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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202화 (202/325)

#제202화 (3)

“좋아, 그냥 금으로 때우자. 아니면…… 영감님들을 찾아가도 되는 거고.”

이런 귀찮은 게 시험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아니 그런 발상을 하지도 못했던 영의.

그는 귀찮음을 감수하는 한이 있어도 금화로 때우거나 독고휘 같은 지인을 만나기로 결정하고는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

“좋아, 다음! 바깥에 멀뚱멀뚱 서 있던 녀석!”

하지만 그런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아까의 목소리였다.

영의는 시험이고 뭐고 무시하고 나가려 했지만, 잠깐의 호기심으로 인해 쳐다본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자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남자를 바닥에 대충 던져둔 뒤 자신을 보며 목을 꺾고 있는 거대한 덩치의 중년 남성.

‘대충…… 비슷한데?’

남성의 덩치는 상당했고, 지구 쪽 권왕만큼의 기세를 뿜어내고 있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몸의 크기만큼은 비슷했다.

“뭘 그렇게 멀뚱멀뚱 보고만 있나! 아, 나를 알아본 건가? 하하! 웅조문의 왕장웅을 알아보고 그리 굳은 게로군! 살벌한 무의 세계에서는 상대방을 알아보는 안목도 중요한…….”

‘괜찮겠는데……? 그래, 이참에 무림에 온 거 죄다 싸워 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눈에 띄고 우승자가 되더라도…… 잠수 타면 되잖아?’

비록 권왕만큼의 패기와 압박감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눈앞의 거대한 남성이 최소한 지구의 흔한 각성자들보다는 강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실전 같은 위압감을 느낄 순 없겠지만, 적어도 자신보다 큰 체구의 상대나 무공을 쓰는 상대와 한 번이라도 더 겨뤄 보는 게 미래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물론 패왕이나 권왕 같은 거창한 이름은 욕심내지 않지만, 그래도 사내로서 별호에 왕 자 하나는 있는 게 좋겠지. 강완왕이나…… 대력왕 왕장웅……. 크흠, 말이 길어지는군. 그래서, 덤빌 건가?”

영의는 남성…… 장웅의 몸과 이것저것을 가늠해 보느라 중간의 말을 잘 듣지 못했지만, 별호와 이름 부분부터는 확실히 들었다.

“아, 네. 대력왕이라고 하면 됩니까?”

앞부분을 못 들었던 영의는 눈앞의 남자가 대력왕이라고 불리는 줄로만 알았고, 어지간해서는 별호로 불리는 걸 좋아하는 무림인들의 취향(?)을 존중해 주기 위해 대력왕이라고 했다.

그리고 영의가 대력왕이라 불러 주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하는 장웅.

“흐헤헤, 그렇게 벌써 띄워 준다고 내가 살살 하진 않을 게야! 흐흐흐……. 대력왕…… 아니지, 크흠! 자, 앞서 있던 녀석은 제대로 설명을 듣기도 전에 기습을 했으니 내 친절히 설명해 주지.”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남자를 대충 흘겨본 장웅은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가 인장이 찍힌 종이와 붓을 들고 나왔다.

“흥, 다소 비겁한 수단도 있었고…… 용기에 비해 능력도 떨어지지만…… 그 포기하지 않는 끈기만큼은 쓸 만했다. 기본기도 준수하고. 어중이떠중이는 이길 수 있겠어.”

장웅은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종이에 무언가를 쓴 뒤, 남자의 몸 위로 던져 놓았다.

“자, 설명해 주지. 나는 은자 하나를 내기 아깝다거나…… 아니면 자신을 내세우고 싶다거나 모종의 이유로 돈이 없는 녀석을 위한 특별 시험의 시험관이다.”

장웅의 설명은 의외로 간단했다.

시험을 원하는 자의 특기에 걸맞은 방식으로 자격을 증명하거나, 장웅과 맞서 싸워 적절한 무력을 보여 주면 되는 것.

“흐하하, 참고로 적절한 무력이란 적어도 일류의 고수는 되어야지! 예선의 일부야 이류 정도만 넘겨도 통과하게 해 놨지만 이건 특별 시험이니까, 기준도 특별해야지!”

장웅은 그렇게 말하며 영의를 위아래로 쓱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내가 보기엔 자네는 힘이나 박투술이 특기는 아닌 것 같으니…… 속도로 하겠나?”

자신과 맞서 싸우기에는 비교적 왜소하고 내력을 갈고닦은 흔적이 보이지 않았기에, 영의가 그리 뛰어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장웅.

하지만 영의의 말과 예의 바른 태도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기에, 그는 영의를 배려해 줄 생각을 했다.

‘직접적으로 봐줄 순 없지만, 적어도 방식은 고르게 해 줘야겠군.’

