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6화 (7)
다행스럽게도, 영의가 우려하던 태극검과 마의의 생사결은 일어나지 않았다.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에 영의가 급히 운광의 손을 잡아 다른 시합장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기 때문이다.
“에헤이, 거 영감님. 성격도 급해. 자! 영감님 제자들이나 다시 살펴보러 갑시다. 할머니도! 가서 제자한테 위로나 해 줘요! 그럼 이만!”
영의는 빠르게 떠나는 와중에도 마의에게 한마디를 해 주었고, 운광은 영의에게 끌려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으나 이미 영의는 공중으로 날아오른 상태였다.
“자, 잠깐. 무림인이 칼을 뽑았으면 결판은……!”
“아직 안 뽑았잖아요. 자, 갑시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뒤 재빨리 다른 시합장의 주변으로 착지한 영의.
처음에는 놀라며 그것을 주의 깊게 보던 사람들도 영의가 다시 착지하자 무심한 듯 고개를 돌려 원래 하던 것에 집중했다.
단순히 멀리, 높게 뛰기만 하는 것은 경공과 보법을 조금만 수련한 무인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었으니까.
그것을 연속으로 하며 땅을 덜 딛게 하는 것이 어렵고 놀라운 일이었지, 단순 멀리뛰기나 높이뛰기는 크게 신기하지 않았다.
“이보게, 자네 방금 전 그 노파가 어떤 인물인지나 아나?! 광기로 악명 높은 살활공의 마의…….”
운광이 다급히 마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자, 영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알죠, 아는데…… 사고 날 것 같아서 영감님 데리고 온 거예요. 나 참……. 아, 저기도 도복 입은 사람 있네. 영감님네 제자들이에요?”
이내 영의는 대화의 주제를 돌려 시험장에 있는 몇몇 도인들을 가리켰고, 운광은 영의의 태도를 보고 어쩔 수 없이 그의 의도에 어울려 주기로 했다.
“하아, 마교의 작자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자네는 모를 걸세…….”
영의와 만난 이후 여러 번의 교류를 가졌던 팽소운이나 질리도록 봤던 독고휘와 달리, 운광은 한번 만나고 난 이후 다시 무당으로 돌아가 만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영의가 마교 쪽과의 접점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고, 단지 마교의 마수에서 유망한 후기지수를 떼어 놓아야만 한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저게 운광 영감님 입은 거랑 똑같은데. 무당 제자예요?”
“그래, 호오. 사질의 제자로구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만…….”
“예? 이름도 몰라요?”
영의는 순수한 의문에 물어보았지만, 본문의 제자들 이름을 모르냐는 추궁의 의미로 알아들은 운광은 다급히 변명을 했다.
“자,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래 보여도 태극검이자 전대 장문인일세. 얼굴 정도야 지나가며 보니 알아도 이름이야 직접 만날 일이 없는 이상 모르지 않겠나. 그리고 이대제자들도 아니고 삼대가 넘어가면 그 수도 한둘이 아닐세.”
“흐음…… 뭐, 영감님은 무당파라고 했으니까 사람이 많긴 하겠네요.”
“무량수불, 이해해 주어 고맙네.”
운광은 영의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였지만,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응……? 내가 왜 변명을 하는 모양새가 된 거지? 본래 원로들이 어린 제자들 이름을 모르는 거야 대부분 당연한 것 아닌가……?’
뒷방 늙은이…… 좋게 말하면 일선에서 물러난 원로들이 어린 제자들의 이름을 알 이유도 없고, 그럴 일도 없다.
오히려 누구의 제자인지를 알아보는 운광이 특이한 것이었으나, 문득 자신이 그걸 사과하는 모양새에 당황한 운광.
“아니…… 오히려 항렬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굉장한 것이라고 생각하네만…….”
운광이 영의에게 자신의 입장을 언급하며 그를 납득시키려 하던 그 순간, 시험장의 무대에서 이변이 발생했다.
“어…… 네. 어? 뭐야, 졌나?”
무당의 도복을 입은 검수가…… 아니, 그 무대에 서 있던 모두가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뭐라?!”
무당의 제자가 패배했다는 말에 운광이 다급히 고개를 돌려 무대를 바라보자, 모두가 쓰러진 무대 위에서 누군가가 도복 차림의 청년을 손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마치 걸레로 바닥을 청소하는 듯한 동작에 무당 제자의 흰 도복이 흙먼지로 더럽혀지는 모습이 보이자, 화가 치밀어 오르는 운광.
“저, 저런……!”
물론 무림인이니만큼 패배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패배한 무인을 저렇게 짐짝 치우듯 밀어내는 건 별로 명예롭거나 멋지지 않았다.
“대체 누가……. 당가?!”
