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5화 (6)
무력의 증명을 위한 1차 예선 격파 시험이 모두 끝나고, 2차 예선을 시작하게 되었다.
예선 통과자들을 무작위로 섞어 스무 명을 한 조로 짠 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다섯 명이 본선으로 진출, 그리고 탈락자들을 모두 모아 3차 예선을 치르고 모든 이들이 모여 본선으로 진출하게 되는 것이다.
영의는 2차 예선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곧바로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서로서로 눈치만 보며 슬금슬금 간격만 재던 후기지수들 사이로, 누군가가 호기롭게 뛰어들어 발 차기를 날렸다.
“앞차기.”
“크헉!”
영의의 발 차기에 얻어맞고 곧바로 무대 바깥으로 떨어지는 가검을 든 남자.
“장외! 탈락!”
남자가 무대 바깥으로 떨어지자, 그쪽 면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험관이 탈락을 외친 뒤 그의 옷에 사망자의 피를 뜻하는 붉은 종이를 붙였다.
“옆차기. 돌려 차기.”
“으윽, 크윽!”
초식이라고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거기 담긴 힘과 속도는 후기지수들에게 버거웠기에 일격일격에 모두가 나가떨어졌다.
“이, 이 시합장 삼 번 무대! 시험 종료!”
결국 무대 위에는 다섯 명만 남게 되었고, 모든 시험장의 무대들 중 가장 빠른 예선 종료를 맞이하게 되었다.
혼자서 13명을 탈락시킨 영의는 여유롭게 무대를 걸어 내려갔고, 그런 그의 모습에 관객들은 열광했다.
“와아아아!”
“잘한다!”
그리고, 그의 정체를 캐내기 위해 움직이거나 영의에게 돈을 거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 가며 영의는 명성을 쌓아 가고 있었다.
“흠, 구경이나 해 볼까.”
한편, 영의는 본선 진출이 확정되자 다른 예선을 구경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3시합장.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눈치 싸움이 한창인 와중, 한 청년이 바로 옆에 있는 이에게 일장을 날렸다.
“하아! 타진장!”
퍼엉!
엄청난 소리가 났음에도, 강하게 날아가거나 비틀거리지 않는 상대.
“흐어어…… 어윽. 큭…….”
하지만 장을 얻어맞은 상대는 복부와 목을 움켜쥐더니, 이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졌군, 불합격!”
시험관을 맡은 무인이 재빨리 무대 위로 난입한 뒤, 쓰러진 남자를 끌고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후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빠르게 한 명을 탈락시킨 청년의 이름은 혁련운.
그는 마의, 백천정에게 전수받은 살활공을 처음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독과 약은 종이 한 장의 차이로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본녀의 권도 마찬가지란다. 적절하게 잘 사용하면 사람을 살리는 것이고…… 그 세기를 조절하면 곧바로 숨통을 조이는 게지.’
살생만을 추구하는 무공을 개량시켜 의료 목적으로 만든 무공인 살활공은 말 그대로 죽이고 살리는 것이 동시에 가능한 무공이었다.
방금 사용한 타진장도 본래는 기와 파동을 불어 넣고 돌아오는 반향으로 환자의 환부를 살피기 위한 용도였다.
원래라면 손을 갖다 대는 수준에서 사용하는 용도였으나, 그것을 권격만큼의 속도와 힘으로 사용했으니 상대방의 신체 내부가 진탕이 되었을 것이다.
“……한 시진 정도 토하거나 속이 안 좋겠지만, 산 채로 배가 찢어지는 것보다는 낫지.”
본래 비관적이긴 했지만 나름 선량했던 청년인 혁련운은 백천정과의 수련을 거치고 어딘가 뒤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머나먼 발치에서 그것을 구경하는 영의.
“오, 저게 그 발경인가 뭔가 하는 건가?”
무공에 대해서 크게 모르고, 타진장을 보고 그저 단순한 기술의 일부라고 생각하여 무심코 내뱉은 영의.
그리고 그의 옆에서 그를 나무라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지, 그런 단순한 게 아니야……. 본녀의 모든 정수를 녹여낸 비전의 무공이지! 흘흘흘…….”
영의가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상당히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파가 그와 마찬가지로 혁련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누구세요?”
“나를 모르느냐? 분명히 한번 보았을 텐데?”
노파는 영의를 한번 보았다는 듯 이야기했으나, 영의는 머릿속 기억에 할아버지들은 많았지만 할머니들은 별로 없었다.
