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화 (1)
비무대회 전날, 비무대회장.
이곳에는 각 대회장당 무대가 넷, 여섯 개의 비무대회장으로 총 스물네 개의 무대가 존재하고 있었다.
비무대회 하나에 사용하기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무대였지만, 비무대회의 예선을 위해서는 그 두 배가 있어도 모자랄 정도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기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도 몰라 삼류마저 되지 못한 자칭 무림인들부터, 무림인의 눈에 띄어 제자로 들어가기 위해 신청한 야심 넘치는 청년 등의 어중이떠중이들.
그리고 심산유곡에 숨어 지내다 제자에 의해…… 또는 급히 보충해야하는 물품이 있어 시장이나 마을에 내려왔다 소문을 듣고 참여하게 된 은거고수들까지.
그런 은거고수들은 어지간해서는 세상과의 연락을 끊고 지내지만 주변의 다른 은거고수들과 접점이 있는 경우가 있었고 소문은 조금씩 확산되었다.
그렇게 은거 중인 고수들도 참여하기 시작하였고, 그중에서 이름난 고수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그 외에도 각 세가나 문파의 제자들, 사문은 없지만 타고난 재주 하나로 이름을 날리는 낭인이나 사파의 무인들, 일인전승이지만 유명세가 없어 제자를 구하기 위해 참여를 결정한 비밀스러운 문파의 문주까지.
라인업도 이런 라인업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역대급 구성이었기에 개최와 운영을 맡게 된 무림맹 쪽에서는 상당히 고심했다.
-이름이 있다고 미리 출전시켜 두었을 때 은둔고수나 무명의 고수에게 지기라도 하면 그 문파에는 망신이 따로 없지 않은가?
구파일방의 제자라고 미리 본선에 참여시켰다가 예선에서 올라온 무명의 무인에게 진다면 해당 문파와 그런 문파를 본선에 올린 운영진, 양쪽 모두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다.
그렇다고 일일이 대진시켜서 진출자를 뽑자니 사람이 너무 많고, 또 무명고수끼리의 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천하제일의 비무대회이니만큼, 결승에는 그만큼 강한 자들만 올리고 싶다! 강자의 대결만큼 박진감 넘치는 것이 없으니까!
그 주제로 한참을 고민했던 무림맹은 이내 여러 가지 의견을 받아들여 모두 실행하기로 했다.
-다 한곳에 몰아넣고 마지막에 서 있는 놈이 이기는 걸로 합시다.
사파에서 제의한 최후의 생존자 방식.
-승자와 패자를 굳이 따로 두지 말고, 여러 번 겨루게 한 뒤 승패와 관계없이 가장 뛰어난 기량을 보인 이를 올립시다.
일부 세가에서 제의한 일종의 승점제 방식.
-어느 문파에도 속하지 않은 검증된 강자 한 명을 상대로 겨루게 하여 실력을 증명하게 합시다.
몇몇 문파에서 주장한, 고수에 의한 채점제 방식.
무림맹은 그 세 가지를 모두 사용하기로 합의하였다.
-천하제일 비무대회! 그 예선 시험의 규칙은 이러하다! 우선 첫 번째! 합당한 무력!
참여자는 목판, 석판, 철판 이 세 가지의 목표 판을 두고 공격을 가하여 파괴하거나 충분한 무력을 증명하여야 한다.
일부 암기술이나 타격기가 아닌 기술이 특기인 무인의 경우, 완전한 파괴가 아니더라도 각 목표 판을 손상시켜 최소한의 증명은 해 보여야 한다.
이 첫 번째 방식은 어중이떠중이…… 쉽게 말해 내력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충분한 힘이 없는 쭉정이들을 걸러 내기 위한 방안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무림에서는 강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해지는 것이다! 그 강함의 증명!
참여자 20명을 한 조로 묶어 비무대회의 무대 위로 올려 보낸다.
무대는 100명 정도는 서 있을 수 있을 만큼 넓기 때문에, 각자 싸울 공간은 충분히 마련된다.
숨거나, 다른 이를 방패로 삼거나, 하다못해 도망만 치더라도 상관없다.
마지막에 살아남은 다섯 명이 명단에 오른다.
강자들은 강자들 나름대로 살아남을 것이고, 어설프게 도망치는 기술을 가진 이들은 그런 강자에게 걸러질 것이다.
정말 잘 도망치는 기술을 가졌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장점이 되니 통과할 가치가 있다.
