거절하지 않으면 계속 더더욱 강한 독을 대접하는 게 그녀의 습관이자 나름의 대접 방식이었다.
결국 독을 먹고 쓰러진 피해자가 발생하자, 그녀의 오빠인 당세준은 대외적으로 이렇게 발표하여 그녀를 변호했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상대도 좋아할 거라 생각하기에 나오는 행동이며, 당가로서는 무인들이 독을 싫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좋은 걸 왜?
물론 그녀가 준 것도 간단한 마비독이나 복통 정도를 유발하는 가벼운 독이었기에 문제는 커지지 않았다.
다만 독화 당세진의 특이성을 전 무림에 알리기에는 충분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후기지수들은 당세진과 친해지는 것을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당세진이 누군가를 졸졸 쫓아다니고 있었다.
“이거…… 작별 선물.”
영의는 자신의 뒤를 계속 따라오고 있는 당세진을 떨치기 위해 그녀가 건네는 독을 마셔 주었다.
하지만 영의에게서 독에 의한 반응이 없자 그녀는 더더욱 영의를 맹렬하게 쫓아가기 시작했고, 결국 그녀가 가지고 다니던 선물용(?) 독을 거의 다 먹게 되었다.
“마지막…… 독. 아껴 줘. 먹어 주면…… 더 좋아.”
꿀꺽.
“아, 이건 좀 톡 쏘는데.”
사전에 대부분 식물이나 독물에게서 추출한 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영의는 그것들을 다 받아 마셨다.
굳이 먹을 필요가 없었지만 먹었던 이유는 당세진에게서 시식 코너 직원과도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미 대화했어……. 독 안 마셔 주면…… 못 가.’
라고 말하는 듯한 압박감에 독을 마셨던 영의.
그리고 당세진은 매번 독을 시원하게 원샷 때리는(?) 영의가 매우 마음에 든 건지, 미소까지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응…… 부식성. 마음에, 들어?”
“음.”
영의는 달리 대답할 말이 없어서 작게 소리 낸 것이지만, 세진은 그걸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인 듯했다.
“독, 다음에 만나도…… 먹을 거야?”
이제 세진이 자신을 보내 주려는 듯 다음에 만났을 때를 이야기하자, 영의는 그녀를 떼어 놓기 위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이만.”
영의는 세진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재빨리 다른 곳으로 떠나갔고, 세진은 그런 영의의 뒷모습을 보며 계속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안녕. 재미있는 사람.”
영의가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자, 세진은 뒤로 돌아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 녹색 옷을 입은 사람들의 무리가 그녀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세진아-! 어디 있느냐! 이 오라비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구나! 세진아아아!!”
녹색 옷을 입은 이들의 선두에서, 목이 터져라 세진을 부르짖고 있는 당세준.
“소가주님, 부디 체면을…….”
그리고 세준의 주위에 있는 당가의 무사들이 그런 세준을 제지하려 했지만, 세준은 굴하지 않았다.
“가족이 위험한데 체면이 중요하겠느냐! 아아, 세진이가 마교나 사파의 악한들에게 고통받고 있을지도……. 으오오! 이 더러운 사마외도 녀석들! 가만두지 않겠다!”
자신의 체면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자부심 - 세진에 대한 걱정이 만들어 낸 불안 - 사마외도에 대한 분노.
차례로 이어지는 감정의 3단 변화에 세준은 당장이라도 마교나 사파의 인물을 만나면 사생결단을 낼 기세로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고, 호위무사들은 그를 붙잡느라 진땀을 뺐다.
“이봐, 소가주님을 좀 진정시켜.”
“이미 독과 약을 투입했습니다만 약효가 듣지 않습니다…….”
호위무사들이 진즉에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마비독과 안정제를 투여했지만 황소처럼 앞으로 달려 나가려는 기세를 유지하고 있는 세준.
“우오오오! 그따위 약한 독으로는 날 막지 못한다!”
당가의 소가주란 직위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닌지, 호위무사들이 가지고 다니는 독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듯 보였다.
“소가주님에게 투여된 것은 당가의 독입니다만…….”
“내게 안 통하면 약한 것이지! 세진아아아!!”
