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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191화 (191/325)

#제191화 (17)

먼 태초에, 세상을 만들어 낸 어떠한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는 하나의 세계와 그 세계가 발전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만든 뒤 자신의 창조물들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처음에 하나로 시작했던 세계의 수는 나무의 가지가 갈라지고 뻗어 나가듯 점점 늘어가 이내 한 번에 전부 둘러보기 힘들 지경까지 갔다.

결국, 그 존재는 자신이 만든 세계를 관리하고 살펴봐 줄 존재들을 또 만들어 내었고 그들과 함께 세계들을 관리하다 돌연 관리를 맡기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세계를 관리해야 한다는 명을 받은 존재들은 계속해서 명령에 따라 세계를 관리해 나갔으나, 자신들의 창조주와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세계들을 한번 살펴보고 오면 변화가 너무 많아져 있다!

세계들이 무난하게 돌아가면 문제가 없었지만, 세월의 흐름이 원인인지 창조자의 부재가 원인인지 여러 가지 이유로 잠깐 눈을 뗐다가 다시 돌아보면 세계들이 오염되거나 파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세계들은 스스로 붕괴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다른 세계들마저 집어삼키는 심연이 되었다.

창조자에게서 제법 많은 권한과 능력을 부여받은 그들은 그것들을 수습하려 애썼으나 아무리 노력해도 고쳐지는 문제의 수보다 생겨나는 문제의 수가 더 많았다.

-이대로라면 명령을 지키지 못한다. 다른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이내 그들은 창조자가 만들고 자신들이 관리하던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시스템을 보고 참고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우리의 창조자가 그리하였듯이, 세계를 관리할 존재를 만들어서 역할을 나누어 맡기자.

하지만 사람으로 비교했을 때 개발자가 아닌 운영자인 그들로서는 고차원적인 지능이나 능력을 가진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할 수 없었고, 결국 가장 적합한 존재를 찾아서 힘과 권한을 부여하고 일을 맡기기로 했다.

가장 먼저 선택받은 존재는 한 세계의 탄생과 동시에 존재했다는 옛 생물이었다.

“그래서 선택받은 게…… 나였지. 관리자 녀석들이 봤을 때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진 게 나였으니까.”

용신은 자신이 가장 안 죽을 것 같았고 가장 적합한 소재였다고 말했고, 영의는 그 말을 하는 용신을 보며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세계의 탄생과 동시에 존재했다고? 지구로 따지면 지구랑 같은 나이의 사람이란 거 아냐?’

“그렇게 못 믿겠다는 표정 짓지 마라. 내가 좋아서 선택받은 운명이 아니니까.”

용신은 영의의 불신에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첫 번째로 선택받은 자는 충분히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으나, 관리자들이 계속하여 그를 운용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용신의 강함과 관리자들의 능력 부여는 세계의 에러를 수정하고 파괴되는 것을 막는 데에는 충분히 적합했지만, 스스로가 너무 강한 나머지 관리자들의 의향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다.

-심연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심연이 더욱 커져 버렸다. 부작용이 너무 많다.

-세계를 존속한 것은 좋으나 생명체들이 없어진 이상 저 세계는 곧 망할 것이다. 이제 너의 역할을 그만해도 될 것 같다.

-싫은데? 이 힘을 쓰는 방법은 이미 익혔고, 앞으로 재밌게 쓰도록 하지.

관리자들이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강했고, 그들이 주었던 힘과 능력으로 더 강해져 버린 용신은 그대로 탈주했다.

관리자들은 용신의 탈주 이후, 그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다른 방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자의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존재를 찾는 게 더 좋겠다.

-본래 창조자도 세계를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관리하지 않았다. 세계의 일은 세계의 안에서 해결되게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관리자들이 눈을 돌린 방법은 직접적인 절대적 존재의 개입보다 세계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게 유도하는 방향이었다.

용신의 탈주가 뇌리에 각인된 관리자들은 세계의 미약한 존재들부터 컨트롤하려 시도했지만, 충분한 지능이 없다면 대부분 본성에 이끌려 계획이 어긋나고 말았다.

한 세계에서 실험적으로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반복하다가 결국 남게 된 것은 인간.

-첫 대상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존재 아닌가? 실패할 것이다.

몇몇 관리자들은 용신의 사례를 떠올려 불안함을 드러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가장 지능이 높고 이성적인 것은 이 생물체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이 지났을 때 가장 많은 세력권을 차지하는 것은 이 종류의 생물체밖에 없었다.

결국, 관리자들은 인간들을 이용하여 역사를 바꾸거나 시대를 이끌어 가기 시작했다.

