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3화 (19)
칼라미트를 떠나보낸 뒤, 영의는 칼라미트와 용신이 남겨 준 선물을 챙긴 뒤 그것을 가공하거나 보상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 모크란에 들어섰다.
하지만 드래곤이 사라짐으로 인해 축제 분위기일 거라 생각했던 모크란은 그의 예상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게 뭐야?”
본래 그룬이 일하는 3공방으로 가는 도중에는 도시의 광장을 거쳐 지나가야 했고, 그곳은 평소에도 인간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기에 인파에 섞여 자연스럽게 지나가면 됐었다.
하지만 지금 광장에는 난쟁이들이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서로 마주 보고 있었고, 인간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두 그룹의 난쟁이들은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노려보기만 하고 있었고, 그 적막하면서도 무언의 신호가 수없이 난무하는 광장은 얼핏 공포까지 느껴졌다.
‘대체 무슨 일이지? 난쟁이들의 입장에서는 다 끝난 것 아닌가?’
영의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나중에 다시 찾아오기 위해 슬쩍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광장의 누군가가 그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그 인간이다!”
한 난쟁이의 외침은 고요하던 광장에 명확하게 울려 퍼졌고, 그 소리를 들은 난쟁이들은 모두 그곳을 돌아보았다.
척.
모두의 움직임에서 생겨난 작은 소음마저도 한 번에 모든 인원들이 같은 행동을 하니 커졌고, 그 소리는 영의의 귀에도 들렸다.
“어…… 안녕들 하시죠?”
영의는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들에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주며 인사를 했고, 난쟁이들의 그룹은 그제야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저 녀석을 잡아라!”
영의를 잡으려 드는, 상당히 흉흉한 기세를 드러내는 난쟁이들의 그룹.
“놈들을 막아라! 나라를 구한 영웅이다!”
그리고, 영의를 잡으려 하는 난쟁이들을 막기 위해 나서는 다른 난쟁이들의 그룹.
하지만 처음 봤을 때와는 달리, 모두가 활동하기 시작하자 영의를 잡으려 하는 난쟁이들이 그를 지키려 하는 난쟁이들보다 많았다.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은데……?”
영의는 수많은 난쟁이들의 물결이 밀려오자 무심코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고, 동시에 뇌기를 끌어 올려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이건…… 본래라면 개체명 칼라미트가 떠날 경우, 사용자가 영웅이 될 예정이었으나 상위 개체의 개입으로 인해 역사가 바뀐 듯합니다. 2급 역사 변형에 해당합니다.]
알림이의 말대로라면, 본래라면 칼라미트가 모크란에서 도망치는 게 정사였고 영의는 영웅 대접을 받는 결말이었던 것 같았으나 용신이 나타나며 이야기가 달라진 듯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칼라미트 쫓아내고 끝냈지, 괜히 거기서 객기를 부려 가지고……!’
물론 그 덕분에 용신에게서 여러 비밀들을 전해 듣고 뿔과 비늘 조각 등을 얻긴 했지만 결말이 이렇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보다, 역사 변형이 2급 정도면 위험한 거 아냐?’
영의는 2급 역사 변형이 자신에게 끼칠 위험과 피해를 걱정했다.
[괜찮습니다. 역사 변형의 원인은 상위 개체였고, 해당 개체는 역사 변형에 대한 권한이 더 높으니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사실, 용신만 안 나타났으면 순조롭게 끝났을 사건이긴 했다.
‘도망을 가야 하나……? 아니지, 그렇게 되면 비늘을 누가 가공하겠어.’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가는 것을 보자 곧바로 전략적 후퇴를 선택하려 하던 영의는 이내 비늘의 가공을 맡을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지석이나 지구의 다른 장인들에게 맡겨 보아도 어떻게든 성과를 낼지도 모른다.
현대의 기술력을 잘만 응용한다면 난쟁이들이 손질하는 것보다 더 괜찮은 물건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재료의 한계가 문제였다.
여기서 비늘을 더 구할 방법도 없었고, 용신이 주고 간 선물인 비늘은 칼라미트의 것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 것이었기에 더더욱 힘들 것 같았다.
그렇게 영의는 눈앞에서 달려드는 난쟁이들을 해결할 방법을 곧바로 찾아냈고, 실행에 옮겼다.
‘테이저로 다 기절시키면 되겠지.’
언동이나 과격한 기세로 봐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난쟁이들은 대부분 친칼라미트파로 보였다.
파직, 파지직!
“어, 억!”
“으긋, 끄윽!”
“으븝! 읍!”
영의는 온몸에서 뇌기를 뿜어내며 난쟁이들 사이로 파고들었고, 그의 주변에 있는 난쟁이들은 모두 반쯤 나오다 만 비명 소리를 내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기세 좋게 달려들던 난쟁이들은 처음에는 영의의 주변에 가던 인원들이 기절하자 당황했다.
“저, 저건……!”
