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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203화 (203/325)

#제203화 (4)

천하제일 비무대회 예선 접수가 끝난 그날 밤.

운영 측의 건물에는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대진표 작성 끝났나?!”

“아직입니다, 열두 명 정도 더 남았습니다.”

“서둘러! 해가 밝기 전까지는 게시해야 한단 말이네!”

대진표…… 정확히는 조 추첨을 위한 명단을 작성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흐하하하, 엄청나게 벌겠군!”

“이미 엄청나게 벌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참가비와 기타 부수익을 기대하며 크게 웃는 이들이 있었고.

“흐어어…… 힘들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피로를 호소하며 늘어져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 늘어진 이들이 있는 건물은 한두 개가 아니었고, 그중 한 개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왔다.

“나 왔네.”

영의의 추가시험을 진행했던 웅조문의 문주, 왕장웅이 건물의 내부로 들어가자 그를 반겨 주는 다른 시험관들.

“오, 장웅이 왔는가.”

“그런데…… 팔은 그게 무슨 꼴인가?”

장웅은 지금 팔에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고 있었고,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어딘가 다친 사람의 행색이었다.

“으하하하, 새로운 시대에 주고 왔지.”

다친 팔을 아무렇지 않게 흔들어 보이며 크게 웃는 장웅.

“무슨 외팔이처럼 주고 왔다는 소리 말고, 누구한테 당한 건가? 자네 그다지 원한 산 인물도 없을 텐데.”

“그 왜, 돈 없는 녀석들을 위해 하는 추가시험이 있잖은가?”

“그렇지.”

“거기서 당했지. 생각지도 못하게.”

“뭐라?”

추가시험을 진행한 시험관은 장웅 혼자가 아니었다.

여러 장소에서 여러 명이 동시에 진행했지만, 대부분은 장웅이 겪었던 것과 같이 싹수는 있지만 아직 약하거나 쭉정이에 불과한 잔챙이들만 몰렸었다.

“그게…… 나 참, 만쇄문의 제자……라는 녀석이 이렇게 만들었지 뭔가.”

“만쇄문이라…… 거기, 아직 명맥이 이어지고 있었나?”

만쇄문은 강자들을 간간이 배출해 낸 경험이 있는 상당히 이름이 있던 문파였고, 시험관들 여럿이 그것에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듯한 제자였지. 심성은 다소 유약해도…… 몸은 정말 곰 같은 녀석이었어.”

“방심했다고는 하지만…… 뼈에 금이 간 건가?”

“아니, 뼈에는 문제가 없네. 손목이 조금 꺾였을 뿐.”

실제로 부목의 위치를 잘 살펴보자 부목은 손목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는 듯 손등까지 내려와 있었다.

“흐음, 힘겨루기를 잘못했나?”

“그렇지, 생각지도 못한 방향과 기술이었으니까. 만쇄문의 무공이 이래저래 많이 바뀐 것 같네.”

만쇄문은 만 개…… 모든 걸 부순다는 만쇄(萬碎)라는 이름 그대로, 힘 중심의 권각술이 위주였으나 이번에 접한 만쇄문의 제자는 조금 다른 전법을 사용했다.

“그래, 그 제자란 녀석 이름은?”

“종신. 스승인 듯 보이는 노인이 종신이라 부르더군.”

“종신이라…… 재밌겠어.”

시험관들은 만쇄문의 제자에 대해 기대감을 가지며 이야기꽃을 피웠지만, 장웅은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래……. 이번 비무대회는, 정말 재미있을 것 같더군…….”

기존에 알던 것과 많이 달라진 만쇄문의 무공과 이름도 사문도 없지만 상당한 재주를 보여 준 영의를 생각하며, 장웅은 다른 시험관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 * *

한편, 마교의 인원들이 거주하는 공간.

“그래…… 귀인께서, 이것을 주고 가라 하셨다고?”

“네, 누님. 하지만 아버님께 어떻게 이걸 전해 드려야 할지…….”

“하아…… 귀인께선 매번 사람을 곤란하게만 하시는구나.”

낮에 영의와 마주쳤던 혁련와룡은 자신의 누이인 연화의 거처로 와 술병을 탁자 위에 올려 두고 술병의 처우를 두고 상담을 하고 있었다.

호위들에게는 영의를 만났다는 것과 쓰러졌다는 것을 함구시킨 와룡.

