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2화 (8)
각성자 아카데미의 정문, 남색에 빳빳한 제복을 입은 중년 경비가 한 청년을 윽박지르고 있었다.
“나가! 쓰읍!”
“아니, 진짜 여기 교육생 오빠…… 여기 강사 동생이기도 해요! 연락을 해 보시라니까요!”
경비와 말싸움을 하는 청년인 영의는 차분하게 근거를 들어서 설득해 보려 했지만 경비는 완강했고, 결국 조금씩 서로 간의 답답함에 목소리가 높아지게 된 것이었다.
“나는 방문객 온다거나 하는 그런 거 들은 적 없어! 나가! 오히려 아는 사람이 있으면 더더욱 절차를 지켜야지!”
“물건만 갖다 주고 간다니까요!”
“그 물건을 나한테 맡겨!”
“맡길 수가 없는 물건이에요!”
“그만큼 위험하거나 수상한 걸 맡기겠다고? 그럼 더더욱 안 돼! 가!”
각성자들에게 무기 정도가 대수겠냐마는, 영의는 평범하지 않은 검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차마 맡길 수가 없었다.
‘잘 풀리면 혹시나 모르겠지만 만약 누군가가 출처를 물어본다면 많이 귀찮아진다.’
철관의 가게를 왕래할 때, 지석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던 만큼 불법 각성자 무기 관련 범죄는 상당히 골치 아프다는 사실을 익히 아는 영의였다.
‘다행히 면허도 있었고 법적 지정 규격에서 수치가 살짝 한계선을 넘어간 개조 정도였어도 구치소를 다녀왔다고 했지…….’
산업이나 가공 같은 다른 경우에야 어지간해서는 벌금이나 집행유예로 끝날 사안이, 각성자가 붙는 순간 곧바로 중범죄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그룬이 만들어 준 검은 법적으로 인정된 제작자도 찾을 수 없고, 무기 양식도 규격과 다르니 누가 봐도 불법 무기가 맞았다.
물론 이 이야기도 지연이 검을 들고 있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그저 무명 장인이 만든 게 모양도 마음에 들고, 손에 잘 맞아서 쓰고 있다고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현역 각성자는 맞지만 전투계가 아닌 영의가 들고 다니면 그건 문제가 된다.
경찰과 군인의 손에 들린 총은 자연스럽지만 은행원이 총을 드는 순간 부자연스러워지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을 마친 영의는 일을 더 키워 봤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판단에 한 발짝 물러서기로 했다.
“하아…… 그럼 전화해서 형보고 나와 달라고 할게요. 됐죠?”
영의가 경비에게서 물러난 뒤 급히 휴대폰을 꺼내 들며 전화를 걸기 시작하자, 경비는 ‘거짓말이기만 하면 어디 한번 두고 보자’라는 생각이 담긴 눈빛으로 영의를 쳐다보기 시작하며 투덜거렸다.
“에이……! 뭐 할 게 있다고 자꾸 들어오려고 해? 아침에도 한 놈 있었구만!”
사실, 각성자 아카데미는 유력자의 자제들이 있는 곳이니만큼 경비의 말대로 트러블 및 스캔들 포착이나 이런저런 목적을 가지고 잠입하는 이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것을 막기 위해 외부인 출입에 대한 엄격한 규칙을 만들고 경비도 각성자 출신이거나 유단자인 튼튼한 사람으로 구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외부인은 조심하는 동시에 교육생들의 외출에 대해서는 널널했는데, 그것은 초기에 불편했던 점을 유력자 부모에게 호소한 여파였다.
그것도 영 허점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선우와 선영이 제대로 허가받지 않고 외박을 하자 부모에게 연락이 왔었던 것이고.
경비가 노려보는 것도 아랑곳 않고, 영의는 영웅과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어, 형. 난데. 잠깐 나와 줄 수 있어? 아니. 아카데미. 수업 준비? 아니, 잠깐만 나와 봐. 내가 지금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갈 수 없어서 그래. 뭐? 신체검사? 그러면 더 나올 수 있는 여유가 있는거 아냐?”
어째서인지, 당장 나오기엔 무리가 조금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의가 아카데미로 못 들어가진 않았다.
-그러면 그 경비분 좀 바꿔 봐. 내가 얘기해 볼게.
“……형이 좀 바꿔 달라는데요.”
영의가 휴대폰을 내밀자, 경비는 잠시 탐탁잖은 듯 휴대폰과 영의를 번갈아 보다가 이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맞습니다. 네.”