방금 전 그에게 무턱대고 덤벼든 혈기만 넘치는 애송이는 곧바로 대련으로 들어갔지만, 눈앞의 청년은 차분하고 예의가 있어 보였으니.

“속도로 하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 겁니까?”

영의는 속도에 대한 부분을 질문했고, 장웅은 영의가 자신 있어 하는 분야이기에 질문하는 거라 여긴 듯 미소를 지으며 허리춤을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 있는 방울이 보이나? 나를 상대로 이 방울을 건드려 소리를 내게 하면…….”

떨렁.

“합겨…….”

말을 채 다 끝내지 못한 장웅의 귓가에,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움직이는 과정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때려서 세게 흔들어야만 소리가 나게 일부러 묵직하게 만든 방울이었건만, 그 방울이 지금 그의 뒤에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러면 되는 건가요? 근데 방울치고는 소리가 좀 이상한데.”

떨렁, 떨럭.

“뭐야, 이거…… 대충 만들었나? 아…… 잠깐, 이거 시험 끝난 건가.”

장웅은 자신의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시험을 치르러 온 청년이 방울을 툭툭 건드려 보며 소리를 내고 있었고, 거기서 계속 나오고 있는 소리와 약간 허전해진 허리춤은 그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웅조문의 문주이자 절정에 해당하는 고수인 그였지만, 청년이 방울을 채 가는 것은 차마 알아채지 못했다.

“자네…… 어떻게…….”

“이렇게 하면…… 시험에 통과한 게 되어 버리는…… 건가요?”

“토…… 통과지……?”

일단 시험에 통과한 건 맞지만, 장웅은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이, 이름! 자네 이름이 뭔가! 그렇지, 이것부터 받아야지!”

장웅은 상대의 정체를 알기 위해 이름을 물어보았고, 이내 영의의 다른 손에 들린 종이가 눈에 띄었다.

종이를 가져오고 거기에 적힌 이름을 보자, 이마를 탁 하고 치는 장웅.

“여의…… 재여의…… 과연, 전설 속의 여의봉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움직인 건가!”

이름값을 한다는 생각을 하며 눈앞의 청년, 여의에게 감탄을 하려던 찰나.

“아, 그건 이름이 잘못 표기돼 가지고……. 접수 확인처에서 수정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보다 저 시험 끝난 거 맞…….”

자신이 설레발을 치기는 했지만, 이름을 잘못 적은 건 접수처의 잘못이었으므로 무시한 장웅은 다시금 무언가 말하려던 영의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럼 자네의 이름이 뭔가!”

“……영의요. 최영의.”

“호오…… 사문은? 누구에게 사사했지?”

장웅은 비록 방심했다고는 하나 자신의 몸에 있는 방울을 떼어 간 것을 보아 영의가 실력을 잘 숨긴 일류무인 정도라고 생각했다.

약관쯤 되어 보이는 외모에 저 정도 무위라면 분명히 엄청난 재능을 타고났거나 스승이나 사문이 엄청날 거란 생각에 묻는 장웅.

“사문은 딱히…… 없고, 사사한 사람은…… 좀 많은데요? 그보다, 저 시험 합격한 거 맞죠?”

실제로 사문이라고 해 봐야 최씨 집안이었고, 스승이라고 할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스승도 없이 저 정도의 경지를 저 나이에 이룬 건가! 장차 낭인의 정점에 설 수도 있겠군!’

명확한 사문이 없다면 방랑무인이 될 수밖에 없었고, 어떠한 가문의 식객이나 낭인이 될 확률이 높았다.

“그래, 일단 합격 처리를 해 주지.”

장웅은 곧바로 영의의 종이에 이것저것 적어 주며, 그의 이름까지 정정하여 건네주었다.

“자, 그럼…… 잘 가도록 하게.”

영의를 그냥 보내 줘야 한다는 게 마음속으로 매우 안타까운 장웅이었으나, 그는 시험관이었기에 시험 응시자를 붙잡아서는 안 됐다.

부정행위나 청탁이 있을 수 있었으니 명확히 시험만 응시하고 그대로 보내 줘야만 했고, 응시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방금 전처럼 혼쭐을 내주는 것까지가 그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미련이 많이 남는지, 장웅은 영의를 보며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대련 한번 하지 않겠나?! 절정의 무인과 한번 대련하면 얻는 것도 많을 텐데!’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체면도 있었고, 이미 시험에 통과한 사람을 붙잡는 것도 옳은 행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하고 싶었던 말과 용건은 그 대신 상대방이 먼저 해 왔다.

“저…… 혹시…… 시험은 이미 끝났어도, 개별적으로 대련은 안 됩니까?”