그리고 이내, 쓰러지는 인원들이 엄청나게 늘어나자 빠른 상황 판단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딜 도망가려고!”
하지만 반칼라미트파…… 영의와 함께 작전에 나섰던 난쟁이들과 그들과 뜻을 함께하는 난쟁이들은 이미 눈치 빠르게 그들의 퇴로를 막기 시작했다.
“비록 칼라미트를 쫓아내는 역할을 대부분 떠맡겼지만…… 최소한 뒤처리만큼은 우리가 하겠다!”
퇴로를 막아서는 난쟁이들 중 말리가 가장 앞에서 외쳤다.
대부분의 난쟁이들이 비슷비슷하여 구별이 힘들고 그룬을 제외한 나머지 난쟁이들은 작전 날에야 만났지만 말리만큼은 자주 봤기에 구별이 갔다.
영의는 그런 말리를 슬쩍 보고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치할 때부터 생각하긴 했지만 적어도 싸움은 없었던 모양이네.’
“동지들이여! 여기서 밟혀 죽더라도 놈들을 잡아 둬라! 나머진 인간 친구가 해결해 줄 것이다!”
다소 영의에게 의존하는 발언이었지만, 전체적인 상황이나 영의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가장 적합한 판단이었다.
약 3분 후, 반칼라미트파의 다른 난쟁이들이 둘러싼 광장 내부에 쓰러지지 않은 난쟁이들은 더 이상 없었다.
툭.
“그 녀석 옆으로 던져 버리게.”
툭.
기절한 난쟁이들을 옆으로 밀어 정리하기 시작한 다른 난쟁이들.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을 좀 들어 봐도 될까요?”
영의는 정리를 시작한 난쟁이들을 슬쩍 피하며 말리에게 다가와 설명을 요구했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 무슨 일 때문에 대치를 하게 된 건지……. 그리고, 그룬은 어디 있죠?”
“흐음, 지금 당장 말해 주기에는 조금 그렇네만…… 우선 이 일의 발단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설명하지.”
말리는 영의를 이끌고 광장의 구석, 난쟁이들이 없는 곳으로 가서 상황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칼라미트가 도망치는 것을 도시의 모두가 보거나 대대적으로 싸워서 쫓아낸 것이 아니라 그저 눈앞에서 사라진 게 모든 일의 발단이었다.
“친칼라미트파의 녀석들은 드래곤의 신비한 비술로 더 강대한 드래곤들을 데리러 갔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칼라미트가 곧 돌아올 거라 주장하기 시작했지.”
친칼라미트파는 칼라미트가 수많은 용을 끌고 와 모크란을 불바다로 만들고 그 잿더미 위에 다시 굳건한 드래곤의 제국을 세울 것이라는 주장을 하며 사람들을 선동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어쩔 도리가 없었지. 놈의 목이나 피 웅덩이가 있었다면 반론이라도 했겠지만, 애초에 그런 게 없어서 보여 줄 수도 없었으니.”
반칼라미트파…… 그룬을 비롯한 동지들과 몇몇 난쟁이들은 친 칼라미트파에 맞서서 목소리를 높였으나 죽거나 도망쳤다는 증거가 없었으니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 어느 쪽이건 증거는 없었지만, 평소 권력과 머릿수의 차이로 인해 우리는 매우 불리해졌네. 그 과정에서 그룬은 가족들을 챙기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고.”
양쪽의 증거가 없다는 건 반론할 수 없다는 뜻이지만, 역으로 상대 쪽에서도 확실하게 끝낼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언력의 차이는 뒤집을 수 없었기에, 반칼라미트파는 영웅이 되었음에도 탄압당하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그때 자네가 온 것이었지. 자네는 이미 우리 난쟁이들의 영웅이지만, 또다시 영웅이 되어 주었군그래.”
말리는 웃으면서 영의의 어깨를 탁탁 두들겼고, 영의는 말리의 칭찬에 상당한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뿌듯함도 잠시, 환하게 웃던 말리는 이내 표정을 굳히면서 영의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건 그렇고…… 칼라미트를 죽였으니 여기로 온 것이겠지? 놈의 수급은 어디 있나? 물론 자네 혼자 들고 올 크기는 아닐 테니, 위치만 알려 주면 내 난쟁이들을 모두 보내서라도 가지고 오겠네.”
영의가 칼라미트를 반드시 죽였을 것이라 믿고 있는 듯, 말리는 칼라미트의 목을 원하고 있었다.
그가 영의의 어깨를 잡은 손에 들어가는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자, 말해 주게. 위치가 어딘지 모르더라도 괜찮네. 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하여 원정대를 결성하는 한이 있어도 그것을 찾아내어 돌아올 테니.”
마치 칼라미트가 죽은 증거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는 것처럼, 말리는 간절함을 넘어서 광기에 가까운 눈빛으로 영의를 노려보고 있었다.
“진정하세요, 왜 굳이 머리가 꼭 필요하신 건데요?”
