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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204화 (204/325)

#제204화 (5)

비무대회 예선 당일.

새벽부터 스물네 개의 모든 대회장으로 몰려 들어와 객석을 빼곡하게 채운 구경꾼들과 비무대회의 결과로 내기를 하는 도박꾼들.

아직 비무대회의 예선이 진행되지 않았으니, 돈을 잃어 슬픈 얼굴을 한 사람이 없었기에 모두가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 객석에서는 몇몇 문파의 속가제자들이나 문파에서 직접 온 것인지, 큰 현수막을 걸어 놓고 응원을 하는 이들도 보였다.

[창천의 기를 바로 세워라!]

[종남의 검이 천하에 울린다!]

[사천의 독수, 그 힘을 보여라!]

이렇듯 문구만으로 어디에서 내건 것인지 구별이 가는 것들이 대다수였다.

물론, 그 외에 개인을 응원하는 것들도 몇 개 있었지만 허름하고 작은 경우가 많았으므로 눈에 띄는 것은 대형 문파들의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비무대회에 사용할 용도로 스물네 개의 무대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본선과 결승을 진행하기 위한 큰 중앙 무대가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 무대에서, 세 명의 사내가 무대에서 조금 떨어진 탁자 앞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들 중 한 명, 머리를 깎아 자신이 승려임을 주장하는 듯한 한 중년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자-!”

스물네 개의 모든 시험장에 들릴 만큼, 거대한 목소리로 우렁차게 외치는 사내.

“비무대회의 사회를 맡게 된 소림의 용준이라 하외다!”

소림의 사자후를 극성으로 단련하여, 상체가 압도적으로 다부지고 어깨가 벌어져 있는 용준.

“지금, 곧 진시가 되니! 각 예선을 진행하는 대회장에서는! 예선을 진행하기 바라오!”

용준의 외침이 울려 퍼지자, 스물네 개의 대회장에서는 진행을 맡은 인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 제일 회 천하제일 비무대회! 그 예선을! 시자아아아아악! 하겠소이다!!”

우렁찬 외침이 끝나자, 용준은 다시 얌전히 앉아 무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허어, 과연 사자후만큼은 신승 혜윤대사도 따라갈 수 없다는 호포(虎咆)답소.”

“아미타불. 과찬이십니다, 만박자 시주.”

지금은 예선이라 별다른 활동을 하고 있지 않지만, 본격적인 비무대회가 시작되면 해설과 중계를 맡을 만박자, 사마종소와 용준이었다.

그리고 그 옆, 감독관의 역할을 맡은 남궁가의 가주 남궁진.

이 셋은 비무대회의 예선을 구경하기 위해 무대를 주의 깊게 살펴보기 시작했지만, 생각 외로 지루한 풍경이 펼쳐졌다.

따악!

“아윽!”

받침대에 세워진 석판에 호기롭게 주먹을 날렸다가 영 시원찮은 소리와 함께 손목을 부여잡는 한 남자.

“탈락!”

시험을 감독하는 무인은 828이라는 번호가 써져 있는 그의 등짝을 떠밀며 바깥으로 내보내려 했다.

“자, 잠깐! 한 번만 더! 본래 검수라서 검을 쓰지 않으면……!”

“그럼 검을 가지고 와서 했어야지! 탈락, 나가게!”

일말의 여지도 없이 남자를 내보낸 무인은 곧바로 다음 사람을 불러와 시험을 치르게 했다.

“……너무 지루하지 않소?”

“이럴 줄 알았다면 새벽에 따로 시행했어야 할 것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해야 공신력이 있지 않겠소?”

진시(오전 8시~10시)에 시작한 예선이었지만, 목판과 석판을 부수는 광경만 지금 세 시진째 보고 있는 그들이었다.

물론 도중에 깔끔하게 철판까지 손상시킨 이들도 있긴 했지만…… 그런 이들만 가득한 틈바구니에서 살아오던 그들에게 그런 게 눈에 띌 리가.

“하아…… 일단, 식사라도 조금 하고 하는 게…….”

오오오-!

“남궁 시주, 잠시.”

남궁진은 지루함에 예선의 중단과 식사를 제안했지만, 관객들의 반응과 용준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음? 대체 뭘 보았길래……. 호오.”

다른 참가자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덩치에서부터 주장하고 있는 커다란 청년이 827번이란 번호를 달고 무대 위에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덩치에 기대감을 갖는 관객들이 제법 많은지, 아직 아무것도 안 했음에도 탄성을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 젊은이…… 저 후기지수치고는 만만치 않군?”

용준이 괜히 그의 말을 가로막은 게 아니었다는 걸 납득한 남궁진은 큰 덩치의 청년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고, 사마종소는 빠르게 참가자의 정보를 적은 명부를 넘기기 시작했다.

“흐음, 보자……. 827번, 827번…… 아. 여기 있군.”

