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3화 (9)
신체검사 같은 것을 할 때 보통 움직이거나 활동적인 것은 대부분 검사를 받는 사람들이나 간호사들이 담당한다.
의사가 직접 다니면서 뭔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는 중요한 인원임에도 불구하고 겉보기에는 보통 배경의 일부 정도에 그치고 만다.
그러나 그런 의사가 갑작스럽게 강당을 가로질러 입구까지 가자, 강당 내부의 교육생들도 거기에 이목이 쏠렸다.
안 그래도 갑작스러운 방문객인 데다 특유의 외모, 핵심 인물인 지연과 수연의 친근한 태도 탓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영의.
거기다가 의사까지 갑자기 움직여 향하는 곳이 영의 쪽이다 보니 눈길이 쏠리게 되었다.
곳곳에서 교육생들의 검사를 담당하던 의료진들마저 눈길이 돌아갔다고 하면,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시선을 받는 주인공이 된 영의는 드물게도 당황했다.
자신을 둘러싼 무장 세력이 있어도 평온했던 영의였건만, 순수한 호기심과 의문이 가득한 시선을 받게 되자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아니, 왜 이러시는지 얘기부터 좀…….”
갑자기 의사가 자신을 붙잡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 영의.
‘뭐지? 뭘 암시하는 거지? 언젠가 내가 병원에 갈 일이 있을 테니 올 거면 자기 병원에 오라는 건가?’
의사 예언자 설도 생각해 보았고.
‘사람깨나 병원 보낸 것 같은 관상인데, 보낼 거면 자기 병원에 보내 달라는 부탁 하러 온 건가?’
의사의 영업 활동 설이라든가.
‘……설마 도를 아십니까 뭐 그런 걸 말하려고 온 건가? 의사인데? 그런 거 믿어?!’
의사 (종교) 취향 존중 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영의는 문득 이 의사가 눈에 익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분명…….”
어디선가 한 번쯤 봤던 것 같은 인상도 아니었고, 제법 평범하게 생긴 의사였지만 어째서인지 눈에 익다는 생각에 영의가 무언가를 질문하려 했다.
“아, 의사인 박병원입니다. 이름이 특이하죠? 그리고, 초면도 아니고.”
하지만 의사 쪽에서 먼저 말을 꺼냈고, 특이한 이름에 영의는 순간적으로 예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번개를 맞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몸의 이상을 알아보기 위해 병원에 갔다가 만났던 의사였다.
“아아, 그때 그 의사 선생님!”
“아, 기억하시나 봅니다.”
의사, 병원은 영의가 자신을 기억해 낸 듯하자 안심한 듯이 미소 지었다.
“아, 네에…… 반갑습니다. 근데 여기엔 왜…….”
“아하하, 제가 각성자 전문의 중에는 제일 한가한 몸이라서요. 병원을 비우고 어디론가 갈 수 있을 정도로 시간 여유가 있는 의사는 저밖에 없었습니다! 하하하!”
지난번에 봤던 것처럼 유쾌하고 밝은 모습의 병원이었다.
“아하, 네.”
‘각성자 전문의라…… 생각보다 바쁜 사람들이 많은가 보네? 전직 교수까지 했던 사람이 올 정도면. 아니지, 이 사람이 유독 한가한 걸 수도?’
영의는 순간적으로 병원이 하는 일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예전에 방문했을 때의 병원을 떠올리고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래, 그 정도가 그나마 제일 한가한 수준으로 각성자 전문의들이 바쁜 거겠지.’
“음, 그래요. 연락이 왔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으니…… 아마 지난번에 찾아오셨던 용건은 큰 문제가 없었나 보네요.”
독고휘를 만난 이후, 자신에게 무슨 변화가 생겼는지 알기 위해 병원과 협회를 찾아갔던 영의.
그때 병원에서 만난 게 유쾌한 의사 병원이었고, 그는 더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연락하라고 얘기했었다.
“그때 일은…… 잘 정리됐습니다. 딱히 큰 문제는 아니었어요.”
영의가 그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적당히 둘러대자, 병원은 개운해진 표정으로 웃기 시작했다.
“아, 다행입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경우라서 좀 걱정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는데…… 결국 연락이 안 온 걸 보니, 연구 팀이 일할 경우는 아니었나 보네요! 하하하!”
그리고 병원 특유의 유쾌함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인지, 영의 또한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아, 하하하. 제 인생은 제가 주인공이지만 그렇다고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은 안 되더라고요.”