-나의 말을 들으라! 내가 곧 신의 아들일지니! 꿈속에서 신이 나에게 계시를 내리셨다!

행동을 유도하는, 꿈에 나타나거나 계시를 주는 방식.

-나의 힘을 보아라! 이것이 선택받은 존재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관리자가 원하는 이상이나 신념을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 곧바로 힘을 부여하여 직접적으로 세계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게 하는 방식.

그들은 관리자들이 원하는 대로 몇몇 위기에서 생물들을 구원하기도 하고, 서로 간에 상호작용을 일으켜 세계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병이 찾아오기 전에 서로 죽이게 만들어 치료 기술을 발달시키는 방법이 성공적이다.

-이로써 세계가 병으로 멸망하게 되는 미래에서 벗어났다. 조금의 희생이 따랐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큰 이득을 얻었다.

그렇게 한 세계에서 어느 정도 성과가 보이기 시작하자, 관리자들은 이내 모든 세계에 같은 방법을 적용시키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여기에는 그렇게 생기거나 비슷하게 살아가는 생물체가 없다.

-비슷한 존재를 찾기는 했으나, 저쪽에 있던 존재와는 다르다.

-여기는 같은 방식을 적용했지만 같은 종족들에게 살해당했다. 어째서지?

수정과 관리가 필요한 세계에 인간이 없거나, 비슷하지만 다른 종족이 있거나, 이미 형성된 사회나 세력에 의하여 제대로 뭔가 해 보기 전에 망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관리자들은 또다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미 있는 존재들에게 인간들에게 했듯 행동을 유도하거나 여럿을 상대로 동시에 시도해 봤지만 모두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행동에 유도되지가 않는다. 어째서지?

-세력을 만들었지만 다른 세력이 더 많이 몰려왔다.

그렇게 계속된 실패로, 몇몇 관리자들이 세계를 본인들의 손으로 소멸시키거나 방임하기에 이르러 상당수의 세계들이 소멸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모든 걸 집어삼키는 심연에 문제가 생긴 세계들을 집어넣어 관리할 세계의 수를 줄이려는 관리자까지 존재했다.

-안 되겠다. 관리자들이 세계에 손을 대는 것을 막아야겠다.

본래 세계를 지키고 관리해야 할 존재들이 오히려 세계를 소멸시키자, 관리자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세계에 직접적 개입을 하지 않도록 합의하고 금제를 걸었다.

그리고 생겨난 것이 바로 차원의 심부름꾼.

-지금까지의 실험 결과 중 가장 적합했던 존재들을 사용하자.

-첫 대상자에게 주었던 세계를 건너뛰는 능력을 주는 대신, 그걸 감시하고 관리할 존재를 만들어 붙이자.

관리자들은 앞서 어떤 존재를 만들기에 적합하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본인들과 같은 존재들을 만들려 했기에 실패한 것이다.

여러 가지 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지적 생명체 대신, 지정된 행동에 반응하는 프로그램과도 같은 가상의 생명체를 만들어 낸 관리자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이 직접 움직일 수 없는 대신 세계를 관리하는 데 도움을 줄 자동 시스템까지 만들었고, 그렇게 세계가 알아서 굴러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관리자들은 심부름꾼의 행동을 도와줄 가상 생명체와 여러 번의 검증 끝에 적합한 수준의 힘을 그들에게 부여하고 다른 세계로 보내 봤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목소리고 뭐고 없었지. 단순히 하면 안 될 행동을 할 때 고통을 주게 해서 그 행동을 멈추게 하는 정도였으니까.”

용신은 그 당시의 차원의 심부름꾼은 동물 실험을 당하는 피험체와도 같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관리자들은 일이 안 풀리니까 나를 불렀지. 본인들이 직접 인간들에게 설명을 하려 하면 그것도 개입이 되니까.”

가상 생명체의 조정과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 봤지만 지식과 경험의 부족으로 인해 전혀 개선되지 않자, 관리자들은 이내 최후의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미 한번 해 본 적 있는 존재를 불러오도록 하자.

-경험을 했다면 문제점이 뭔지도 알 것이다.

-세계의 구성원인 만큼, 세계의 존재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것이다.

관리자들은 용신을 어떻게든 찾아내어 그를 섭외하였고, 용신은 그들에게 받은 힘을 반납하지 않는다는 조건과 약간의 일탈을 눈감아 준다는 조건하에 협력하기로 했다.

“완전히 엉망이었지. 느닷없이 이상한 세계에 떨어져서 살려고 발버둥 치니까 몸에 고통이 오고…… 겨우겨우 고통이 안 오는 방향으로 움직이려 들면 생전 본 적도 겪은 적도 없는 일을 해결해야 하니.”

