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7화 (13)
모크레튼 산맥의 지하 도시, 모크란의 제3공방.
텅, 텅.
평상시에 쇠와 쇠가 부딪치는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하던 이곳은 지금, 여전히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로 가득했다.
챙, 챙.
다만, 그것이 달궈진 쇠와 망치가 부딪치는 소리가 아닌 숟가락과 쇠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였지만.
“크으, 흐어어.”
“커어어.”
“으어, 시원~하다!”
수많은 난쟁이들이 각자 다른 모양의 쇠 그릇을 들고 뭔가를 열심히 먹고 있었고, 그릇에 담긴 것은 붉은 국물에 잠겨 슬쩍 흰 모습과 노란 머리를 드러내고 있는 콩나물이었다.
그리고 그 콩나물을 재료로 한 요리…… 콩나물국밥을 난쟁이들에게 만들어 대접했던 요리사 영의는 국밥을 먹는 그들의 반응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도대체 왜 전부 다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거지……?”
어떻게 된 게 난쟁이들이 국밥을 먹고 하나같이 전부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속이 뚫린다거나 시원하다거나 하는 말을 안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꼭 국물을 마시고 나서 형언할 수 없는 감탄의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거야, 전부 다 같은 식생활을 해 온 친구들이니 그렇지. 우리 난쟁이들은 대부분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생활을 하며 살아가네. 특기 분야나 개인적 취미 활동이야 제각각이지만, 다른 건 거의 같으니.”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해서는 콩나물국밥이 나오기 바쁘게 가장 먼저 먹어 치운 그룬이 영의의 옆에서 답해 주었다.
“그렇군요…….”
‘그래서 우리 가족이 뭔가 먹고 싶어졌을 때 음식 통일이 잘되는 거였나? 다 똑같은 것만 먹고 살아서?’
자신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대부분 비슷한 것만 먹고 살았다면 새로운 먹거리에 대해 거의 동일하게 반응하는 것도 나름 말이 된다고 생각하고는 납득한 영의.
영의가 나름 납득 가는 해답에 만족하고 있을 때, 그룬이 재료로 쓰다가 남은 콩나물 한 가닥을 들고 영의에게 질문을 해 왔다.
“그보다, 이건 야채…… 아무튼 식용 식물이 맞지 않나?”
난쟁이들 특유의 호기심 탓인지 새로운 형태의 야채를 보자 흥미가 생긴 듯한 그룬.
“그렇죠.”
“그런데, 왜 푸르지 않지? 내 말은, 식물이라 함은 대부분 녹색이 아니던가. 과일들도 제대로 익기 전에는 녹색을 띠는 게 많다고 들었네.”
그룬은 살아온 세월과 지위 덕분에 제법 아는 게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색이 아닌 식물은 처음 보는 듯했다.
“……흠, 그건 빛 없이 키워서 그래요. 아니…… 오히려 빛이 있으면 키우는 데 문제가 생기는 나물…… 아니, 식물이라.”
영의는 문득 콩나물을 채소라고 해야 하나 나물이라고 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지만, 그냥 식물이라는 포괄적인 단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빛 없이 키워도 된다라? 그 얘기 좀 자세히 해 주게.”
난쟁이들이 국을 끓인 솥을 이리저리 왕복하며 국밥을 추가로 먹느라 정신이 팔린 와중에, 영의는 그룬에게 콩나물에 대해서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키워야 한다는 것과, 흙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익히지 않고 먹으면 맛이 좀 없을 수 있다는 주의점까지.
“아, 그리고 맛없는 게 아니라 먹고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서 그래요.”
영의도 이 정보들은 대부분 시장에서 콩나물을 팔던 할머니에게 들은 말이었다.
그룬이 국밥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는 걸 봤던 영의가 자신도 직접 만들어 먹기 위해 식재료를 구했고, 그 과정 중 시장에서 만난 할머니가 그를 보며 조언해 주었다.
‘아이구~ 젊은 총각이 콩나물은 왜 사?’
‘어…… 국 해 먹으려고요.’
‘국은 중요하지, 혼자 사는데도 국을 끓여 먹네! 아주 장해! 총각, 근데 이건 거의 나물용이야. 국이나 찜에 쓸 건 더 굵은 거로 해야 해.’
‘네? 그런 게 따로 있어요?’
‘아이구, 요리는 잘 모르나 보네. 몇 개 얘기해 줄 테니까 듣고 가.’