-마지막 세 번째! 정말 강한 것을 증명하고 싶다면, 서로 부딪쳐서 증명하라!
정말 아무런 조작이나 세부 규칙 없이, 단순히 비무로 결정 내는 마지막 방식.
두 번째 예선에서 탈락한 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며, 모두와 겨루어 먼저 3승을 거두는 이가 본선으로 진출한다.
물론 그렇게 한다면 너무 많은 사람이 올라가게 되므로, 2패를 기록 하는 순간 곧바로 추방된다.
즉, 한 번의 기회만 있고 세 번을 이겨야 하는 상당히 불리한 경기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참가자는 아무런 불평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첫 번째에서 이미 무림인의 자격인 힘을 증명했고, 정말 강자였지만 더 강한 자를 만나 두 번째에서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강함만 증명하면 올라갈 수 있으니까.
즉, 불공평하다고 불평하는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충분히 강하지 못해 예선에서 떨어져 관객이 되어 버린 패배자라는 딱지가 붙는 거다.
그런 세 가지의 예선 규칙이 알려지고, 각 참가자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자신만만하게 통과할 거라고 장담하며 예선을 쉽게 보는 이들.
“생각보다 너무 쉬운 것 아닙니까, 사형? 굳이 이런 시험을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방심하지 마라, 너의 안 좋은 버릇이다.”
“그러면서 사형도 미소 짓고 있습니다만?”
“훗, 쉬운 건 사실이니까.”
예선 대회의 어려움을 눈앞에 두고, 불안감에 떠는 이들.
“하아…… 철판을 어떻게 맨손으로 부수지……?”
“나, 나는 외공이 특기가 아닌데……?”
시골 청년이나 삼류 이하의 자칭 무림인인 어중이떠중이들은 대부분 후자에 해당했지만, 가끔 아닌 사례도 있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만약 시작하자마자 마교의 대공자나 소림의 나한들을 만난다면…….”
“제자야, 넌 왜 항상 최악의 경우만 생각하는 거냐? 그리고 대공자를 만나더라도 다섯 명 안에만 들면 되는 것 아니냐?”
“그 다섯 명이 마교의 일, 이공자와 구파일방의 정예 제자일 수도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일이 없을 거래도……. 그런 부분은 무림맹 인사들이 어지간히 알아서 조정하겠지……! 만쇄문의 제자가 그렇게 유약해서야!”
곰 같은 덩치와 불끈거리는 근육을 가지고도 벌벌 떨며 불안감을 표출하는 청년과, 그 옆에서 청년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차는 노인.
“……무기 써도 되나? 칼침부터 박고 시작해야 본실력을 발휘하는데.”
“암기술로 때워라.”
“대회에서 제공하는 비살상 암기는 너무 저질입니다. 현철 정도는 되어야 쓸 만한 것을…….”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불평하는 한 남성과 그걸 나무라는 다른 남성.
그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불안해했으나, 이내 직접 해봐야 알겠지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예선 방식의 발표 이후 예선전의 접수가 시작되었고, 제법 많은 이들이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접수처로 몰려들었다.
역시 대륙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인파 집중이 시작되고, 그에 따른 혼란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접수하겠습니다! 지역과 문파, 이름을 말해 주십시오!”
“산동! 유광검파의 장……!”
“산동 무명 문파 놈은 비켜! 광주! 백월장의 백……!”
“지역은 없고, 소속도 없지만! 나의 이름은……!”
누군가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말할라치면 다른 이가 끼어들어 말하고 다니니, 제대로 접수가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비, 비켜 주세요!”
그런 아비규환 속에서, 아까의 덩치 큰 청년이 사람들을 헤집고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으악!”
“어어억!”
모두 힘깨나 쓰는 무림인이었지만, 덩치 큰 청년은 보통 힘이 강한 게 아닌지 그들을 그저 걸어오는 것만으로 모두 밀쳐 내었다.
“마, 만쇄문. 조대웅입니다.”
“아, 네……. 지역은…….”
“그런 건 없는데요. 여기저기 떠돌아다녀서…….”
접수처 사람은 덩치 큰 청년 대웅의 정보를 한 종이에 이것저것 써 넣었고, 이내 거기에 인장을 찍어 준 뒤 다시 대웅에게 건네주었다.
“네, 접수했습니다. 이걸 가지고 접수 확인처에서 참가비만 내면 정식으로 등록이 될 겁니다.”
