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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188화 (188/325)

#제188화 (14)

회룡(灰龍). 본래 별다른 이명이 이전까지 없었던 드래곤인 칼라미트는 수면 중에 들리는 소음에 잠에서 살짝 깼다.

낙뢰로 인해 온몸의 가죽이 회색으로 변했었지만, 그동안 회복하여 본래의 색에 가까운 갈색으로 돌아온 눈꺼풀을 슬그머니 떴다.

‘뭐지……?’

소음이 들려오는 곳으로 귀를 기울여 보니, 이런저런 대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곳은 위대한…….”

“……비늘 손질…….”

대략적인 대화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늘 있던 비늘 손질 및 교체를 하러 온 난쟁이들이 입구의 경비병과 대화를 하는 듯했다.

‘……흐음.’

난쟁이들의 대화 소리 이외에도 그의 귀에 들려오는 여러 가지 소음의 정체와 주변 환경을 분석하기 시작하는 칼라미트.

‘……생각보다 습한데. 그리고, 작게 들려오는 소음들…… 환기구 바깥인가? 밖에 비가 오고 있나.’

뜻밖의 소음에 잠에서 깬 칼라미트였지만, 거의 늘 비바람이 몰아치는 모크레튼 산맥이었기에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다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칼라미트가 잠깐 잠에서 깼다가 다시 잠들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의 레어이자 전 모크란의 국고였던 거대한 금고로 들어오는 난쟁이 일행들이 있었다.

수레를 끌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소음을 최대한 줄여서 걸어 들어오는 난쟁이들.

크그그그긍-

그런 그들의 귀에 디젤엔진 수십 개가 동시에 최대 출력을 뿜어내고 있는 것과도 같은 큰 소리가 들렸으나 난쟁이들은 오히려 그런 소음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행이군, 코까지 고는 걸 봐서 깊게 잠든 듯하니.”

“애초에 수십 년이나 여기 틀어박혀 있었으면 자기 집이나 다름없겠지.”

난쟁이들은 고른 숨을 내쉬며 위아래로 조금씩 들썩이는 칼라미트의 몸체를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집주인이 누군지 알게 해 줘야지.”

“좋아, 작업 시작하자고!”

난쟁이들은 자재를 실은 수레에서 이런저런 작업 도구들을 꺼내어 챙겼고, 이내 다른 수레 하나에서 천에 감싸인 긴 막대 같은 것을 꺼내어 하나씩 챙겼다.

그런 다음 평소에도 자주 했다는 듯, 비늘 손질을 하는 작업을 위해 설치된 천장의 고리에 밧줄을 거는 난쟁이들.

그들은 그런 밧줄에 몸을 연결하고는 칼라미트의 몸체 위로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좋아, 모두들 자리를 잡게. 그리고 이제 나오시게나, 우리의 주인공이 등장할 시간이니.”

“준비됐소.”

“여기도 됐소.”

난쟁이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신호를 보내자, 그룬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윗부분을 덮어 가려 두었던 수레의 천을 걷어 냈다.

“자, 이제부터 자네의 시간일세.”

“후우…… 뭐부터 하면 될까요?”

수레 속에서 숨어 있던 영의가 바깥으로 나와 굳은 몸을 풀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며 그룬에게 자신의 역할을 질문했다.

“가죽 바로 위까지 뚫는 건 위험하니, 비늘을 적당한 두께까지만 뚫을 수 있도록 벼락으로 지져 주게. 대충…… 이 정도면 될 걸세.”

그룬은 영의에게 뚫어야 할 비늘의 두께를 설명하기 위해 주머니를 뒤지더니 작은 나무토막을 꺼내어 금을 그어 표시해 주었다.

“이 정도 길이라면 이해가 되겠나?”

대략적으로 영의의 검지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두께와 길이였다.

그리 길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 당장 방탄 차량의 차체에 사용되는 방탄재의 두께가 손가락의 두께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어지간한 탱크나 자주포의 장갑 수준이라 볼 수 있었다.

“좋아요, 그럼 시작하죠.”

“그래, 우선 이 밧줄과 벨트를 받고 벨트에 밧줄을……. 어어…….”

그룬은 영의에게 천장에 매달린 밧줄과 그것을 묶어 두기 위한 벨트를 함께 건네주며 장착을 도와주려 했으나, 영의가 그것을 받기도 전에 스스로 공중을 날아서 건너가는 것을 보자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네?”

“아니, 아닐세…….”

영의가 하늘을 나는 것을 본 난쟁이들은 모두가 놀랐지만, 지금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진행 중이었기에 호기심을 애써 억눌렀다.

영의는 가장 높은 곳, 칼라미트의 목 부분에 해당하는 곳으로 올라가 그곳에 있던 말리를 만났다.

“여기부터 하면 되나요?”

“그래, 부탁하네.”

말리가 가리킨 곳에는 검은색으로 X자 표시가 되어 있었고, 영의는 그곳에 검지손가락을 갖다 대고 뇌기를 분출하기 시작했다.

