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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192화 (192/325)

#제192화 (18)

칼라미트는 실로 오랜만의 세월에 하늘을 가로질러 공중을 날고 있었다.

그의 거대한 몸체에 돋아난 날개가 충분히 크고 빨랐음에도 그 거체를 띄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는 칼라미트.

그리고 그 검붉은 비행체의 위에는 한 작은 형체가 매달리듯 탑승해 있었다.

“바람이 엄청 심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니네?”

그 형체는 다름 아닌 영의였다.

영의는 이런 거대한 덩치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감에도 불구하고 공기저항이 강하지 않다는 것에 놀라워했고, 그를 태워 준 칼라미트는 그 말에 친절히 답해 주었다.

“저희 동족들은 모두 자연법칙을 조작할 수 있으니까요. 신께서 사용하셨던 기적도 그것과 같습니다.”

의외로, 매체 속에서 보았던 드래곤들의 고풍스러운 말투와는 달리 상당히 친숙하게 일반적인 구어체를 구사하는 칼라미트.

그의 성격도 난쟁이들에게 들었던 폭군과도 같은 성격이 아니었다.

“기적이라면, 용언인가?”

영의는 자신과 거대한 칼라미트의 움직임을 간단한 말 한마디로 봉했던 용신을 떠올렸다.

“용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말 이외에도 상당한 집중력과 힘을 필요로 하는 일종의 주술인데 정말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계셨지 않습니까. 그리고, 모습 또한 인간의 모습이셨고요.”

칼라미트의 말에 따르면 의외로, 폴리모프…… 인간으로 변하는 것은 드래곤들에게도 엄청난 기예인 모양이었다.

“저도 선조님 이외에 인간으로 변하는 드래곤은 보거나 들은 적이 없습니다. 혈통이 진한 몇몇 드래곤들은 제법 쉽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대부분은 용언과 같이 집중하고 수련해야만 가능한 것이죠.”

자신도, 주변의 드래곤들도 인간으로 변하지는 못한다는 이야기를 했고 오히려 인간들의 마법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까 하던 얘기 좀 계속해 봐.”

“어디까지 했더라……. 아, 난쟁이들의 도시에서 깨어났을 때였죠.”

영의는 칼라미트와 처음 조우했을 때에는 상당히 안 좋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드워프를 박해하고 수탈하는 사악한 드래곤이라는 상당히 고전적인 상황이었고, 칼라미트의 말이나 태도에서 그의 본성을 추정할 만한 단서도 별로 없었으니까.

하지만 의외로 대화를 나눠 본 칼라미트는 상상 속이나 영의가 생각했던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드래곤이 아닌, 의외로 순박한 청년 드래곤이었던 것이다.

처음 칼라미트를 타고 모크레튼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칼라미트는 필사적인 설명과 자기변호를 시작했었다.

“저는 그 당시에는 그냥 집 없는 떠돌이였는데, 집을 구해 보려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제법 지낼 만한 숲을 찾았었죠. 근데 거기엔 이미 동족이 자리를 잡고 있더라고요.”

칼라미트는 당시에 둥지를 찾기 위해 떠돌아다니던 갓 성년이 된 드래곤이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적절한 숲을 찾아 정착하려 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동족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곳이 매우 마음에 든 칼라미트는 그 주변에서 눈치를 보며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정 안 되면 좀 고개 숙여서 부탁을 하거나 자그마한 땅이라도 떼어 달라고 하려고 했었죠. 한창 배고플 때이기도 하고, 작게나마 내 둥지가 하나쯤 있으면 좋으니까.”

그렇게 며칠간 주변을 떠돌아다니던 칼라미트의 하늘 위로 먹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엄청난 비와 함께 천둥 번개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갑자기 비가 오고 벼락이 마구 치니까 무서워져서, 급하게 자리를 뜨려고 하늘로 날아오르다가…… 벼락을 맞게 된 거죠.”

칼라미트는 번개를 직접적으로 맞아 본 적도 없었고, 아직 비늘도 연약하던 때였기에 벼락 한 방에 꼼짝없이 기절해서 바닥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기절했다가 눈을 떠 보니까…… 주변에 수없이 많은 난쟁이들과 인간들이 있는 거예요.”

인간이나 당시의 난쟁이들 입장에서는 죽어 가던 드래곤이 날뛰어서 자신들을 짓이겨 죽여 버린 참극이자 재앙이었지만, 칼라미트 입장에서도 그건 상당히 무서웠던 경험이었다.