“그런 일은 없는 게 더 좋은 겁니다! 세상만사 큰일을 하는 것보다는 작은 일을 하며 소소하게 사는 게 더 좋은 법이니까요.”
과연 교수 출신 의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지, 병원은 뭔가 현기가 느껴지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각성자들에 관한 연구 일체를 선도하는 초인 전문 대학교 교수 자리를 나오고 병원 의사를 하는 경험자의 말이니만큼 그 말에 담긴 게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영의는 그 말을 새겨듣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만약 뭐 하나라도 밝혀지면 대학 연구 팀이 아니라 세계 연구 팀이 생길 거예요…….’
알림이나 차원 간 이동 능력, 전격 능력이나 뇌영, 자연과의 소통, 전룡의 존재를 비롯해 영의의 주변에 있는 것 중에 어느 하나라도 충격적이지 않은 게 없었다.
오히려 이 모든 걸 접하고도 영의를 전과 다를 바 없이 대하는 주변인들이 대단한 것.
거기다가 어지간한 사고란 사고는 다 겪거나 휘말려 봤으니 소소하게 뭔가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병원은 문득 영의를 붙잡게 된 계기가 떠올랐다는 듯, 화제를 돌렸다.
“아, 그러고 보니 대화가 다른 곳으로 샜군요. 여기엔 왜 오신 건가요? 아무리 배움에는 나이가 상관없다지만, 아카데미에 들어오기에는 이미 각성자로 잘 살아가고 계시던데.”
“뭐 물건 좀 전해 주러 올 게 있어서요. 동생도 여기 다니고.”
병원은 영의의 말에 그 옆에 있는 두 소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휙.
휙.
고개를 빠르게 돌리며 수연과 지연을 번갈아 쳐다보던 병원은 이내 지연 쪽으로 고개를 고정했다.
“이쪽인가요?”
둘 다 영의와의 거리는 비슷했으니, 병원은 지연만이 뭔가를 들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를 동생으로 생각한 듯했다.
“아뇨, 다른 쪽이 동생인데요…….”
“그럼 왜 가져다줬다는 물건이 동생에게 없는 거죠?”
“처음부터 얘한테 주려고 왔으니까요.”
지연을, 정확히는 그녀가 들고 있는 케이스를 가리키며 태연하게 대답하는 영의.
하지만 영의와 지연의 관계를 모르는 병원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예……?”
“네.”
“예?”
“예?”
잠깐의 어색한 시간 이후, 병원은 이내 모르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내린 뒤 영의에게 인사를 하며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 그럼 다음에 언젠가 볼일이 있으면 보도록 합시다. 물론 아파서 병원에 오는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안 그러면 제가 굶어 죽을지도 모르니까요! 하하! 감기라도 걸리면 찾아오세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병원은 유쾌한 사람이었다.
“네, 그러죠.”
인공적인 합성 독극물이라면 모를까, 어지간한 독극물에도 버텨 내는 몸을 가진 영의는 병원에 갈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일단 병원의 장단에 맞춰 주었다.
‘감기는커녕 약이나 독도 잘 안 듣는 몸인데…….’
“그럼 이만 간다! 잘 있어!”
“아니, 옵-”
“선생ㄴ-”
그렇게 병원을 떠나보내고, 영의는 지연과 수연에게 인사를 한 뒤 곧바로 강당을 나섰다.
‘또 시선이 끌리면 난감하니까…….’
자신이야 조금 부담스러워지는 걸로 끝나지만, 수연과 지연은 여기에서 한동안 있어야 한다.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곧바로 강당을 떠난 영의였지만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미 병원이 그를 붙잡은 시점에서부터 지연과 수연에게 지워진 부담은 상당했다는 것을…….
“오빠…….”
“쌤…….”
강당에 덩그러니 남겨진 수연과 지연은 자신들 둘을 쳐다보기 시작하는 수많은 시선들에 절로 긴장을…….
“뭘 봐? 하던 거 안 해?”
……하진 않았다.
수연의 날카로운 시선에, 교육생들은 곧바로 눈을 돌렸고 강당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 * *
무림. 하북성.
하북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을 말해 보라 할 때 여러 가지가 나오겠지만, 공통적으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하북팽가이다.