주변의 무사들이 많아서 세준이 앞으로 튀어 나가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었지만,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걸 막을 순 없었다.
그렇게 당가의 평판이 지속적으로 깎이려 하고 있을 때, 세진이 먼저 세준에게 다가갔다.
“오빠. 나 여기.”
세준의 시야에 세진이 들어오자 황소처럼 날뛰려던 세준의 몸에 넘치던 힘이 급격히 사그라들었고, 그를 막기 위해 온 체중을 싣고 있던 무사들 몇몇이 넘어지고 말았다.
쿠당탕.
그러나 넘어진 무사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곧바로 세진에게 다가와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하는 세준.
“세진아! 무사했구나! 너를 납치했던 비열한 마교나 사파의 졸자들은 어디에 있느냐! 혹시 네가 이미 다 처리한 건 아니겠지? 하나는 남겨 두어야 한다! 배후를 캐내야 하니까!”
세준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세진이 악한들에게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고, 그 배후를 잡아 고문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오빠. 부끄러워. 아는 척하지 마. 식솔들. 더 부끄러워해.”
“뭐…… 아는 척하지 말라고……?!”
세준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동생이 자신에게 아는 척도 하지 말라고 하자 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으로 인해 그대로 그 자리에서 굳고 말았다.
그리고 세진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다른 당가의 식솔들에게 손짓하며 지시를 내렸다.
“당가. 오빠 직속만 남고. 복귀.”
“존명.”
네 명의 무사만이 세준의 옆에 남았고, 다른 녹의 차림의 무사들은 모두 길을 떠나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오빠 직속 무사들…… 미안. 고생이 많아.”
“……아닙니다.”
세진은 세준을 스윽 훑어보더니, 대략적인 견적을 내 보기 시작했다.
“고생이 많은 김에…… 조금만 더 해 줘……. 아마, 두 시진?”
대략적으로 세준이 굳어 있을 시간을 계산해서 말해 주는 세진.
이 시간은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계산이었다.
그리고 세준이 전에도 이랬던 적이 많았기에, 세준의 직속 호위무사들은 한숨을 내쉬며 세준을 들어다 어깨 위에 짊어졌다.
“자, 복귀하자.”
“예.”
그렇게 당가의 남매는 한 명은 걸어서, 한 명은 짐짝처럼 들쳐 업혀서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자신이 목격한 광경에 웅성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혹여나 있을지 모르는 당가의 보복이 두려웠기에 그들은 다른 곳에서 그것에 대해 말할 용기가 없었다.
* * *
뇌섬문의 숙소.
뇌섬문은 팽가와의 친분(?)이 있었던 덕에, 팽가의 별채 중 하나를 숙소로 제공받을 수 있었다.
물론 가주인 팽자성은 속이 쓰렸지만 어쩌겠는가, 백부라고 부르는 이가 달라고 하는데 줄 수밖에.
하지만 지금 뇌섬문의 제자들과 팽가의 가솔들은 비무대회 예선 출전과 응원을 위해 바깥으로 나가 있었고, 별채에는 독고휘 혼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후우…….”
요 근래 키우기 시작한 제자 장우형에 대한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다소 엉뚱하고 기이한 면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무공에 대한 재능만큼은 확실히 있었으니까.
“다만 걸리는 게 있는데…….”
마음속의 근심을 끌어안은 채 혼잣말을 하던 독고휘.
그리고 그 옆에서 그 말에 맞장구를 치며 똑같은 고민을 털어놓는 이가 있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걸리는 게 뭐가 하나 있기는 한데……. 어후…….”
어느샌가 독고휘에게 다가와 함께 한숨을 내쉬고 있는 영의.
“넌 뭐가 걸리느냐?”
독고휘는 영의가 갑자기 나타난 것에 대해서 이제는 별 감흥마저 들지 않는지 태연하게 질문을 했다.
“뭐야, 이젠 놀라지도 않네요?”
“됐고, 뭐가 걸리는지나 말해 보거라.”
“그냥, 사람 하나 찾아야 하는데 찾기가 힘드네요.”