“나도 좀 봅시다.”

만박자가 덩치 큰 청년에 대한 정보를 찾아낸 듯하자, 남궁진과 용준은 함께 그 위로 몸을 기울였다.

“조금 떨어지시오! 나는 무인이 아니라서 덩치 큰 남정네 둘이 몸으로 눌러 대는 걸 벗어날 만큼 튼튼하지 않단 말이오!”

만박자의 일갈에 용준과 남궁진은 잠깐 물러났지만, 이내 다시 명부 쪽으로 다가가 만박자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알겠으니까, 한번 봅시다. 흐음…… 만쇄문의 나종신이라. 확실히 만쇄문이니만큼 싹수가 있어 보이는군그래.”

“아미타불. 저기서 조금만 작았다면 나한승도 가능했을 인재이거늘…….”

세 사람은 이내 종신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했고, 종신은 그들의 기대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와직.

종신의 손아귀에 잡히자 마치 메마른 낙엽이 부서지듯, 손쉽게 박살 나 버리는 목판.

“어이쿠, 파편이…….”

종신은 나뭇조각들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자, 그것들을 치우기 위해 몸을 숙였다.

“나중에 치울 것이다. 석판을 부숴라.”

“아, 네. 헤헤.”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해맑게 웃던 종신은 앞선 목판이 그랬던 것처럼, 석판도 손쉽게 박살 냈다.

빠각.

석판을 양손으로 잡고 두 동강을 내 버린 종신.

그는 이내 바닥에 석판을 던진 뒤, 철판을 손으로 잡았다.

“호오…… 잡는다고?”

“만쇄문은 강맹한 권과 각이 특기였던 걸로 기억하오만…….”

“아직 권각술을 쓸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철판을 때리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손상시키겠다는 듯 앞선 석판과 목판처럼 손으로 붙잡은 종신의 모습에 그들은 기대를 갖기 시작했다.

뚜둑, 차악! 쫘아악!

반 치(약 1.5cm) 두께의 철판이, 엄청난 굉음을 내며 찢어졌고 그 광경을 대회장 내부의 모두가 목격했다.

-와아아아아아!!

반치가 긴 길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쟁반이나 접시보다 두꺼운 철판이라는 게 종잇장처럼 찢어질 물건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익히 아는 구경꾼들과 몇몇 포기한 무인들은 그 광경을 보고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오오!”

“제법이군요. 확실히 저런 힘이면 저 정도 철판이야 잘 접어서 모양도 내겠습니다.”

“내가 알기로 이것저것 섞은 잡철을 찍어낸 철판이긴 해도 그리 쉽게 찢어질 물건이 아닌데…….”

세 사람은 각자 다른 반응을 보였고,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자 당황한 종신은 부끄러운지 붉게 물들기 시작한 얼굴을 가리며 무대 밑으로 뛰어 내려가 도망가기 시작했다.

“으음, 다만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군…….”

“뭐…… 여기 적혀 있기로는 아직 약관도 안 되었다고 하니, 이해해 줍시다.”

“그럼, 이제야말로 식사를…….”

남궁진은 정말로 허기가 진 듯, 이번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식사를 하러 가자는 제안을 하려 했으나 의외의 인물이 종신의 다음으로 올라오자 멈칫했다.

-오오오오…….

남궁진이 멈칫했듯, 사람들도 뭔가 다름을 느꼈는지 마찬가지로 웅성이기 시작한 객석.

앞선 나종신이 큰 덩치와 그에 걸맞은 완력으로 이목을 끌었다면, 지금 나타난 참가자는 외모부터 이목을 끌고 있었다.

“826번…… 저 녀석은 뭐요?”

사내대장부다운 외모의 기준이 산적 같은 얼굴이라면, 지금 올라온 참가자는 정확히 그 반대에 가까웠다.

아무런 특징 없는 깔끔한 검은 무복 위로도 보이는 단련된 몸, 티 하나 없는 얼굴과 수려한 용모에 관객들…….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층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정보가 없습니다. 사문도 없고, 지역도 없고. 이름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눈에 띄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새로운 참가자.

“이름이라…… 최영의. 흐음, 솔직히 저 정도 얼굴이면 그냥 얼굴만 뜯어먹고 살겠다는 처자들이 줄을 서겠군.”

솔직히 몸과 기도만 보아서는 큰 기대감이 생겨나지 않았지만, 남궁진은 묘하게 실패를 기대하며 자리에 앉았다.

“원래 미형인 무림인은 금방 그 생명이 끝나기 마련이지.”

“무공에 필사적일 이유가 없으니 말이지요. 역사가 증명합니다.”

“……아미타불.”

남궁진 이외에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생각인지, 영의를 주의 깊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크흠, 여기 있는 목판과 석판…… 그리고 철판을 손상시키면 된다. 철판은 교체가 필요하니 잠시 기다리도록.”