물론 죽었다는 증거와 사망자의 신원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가져가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하지만 난쟁이들의 본래 목적은 도시에 눌러앉은 칼라미트를 쫓아내는 게 전부가 아니었던가?
“머리가 있어야만, 모두를 납득시킬 수 있으니까.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우리는 상황 판단을 못 하는 머저리가 아니라 끝까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운 이들이라는 걸!”
말리는 옛날부터 반칼라미트 활동을 했었고, 그 과정에서 가정 내부의 불화가 생겼다.
다른 난쟁이들도 이런저런 각자의 사정과 불화가 있었지만, 말리는 그 경우가 상당히 심했다.
당장 가정에서 자신을 제외한 아내와 자식들, 심지어 부모님마저 친칼라미트파였다.
아까는 보이지도 않았고 상대 쪽에서 확인하지도 못한 모양이지만, 지금 광장에서 옮겨지고 있는 기절한 난쟁이들 속에 말리의 아들도 있었다.
그런 사정이 있었기에, 말리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할 증거를 필요로 했다.
그 증거의 최고봉이 바로, 칼라미트의 목이었고.
영의는 말리의 자세한 사정을 몰랐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적당히 무마하기로 했다.
‘만에 하나라도 칼라미트가 살아 있다면 나중에 돌아와서 모크란이 죄다 불바다가 될 거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앞서 친칼라미트파가 마음에 품고 있던 불안과 공포를 떠올린 영의는 칼라미트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칼라미트도 생각이 있으면 이름을 바꿔서 살거나 이 동네는 멀리 떠나서 살겠지.’
영의는 부디 칼라미트가 멀리, 그것도 이 세상 끝까지 멀리 날아갔기를 바랐다.
“후우…… 어떻게 죽기는 죽었어요. 근데, 시체는 바다에 빠져서 못 찾을 거예요.”
눈을 살짝 내리깔고 한숨을 쉬며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는 영의.
“뭐…… 뭐라고……?”
말리는 영의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의 어깨를 잡고 세차게 흔들기 시작했다.
“어째서인가! 어째서…… 어째서! 바다까지 갔다니!”
칼라미트가 죽지 않은 것보다는 하필 바다에서 죽은 게 더 문제라는 듯, 말리는 영의를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으윽, 윽. 어째서…… 왜……. 그렇게 되면 나는…….”
이내 다리에 힘까지 풀린 건지, 영의의 어깨를 붙잡고 매달린 모양새가 되어 버린 말리.
말리는 현실적으로 바닷속에 있는 칼라미트의 시체를 건져 올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고, 또 위치를 특정해 냈을 때는 이미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어졌을 거라 생각했다.
“분명…… 엄청 멀겠지……? 그리고, 또 엄청 깊을 테고 말이야.”
마치 다시는 찾아갈 수 없는 지역에 칼라미트의 시체가 있을 거라는 듯, 영의에게 확인하듯 되묻는 말리.
“바다 한가운데였으니, 엄청 멀겠죠.”
영의는 이왕 거짓말을 하기로 한 거, 확실하게 들키지 않을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나는…… 그저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아니…… 아니야…….”
말리는 이내 바닥에 주저앉아 이런저런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성과 감성이 서로 충돌하는 듯, 가끔 손을 확 올리긴 했지만 이내 다시 내리며 중얼거리기 시작하는 말리.
영의는 기절한 난쟁이를 치우기 위해 지나가던 난쟁이를 한 명 붙잡아 세우고는 말리를 가리키며 그를 부탁했다.
“……저분 좀 잘 보살펴 주세요. 심경이 복잡해 보이시는데.”
중얼거리는 말리의 상태를 본 난쟁이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알겠네.”
그렇게 말리를 두고 그룬을 찾기 위해 광장을 벗어나기 시작한 영의.
[경로를 안내하겠습니다.]
그는 광장에서 나가기 직전, 말리를 한번 돌아보았다.
‘……독립투사나 참전 용사 같네. 숭고한 뜻에 모든 걸 바쳤지만, 정작 구해 낸 나라는 자신들을 챙겨 주지 않으니…….’
가족들의 뜻이 자신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걸어 나라를 다른 세력으로부터 지켜 냈으나 돌아온 건 자신들에 대한 질타와 공포로 눈을 돌리는 국민들.
배신감과 허탈함이 몸을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걸 심적으로 조금이나마 보상해 줄 만한 증거인 칼라미트의 사망 증거마저도 찾지 못하게 되었으니, 고생은 고생대로 한 결과가 모욕과 죄인 신세이다.
말리의 그 심경이 어떨지는 타인으로서는 절대 알 수 없다. 오직 당사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최소한 함께했던 동지들만큼은 남아 있으니…… 외롭지만은 않겠죠.”
난쟁이들이 역사에서 눈을 돌릴지, 아니면 자신들의 실책을 인정하고 뒤늦게나마 영웅들을 대접할 것인지는…… 지켜봐야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