‘할머니들이라……. 음…… 시라…… 아니고, 아줌마지 걔는. 병찬이네 할머니…… 얼굴도 못 봤는데. 친가나 외가의 할머니…… 나중에 시간 내서 가 봐야 하는데. 명절 때 가야겠네. 할머니라……. 할머니…… 음…… 응?’
영의는 최근의 기억들부터 더듬어 옛 기억을 조금씩 되새겨 보다 문득 자신이 노파를 만난 적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
“아, 혹시 마교에 있던 그 할머니인가?”
그러고 보니, 마교에서 뇌신무를 처음 완성했을 때 쓰러진 일이 있었고 깨어나던 당시에 눈앞의 노파를 본 적이 있었다.
“본녀를 기억하고도 계속 할머니라 부르다니……. 에잉, 고얀 놈. 마의란 이름을 뭘로 보는 건지…….”
마의는 영의에게 구시렁대면서도 줄곧 제자인 혁련운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혁련운은 상대방을 굳이 장외로 던지거나 견제를 하는 대신, 끝까지 붙들고 무력화시켜 자신의 발치에 던져두었다.
마치 시체의 위에 우뚝 선 모양새가 된 혁련운의 모습에, 몇몇 무인들은 그에게 다가가는 것을 주저하다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뒤에서의 습격을 방지하기 위해, 장외의 위험성이 있어도 무대의 끝자락을 등지고 싸우는 혁련운.
“흐음, 그렇지. 역시 머리는 좋아서 경험의 부재를 허세와 작전으로 때우고 있구나. 하지만 어설퍼. 살려 둔 채로 놔둬야 효과가 좋은 것을…….”
그때, 무대의 한편에서 큰 덩치의 누군가가 혁련운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으어어어! 크, 큰일을 해결하면! 나머진 해결된다!”
만쇄문의 나종신이 옆에 있는 무인들을 밀치며 혁련운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 저 녀석은…….”
영의가 종신을 보고 뭔가 아는 듯한 반응을 보이자, 종신에 대한 정보가 없던 마의는 영의에게 묻기로 했다.
“아는 놈이냐?”
“안다기보다는 좀 자주 봤죠.”
누가 봐도 위협적인 덩치와 힘을 보여 준 종신이 제자인 운에게 접근하자, 불안해진 마의였다.
“그걸 세간에서는 안다고 하는 거란다.”
“아니, 서로 안면도 없는데…….”
“아무튼, 아는 게 있느냐?”
마의는 영의가 마치 만박자라도 된다는 듯이 정보를 닦달하기 시작했고, 영의는 분위기에 휩쓸려 아는 정보를 다 말했다.
“그냥…… 만쇄문인가? 거기 제자라고 하고…… 또 힘이 엄청나던데요. 철판을 손으로 잡고 찢던데.”
“흐음…… 힘이 중점이란 말이지…….”
마의는 종신을 보며 그가 압도적인 힘만이 장점인 단순무식한 무인으로 판단하였다.
“그냥 힘만 센 멧돼지 같은 녀석이면 알아서 피하겠지.”
혁련운의 재능과, 그녀의 가르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는 마의였기에 종신이 알아서 나가떨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한편 눈앞에서 거대한 덩치의 종신이 돌진해 오는 걸 맞닥뜨린 혁련운.
“으아아! 부순다!”
부딪치는 것만으로도 잘하면 장외, 못하면 뼈가 월병처럼 박살 날 것만 같은 돌진을 본다면 누구라도 당황할 것이다.
실제로도 종신의 돌진 경로에 있는 몇몇 무인들이 땅을 구르며 벗어났고.
“저런 건 부딪치기 직전에 피하면……!”
혁련운은 종신이 단순히 돌진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부딪치기 직전에 땅을 박차고 옆으로 도망쳤다.
“후우, 정말 특이한 무인들이 많……?!”
본래 관성이라는 것이 있기에 돌진을 하고 있었다면 중간에 벽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급격한 방향 전환은 불가능했고, 그대로 계속 나아간다면 장외가 확정된다.
하지만 너무 당당한 돌진에 뭔가 숨기고 있는 수단이 있을 거라 생각한 혁련운.
그는 종신이 자신에게 오도록 그대로 기다리다가 부딪치기 직전에 옆으로 피했고, 돌진 자체를 피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둘 사이의 거리가 그리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거리는 종신이 팔을 뻗어 붙잡기에는 충분한 거리였다.
덥석.
“잡았다.”
종신의 손아귀에 옷과 팔이 동시에 붙잡힌 혁련운.