“헤헤, 감사합니다.”
접수가 끝나자, 대웅은 감사 인사를 한 뒤 올 때처럼 여러 무림인들을 걷는 것만으로 밀쳐 낸 뒤 인장이 찍힌 종이를 들고 바깥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그렇게 당사자는 본의 아니게 했지만 무력을 동원한 첫 번째 접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걸 본 접수를 하기 위해 기다리던 무림인들은 모두 서로 눈치를 보더니 이내 하나의 합의를 이끌어 냈다.
‘예선이 이제 보니 하나 더 있었군.’
‘공식적인 예선은 아니지만, 우리끼리 걸러 내기엔 딱인 것 같은데?’
‘어차피 큰 세력이 있는 문파들은 자기들끼리 알아서 할 테니, 여긴 무명무인이나 개인 자격 참여자들의 무대다.’
-여기서 거를 놈은 바로 걸러 내고, 실력으로 먼저 접수한다!
그렇게 비공식(?) 예선이 접수처에서 시작되었고, 이내 많은 무인들이 길거리에 무릎 꿇거나 구석에 박혀 한숨을 내쉬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 * *
지구에 있던 영의는 천하제일 비무대회가 열리고 있는 하북성의 상황은 어떤지 모른 채, 집의 바닥에 앉아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툭툭.
바닥에 놓인 전단지를 부리로 콕콕 찍으며 고개를 갸웃하는 뇌영.
“휘욱(아직이에요)?”
“주인. 가진다. 긴 내적 갈등? 이성과 감성의 충돌.”
영의는 전단지를 여러 장 바닥에 두고 그것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가만히 좀 있어 봐. 으음…….”
전단지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배달 전단지.
근래에는 휴대폰과 배달 앱의 발달로 별로 쓰이지 않지만, 직업 특성상…… 그리고 자취생 특성상 가지고 있는 게 제법 많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켜 먹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영의는 그저 음식군만 선정하면 되었다.
“영감님들이 무조건 난리 칠 게 뻔한데…… 뭐가 제일 좋을까……?”
치킨의 마교, 중식의 정파.
영의는 비무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둘 중 한 세력의 도움을 받으려 했지만 그 두 세력 중 어디를 갈지 심히 고민하고 있었다.
“편하기로는 마교가 편할 것 같은데…… 권력 생각해 보면 독고휘 영감님 쪽이…….”
마교는 당장 혁련무강이 그의 편을 드는 이상에 아무도 그를 방해할 수 없었고, 또 세력의 악명 때문에 다른 이들도 어지간해서는 그에게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비무대회는 정파의 구역에서 열리는 행사이며, 자신의 능력이 독고휘의 무공이기 때문에 독고휘 쪽을 고려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수도 있었다.
“으음…… 실리냐, 명분이냐…….”
영의가 한참을 고민하는 모습을 본 영의네 식구 셋.
[사용자, 어느 쪽을 고르건 비슷한 결과가 나옵니다.]
알림이는 거기서 거기라는 말을 했다.
“휘루룩, 삐익(뭐 그거나 그거나, 같은데).”
알림이와 비슷한 말을 한 뇌영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주인, 이성과 감성의 충돌…… 감성을 선택하는 게 후회 없다.”
그리고 그사이에 어휘력이 상당히 발전한 전룡은 제법 현명한 조언을 했다.
“……음, 결정했다.”
영의는 이내 결정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고, 두 식구들도 영의를 따라 고개를 이동했다.
“휘요(수염 난 할아버지로)?”
“감성?”
독고휘인지를 묻는 뇌영과 마교인지를 묻는 전룡.
하지만 영의는 그 어떤 선택도 하지 않았다.
“그냥 가서 대충 개인 신청 하면 되겠지. 올림픽도 개인 출전 되는걸. 뭐.”
[사용자…….]
천하제일 비무대회가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는 영의였기에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말이었고, 뇌영은 영의가 그동안 허비한 시간이 안타까운 듯 한숨을 쉬었다.
“휘유우…….”
“그럼, 영감님들 대접하려면 술이나 좀 사 가야겠네. 흐음, 고량주 말고 다른 거 사 가도 되려나?”
독고휘를 비롯한 정파의 명숙들…… 특히, 운광과 혜윤의 반응을 봤던 영의였으니 이번엔 조금 다른 술을 대접해 보자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