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4화 (10)
그룬과 함께하는 드래곤 레이드(?)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이틀.
영의는 그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것저것 밀린 일들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보자, 일단은…….”
호엔하임에게 찾아가서 약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
사실, 일전에 호엔하임을 만났을 때 그가 가지고 있는 병이 한두 개가 아닌 것으로 보아 연금술 지식보다 병에 대한 지식이 더욱 해박할 거라 생각했던 영의.
그는 호엔하임의 세계에서 돌아오기 전에 그에게 하나의 질문을 했었다.
“30살 전후로 몸이 굳어 가며 죽는 병이라…….”
“네, 혹시 아시는가 해서 말이죠.”
“알지. 그것도 아주 잘.”
혹시나 싶어 물어본 것이었지만 호엔하임이 안다는 대답을 들려주자 영의는 놀랐다.
‘어, 진짜 아네? 알림이가 찾아가 보라고 한 이유가 있었던 건가…….’
혁련운에게 모질게 대하기도 했고, 조금 상처가 될 말을 하고 왔었기에 약간 미안한 마음이 생긴 영의였기에 한번 알아나 볼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만…….
‘이렇게 바로 해결될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영의가 놀라고 있을 때, 호엔하임은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한 영의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건가? 자네가 병을 앓고 있는 것 같지는 않네만.”
“그게, 지인이라고 해야 하나…… 아는 영감님네 아들이 그런 병에 걸려서 말이죠.”
호엔하임은 지인이 그러한 병에 걸렸다고 말하는 영의의 대답에, 눈을 번뜩이며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 얘기 좀, 자세히 들려주게.”
“어어, 네……에.”
호엔하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뜻밖의 패기에 잠시 당황한 영의였지만, 이내 침착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집안 대대로 그런 병이 유전되어 내려왔다는 것과, 그것에 대한 보상인지는 몰라도 모두가 특정 분야에서 천재성을 띠고 있다는 것.
“……그렇게, 죽는다는 걸 알아서인지 무기력하게 살더라고요.”
그리고 대부분 30살쯤에 단명했다는 것까지 설명을 한 영의.
호엔하임은 그 설명을 듣고는 잠시 고민하는 듯 턱을 짚었다.
“흐음…… 몇몇 부분은 다른 것도 같지만…… 확실히 유사성은 있는 것 같군. 치료제를 만들 수도 있겠어.”
“아, 가능한 건가요?”
“그래, 혹시 모르니 나중에 병이 있다는 그 친구의 피라든가…… 머리카락 같은 것 좀 가져다주게. 약물이 가끔…… 아주, 아아아주 가끔 부작용을 일으키거든.”
호엔하임은 괜히 듣는 사람의 마음이 불안해지게 아주 가끔이란 말을 덧붙이며 부작용이 있다는 말을 했지만, 영의는 본인이 먹을 것도 아니고 아주 가끔이란 말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럼, 그런 걸로 알고…… 일단 가 볼게요.”
“그래. 가는 길 조심히 가도록 하게.”
그렇게 호엔하임에게 약의 제조를 의뢰한 뒤, 지금 경과를 보기 위해 그의 집 앞으로 온 것이다.
물론, 빈손으로 온 건 아니었다.
탕탕탕!
한 손에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들고 호엔하임 저택의 문을 두드리는 영의.
“아저씨, 계세요?”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이상하네. 독촉장 같은 게 없는 거로 봐서 일단 있긴 하단 건데.”
그의 집 앞에 쌓인 우편물이 없었기에, 영의는 호엔하임이 집 안에 있을 거라 확신했다.
결국 누군가를 찾거나 알아내는 데에 가장 좋은 방법, 알림이에게 부탁하기를 사용하는 영의.
“알림아, 내비게이션 좀 켜 줘. 딴 데 있는 거 아냐?”
[개체명 호엔하임에게로 안내합니다.]
그의 눈앞으로 반투명한 화살표가 떠올랐고, 화살표는 저택의 뒤편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아, 대체 뭐야?”
화살표를 따라 이동하자, 그곳에는 지하실로 통하는 것 같은 문이 하나 있었다.
‘……이거 영화에서 많이 봤는데.’
흔히 외국에서 집 내부에서 계단으로 내려가는 것 말고 따로 만들어 둔 지하실용 출입구와도 같은, 비스듬한 각도로 만들어진 문.
