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5화 (11)
알림이는 우선 역사 변형에 대해 그 개념과 간단한 예시를 들어 설명해 주었다.
[역사 변형은 모두 차원을 이동하는 자들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그것은 대부분 일종의 자연적 변수로 허용됩니다.]
“……무슨 뜻이야?”
[보다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자면, 본래 일어났어야 할 역사가 타 차원의 존재로 인해 변경되는 경우입니다.]
[예시를 들어 드리자면, 개체명 독고휘와 개체명 혁련무강의 만남은 본디 존재하는 미래였으나, 사용자의 개입으로 인해 그 시기가 앞당겨졌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독고휘와 혁련무강은 상당히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생기지만, 영의가 배달을 하며 둘이 만나는 시기가 앞당겨졌다는 것이다.
영의는 그 모든 과정에서 알림이가 그를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배달로 그것을 유도한 것으로 보아, 그 정도의 변형은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원래 있어야 할 사건에 약간의 변화가 생기는 정도는 허용된다고?”
[맞습니다. 본디 있어야 할 사건에 개입하되, 그 흐름이 바뀌지 않는 정도는 4급 역사 변형입니다.]
“그럼 3급은?”
분명히 예전에 3급까지는 허용이 된다고 들었던 영의.
4급이 알림이가 주로 권장(?)하는 행동의 결과물이라면, 허용까지만 되고 권장은 하지 않는 3급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졌다.
[3급은, 역사적 사건에 존재를 드러내어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사용자의 경우가 가장 적합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직접 영향을 끼친다……라. 근데 독고휘 영감님이 반로환동하거나 한 건 내가 원인인데, 그것도 3급 아냐?”
[본디 개체명 독고휘는 보다 상위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모두 끝나 있던 상태였습니다. 다만 그 시기를 사용자가 조금 앞당긴 것뿐입니다.]
알림이는 실제 존재하는 인물의 내면, 그것도 생각이나 가치관에 변화를 주는 것은 모두 4급에 해당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해당 차원의 인간들이 스스로 역사를 개편해 나가게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4급입니다.]
타 차원의 간섭만 없다면 어디까지나 정상 범주라고 하자, 영의는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면 누구 한 명을 세뇌해서 희대의 대악당을 만들거나 하더라도 4급이라고?”
인간들끼리만 역사를 만들어 내게 한다면, 그 인간을 누군가의 입맛대로 바꿔서 큰 파장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서 떠오른 의문이었다.
[맞습니다. 세뇌당한 인간은 본디 있었어야 할 대형 범죄자의 자리를 대체하고 그 시기가 조정됩니다.]
결국 뭘 어떻게 하더라도 직접적인 개입이 없다면 본래 역사의 흐름과 비슷하게 흘러가게 된다고 말한 알림이.
“그러면, 3급은 어떤 거야?”
[3급에 대한 예시를 들자면…… 개체명 베키가 겪은 일에 대해 설명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 본래 타 차원에 속한 이가 벌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영의보다 이전의 인물이 일으켰던, 발렌타인 갱단의 본거지 몰살에 대한 이야기가 3급인 듯했다.
[본래 그 도시의 지배 세력으로 남았어야 할 발렌타인 갱이었습니다만, 의도치 않은 개입으로 인해 발생한 3급 역사 변형입니다. 그 때문에 관련자들의 기억 또한 조작해야 했습니다.]
관련된 사람들의 기억을 모두 바꾸었지만, 베키에게는 물증이라고 할 만한 수첩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지우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기억이나 마음에는 관여를 해도, 직접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 대충 알겠네.”
영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평소처럼 음식 배달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건 역사에 안 남는다는 거지? 촉진은 해도, 결정적인 원인까지는 안 된다는 거고.’
어쩌면 베키도 영의가 구해 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있던 것이다.
‘하지만 굳이 나를 동원한다거나 하는 건…… 아마 조금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작업인 건가?’
베키를 늦게 구한다거나, 지연을 늦게 구했다거나 했다면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겠지만 상처를 입었다든가 신체에 이상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3급이라……. 언젠가의 미래의 내가 비무대회에 참여 안 한 이유가 이건가?’