파슷.

두두둑, 두둑.

평소처럼 뇌기가 요란하게 튀어 오르지 않고, 영의의 손가락이 닿자 곧바로 변색되는 비늘.

변색된 비늘에 닿은 손가락은 마치 비늘이 두부처럼 보일 정도로 수월하게 파고 들어갔고, 말리는 그 광경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그걸 그렇게……?”

물론 회색으로 변색된 다음에는 쉽게 바스라지는 게 특징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던 말리였지만, 아무런 동작 없이 손가락을 갖다 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구멍이 뚫리는 광경은 상당히 놀라웠다.

“힘으로 누르는 거죠. 그냥 힘으로.”

영의는 지금 뇌기를 눈에 띄게 방출하는 것이 아닌, 손가락에 뇌기를 집중해 피부의 바로 위에 아주 옅게 막을 두르듯이 두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눈에 띄는 소리나 섬광은 없었지만 칼라미트의 비늘을 뚫기에는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고, 집중된 뇌기로 인해 강화된 손가락은 송곳처럼 비늘을 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비늘을 뚫는 데 소모된 시간은 대략 10초.

“이 정도면 될까요?”

영의는 비늘에 파고 들어가는 손가락이 두 번째 마디까지 다다르자 곧바로 비늘에서 뺀 뒤 말리에게 적합한지 물어보았다.

“훅, 후!”

말리는 비늘에 입으로 바람을 불어 가루를 날려 보낸 뒤, 내부를 살펴보기도 하고 손가락을 넣어 길이를 재 보기도 했다.

“충분하네. 이제 여기부터는 우리들이 가죽까지 잘 파내야겠지. 이제 다른 동지들을 도와주러 가보게.”

영의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말리는 이내 천에 감싸여 있던 막대를 꺼내었고, 거기에 감겨 있던 천을 풀어 영의가 뚫은 구멍에 갖다 대었다.

‘저건…… 드릴? 아니, 나사……?’

드릴의 끝부분이나 나사못처럼, 서로 연결이 가능할 것 같은 구조로 가공한 막대의 양 끝부분을 본 영의.

말리는 그 나사 모양의 막대를 영의가 뚫은 구멍에 가져다 댔고, 조심스럽게 돌려 가며 안쪽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평생 갈고닦은 손끝의 감각과 경험에 의지해야 하는 부분일세. 우리들만이 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일이니, 자네는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하게.”

영의는 이제 가도 된다는 말리의 말에 다른 난쟁이가 있는 곳으로 갔고, 말리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막대를 돌리기 시작했다.

“조심…… 조심…….”

드래곤의 비늘과 가죽의 틈. 양철판 하나 겨우 들어갈까 싶은 그 좁은 틈새에 막대들을 박아 넣는 게 난쟁이들의 역할이었다.

물론 가죽이 튼튼한 만큼 어지간한 충격이나 자극 정도로는 눈치채지 못할 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허용 범위였을 뿐이다.

“후우…… 숨이라도 조금 천천히 쉬면, 좋으련만.”

숨을 쉬기 때문에 조금씩 몸체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드래곤의 몸 위에서 긴장감과 공포를 안고 작업해야 하는 역할이니만큼, 말리 같은 베테랑들이 그 폭이 큰 위치에 배치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긴장감은 감출 수 없었는지, 이마에서 땀이 계속 흘러내렸다.

“아니지, 조금만 하면 되는 거지. 처음부터 뚫을 필요가 없어졌으니.”

영의의 도움 덕에 실질적으로 해야 할 작업량이 줄었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말리는 다시 조심스러운 손길로 작업에 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두에게 2시간과도 같은 20분이 지나자 난쟁이들은 각자 손을 들어 올리거나 작게 외쳐 신호를 보냈다.

“끝이네.”

“다 됐네.”

“여기도 끝났네.”

난쟁이들의 대답이 모든 방향에서 들려오자, 그룬은 고개를 끄덕인 뒤 천장에 뚫린 환기구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이쪽만 남았군. 마지막은…… 내 손으로 끝내야겠지.”

자신이 마지막이라고 말하고는 밧줄을 붙잡은 뒤 천장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는 그룬.

그의 허리춤에는 칼라미트의 비늘에 꽂아 넣은 철봉에 연결된 와이어들이 매달려 있었다.

난쟁이들은 서로 기대감과 불안감을 안고 아래에서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난쟁이들 특유의 다부진 힘과 체격 덕분에 그룬은 금방 천장까지 도달했고, 환기구의 안쪽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드르륵, 탁.

환기구의 안쪽에서 철봉이 바깥으로 빠져나왔고, 그룬은 그 철봉에 와이어들을 묶어 연결한 뒤 철봉을 다시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쳐다보는 영의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불안한 생각을 옆에 있는 난쟁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저 정도 굵기의 와이어…… 아니, 철사로 성공할까요.”

해 봐야 휴대폰 충전기의 전선 정도의 굵기에 불과한 와이어를 보며 불안해진 것이다.