시험을 담당하는 무인은 아까 종신이 찢어 버린 철판 대신 다른 철판을 꺼내 받침대에 세워 두었다.

하지만 여기에 세워진 철판은 아까의 것과 달리, 반치에서 조금 더 두꺼운 두께였다.

수작업으로 철판을 만드는 이상 두께가 완전히 동일할 수는 없었고, 종종 더 얇거나 두꺼운 게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중 가장 두꺼운 걸 세운 무인.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군. 얌전히 돌아가서 서생처럼 살아라.’

무인은 새로운 참가자가 이래저래 마음에 들지 않았고, 탈락하기를 바라며 가장 두꺼운 철판을 준비했다.

“흐음.”

새로운 참가자…… 영의는 목판과 석판, 철판을 보며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앞에서 뭐 제대로 하는 사람은 못 봤는데……. 방금 전 사례는 참고할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고.’

영의 또한 아침부터 비무대회의 예선을 기다리긴 했지만 제대로 통과한 사람은 별로 못 봤고, 방금 전 종신의 경우에는 그가 따라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아, 그래.”

이내 영의는 목판 앞으로 다가갔고, 목판의 앞에 주먹을 갖다 댔다.

“이봐, 한 번에 부숴야 하네. 여러 번 하면 저기 옆 동네 농부도 부술 수 있어.”

무인은 영의가 실수라도 하면 바로 쫓아내기 위해 그런 말을 하며 그에게 다가갔지만, 이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짧은 정권.”

퍼억.

작게 중얼거린 영의가 목판의 앞에서 손을 살짝 움직이자, 목판에 둥근 구멍이 생긴 것이다.

“?!”

그 모습에 당황한 무인이 목판과 영의를 번갈아 쳐다보기 시작할 때, 영의는 옆의 석판 쪽으로 이동해 주먹을 내질렀다.

“정권.”

이번에도 아까처럼 기술명(?)을 외치며 석판을 가격하는 영의.

파삭-

석판도 목판처럼 둥근 구멍이 생기긴 했으나, 이내 균열이 일어나며 부서져 내렸다.

“다음은…… 철판인가. 쓰읍.”

목판과 석판이야 각성하기 이전에도 종종 부숴 본 경험이 있었지만, 철판은 이야기가 달랐다.

뇌기로 신체를 활성화할 필요도 없이, 지금 그의 체내에 있는 마력과 각성자로서의 기본 신체 능력만으로도 철판은 충분히 구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강 정권.”

콰앙-!

아직 비무가 아니라 예선이었기에 기술명을 외칠 필요는 없었지만, 영의는 어제 연화와 와룡에게 교육받은 것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었기에 기술명을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력은 그런 보잘것없는 기술명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를 보여 주고 있었다.

주먹 자국이 깊게 남아, 조금만 더 들어갔다면 주먹 모양의 작은 철 조각이 떨어져 나갔을 것만 같은 철판.

영의는 그 철판을 보며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아-! 조금만 더 세게 칠걸! 아! 한 번 더 치면 될 거 같은데!”

본래 의도와 너무 다르게 진행됐다는 듯, 영의는 철판을 앞에 두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방금 전 종신의 퍼포먼스(?)도 충분히 놀라웠지만, 큰 덩치에 걸맞은 방식이었기에 사람들은 기대감이 충족된 환호성을 보냈었다.

하지만 지금 서생이나 화화공자 같아 보이는 영의가 어지간한 무림인 이상의 무력을 선보이자 놀라움에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환호가 자신에게 쏟아지기 시작하자, 영의는 손을 들어 관객들에게 흔들어 주기 시작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조금 못했는데도 이 정도로 응원해 주면…… 생각보다 명성 얻기 수월하겠는데?’

“하, 합격…….”

무인은 일단 영의가 모든 조건을 충족했으니 합격이란 말을 했고, 영의는 사뿐히 무대 밑으로 뛰어내렸다.

“감사합니다.”

이내 대회장 바깥으로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대회장 내부의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었으며, 그중에는 남궁진을 비롯한 세 중장년들도 있었다.

“호오…… 재미있군요. 뒤늦게 접수한 뒷번호들 중에 저런 인재가 있었다니.”

사실 번호를 거꾸로 호명한 것은 좋은 구경거리를 나중에 보기 위한 진행 방식이었다.

구파일방의 제자들이나 마교와 새외의 고수들은 이미 운영 측에서 접수를 받아 두었고, 그들은 앞선 번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식사를 하러 가자고 계속 주장하던 남궁진도, 의외의 이변이 두 번이나 나오자 흥미가 생겼는지 더 이상 식사 제의를 하지 않았다.

“이보게, 여기로 간단한 요깃거리를 좀 가져다주게.”

“아, 네!”

다만 대회장으로 먹을 것을 부탁했을 뿐.

천하제일 비무대회의 막이…… 이제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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