“저, 저런!”
“와…… 같이 죽으려고 저러나?”
마의와 영의는 그 모습을 보며 놀랐고, 영의는 종신이 무슨 생각이 있어서 저러는 것이라 판단했다.
‘그대로 잡아끌어서 일회용 손잡이로 쓰고 무대 위로 복귀하거나…… 공중을 차고 다시 돌아오거나…… 근력만 충분하면 무대 끝부분을 잡고 다시 올라와도 되고…….’
평범한 무인은 못하는, 자신의 기준 정도에서 생각하는 영의였으나 그걸 구경하는 관객들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흐하하하! 잡았다! 잡았다고!”
확실히 혁련운을 잡는 데에 성공한 종신은 크게 웃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생각을 하던 혁련운도, 자신이 패배했다고 직감하고 눈을 감았다.
“젠장……!”
콰당.
“……?”
“어……?”
“방금 뭐였지……?”
하지만 모두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종신은 혁련운을 붙잡은 채로 함께 장외로 떨어지고 말았다.
“와…… 진짜 그냥 같이 죽자는 식이었네?”
“저런…… 저런 무식한 녀석이…….”
위협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을 포기하고 상대방을 탈락시키는 작전에, 모두가 어리둥절해졌다.
“자…… 장외…… 탈락…….”
시험관의 탈락 선언 이후, 대회장에는 침묵만이 감돌았으나 누군가의 분노 가득한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멍청한 녀석아! 장외는 탈락이라고 하지 않았냐! 하다못해 다른 잔챙이들이라도 정리하든가!”
종신의 스승인 듯 보이는 노인이 종신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었다.
“에…… 헤헤헤, 죄송합니다. 스승님. 그래도 다음 시험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여기서 한 명이라도 더 던져 놨으면 진작에 끝났어! 다섯 놈밖에 안 남았잖냐!”
실제로 방금 종신이 돌진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무인들이 나가떨어지거나 스스로 도주했고, 종신과 혁련운이 장외로 나가자 다섯 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바닥에 먼저 떨어진 건 혁련운이었으므로, 한 명만 더 탈락했었더라면 종신은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 내 제자가 저런 멍청한 멧돼지한테…….”
“아니, 뭐…… 그래도 힘내세요. 다음 시험도 있고…….”
“하아…… 정말이지…….”
영의는 마의를 위로하듯 등을 툭툭 두들겼고, 마의는 무대를 노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때, 마의와 영의의 뒤로 누군가가 다가와 알은체를 했다.
“흐음,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이오?”
도복을 차려입고 수염을 잘 정돈한 운광이 곳곳에 퍼진 무당의 제자들을 살펴보다 문득 영의를 발견하고 다가온 것이었다.
“어? 술주정 부리던 칼잽이 영감님?”
영의의 기억 속 운광의 모습은 품위 있고 기품 있는 도사의 모습이 아닌, 술만 들어가면 저세상 텐션을 자랑하던 주책맞은 할아버지였다.
“카, 칼잽이라니…… 그리고 술주정이라니! 커흠…….”
“그보다, 여긴 왜 오신 거예요?”
영의는 운광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 궁금해했다.
물론 무당의 큰어른인 만큼 여기에 있어서 안 된다는 법도 없지만, 굳이 이렇게 객석쯤에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운광은 영의의 질문에 작게 웃으면서 대답하기 시작했다.
“무당의 제자들이 잘하는지 살펴보며 지나가다 자네를 발견했네. 헌데…… 옆의 인물과 꽤 친해 보이는군그래…….”
하지만, 그 웃는 얼굴은 영의의 옆에 있는 마의를 보며 조금씩 굳었고 이내 살기마저 조금씩 흩뿌리기 시작했다.
“그래……. 마의, 이곳엔 왜 온 것이지? 그리고, 옆의 친구에게 무슨 짓을 하려 한 거지?”
운광은 마의가 정체를 숨기고 영의에게 접근해 무언가를 하려 했다고 짐작하는 듯, 검의 손잡이에 천천히 손을 갖다 대고 있었다.
그리고 마의 또한 오해를 말로 풀 생각 없이, 소매 속에 숨겨 둔 암기와 침, 독을 꺼내려 하고 있었다.
“흘흘흘…… 죽이지야 않겠지만, 한동안 뒷간에서 나올 수 없게 만들어 주마…….”
‘아, 맞다. 무림이 원래 이렇게 눈 마주치면 칼 뽑는 세계였지 원래…….’
영의는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며 여기가 무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