직접적으로 역사에 개입하는 등장인물이 되는 것이 3급이지만, 무림에서는 그 범위가 넓은 듯 보였다.
‘은거기인이 한두 명 있는 세계가 아니니까.’
지구의 현대처럼 사람이 중간에 증발하는 것이 큰 의문이자 화제로 남는 것과 달리, 무림은 은거한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면 모두 납득하는 세상이었으니까.
“그래…… 대충 알겠네. 그럼 2급은 뭐야?”
[2급은,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인물에게 변수를 창출하여 역사를 뒤트는 행위입니다.]
“……뭐?”
인물에 영향을 끼치는 건 대부분 4급이라고 생각하던 영의는 그 말에 잠시 당황했다.
[사용자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이를테면, 주인공과도 같은 인물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행위를 2급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희망과도 같은 인물을 암살하거나 중대한 선택을 바꾸는 등의 행위입니다.]
영의는 쉽게 설명해 준 알림이의 비유에 금방 이해했다.
“그러니까, 개입하는 건 좋은데 주인공처럼 중요한 사람에게 개입해서 입맛대로 바꾸지 말라는 거지?”
확실히, 주인공이 세계를 구해야 하는데 갑자기 암살을 당한다거나 세계를 구하는 대신 다 같이 파멸을 맞이하자고 하면 문제가 커진다.
알림이는 영의의 말을 긍정해 주는 동시에, 상당히 충격적인 사실을 들려주었다.
[맞습니다. 사용자가 주시하고 있는 개체명 혁련운이 바로 그 대상 중 하나입니다.]
물론 주인공처럼 재능도 사기적이고, 비극적인 운명과 이런저런 사연이 있긴 했지만 영의의 주변에 그런 인물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 굳이 딱 한 명, 무공에 큰 관심도 없는 혁련운이 주인공이라니.
“혁련운이……?”
[……미래를 알려 드리면 안 되지만, 작은 힌트 정도까지는 문제가 없겠지요. 혁련운은 미래에 마교의 구심점이 되어 차원에 닥친 위기를 구원할 인물이 됩니다. 그리고 그 수명으로 인해 금방 생을 마감하는, 말 그대로 불꽃같이 살다 갈 인물입니다.]
그 말을 들은 영의는 화연을 구하러 들어갔던 게이트에서 만난 늙은 우형이 해 주었던 말이 기억났다.
‘천마 영감님이 죽고, 마교는 분열되었다고 했었지…….’
아마 혁련무강 사후에 마교를 규합하고 이끌어 가는 것이 혁련운이 될 운명인 듯 보였다.
영의는 이제 더 이상 뭔가를 알아낼 필요는 없을 거라 판단했다.
‘뭔가 낌새가 이상하면 알림이가 알려 줄 거고, 나도 다른 세계에서 주인공 짓을 할 생각은 별로 없으니까.’
물론 비무대회에서 무공을 구경할 마음은 있었지만, 거긴 몸을 숨기기 쉬우니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보다 주인공을 죽이거나 하는 게 2급이라면 대체 1급은 뭐야?”
역사 변형 2급이 주인공을 죽여서 본래 있어야 할 역사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거라면, 1급은 도대체 정체가 뭘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1급에 대해서는 지금 알려 드리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만…….]
알림이는 1급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주저되는지, 아니면 영의 본인이 그러한 권한이 없는 것인지 잠시 대답을 미루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말을 하기 시작하는 알림이.
[그러나 법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법을 지키는 법이라 했던가요? 알려 드리겠습니다. 1급 역사 변형은…… 역사를 뒤트는 것이 아닌, 소멸시키는 행위입니다.]
“뭐?”
알림이의 말에 영의는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역사를 없앤다니? 역사를 기억할 사람도 없이 다 싸잡아 죽인다는 건가?’
[사용자는 이미 보셨을 겁니다. 1급 역사 변형이 일어난 차원을…… 정확히는, 그 미래의 편린을.]
“편린……? 아니, 미래? 설마 그 이상한 세계?”
[맞습니다.]
영의는 늙은 우형을 만났던 그 게이트가 미래가 맞으며, 1급 역사 변형이 일어난 잔재라는 말에 놀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어야 그렇게 되는 거야……?”