몇 가지 사례를 직접 보거나 체험하면서 문제점을 파악한 용신은 관리자들에게 시스템과 가상 생명체의 조정에 관해 조언하고, 차원의 심부름꾼들의 곁에 조언자로 붙어 다니며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다.

“그래도 계속 문제점이 생겨났고……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개입에서 손을 놨지. 물론 정말 답답한 녀석들은 직접 찾아가서 처벌했고.”

영의는 용신의 말에 로버트의 일기장에 써져 있던 일을 떠올렸다.

“그게 혹시 로버트인가요……?”

“그게 누구지? 너무 흔한 이름인데.”

로버트가 누군지 전혀 모른다는 듯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는 용신.

“그, 어떤 노인한테 먹을 걸 전해 주기만 하면 됐는데 탐욕 때문에 안 줬던…….”

“내가 살면서 그런 경우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군.”

아무래도 역대 차원의 심부름꾼들은 어마어마하게 많았거나, 용신이 만났던 이들이 거의 다 비슷한 경우를 겪었던 것 같았다.

영의는 최대한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며 이것저것 특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왕가의 인물인가? 그래서 조금만 더 버티면 왕좌에 앉을 수 있었던 노인인데 죽게 만든 사람이요. 식료품점을 하던.”

자세한 사항을 이야기해 주자, 용신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놈인가? 보상 시스템을 도입했을 때 너무 과하게 보상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게 해 줬던 사례였지. 시스템이 인간의 본성을 볼 때마다 새롭게 평가를 수정하게 한 일이었지.”

본래 보상을 해 준다는 것은 계획에 없었으나 용신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잘 알았고, 눈앞에 있는 이득을 쫓기 위해 때로 목숨까지 잃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았기에 그것을 자극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상당히 좋은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으나, 인간의 본성은 무엇이든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변화하였고 결국 로버트와 같은 사례들이 발생하기 시작하며 방식을 바꾸었다.

“그 이후로 바뀐 게, 아마 보상의 선택이었을 거다. 심부름꾼들의 관심사를 알아보고 원하는 종류의 것을 주고 또 다음을 기약하게 만드는 방식이었지.”

영의는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자신은 정말 운이 좋았던 사례였다고 생각했다.

‘만약 나도 처음 만난 게 괴수 같은 영감님들이 아니었으면 로버트처럼 변할 수도 있었다는 거잖아?’

물론 영의가 그럴 성정의 인물은 아니었지만, 로버트도 처음에는 노인을 냉정하게 본 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며 노인을 점점 화수분으로 생각하게 되며 결국 그를 죽게 만든 것이지.

용신은 이내 다 마신 컵을 휙휙 털고는 나타날 때처럼 갑자기 사라지게 하였고, 영의가 손에 들고 있던 컵을 가리켰다.

“아무튼,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전부다. 나머지는…… 그 아가씨한테 듣지 그래. 그리고, 그건 선물로 가져가라. 몸에 좋은 거니까 주변인한테 줘도 좋고.”

“잠깐, 아가씨라고요? 누구?”

갑작스러운 아가씨 발언에 영의는 그 인물이 누군지 물어보려 했다.

‘베키? 아니면 마교의 연화나 이상하던 할머니? 그것도 아니면 내 주변인 중에 있나?’

용신은 이곳에 나타날 때처럼 손을 휘저었고, 이내 모래사장과 해변이 있던 주변 풍경은 수풀이 우거진 거대한 숲으로 변했다.

“늘 너와 붙어 있는 아가씨 있잖아. 아직도 모르는 건가? 의외로 부끄럼을 타나 봐? 아, 그리고 몇몇 놈들을 조심해. 세계를 지키려는 관리자가 있는가 하면 심연에 집어넣거나 아예 지키지 못할 바에 스스로 멸망시키겠다며 부숴 버리려는 놈도 있으니까.”

용신은 그렇게 말한 뒤 칼라미트에게 다가가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좀 멀리 왔군. 가는 길에 이 녀석 타고 돌아가. 용의 등에는 가족이나 엄청난 친구 아니면 태워 줄 일이 없으니. 저 녀석 좀 태워 주고, 이거랑 또 이것저것 좀 챙겨 주고.”

자신을 살려 주고 치료까지 해 준 데다가 종족의 신이기까지 했으니 칼라미트는 용신의 말에 고개를 조아렸다.

“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용신은 나타날 때처럼 홀연히 허공으로 사라졌고, 둘만 남게 된 영의와 칼라미트.

“그…… 아직도 저 죽이실 건가요?”

“아니, 그럴 생각은…….”

서로 싸웠던 관계였지만, 명확하게 끝이 나지 않았던 둘은 매우 어색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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