패도적인 무공을 주 장기로 삼는 팽가의 일원 중 가장 유명한 이를 꼽으라면 전대 가주이자 권왕인 팽소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팽소운은 천하제일 비무대회를 앞두고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버님! 새외의 세력이 또 왔다고 합니다!”
현 가주, 팽자성이 인사를 생략한 채 가주 집무실로 급하게 달려 들어오며 소식을 전했다.
“또? 이번엔 어디냐? 남만? 포달랍궁? 아니지, 포달랍궁은 마교 녀석들이랑 같이 오겠지.”
팽자성과 팽소운, 두 부자는 상당히 피폐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쉴 여유도 있고 체력도 충분한 둘이었지만 그들이 맡은 일이 보통의 것이 아니니 그럴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독고휘가 한번 뒤집어엎고 나간 뒤 천하제일 비무대회 개최로 안건이 바뀐 무림맹 회의 당시, 장소와 일시를 정하기 위해 회의가 다시 열렸다.
“첫 대회는 어디서 열까…… 사천이 좋지 않겠습니까? 대륙의 중앙쯤에 있으니 오가기도 용이하고, 여러 분파가 모여 있으니 누구 하나의 독점도 없고.”
“사천이라…… 나쁘지는 않은 선택 같소만?”
당가주 당조현의 말에 제갈세가주 제갈사진이 잽싸게 찬성하며 사천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괜찮군. 대회에서 발생한 이문만 적당히 떼어 준다면 우리 사도련은 응하겠다.”
갈성천은 고향이 사천이니만큼 그곳에 기반 세력이 제법 있었고, 휘하 세력들이 돈만 벌 수 있으면 장소 정도야 별로 개의치 않았다.
“거기서 제일 장사를 잘할 인물들이 사도련 같…….”
“뭐, 어떻소? 사도련은 이문을 챙기고! 우리 정파는 정파의 구역에서 대회를 개최했다는 업적이 남으니!”
개방주 화운이 갈성천을 묘하게 비꼬려 했으나, 무당의 장문인인 운성이 급히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정파 세력 측에서는 각자의 구역에서 개최하자는 주장을 하고 싶었음에도 사천의 세력들이 부담스러웠고, 하필 명분도 없었다.
‘중앙에 가깝기는 하지……. 쯧.’
‘젠장, 정파들만 주장하면 어떻게 트집이라도 잡아 보겠는데…… 패왕이 그걸 막아서니…….’
그럼에도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생각은 위치 하나만큼은 확실히 괜찮다는 것이었다.
“좋소. 큰 이의가 없다면 개최 장소는 사천으로 하고…… 운영에 대해서는 사천에 있는 문파들이 공동으로 관리합시다.”
“세력 간의 중재는 정파들이 맡아라. 사파 녀석들은 사도련이 책임지고 관리하겠다.”
“괜찮군. 그리고, 운영 말인데…… 사천에 적을 두지 않은 이들이 맡는 게 어떻겠나?”
“사천에 없으면서 사천의 무엇을 알고 운영을 한단 말이오?”
“내 말은, 대회의 운영이란 말이지. 대략적인 시합 방식과 대진 작성…… 심판 같은 것. 남궁가의 검수들은 언제나 실전 같은 비무를 거치므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네.”
“호오, 그건 제법 괜찮은 생각이군요.”
그렇게 각 세가의 가주들과 문파의 장문인들이 비무대회에 대한 회의를 진행했고, 그것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끝났다.
“좋습니다, 모든 것이 정리되었으니 이제 이 자리를 파하고…….”
제갈사진이 이것저것을 기록한 책을 덮으며 회의를 끝내려 할 때, 갈성천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니지, 그냥 파하면 재미가 또 없지. 다들 술이나 한잔할까? 어때?”
밤을 새우기도 했고, 전날 독고휘란 이름의 거대 폭풍이 지나간 탓에 지친 그들은 술이란 말에 잠깐 흔들리는 기색을 보였다.
“허허, 갈 시주. 소승은 승려입니다만…….”
“그럼 밥이라도 먹자고.”
이때의 갈성천과 혜윤은 아직 독고휘의 거처로 가기 전이었다.
“뭐, 괜찮겠지.”
“밤새워 회의해서 완벽하게 갖춰 뒀으니…….”
“좋군요. 가도록 합시다.”
이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며 무림맹을 나서는 이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비무대회 소식을 들은 독고휘가 개최 장소를 하북성으로 옮기라고 지시하는 바람에 비무대회 개최 전에 또다시 모이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