“……열려 있네.”
문에는 잠금장치가 걸려 있지 않았고, 영의는 그것을 열고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알림아, 혹시 나한테 뭐라고 하진 않겠지?”
그 이전까지 그런 걸 걱정한 적이 거의 없었지만 혹여나 호엔하임이 무단으로 들어온 것에 대해 타박할까 봐 걱정한 영의.
[괜찮습니다. 책임은 보안을 소홀히 한 개체명 호엔하임에게 있으므로 사용자에게 책임을 묻기는 힘들 겁니다.]
알림이는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 영의에게 안심이 되는 말을 해 주었다.
“그래…….”
그렇게 지하실로 내려가 내부를 둘러보자, 이곳저곳에 다양한 색과 크기의 유리병들과 그것을 보관해 둔 선반이 보였다.
“오…….”
연금술사의 결과물이란 사실에 잠시 흥미가 동한 영의가 그것을 가까이서 살펴보았지만, 의미를 알 수는 없었다.
[21번-8번-4번]
[7번-11번-2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네.”
몇 번 용액이라거나 몇 번 시약이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저렇게 3개를 연달아 적어 둔 건 무슨 의미인지 몰랐기에 다시 호엔하임을 찾는 것에 관심을 돌렸다.
그리고 그때, 지하실의 저 너머에서 누군가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이야! 하하하! 성공이다!”
호엔하임의 목소리를 들은 영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 저기 있네. 아저씨!”
일라이저의 친구이니만큼 나이도 만만찮겠지만, 약물 덕분인지 몰라도 중년의 외모를 하고 있는 호엔하임에게는 차마 영감님이란 말을 붙일 수 없었던 영의였다.
“음? 아아, 자네로군. 여기엔 어쩐 일인가?”
영의는 호엔하임의 질문에 답할 말을 고르다가 베키에게도 방문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그녀의 이름을 대기로 했다.
“여러 가지 있긴 하지만…… 베키의 주문은 어떻게 됐나요?”
“으음? 그래, 자네는 그 말괄량이와 친구라고 했지.”
“아하하, 말괄량이…… 네. 맞긴 하죠…… 많이…….”
말괄량이와 미치광이 사이에서 미치광이 쪽에 더 가까운 베키였지만, 호엔하임의 입장에서는 베키가 말괄량이 정도로 보이는 듯했다.
“걱정 말게. 얼마 전에 다 끝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그때 떠올린 발상을 곧바로 실험 중이라네.”
영의는 호엔하임의 말에 그가 방금까지 붙잡고 있던 결과물을 슬쩍 살펴보았고, 거기에는 희미하게 형광빛으로 빛나는 금속이 있었다.
‘방사능……?!’
순간적으로 형광색 빛은 위험하다는 직감에 뒤로 물러선 영의.
그것을 본 호엔하임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미소 지었다.
“하하, 자네도 빛나는 돌이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나 보군. 하지만 이건 색만 비슷하지 별다른 위험은 없네. 이미 실험도 끝마쳤으니.”
호엔하임은 연금술사답게, 방사능 물질도 다뤄 본 적이 있는지 안전하다며 영의를 안심시켰다.
“흐음…….”
“아, 그래. 이 물건의 목적을 말해 주면 더 안심되겠군. 그저 가만히만 있어도 빛이 나는 금속을 만들어 내려 했네. 색깔은…… 아직 제대로 조절하기가 힘들지만.”
호엔하임은 자체적으로 빛이 나오는 금속을 만들기 위해 이 실험을 했다고 말했고, 그 말이 나오자마자 형광빛으로 빛나던 금속은 붉은색을 내뿜기 시작했다.
“흐음, 성공이라 생각했는데…….”
색이 변하자 품에서 수첩을 꺼낸 뒤 뭔가를 적은 뒤 금속을 옆으로 치우는 호엔하임.
철그럭.
바닥에는 그 이전에 실패한 금속들로 보이는 것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래, 자네 친구인 베키의 주문은 진작에 다 했는데…… 뭔가 필요한 게 있나?”
호엔하임은 손수건을 꺼내어 손을 닦고는 걷어 뒀던 소매를 다시 내리는 등, 실험을 정리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음…… 전에 얘기했던 약 말인데요.”
“아, 그래. 우선 올라가서 이야기하지.”