자다가 깨어났는데 자신의 주변에 작은 생물체들이 가득 있다고 생각하면 누구라도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몸부림을 칠 게 틀림없으니까.

“그래…… 네 입장에서도 무서울 만했겠네. 정신 차렸더니 이상하고 좁은 지하 굴 속이었고, 주변에 수많은 난쟁이랑 인간들이 널 쳐다보고 만지거나 비늘 같은 걸 떼 가려고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영의는 칼라미트의 설명이 다시 재개되자 적당히 맞장구를 쳐 주며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갔다.

“네?! 비늘을 떼 가려고 했다고요?”

“일단 내가 들은 바로는 그런 사람이 있었을 거래.”

영의의 말에 잠시 놀랐던 칼라미트.

그는 하던 설명을 계속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에야 보고 들은 게 있고 경험이 있으니 안 그러지만, 당시에는 공포 그 자체였죠.”

죽다 살아나서 경황이 없었던 데다 처음으로 마주하는 다른 인간들을 너무 갑작스럽게 마주친, 그것도 한가득 마주친 칼라미트는 혼란스러움에 본능에 몸을 맡기고 도망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 몸이 알아서 가장 깊고 안전한 느낌이 드는 장소로 갔었죠. 그렇게 도착한 곳이 난쟁이들의 국고였고…… 그 과정에서 이것저것 부순 느낌이 있지만, 잘 기억이 안 나네요.”

그렇게 모크란의 국고에 틀어박힌 칼라미트는 트라우마와 공포감을 계속 안고 지냈으나, 이내 적응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난쟁이들의 대표가 와서 뭐라고 얘기할 때는 무서워서 단답밖에 못 했는데, 나중에 난쟁이들이 제 비늘 손질을 하러 오기도 하고 숭배도 하니까…… 적응이 됐죠.”

그 과정에서 난쟁이들에게 말도 붙이게 되었고, 대접받는 게 익숙해지니 오히려 나가기가 싫어졌다고 하는 칼라미트.

“먹을 것도 마실 것도 갖다주고, 정기적으로 비늘의 손질이나 교체도 해 주니까 오히려 좋더라고요. 그냥 거기를 둥지로 삼고 눌러앉을까 생각도 했고.”

드래곤들의 비늘은 마치 상어의 이빨과도 같아서 새롭게 돋아날수록 더욱 강하고 튼튼해진다고 한다.

칼라미트는 그렇게 지하에서 벼락에 견뎌 낼 만큼의 비늘을 길러 낸 이후 다시 지상으로 나가려 했으나, 의외로 난쟁이들의 대접이 마음에 든 듯했다.

“그렇게 늘 하던 것처럼 오늘도 비늘 관리를 하는구나…… 싶었는데, 영의 님께서 오신 거죠.”

“님 자는 조금 그런데……. 적어도 그냥 이름 정도로 불러 주면 안 될까?”

영의는 자신보다 몇 배…… 적어도 수십 배는 나이가 많을 게 확실한 드래곤이 존칭을 붙이자 어색함을 느꼈다.

연공 서열이 제법 영향이 있는 한국 출신이라서일까?

‘내가 싸워서 이겨 가지고 존칭을 들으면 모를까, 단순히 친분으로 존칭은…….’

아니, 사실은 제대로 우위에 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존칭을 듣는 게 불편했을 뿐이다.

싸워서 결판을 냈다면 아마 존칭을 듣는 게 별로 불편하지 않았을 영의.

하지만 칼라미트는 영의에게 존칭을 쓰는 것을 그만둘 생각이 없는 듯했다.

“아뇨! 신님의 지인이고 상당히 중요한 일을 하시는 분 같으니 존칭을 쓰겠습니다. 그보다, 이제 곧 모크레튼 산맥에 다다릅니다.”

“……보이네.”

멀리서도 그 모습이 확연하게 보이는 모크레튼 산맥.

영의는 문득 난쟁이들의 국가인 그곳이 보이기 시작하자 칼라미트의 처우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난쟁이들의 말을 들었을 때는 무조건 칼라미트가 나쁜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해 보면, 둘 다 각자의 잘못과 오해가 있었던 거잖아?’

난쟁이들로서는 어떤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 드래곤을 도시로 끌고 들어온 것.

칼라미트로서는 몸을 회복한 이후에도 나가지 않고 그곳에서 계속 생활한 것.

첫 발단은 특별한 사유나 감정 없이 시작되었던 것들이나, 그것들이 서로 작용하여 세월이 지난 결과 상당한 부작용이 만들어졌다.