방울을 가져가면 된다는 말에 무의식적으로 그걸 낚아채 버렸고 그렇게 얼떨결에 시험 통과를 하게 된 영의.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계속 장웅과의 대련을 바라고 있었다.

사실 ‘말 끝내기 전에 낚아챘으니 무승부로 하면 안 될까……?’라는 생각으로 계속 시험에 합격한 건가를 되물었지만 장웅은 그것을 재촉으로 받아들이고 곧바로 합격 처리를 한 것.

그래서 혹시나 싶은 마음에 넌지시 떠보듯이 대련을 요청하였으나…… 상대방의 반응이 엄청나게 격렬했다.

“아암! 되지! 되고말고! 당연하게도 되네! 으음! 무인은 언제나 자기보다 높은 상대를 맞이해야 하는 법! 이 절정무인! 웅조문의 왕장웅이 자네와의 대련을 흔쾌히 받아들이겠네!”

마음속 열의로 대련을 신청한 영의보다도 훨씬 열정적인 대답의 모습에, 영의는 속으로 주눅이 들었다.

‘무림인들은 저렇게 군대처럼 힘차게 대답해야 하는 건가……? 잘 생각해 보면 마교 쪽도 그랬던 것 같기도…….’

그렇게 영의가 무림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가질 뻔했을 때, 또 다른 시험 응시자가 나타났다.

“어…… 죄송합니다, 여기가 시험장이 맞나요……?”

큰 덩치의 청년과 노인이 영의와 장웅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접수에 성공했지만, 어째서인지 이 시간에 추가시험장에 나타난 만쇄문의 제자와 그 스승.

“으이구, 이 곰탱이 같은 녀석……! 밥 먹는다고 가진 재산을 다 날리냐!”

“죄송합니다, 사부님…….”

접수에 쓸 돈 자체는 있었지만, 첫 번째로 접수에 성공했다고 여유를 부리다가 그 돈을 홀라당 다 까먹은 듯했다.

“뭐…… 그다지 어려울 건 없어 보이니까, 얼른 하고 가도록 하자.”

“네, 사부님.”

새로운 시험 응시자들은 장웅의 눈으로 봐도 상당한 실력이 있어 보였고, 따질 것도 없이 곧바로 합격을 시켜 주고 싶었지만 그는 시험관의 본분을 지켜야 했다.

“……미안하군, 새로운 이들이 왔으니 자네는 가 봐야겠어.”

“예? 아니, 그럼 대련은요?”

영의는 거의 다 된 대련이 갑자기 파투 나자 당황하여 되물었다.

“정말 미안하네. 나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지만…… 시험을 맡은 자로서, 본분을 다해야 하지 않겠나.”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미안하네. 거기, 새로 온 청년! 시험을 보러 왔는가!”

이내 장웅은 시험관의 모습으로 돌아가 만쇄문의 제자 쪽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예, 예? 저 말입니까?”

덩치에 비해 상당히 유약하거나 소심한 듯, 자신을 부르자 흠칫하며 되묻는 청년.

“그래, 덩치는 훌륭하지만 용기는 별로 훌륭하지 못한 것 같군! 하지만 그래도 문제없다! 용기만 넘치다가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하지만 장웅은 그런 청년을 보고도 덩칫값을 못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무인 중에 객기로 인해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조심성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흠, 자질은 훌륭하나 심성이 문제라…… 저런 것도 경험이 쌓이다 보면 나아질 문제지. 스승은 그걸 잘 아는 듯하니.’

심지를 굳힐 만한 경험을 쌓기 위해서 가장 좋은 건 여러 가지 무공을 상대해 보고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가장 적합한 것이 바로 이 천하제일 비무대회였고.

장웅은 청년의 옆에 있는 노인을 바라보며 작게 웃었지만, 노인은 그런 건 모르겠고 다만 제자의 유약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제자를 노려보았다.

“자아, 덩치를 보니 힘 좀 쓰겠구나! 별다른 선택은 필요 없겠지! 사내답게 힘으로 너를 증명해 보여라!”

손가락과 손목을 꺾으며 청년에게 저벅저벅 걸어가기 시작하는 장웅.

“히, 힘은…… 자신 있습니다!”

청년은 수련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는지, 힘만큼은 확실히 자신 있다는 듯 비장한 표정으로 장웅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며 대련은 텄다는 생각을 한 영의는 한숨을 내쉬며 접수 확인처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아…… 그냥 처음부터 영감님들한테나 갈걸. 비무대회 다 하고…… 영감님들한테 대련이라도 부탁해 볼까.”

접수를 끝내고 돌아가던 길에 문득 마교 쪽의 권마라면 대충 권왕과 비슷한 연습 상대가 되어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뒤늦게 그의 대뇌와 전두엽을 짜릿하게 강타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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