계획의 설명을 들을 때에 외부의 번개를 유도해서 칼라미트에게 꽂아 넣는다는 건 들었었지만 그 과정에 저 정도로 가느다란 와이어를 사용할 줄은 몰랐었다.

“저 가느다란 게 벼락의 모든 힘을 다 전달하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잠깐 동안만큼은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을 걸세.”

“일반적인 철사와는 달리 가느다란 철사들을 잘 꼬아서 만든 특제 강철 로프니까 내구도는 확실하지.”

하지만 전기와 그 특성에 대해 알고 있는 영의와 달리 난쟁이들은 전기공학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오히려 통짜로 만드는 게 저렇게 가느다란 철사들을 엮어 만든 것보다 잘 버틸 텐데…….’

영의는 와이어가 번개가 흐르면서 발생하는 고열을 버텨 낼까 싶었지만, 난쟁이들이 특별히 신경 써서 만든 것이라 자부하자 상당한 고열에도 버틸 거라 판단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끝난 건가요?”

그룬이 모든 것을 끝내고 바닥으로 빠르게 내려와 착지하고는 밧줄을 묶어두는 벨트를 풀었다.

“그렇지. 번개가 치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아래에서 저 봉을 조작한다면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는 다른 동지들이 알 수 있도록 제작해 두었지.”

아래에서 와이어를 연결한 뒤 준비를 끝내 두면, 그 사실을 외부에서 눈치채고 번개를 유도하게 사전에 신경을 썼다고 말하는 그룬.

“이제 표시를 본 동지들이 쇠 나무를 작동시킬 걸세.”

“쇠 나무요?”

“그래, 쇠로 만든 나무. 벼락을 불러오는 저주받은 흉물이지만…… 지금만큼은, 그 어느 발명품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

그룬은 예전 모크란이 드래곤의 위협을 받지 않던 때에 만들어져 팔려 나간 실물 크기의 강철제 조형물 중 나무 모양을 한 조형물이 유독 벼락을 자주 맞는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피뢰침을 개발하게 된 난쟁이들은 그것에 대해 탐구하는 대신, ‘쇠로 된 나무에는 벼락이 꽂힌다’라는 사실 하나만을 알아내고 나무 모양 조형물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지하에 살아 번개를 맞을 일이 없었고, 그 때문에 번개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그 옛 선조들의 행동이 그들을 돕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그런데, 그게 됐을지 안 됐을지는 어떻게 알죠?”

연결되는 것을 확인하는 것과 번개가 치는 것, 그 두 사건이 일어나는 사이에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기다려 보게. 쇠 나무도 작지는 않으니, 그게 연결된다면 상당히 큰 소리가 환기구를 통해 울릴 걸세.”

그룬의 대답 이후, 환기구 안쪽에서 큰 철제 구조물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터엉!

“연결이 됐나 보군. 그럼 이제 어서 나가세! 경비 녀석들은 절대 이곳을 들여다보지 않으니! 자, 빨리 타도록 하게!”

지금 바깥에서는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고 있었으므로, 번개가 지금 바로 내리꽂혀도 이상할 게 없었다.

난쟁이들은 진작에 떠날 준비를 모두 끝내고 있었고, 영의만이 수레에 숨기만 하면 되는 상황.

“네, 먼저들 가세요.”

영의는 다른 난쟁이들을 먼저 보내라는 듯 손짓을 하고는 수레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둘러 나가야 한다는 걸 익히 아는 난쟁이들 또한 영의의 손짓을 보기도 전에 수레를 끌고 출구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그렇게 영의가 수레에 몸을 숨기고 그룬이 그 위로 천을 덮으려 한 그 순간, 모크레튼 산맥의 위로 거대한 번개가 내리꽂혔다.

평소였다면 바위를 때리고 끝났을 번개였지만, 전기가 잘 통하는 금속, 심지어 길이까지 상당한 난쟁이들의 쇠 나무가 그 번개를 끌어들였다.

빛과도 같은 속도를 자랑하는 번개는 환기구 내부에 이리저리 휘어 있지만 접지되어 있지 않은 철근을 따라 흘러내렸고, 그것은 이내 와이어를 타고 칼라미트의 비늘 속, 연약한 가죽에 내리꽂혔다.

빠지직, 빠직-

영의가 평소에 약하게 뿜어내는 것과 달리, 정말 자연에서 가져온 번개는 무자비하고도 폭력적이었다.

그리고 그 무자비한 폭력을 몸으로 받아 내고 있는 칼라미트.

“그오오오오오오!”

칼라미트는 자는 동안 갑자기 몸에 내리꽂힌 번개에 뭐라 반응하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고 있었다.

번개가 곧바로 내려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난쟁이들이었지만, 칼라미트에게 와이어가 연결되어 있는 이상 자신들이 맞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좋아!”

“그대로 튀겨 버려라!”

난쟁이들이 몸부림치는 칼라미트를 보며 환호성과 승리의 예감을 만끽하고 있을 때, 천장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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