경비는 잠시 전화 통화를 하더니, 이내 전화를 두 손으로 받고 구석에 가서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흠, 될 것 같은데…….”
목소리가 높아지는 일 없이, 구석에서 전화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는 모양새를 보아 일이 그럴듯하게 풀릴 거란 희망을 품는 영의.
“네, 알겠습니다. 네.”
경비는 이내 전화를 끊은 뒤 영의에게 돌아와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확실히 지인은 맞는 것 같으신데……. 그래도, 출입증이 발급되지는 않았으니까 같이 동행을 좀 해 주셔야겠는데요.”
영의의 신분이 확인이 되자, 경비는 긴장한 표정으로 영의에게 존대를 하기 시작했다.
“네, 그 정도야 뭐. 저도 물건만 전달해 주고 오면 되니까요.”
“아, 그럼 이쪽으로.”
경비와의 대립 중 사용했던 반말이나 태도에 대해서 영의가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하자, 경비는 안심한 듯 긴장을 풀고 그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웅이 있는 곳으로 향하던 중, 도중에 심심해진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안내를 위해서인지 경비가 여기저기 가리키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바로 소강당이고…… 저쪽이 식당이고…….”
경비의 설명을 적당히 흘려들으며 맞장구를 쳐주던 영의는 문득 예전에 들렀던 대강당 쪽이 소란스럽다는 것을 눈치챘다.
“……저기가 조금 시끄러운데요?”
“아, 오늘 교육생들이 신체검사를 하는 날이라 그렇습니다. 저기 구석에 버스 보이시죠?”
경비가 손으로 가리킨 운동장 옆자리에는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서인지 대형 버스가 여러 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버스의 외부에는 병원의 이름과 마크가 있는 것으로 보아 병원의 인원들이 직접 온 듯 보였다.
“……그런 것치곤 버스가 많은데요.”
“뭐, 헌혈 차도 있으니까 말이죠.”
강당이 제법 소란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헌혈 차를 본 영의는 문득 교육생들이 신체검사를 받는다면 지연도 저기에 있는 게 아닐까라는 당연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생 정도면 헌혈이 가능했던가……. 옛날에 학교에 온 헌혈 버스에서 헌혈 하고 수업 째고 그랬는데.”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도 있었고, 지금 길을 안내해 주는 사람이 따로 있었기에 따라가기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가 교사들이 쓰는 건물입니다. 아, 저기 오시네요.”
영의가 한 건물에 도착하자, 입구에서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영웅이 빠른 속도로 걸어오고 있었다.
“형!”
“그래, 왔냐. 아, 수고하셨습니다.”
“아뇨, 아닙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경비와 영웅은 면식이 있는 사이인 듯, 인사를 나누고는 영의를 영웅에게 맡기고 곧바로 입구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왜 온 거야? 애들 신체 측정 데이터 봐야 하는데.”
“바쁜 이유가 있었네?”
영웅은 교육생…… 특히 지연을 신경 쓰고 여차하면 보살펴야 했다.
물론 그건 동생인 수연이 더 잘해 주고 있는 듯 보였고 지연 또한 보살핌을 받을 정도로 약하지 않았지만.
영웅의 아카데미 강사직은 딸을 신경 쓴 황준의 입김이 들어간 인사였음에도, 영웅은 아카데미 측과 교육생 측 양쪽에서 모두 호평을 듣고 있었다.
“아무튼, 용건 있으면 빨리 말해. 다시 가서 확인해야 하니까.”
본론만 말하라는 영웅의 말에, 영의는 급히 검을 넣은 케이스(오는 길에 구매)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거. 지연이한테 좀 전해 줄 수 있어?”
그냥 물건만 전해 주면 되는 별것 아닌 부탁이었으나, 영웅은 영의가 건네주는 케이스를 보자 표정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으음…… 힘들 것 같은데.”
“어? 왜?”
상당히 일이 복잡하고 귀찮아졌다는 생각을 하며 영의에게 자세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하는 영웅.
“사실, 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강사가 교육생한테 뭘 주는 건 규칙 위반이더라고. 뭐 먹을 거나 마실 거를 주면 모르겠는데 물건은 얘기가 달라.”
“아니, 그게 대체 무슨 규칙이야……?”
“너도 알다시피, 아카데미에 들어온 애들의 부모 중에 돈이나 권력깨나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잖아. 애들을 통해서 부모한테 잘 보이겠다 뭐 이런 거지.”
생각보다 현실적이면서도 충분히 사례가 있을 법한 이야기에 영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렇네.”