이곳은 중원이니만큼, 혁련무강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었고 그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술병을 보여 주고 그것을 입수하게 된 계기를 설명해야만 했다.

“귀인께선 본인을 찾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찌해야 할지…….”

영의는 본인이 알아서 찾아갈 테니 굳이 찾아다닐 필요가 없단 뜻으로 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와룡은 그것을 다른 뜻으로 받아들인 상황이었고, 좋은 생각을 내 보기 위해 연화에게 찾아온 것이다.

“하아, 아버님께 드린 선물이니 전해 드리는 게 맞겠지만…….”

연화는 턱을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결론은 내려져 있었지만, 그 결론대로 행동하는 게 좋은 결말이 되는 건 아니었기에 답답함에 한숨을 쉬는 그녀.

“귀인을 대하던 태도를 생각해 보면, 아마 무조건 찾아 나서시겠지요…….”

“그러게……. 휴우.”

둘은 나름 사리 분별을 할 줄 알았고, 비정상인이 넘쳐흐르는 마교에서도 제법 상식인에 속했기에 혁련무강이 나서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둘은 결론이 나와 있지만 그것을 선택하기 싫은 마음에 계속해서 어떡하냐는 말만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떡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때, 계속되는 중얼거림에 끼어드는 누군가가 있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원래 이성과 감성이 충돌하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시키는 대로 하는 거랬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조금…….”

“네, 귀인. 아버님이 저희 말을 무조건적으로 듣는 분은 아니신……. 어?”

“응?”

갑자기 대화에 끼어든 누군가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연화와 와룡.

“오랜만이지?”

그들의 앞에는 영의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귀인?!”

연화와 와룡이 영의를 보고 놀라자, 영의는 그것이 나름의 긍정이라고 보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 반갑긴 한가 보네. 사실 여기 오기 전에 영감님 쪽이나 다른 쪽도 보고 왔는데 다들 바빠 보이더라고.”

사실, 본래 목적인 권마를 만나기 위해 먼저 권마 쪽으로 갔었지만 이미 누군가를 붙잡고 수련을 하고 있던 모습을 보고 발길을 돌렸었다.

그리고 혁련무강에게 권마와의 약속을 부탁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지만, 혁련무강은 마교의 원로들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혁련운도 한 노파와 약재를 달이며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 외에 영의가 한 번이라도 봤던 마교의 고수들은 각자 바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결국 그렇게 여기저기 떠돌다가 그나마 여유로워 보이는 곳을 발견했으니, 그곳이 바로 연화의 거처였다.

모두가 비무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부산한 와중, 비무대회와 별 관계가 없지만 일단 따라온 이들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은 당연했으니까.

“귀인…… 안 오시겠다고 한 게……?”

연화는 이미 와룡에게 영의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에, 영의가 마교 쪽으로 안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 그게…… 원래 숨어 있으려고 했는데 생각이 좀 바뀌었지. 아무튼 영감님은 바빠 보였고…… 그나마 찾아올 만한 곳이 여기였으니까. 후우…… 사람들이 되게 바쁘더라고.”

영의는 그나마 자주 교류해서 편한(?) 연화의 앞이라 그런지, 숨길 생각도 없이 대놓고 음료수를 꺼내 마시고 있었다.

“아…… 그렇군요. 저희에게서 떠나시려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지는 않지. 나도 그렇게 의리 없는 사람은 아니라서.”

연화는 의리가 없지 않다는 영의의 말에 작게 미소 지었다.

“예, 귀인이 의와 협이 살아 있는 분이신 건 알겠습니다.”

둘이 생각보다 자신을 반기는 듯한 분위기이자, 영의는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그보다…… 권마 영감님 만나러 왔는데, 제자 같은 사람 하나 붙잡고 가르치고 있더라고. 나중에 비무대회 끝나고 얘기해 봐야 하나?”

넌지시 권마에게 볼일이 있다고 언급을 하는 영의의 질문에, 와룡이 곧바로 대답해 주었다.

“권마 어르신이라면…… 아마 큰형님을 가르치고 계신 걸 겁니다.”

“그래? 어쩐지, 덩치가 제법 있더라니.”

혁련무강의 첫째 아들이라면 무공도 상당할 테고, 당연히 마교의 최고수들의 눈에 들어오는 재목이었을 것이다.

“그 외에 둘째 형님은 숙부님…… 검마 어르신께 사사하고 있고, 운 형님은 마의 어르신께-”

“다른 건 딱히 관심이 없어. 그보다 너희는 무공 좀 해?”