난쟁이들은 계속되는 지출로 인해 국력이 쇠하며 친드래곤파와 반드래곤파로 나뉘었고, 이내 본인들의 희생을 각오하면서까지 칼라미트를 추방하기 위한 무장 봉기를 시도했다.

칼라미트는 실수와 오해로 비롯된 결과였으나 본인에게 만족스러운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결과였기에 과거에서 눈을 돌리고 난쟁이들이 상납을 하는 현실에 안주하였다.

‘가장 좋은 방법은…… 뭘 해야 할까.’

칼라미트와 난쟁이들에게 서로의 사정과 입장을 설명하고 화해를 시키려 해 봤자 씨알도 안 먹힐 게 틀림없었다.

난쟁이들에게는 이미 상당한 감정의 골과 같은 종족끼리의 대립이라는 씻어 내기 힘든 문제들이 있었으니까.

칼라미트가 먼저 사과를 하러 간다고 해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었다.

‘알림아,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영의는 이내 알림이에게 상담을 하려 했지만, 알림이는 대부분 명쾌한 해답을 제시했던 평소와 달리 다른 답을 했다.

[사용자, 저로서는 제대로 된 대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최선의 결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개체명 칼라미트의 모크란 방문과 무시, 두 가지 다 각자 얻는 이득과 손해가 공존합니다. 저는…… 사용자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하겠습니다.]

칼라미트가 모크란으로 가서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대화를 시도하든, 이대로 문제에서 눈을 돌려 다시 집을 찾는 드래곤으로 살아가든 둘 다 장단점이 비슷할 정도로 있다는 알림이의 말.

영의는 그 조언에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칼라미트의 머리를 두들겼다.

톡톡.

“무슨 일이신가요? 혹시 불편하신 거라도?”

자신에게 예의 바르게 불편한 게 없는지 물어 오는 칼라미트를 보며, 영의는 난쟁이들이 과연 칼라미트의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크란으로 간다면…… 아니, 갔다고 치면 넌 난쟁이들에게 뭐라고 할 거야?”

“……아무것도요.”

“아무 말도 안 하겠다고?”

“아뇨, 별다른 감정이 없으니까요. 지금까지 받아 온 게 많긴 하지만 거기에 감사하다거나 하진 않죠. 물론 그게 당연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죽어 가던 절 구경거리로 만들었던 것 자체는 기억하고 있으니까. 다 죽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미 충분히 죽인 것 같아서 하지는 않았죠.”

칼라미트는 그때 당시에는 기억이 없었지만, 나중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시에 자신이 어떤 취급을 당했는지 알게 된 것 같았다.

영의는 칼라미트의 말과 입장을 듣고는, 난쟁이와 억지로 대화를 시켜 봐야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럼 저 앞까지만 데려다주고 가도록 해.”

“네? 상당히 먼 거리인데요?”

“나는 하늘을 날아갈 수 있으니까, 상관없어. 가서 네 집이나 찾아. 예전처럼 자기 보금자리 찾아서 떠나라고.”

영의는 싸늘하게 느껴질 정도로 매정하게 말했다.

“그래야겠죠, 제법 마음에 들었었는데……. 이번에는 먹을 게 많은 바다 주변으로 가 봐야겠네요. 아, 신님께서 챙겨 주라고 한 게 있었는데 받아 두세요.”

영의의 말투에 개의치 않는 듯 보이는 칼라미트.

그는 영의를 내려 준 뒤, 뒤로 돌아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고 영의는 그런 칼라미트의 뒷모습을 보며 잠깐이지만 손에 뇌기를 끌어모았다.

“……아니, 아니지.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난쟁이들이 학살당하고 수탈당한 것에 감정을 이입하여 칼라미트에게 싸늘하게 대답해 주었던 영의.

그는 날아가는 칼라미트의 등에 큰 뇌창을 하나 꽂아 줄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약자가 무조건 옳지는 않을 수도 있지……. 객관적으로 먼저 실수를 한 건 난쟁이니까…….’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가슴은 그렇지 못한 착잡한 심정을 정리한 영의는 칼라미트가 바닥에 두고 간 물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광택까지 나는, 상당히 좋은 상태의 비늘 여러 장과 사람 몸통만 한 뿔 조각이었다.

“……색깔이 좀 다른데?”

그 비늘들 중, 칼라미트의 비늘 색이 아닌 상당히 옅은 푸른 비늘이 몇 조각 끼어 있었다.

영의는 일단 그 비늘과 뿔들을 챙긴 뒤, 칼라미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모크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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