그렇게 저택의 응접실로 간 호엔하임과 영의.
둘은 약간의 시간 동안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결론적으로 약의 진전은 있었다.
“일단 기본 틀이 되는 약물은 완성이 되었네. 하지만 환자의 자세한 상태는 내가 알 수 없으니 무조건 치료될 거란 보장은 없지.”
“네…… 그렇군요.”
“하지만, 다른 것도 쓸 만한 게 있긴 하네. 자네 평소에 다치는 일이 잦은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혁련운의 병에 대해 이야기하던 호엔하임이 갑작스럽게 자신의 부상의 여부를 물어보자 영의는 당황했다.
“네?”
“내가 만든 상처 치료약이 있는데, 몇 개 가져가게. 아무리 생각해도 지난번에 금속 하나로 보상해 준 건 조금 양심에 걸려서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내어 내미는 호엔하임.
그는 영의와의 사이에 놓인 작은 테이블 위에 주머니를 개봉했고, 그 안에는 푸른 약물이 든 시험관이 둥글게 말린 벨트에 나란히 꽂혀 있었다.
“이건…….”
“내 효자 상품이자 연구 자금이지. 왕족들이나 기사단장들이 비상용으로 쟁여 두는 것이니, 안심하고 써도 좋네.”
왕실에도 납품하는 물건이라고 말하며 자부심을 드러내는 호엔하임.
영의는 벨트를 들어 펼쳐 보았다.
허리에 감기보다는 팔이나 다리에 감는 게 더 적합할 정도로 짤막한 벨트였다.
“7개네요.”
“인생에 목숨이 위험할 경우가 몇 번이나 되겠냐마는…… 적어도 세 번 정도는 다칠 일이 있겠지 싶었네.”
“나머지 네 번은요?”
“비상용이지. 나머지 하나는…… 공간이 허전한 게 보기 싫어서 넣었네.”
영의가 들고 있는 짧은 벨트가 자신이 사용하는 물약 거치대라고 설명한 호엔하임은 통째로 가지라고 했다.
“어차피 나는 더 많이 들어가는 새것을 사용 중이고…… 또, 그냥 들고 다니면 깨먹기 딱 좋으니 말일세.”
시험관도 특제 시험관이라 약하지는 않지만 혹여나 싶은 경우를 대비한 것이라는 호엔하임.
꼭 대비나 예비를 준비하는 그 모습은 그의 평소 성정이나 과거를 고려했을 때 적합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래. 전에도 말했지만 다음에 올 때는 그 환자라는 친구의 신체 일부를 좀 가져다주게나. 약효는 몰라도 거부반응은 없어야 하니.”
“……노력은, 해 보죠.”
영의는 혁련운이 피를 내어 줄까 싶었지만, 일단 머리카락이나 다른 걸로도 확인은 된다고 했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저택을 떠났다.
그렇게 베키에게 날아가던 도중, 알림이가 영의에게 말을 걸어왔다.
[사용자, 혹시 개체명 혁련운의 병을 치유하실 생각입니까?]
“……그러면 안 되는- 앗.”
영의는 문득, 지난번에 혁련운의 병을 치료한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알림이가 작동 중지된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
입을 다물고 알림이가 또다시 멈춘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기 시작하는 영의.
[걱정 마십시오, 사용자. 사용자가 무엇을 염려하는지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번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알림이가 사라지거나 지난번처럼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작동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사용자가 정말로 개체명 혁련운의 병을 치유하게 된다면, 그것은 2급 역사 변형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유전성마저 없애 버린다면 1급 역사 변형까지 가능합니다.]
알림이는 역사 변형이라는 말을 하며 설명을 시작했고, 영의는 그 ‘역사 변형’이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역사 변형이라니, 그게 정확히 뭔데?”
[역사 변형이란…… 본디 진행되었어야 할 역사를 바꿔 버리는 일, 말 그대로 역사를 바꾸는 일입니다.]
영의는 그 순간, 알림이가 예전과 같았다면 말을 못 해주거나 안 해줬어야 할 주제를 꺼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설명해 줘도 되는 거야?”
[예, 사용자도 언젠간 알게 될 것이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용자의…… 차원의 심부름꾼들의 일과 그 운명에 대해서.]
드디어 자신에게 생긴 능력에 대해 알 기회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