[사용자의 세계에서 게이트라고 부르는, 타 차원과의 접점을 상호작용 없이 방치한 결과입니다. 정확히는 일방적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해야겠지요.]
알림이는 그 말을 하며 영의의 눈앞에 예시로 들기 위한 용도의 그림을 하나 비춰 주기 시작했다.
[알기 쉬운 예로, 이 두 개의 구체가 각 차원이라고 예를 들도록 하겠습니다.]
빨간색과 파란색을 가진 두 개의 구체가 있고, 그 두 구체는 서로 맞닿아 있었다.
[본래 차원 간의 상호작용은 말 그대로 서로 간에 작용이 생깁니다. 사용자의 세계에서는 인간들의 ‘각성’과 양 세계 간 왕래가 해당됩니다.]
구체가 맞닿은 부분에서는 양 구체의 색이 서로 조금씩 섞이기 시작했고, 이내 보라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는 구체의 접촉면.
“……그 이야기 좀, 자세히 해줘 봐.”
영의는 알림이에게 더 많은 설명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 * *
마교, 마의각.
병이나 부상의 치료와 환자의 요양을 위한 의약당이 따로 마련되어 있으나, 마의각은 그런 일반적인 기능을 하는 곳이 아니었다.
주변에 이리저리 널려 있는 핏자국이나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날붙이와 도구들을 비롯한 섬뜩한 내부의 모습은 사람을 살리기보다는 죽이는 데에 더욱 어울릴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마의각의 한구석에서, 한 청년이 환단을 만들고 있었다.
“……후우, 쉽지가 않구나.”
혁련운은 환단을 만들면서도 한숨을 쉬고 있었는데, 그것은 이 환단이 어디에 사용될지 알기 때문이었다.
‘내가 스스로 먹을 산공독을 직접 만들고 해독제도 만들어서 먹어야 한다니…….’
흔히 산공독은 비밀리에 먹여야 하는 물품이기에 가루나 향, 또는 액체인 경우가 많지만 이 경우에는 은밀함이 필요 없었으니 보관과 섭취가 용이하도록 환단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숨을 쉬며 다섯 개째의 환단을 만들고 있을 때, 그의 귓가로 전음이 들려왔다.
-애송아, 어째 잘 안 되어 가느냐? 젊은 놈이 벌써 한숨이나 푹푹 쉬고 있구나.
“아닙니다, 스승님.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이래서야 언제 비무대회에 나갈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귀인…… 영의에게 전해 들은 말이 있었고, 그에게서 맞으며 깨달은 것 또한 있었기에 혁련운은 영의가 다시 한번 이곳을 찾아왔을 때 자랑스럽게 보여 줄 것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곧 있을 비무대회의 성적.
하지만 지닌 재능은 엄청나더라도 그것을 연마하지 않았기에, 혁련운이 다시 무공을 시작하기에는 상당한 고통과 노력이 수반되었다.
‘굳은 몸이 문제구나.’
육체의 단련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뻣뻣하게 굳어 버린 몸을 본 그의 스승 백천정은 한숨까지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없다. 두 배의 시간을 들이면 되는 법이니.’
‘예?’
‘본녀가 만든,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약이 있느니라. 부작용은…… 젊으니까 어떻게든 하거라.’
‘예?’
하지만 마의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게 아닌 백천정은 혁련운에게 수많은 약물을 주입시키며 효율과 활동 시간을 늘렸다.
‘자, 이 약을 먹어 보거라.’
‘오오, 힘이 넘칩니다! 영약입니까, 스승님?’
‘아니, 수명을 갉아먹는 약이다. 수라대에 지급하는 건데…… 애송이 너는 수명 일 년이 중요하냐, 무공을 한 달이라도 빠르게 증진시키는 게 중요하냐?’
‘……더 없습니까? 더 먹겠습니다.’
그렇게 단련하기를 이 주, 혁련운의 압도적인 재능과 몸을 혹사하는 약물 투여로 어느새 연화와의 비무에서도 동수를 이룰 정도까지 성장했다.
‘귀인에게 보여 줄 것이다, 내가 이 정도까지 성장했노라고. 그리고, 아버님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영의로 인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