영의의 말에 흥미를 느낀 독고휘는 고민하던 것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누구를 찾느냐? 복수의 상대? 아니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여인?”
다른 건 몰라도, 젊은 시절의 풍운아 생활에 있어서만큼은 일가견이 있는 독고휘였기에 자신이 조언해 줄 부분이 충분히 있었다.
“말해 보거라. 지상 끝까지 따라가서 복수하는 것도, 자신에게 관심 없는 여자를 어느샌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까지도 알려 주마.”
“아뇨, 그런 건 아니고…… 특징 하나만으로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어려워서요. 가뜩이나 얼굴도 모르는데.”
사실, 영의는 단순히 구경만 하러 비무대회 예선 시험장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 게 아니었다.
비무대회에 나오는 암중 세력의 끄나풀……이자 핵심 인물로 추정되는 공손환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영의.
[개체명 공손환을 찾으려 하였지만, 역사에는 독고휘의 제자였고 사망했다고만 기록된 인물입니다. 모종의…… 편집이 된 것 같은데, 조금 더 조사해 봐야겠습니다.]
알림이에게 물어본 결과는 공손환이 역사에 숨었기에 알 수 없다는 말뿐이었고, 결국 남은 것은 멸망 직전의 세계에 있던 우형에게 들었던 단서뿐이었다.
‘마비를 시키는 사람…… 그런 무인에 대해서 정보가 필요해.’
[알겠습니다. 천하제일비무대회 출전자 중 ‘마비’에 관련된 무인들을 검색합니다.]
그렇게 우선 첫째 날에 두각을 드러낸 인물들을 살펴보았으나, 첫 번째 인물은 혁련운이었다.
‘……저 녀석이 주체가 될 리는 없지. 나이가 다른 데다 혼세궁의 피해자니까.’
그리고 두 번째가 당세진이었다.
하지만 당세진은 의심의 여지마저 없었는데, 그 이유는 공손환이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무인들을 살펴보았으나, 단순히 마비를 일으킨다는 특징 하나만으로 추측하기는 어려웠다.
대부분은 마비독이나 순간적인 점혈의 결과였던 것이다.
점혈에 대해서 잘 모르는 영의였지만 점혈을 당할 때 모두가 같은 위치에 점혈을 당했고 그것이 풀릴 때도 시험관들이 대부분 같은 위치로 해혈을 했기 때문이다.
“거, 한번 말해 보거라. 본좌가 말 한마디만 하면 전 무림의 절반이 뒤집어지니, 사람 하나 찾는 거야 일도 아니다.”
독고휘는 그런 뒷사정은 모른 채, 영의가 그저 누군가를 찾고만 있다고 생각하고 순수하게 도움을 주기 위한 마음에 계속 말을 걸었다.
“아니에요……. 제가 찾죠 뭐.”
‘분명히 천마 영감님이랑 2 대 1로 싸우고 있을 때 난입당해서 죽었다고 했었지……. 그런 상황에서도 죽은 걸 보면…… 엄청 혼란스러워할 거야.’
공손환과 독고휘가 어떤 관계였는지 모르는 영의였지만 목숨을 걸고 싸울 때 방심을 하게 할 정도면 상당히 각별했을 것이다.
그리고 굳이 긁어 부스럼이 되지 않도록, 영의는 그것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다.
이내 영의는 주제를 돌리기 위해, 주머니에서 고량주병을 꺼냈다.
“이거나 드실래요? 선물인데.”
“오오오! 그 술이로구나! 잘 마시겠다!”
독고휘는 이제 별 허례허식도 없이 냉큼 술병을 가져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보다, 천마 영감님이랑 한번 만나야 하지 않아요?”
술병을 들고 해맑게 웃으면서 좋아하던 독고휘는 영의의 물음에 웃음기를 거두고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아직 안 된다. 본좌와 혁련무강은…… 후기지수들의 무대가 아닌, 본격적인 비무가 오가는 때에 만나야 하느니라.”
“……네, 뭐 마음대로 하시고…… 이거 드실래요? 전에 드렸던 건데.”
“그것도 주거라!”
독고휘는 근엄한 얼굴을 했다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듯, 영의가 건네는 빵을 받아 들고 또다시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