무당 제자를 밀어낸 사람은 녹색의 옷을 입고 있었고, 이 무림에서 녹색을 저렇게 대놓고 당당하게 입고 다닐 이들은 당가밖에 없었다.
“당가요? 사천의 그? 독 쓰고?”
“그 당가가 맞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패배한 무인을 무슨 걸레처럼……! 흰 도복이 보이지도 않는 건가!”
운광은 패자를 두고 능욕하는 듯한 모습에 당가에 대한 감정이 상하기 시작했다.
“당가는 자식을 대체 어찌 교육하는 건지……! 아아, 백의였던 도복이 황색으로……! 도복이 소림의 승복처럼 되지 않았는가!”
계속되는 운광의 탄식에, 영의는 문득 운광의 분노 포인트가 패배보다 옷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 영감님, 혹시 진거나 굴욕당하는 것보다 도복이 더러워져서 화내는 건가?’
그렇게 걸레처럼 무대 바닥을 청소당하던(……) 무당의 제자는 이내 무대 바깥으로 떨어졌고, 시험관이 탈락을 외쳤다.
“장외! 탈락!”
그리고 무당의 제자를 탈락시킨 당가의 여인은 바닥을 깔끔히 청소한 것이 마음에 든 듯 이마의 땀을 손으로 훔친 뒤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음. 마음에…… 들어. 자기가 뿌린 독…… 자기가 치우기. 깔끔해졌어.”
그녀는 이내 주변에 쓰러진 다른 무인들에게 다가가 똑같은 방식으로 그들의 옷을 임시 걸레로 만들어 바닥을 닦아 내기 시작했다.
“……아. 마비침. 회수. 까먹으면 안 돼.”
바닥을 닦던 도중 독침을 회수해야 한다는 것을 떠올린 그녀는 이내 쓰러진 무인들에게서 침을 뽑아 회수하기 시작했고, 이내 만족한 듯 다시 사람들을 무대 바깥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대 위에 쓰러진 무인들이 일곱 명이 남았을 무렵, 당가의 소녀는 지친 듯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숨을 돌렸다.
“힘들어……. 아!”
이내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다시 일어서서 무대 주변의 시험관에게 다가오는 소녀.
“이 사람들…… 아무나 탈락 처리하면 안 돼? 다 쓰러졌는데?”
마지막 다섯 명이 본선에 진출하는 규칙은, 두 명이 동시에 쓰러졌을 때에도 적용되었다.
즉 여섯 명이 남았을 때 두 명이 쓰러져서 기절했다면, 그 둘의 일대일 대결 후 승자의 본선 진출이 규칙이었다.
지금처럼 수많은 이들이 동시에 기절한 상태라면…… 아마 한 명을 빼고 재대결을 해야겠으나, 그러기엔 시간이 없었기에 시험관은 약간의 왜곡을 하기로 했다.
“안 됩니다. 다섯 명이 규정입니다.”
다섯 명이 규정이란 것을 강조하여, 그녀 스스로 모든 이들을 정리하게끔 하는 것.
“나…… 밀어내기 귀찮은데.”
하지만 당가의 소녀는 입을 삐죽이며 쓰러진 사람들을 둘러보았고, 그들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으음…… 아.”
이내 그녀는 또 다른 침을 꺼내 쓰러진 무인들에게 던졌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무인들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싸워 줘. 네 명이 남을 때까지.”
다소 오만할 수도 있고, 상당히 괴짜스러운 방법이기도 했지만 이 자리에 쓰러져 있던 무인들은 상황을 파악하는 게 상당히 빨랐다.
‘어차피 당가는 못 이길 거, 다른 녀석들을 탈락시킨다!’
‘침이 꽂히는 줄도 몰랐다. 승산이 있는 건…… 아직 누워 있는 녀석들!’
비록 쓰러져 있었다고는 해도 보고 듣는 것은 할 수 있었기에 그들은 모두 아직 몸을 일으키지 못한 무인들을 바깥으로 던지거나 밀쳐 냈고, 이내 무대 위에는 여섯 명이 남게 되었다.
“한 명…… 남네. 싸워 줘.”
그렇게 다섯 명은 서로 간의 혈투를 벌이기 시작했고, 그 광경을 보던 관객들은 환호하는 대신 침묵했다.
“와아…… 저렇게도 싸우는구나. 근데 저러면 조금 수준이 안 맞지 않나? 독 뿌리고 암기 던지는데 일반 무인들은 어떡하라고요?”
“암기도, 독도 다 검증된 비살상 장비들이 제공되네. 오히려 평소 당가에서 쓰는 것보다 질이 별로 안 좋은 암기를 쓸 테니 조건은 더 좋지 않네.”
“흐음…… 그럼 그냥 저 여자애가 잘하는 거라고요?”