할머니의 조언은 매우 적절하고 알찬 조언이었고, 그 조언 덕분에 영의가 제법 성공적인 콩나물국밥을 난쟁이들에게 대접할 수 있었다.
“……맛이 없는 건 괜찮네. 영양분만 좋다면……. 아니, 적어도 이 아삭한 식감만 있다면 만족스럽네.”
그룬은 야채 특유의 아삭한 식감을 매우 좋아했고, 그 때문에 콩나물국밥에 들어간 콩나물이 상당히 마음에 든 듯 보였다.
“본래 혼자서 야채를 먹는 건 매우 욕심 많은 행위이기에 나눠 먹을 용도로 자르거나 끓이지만…… 이런 게 많이 있다면, 혼자서 먹어도 되겠지.”
“흐음, 네.”
영의는 문득 난쟁이들에게 콩나물 재배에 대한걸 알려 주는 게 역사 변형의 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알림아, 이건 몇 급 역사 변형이야? 문제가 될까?’
[역사 변형에는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이미 모크란의 난쟁이들은 지하에서 재배하는 버섯이 있고, 몇몇 난쟁이들은 지상을 왕래하며 식물을 재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아저씨는 모르는 것 같던데?’
이미 모크란 내부에서 누군가가 성공적으로 식물을 재배하고 있다면 야채를 못 먹지는 않을 것 아닌가.
하지만 알림이는 그것에 대해서도 대답해 주었다.
[한 개인의 텃밭이나 화단에 가까운 규모에서 산출된 양은 시장에 유통하기엔 터무니없이 적습니다. 다만 콩나물이란 것은 토양이 없어도 재배할 수 있으니…… 발상에 영감을 주었다는 정도이니만큼 4급에서 끝날 겁니다.]
‘하긴…… 화단 하나에 키워 봐야 누구 코에 붙이겠어?’
영의는 알림이의 설명에 초등학교 시절, 학교 화단에 키우던 방울토마토를 떠올렸다.
분명히 열매가 열리긴 하지만, 그걸 관리한 사람이 먹어도 부족할 것이 틀림없는 양이었다.
‘그래서, 결국 콩나물이 키워지는 미래 자체는 있었다는 거지?’
[맞습니다. 다만, 그 요리법이나 취급법은 없었지만…… 사용자의 이름이 이곳의 역사에 남을 일은 없습니다.]
영의는 역사 변형에 대해서도 안전한 범위를 보장받자 안심했다.
“일단, 모든 게 끝나면 자네의 말대로 콩을 한번 들여와서 키워 봐야겠네.”
그룬은 영의가 해 준 말을 제대로 실천해 보려는 듯 보였고, 영의는 그런 그를 응원해 주기로 했다.
“네, 잘됐으면 좋겠네요. 콩나물 재배도, 용을 쫓아내는 것도.”
“그래…… 잘되어야겠지.”
이제 솥에 든 콩나물국도 대부분 없어졌고, 배를 채운 난쟁이들도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는지 하나둘 비장한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아, 그럼 슬슬 가자고. 모크란을 구하러.”
난쟁이들 중 가장 열심히 국밥을 먹었고 동시에 그룬 다음으로 먼저 자리에서 일어선 말리가 식사 전 급조한 쇠 그릇을 용광로에 던져 넣었다.
“다 살아서 돌아오면, 이 쇳물은 다시 그릇이 될 테고…… 누구 하나라도 죽으면, 이건 묘비가 된다. 나는 다시 이걸 그릇으로 만들어서 방금 먹은 식사를 또 할 것이다.”
말리의 죽음에 대한 각오와 살아 돌아오겠다는 의지가 드러나는 말에, 다른 난쟁이들도 자신이 먹던 그릇을 하나둘씩 모아 용광로에 던져 넣었다.
“좋은 생각이군. 쇠로 묘비를 만드는 악취미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지.”
“너무 급하게 만들어서 만듦새가 영 별로였는데, 다시 그릇으로 만들면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 보겠네.”
그렇게 각자의 생각과 함께 용광로에는 쇠 그릇들이 던져졌고, 다행히 국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긁어 먹었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이 솥이 마지막인가?”
그룬은 솥 안에 그릇을 던져 넣은 뒤 그 솥을 들고 용광로 앞에 섰다.
“……이 솥을, 이 쇠를 다시 두들길 때가 오기를.”
용광로 안에 솥과 그릇을 던져 넣는 그룬.