영의는 지금, 비무대회에 상당히 진심인 상태가 되었다.

공손환을 찾는 것이야 어차피 어려울 것 같았고, 비무대회에서 조금 더 수월하게 다니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이 권력과 힘.

권력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힘으로 증명하기로 했다.

“그게, 저는 무공보다는 책을 읽는 것이 더 좋아서……. 죄송합니다, 귀인.”

“저도 예전에는 무공에 매진한 세월이 있었지만 지금은 손을 뗀 지 제법 되었답니다. 그보다, 그건 왜 물으시는지요?”

“명성이나 그런 건 관심 없긴 한데…… 찾을 사람도 하나 있고. 비무대회 동안 활동하기 편하려면 일단 힘을 증명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영의의 대답에, 연화와 와룡은 의외라는 듯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명성에 관심은 없지만 힘은 증명하시겠다고요……?”

“귀인, 명성이란 힘이 알려지면서 따라오는 것입니다. 강함의 소문이 퍼져 나가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성질의 것이 명성인지라…….”

무림에서 명성이란 곧 강한 자의 상징이자 명함과도 같았기에, 명성 없는 강함은 마치 속 없는 만두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가……. 그럼 귀찮겠는데. 몇 번은 이겨야 하는 거 아냐? 대전할 때 최대한 화려하게 해야 하나?”

영의는 아직까지 비무대회 예선이 일반 스포츠 대회 예선처럼 토너먼트식으로 진행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귀인, 혹시 비무대회 예선의 진행 방식을…… 모르고 계십니까?”

와룡은 화려하게 승리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 영의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꼈고, 이내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왜? 싸워서 이기면 되는 것 아냐?”

“그, 비무대회의 예선은 세 가지 방법으로 치러집니다.”

“어?”

와룡은 그 반응에 영의가 확실히 예선 진행 과정에 대해서 모른다는 확신을 느꼈고, 이내 친절히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즉, 두 번째에서 눈에 띈다면 곧바로 명성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뛰어난 기량을 보여 주거나, 아니면 모든 사람들을 탈락시킨다는 상당히 과격한 예시까지 들어 가며 추천하는 와룡.

“눈에 띈다라…… 괜찮네.”

영의는 와룡의 추천이 상당히 괜찮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리고 귀인, 실례지만 혹 올해로 나이가…….”

“나? 스물여덟.”

“아, 둘째 형님과 동갑이시라니 다행이군요. 이립이 넘으면 용봉비상전에 못 나가서 말입니다.”

혁련가의 형제들 중 첫째인 강이 올해로 딱 이립이었으니, 턱걸이로 용봉비상전에 출전할 수 있는 나이였다.

물론 이립의 나이를 넘긴 무림인도 비무대회에 출전을 희망하기야 하겠지만 대부분은 용호박투전에 참가한다.

후기지수들의 자리에 끼어들기에는 눈치가 보일 연배들이었으니까.

와룡의 질문이 계속되자, 연화는 영의의 태평함에 불안감을 느껴 자신도 질문을 하였다.

“귀인? 비무대회의 다른 규칙이나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아시는 게 있는지……?”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무심하게 대답하는 영의.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최대한 실전과 같이 하되, 살초를 피하는 것이 비무의 중점이긴 하다.

‘틀리지는 않았는데! 확실히 살초만 안 쓰면 되긴 하는 것인데!’

하지만 그런 원론적인 규칙 말고, 비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정확한 규칙을 설명하기 위해 와룡과 연화는 열을 올려 가며 영의에게 최소한의 지식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공격을 하실 때에는 초식명을 외쳐 주셔야 합니다. 물론 유명하지 않는 문파의 공격 같은 게 있지만 적어도 공격을 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상대를 모욕하듯 갖고 노는 행위는 자제하셔야 합니다. 물론 강자가 약자를 살려 주는 것은 아량에 달린 것이긴 하나, 이곳에는 보는 눈이 많으니…….”

“아, 복장도 바꾸셔야 합니다. 물론 복장에 대한 규정은 없지만 굳이 눈에 띌 이유는 없으니까요. 적당한 무복을 하나 구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마교의 공자와 공녀는 아닌 밤중에 비무대회 강의를 하기 시작했고, 영의는 생각보다 복잡한 비무대회의 규칙을 이해하는 데에 골머리를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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