“그렇지, 저래 보여도 화의 이름을 가졌으니……. 그보다, 굳이 무당의 제자를 제일 먼저 떨어뜨려야 했는가?! 그것도 도복을 독을 닦는 천으로 쓰고?!”
영의는 다시 도복에 발작(?)하는 운광을 무시한 채 무대로 시선을 돌렸고, 무대에는 다섯 명이 남아 있었다.
“오 시합장 이 번 무대! 시합 종료!”
시험관이 방금 전 무대의 시합 종료를 선언하자, 당가의 소녀는 무대 밑으로 내려와 쓰러진 무인들에게 다가가 침을 하나씩 꽂아 주었다.
“응. 끝났어. 이제 일어날 시간.”
그녀의 침이 꽂힌 무인들은 곧바로 깨어나기 시작했으며, 패배했다는 절망과 굴욕감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때, 관객석에서 녹색 옷의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 외치기 시작했다.
“와아아! 독화 당세진! 최고다!”
소녀…… 당세진과 같은 당가 출신인 듯한 남성은 큰 천을 펄럭이며 소리쳤고, 당세진은 그런 남성에게서 고개를 슬쩍 돌려 못 본 척을 했다.
“……오빠. 팔불출.”
“와아아아! 최고다! 세진아!”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목격한 운광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당가가…… 푸흡, 생각보다…… 큭, 재미있는 가문이네요?”
여러모로 흥미로운 모습을 보여 준 세진과, 그런 여동생에게 열광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오빠.
영의는 독심과 폐쇄적인 것으로 유명한 당가의 의외의 모습에 흥미와 재미를 동시에 느꼈다.
“아닐세……. 무량수불…… 분명히 전대 가주와 함께했던 정마대전 당시 당가는 든든한 우군이었건만…… 어쩌다가 저런 꼴이…….”
운광은 자신이 아는 것과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진 듯한 당가의 현 모습에 인지 부조화가 온 듯했고, 영의는 그런 운광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영의가 운광의 옆을 지키던 그때, 누군가가 영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응……?”
“당신. 누구? 무당파 사람?”
아까 전, 특이한 모습을 보여 주던 당세진이 영의에게 다가와 말을 걸고 있었다.
“아니, 무당은 아닌데…….”
“아…… 무당, 아니야?”
“그보다 왜 여기에……?”
당세진은 영의의 물음에 뒤에 있는 운광을 쳐다보았다.
“무당의 도사. 걸레로 썼어…… 무당의 나이 든 도사님한테. 사과할거야.”
본의 아니게 무당의 제자를 걸레로 쓴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것에 대한 사과를 하러 온 듯했다.
‘……본성이 나쁜 건 아닌 건가? 아니, 애초에 사람을 걸레로 썼다고 말한 걸 보면 좋은 것도 아닌가?’
영의는 ‘자신이 저지른 짓을 스스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착하지만 거기에 다른 사람의 옷을 걸레로 사용하는 것은 착한 것인가?’라는 고뇌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른 일을 위해 타인을 사용하는 건 대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영의를 지나쳐 운광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간 세진.
세진은 허리를 숙이며 포권을 한 뒤, 천천히 사과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도사님. 무당의 제자를…… 음, 도구처럼 써서…….”
차마 사과하는 대상의 앞에서 걸레처럼 썼다는 말을 하지 않을 정도의 사리 분별은 하는지, 세진은 잠시 말을 고르고는 도구라는 단어를 대신 사용하여 사과했다.
단어를 나름 고심해서 선택한 결과였지만, 사과하는 문장보다는 조금 비꼬는 듯한 문장이 되어 버렸다.
“아니…… 괜찮소이다. 그렇게 패배를 당했으니 다음부터는 무당의 제자들도 조심성을 기르겠지요, 무량수불…….”
그러나 운광은 무당의 도복…… 아니, 제자를 걸레처럼 쓴 것에 대해 상대방이 잘못을 알고 직접 사과하러 온 것 자체만으로도 만족하는 듯 보였다.
세진의 기행을 처음부터 목격한 탓일까, 조금 특이한 구석이 있더라도 심성 자체가 나쁘지 않다는 걸 확인한 운광은 이내 발걸음을 돌려 흙투성이가 된 무당의 제자에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과, 제대로 받아 주신 걸까…….”
세진은 운광이 별다른 말 없이 자리를 뜨자 자신이 잘못한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듯 운광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뭐…… 아까처럼 화 안 내는 걸 보니 맞는 것 같기도…….”
운광을 쳐다보던 영의는 세진의 그 말에 무심코 대답했고, 그의 대답에 세진은 고개를 돌려 영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정말, 그런 거야?”
“그렇겠……지?”
“당신, 어떻게 알아? 무당의 제자…… 아닌데?”
세진은 운광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영의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영의는 또 골치 아픈 인물이 엮여 들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