그렇게 모든 난쟁이들이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 각자의 도구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영의는 끓어오르고 있는 용광로의 앞으로 다가갔다.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던질 쇠도 없었고, 잘못해서 다른 금속이 섞이면 문제가 생길 것만 같은 마음에 영의는 뭔가를 던져 넣지는 않았지만 앞서 염원과 각오를 다짐한 난쟁이들을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들의 각오에 희망과 힘이 조금이라도 더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솔직히, 나랑 관계도 없고 무슨 일이 있어도 별 지장이 없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자기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인데 응원은 해 줄 수 있잖아.’
영의가 그렇게 생각하며 용광로를 쳐다보았을 때,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용광로 안의 빛이 더 환하게 빛나는 듯 보였다.
“이보게, 어서 나와서 이 수레 안에 숨게! 자네 키는 너무 커서 정체를 숨기기 어려우니 말일세.”
“아, 네.”
다른 수레들과 달리, 날카롭거나 위험하지 않은 자재들이 들어 있고 공간이 제법 비어 있는 수레에 들어가 숨는 영의.
영의가 수레에 들어간 뒤 그걸 가리기 위한 천을 덮자, 그룬을 비롯한 다른 난쟁이들이 그것을 끌고 공방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후우…… 긴장되는군. 안 그래?”
“아무리 연습하고 경험이 있어도…… 언제나 쇠를 만질 때는 처음 망치를 잡았을 때처럼 두근거리는 법이지, 지금과 같이 말이야.”
“그거 맞는 말이군그래.”
난쟁이들은 실수하면 모두가, 자신들뿐만 아니라 모크란의 난쟁이들과 가족들까지 위험할 수 있음에도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맛있는 식사로 기분이 제법 좋아진 것도 있겠지만, 쇠 그릇들을 던져 넣으며 했던 다짐들이 그들의 마음을 굳세게 만들어 준 것이다.
공방을 나서 모크란 내부의 통로들을 가로질러 갈 때, 그룬이 수레 쪽으로 다가와 천을 살짝 들춘 후 작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천을 더 싸매겠네. 들키지 않기 위함도 있지만…… 자네가 봤다가 소리를 지를 법한 것들도 있어서 말일세.”
그룬의 말에 영의는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그룬은 수레의 위에 천을 덮은 뒤 그것을 마차의 모서리에 끈으로 묶었다.
그렇게 이리저리 흔들리는 수레 안에서 얌전히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영의.
위험하지 않다고 해도 금속으로 된 자재들이 있었기에 종종 그의 몸과 자재들이 부딪치고는 했으나 그 정도 고통으로는 영의에게서 비명을 이끌어 낼 수 없었다.
약 10분여가 지나자, 수레가 멈추었다.
주변에서 함께 걸어가던 발걸음 소리도 멈춘 것으로 보아, 잠깐 멈칫하거나 한 게 아니라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의는 수레 속에서, 누군가의 외침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멈춰라! 용무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작게 툴툴거리며 답하는 말리의 목소리.
“거 알면서 매번 귀찮게 묻기는…….”
“다른 곳이라면 자네의 그런 주장이 받아들여졌겠지만, 이곳은 위대한 칼라미트 님의 거처이다.”
“그래, 비늘 손질 및 환기구 공사요. 됐소?”
말리는 일부러 놀리려는 듯이 비꼬는 듯한 목소리와 귀찮다는 듯한 목소리의 중간쯤 되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지, 위대하신 칼라미트 님의 비늘 손질 및 레어의 환기구 공사다. 똑바로 말하도록.”
“거참, 우리 같은 기술직들은 업무 내용이랑 과정만 중요하지 다른 건 중요하지 않소만.”
말리가 계속 불평스러운 듯이 이야기하자, 입구를 지키는 경비로 추정되는 목소리는 그들을 빨리 통과시키려는 듯 들어가라고 재촉했다.
“말이 길어지는군. 빨리 들어가라!”
“입구를 열어 줘야 들어가지.”
그극, 그그극-
무거운 것이 끌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드넓은 지하에서 메아리쳐 더더욱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건물이 붕괴하는 것과도 비슷한 소리가 날 때쯤, 문 열리는 소리가 멈추었고 이내 메아리도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오늘 비가 많이 오니, 환기구 작업을 할 때는 물이 새지 않게끔 주의하도록.”
경비가 경고하듯이 주의 사항을 얘기해 주었으나, 그룬과 난쟁이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룬과 영의를 포함한 난쟁이 결사대는, 난쟁이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결전의 장소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