“대신, 네가 직접 전해 주면 별문제는 없겠지. 그거…… 케이스 보니까 검 맞지?”
실제로 검을 들고 다니거나 쓰는 일이 많아진 사회였으므로, 검을 보관하는 가방이나 케이스를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물론 마루이치 하오다가 들고 다니던 것처럼 여러 자루를 넣는 보관함은 잘 팔지 않았지만.
“맞기는 한데. 왜?”
“아니, 그냥. 뭐 검이야 갖고 있는 애들도 있고…… 등록 절차가 귀찮기야 하겠지만…… 지연이는 집안 배경이 있으니까 큰 문제는 안 되겠지. 직접 전해 주러 가자. 간만에 수연이 얼굴도 보고.”
영웅은 그렇게 말하며 영의의 어깨를 잡고 강당 쪽으로 이끌었고, 영의는 순순히 그를 따라 강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강당 내부로 들어오자, 소란스러움이 더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팔 이렇게 잠시 들어 주세요~.”
“조금 따끔할 거예요~.”
“숨 들이쉬세요~.”
그리고 그 소란스러움의 주원인은, 교육생들의 신체검사를 진행하는 간호사들이었다.
“흐헤헤헤, 네 몸무게 다 봤다!”
“말해 봐. 그게 네 마지막 유언이 될 거야.”
물론, 그 이외에 교육생들이 따로 소란 피우는 소리도 섞여 있었지만.
선영을 놀리며 도망가는 선우와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며 무서운 말을 내뱉는 선영이 눈에 띄었다.
“쟤네는 왜 어딜 가도 똑같은 모습이지……?”
“알아?”
“수연이가 집에 데려온 적 있어서 잠깐 봤지.”
영의의 설명에 납득한 영웅은 이내 영의를 두고 저 멀리에 있는 의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럼 난 애들 데이터 다시 살펴보러 간다. 전해 주고 돌아가.”
영의는 영웅을 보낸 뒤 선영에게 잡혀 목이 졸리고 있는 선우를 무시하며 지연을 찾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어디쯤 있을 텐데…….”
하지만 강당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 강당 내부의 사람을 찾는 것보다, 내부에 있던 누군가가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을 찾는 게 더욱 빨랐다.
“오빠, 여긴 왜 온 거야?”
어느샌가 그의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와 옆구리를 쿡 하고 찌르는 수연.
“그래, 마침 잘 왔어. 지연이 있어?”
“쌤, 저 찾으셨어요?”
수연의 대답이 채 나오기도 전에 곧바로 자신이 찾던 인물의 목소리가 나오자, 영의는 일이 잘 풀린다 생각하였다.
“그래, 줄 게 있어서 왔는데.”
어깨에 걸치고 있는 케이스를 곧바로 벗어서 지연에게 건네주는 영의.
“이게…… 뭐예요?”
케이스는 내부가 보이지 않았기에, 지연은 정체를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확실한 대답을 듣기 위해 영의에게 질문했다.
“검. 네가 연습용…… 아니, 실전용으로 써도 무관한 거로 구해 왔어, 뇌기에도 열이 그렇게 많이 올라오진 않을 거야.”
지연은 영의의 말에 케이스를 살짝 열어 보았고, 그 안에 감싸져 있던 그룬의 검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검집에서 꺼내지는 않았기에 검신이나 날이 어떤지는 몰랐지만, 손잡이와 장식만으로도 충분한 명품이라는 걸 직감한 지연은 감동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오빠, 내 건 없어?”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는 지연과 달리, 다소 철없게 자신의 것도 요구하는 수연.
“넌 없어. 애초에 손으로 싸우는 게 무슨 무기를 다루겠다고.”
“에이, 그래도 있으면 멋진데.”
영의가 수연이 쓰지도 않을 무기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나무라자 수연도 무기에 대한 갈망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그럼 전해 줬으니까 난 간다?”
“아, 안녕히 가세요.”
“그래, 열심히 하고.”
“오빠, 다음엔 선물 갖고 와.”
“선물은 무슨. 공부나 해.”
지연과 수연의 인사를 받아 준 뒤, 강당 안에 있는 교육생들이 슬슬 자신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하자 곧바로 떠나려는 영의.
‘보자…… 얼마 뒤에 비무대회니까, 그 전에 호엔하임 영감님 찾아가서 약 수배하고…… 베키한테 찾아가서 호엔하임 영감님 만났다고 얘기하고…….’
그는 강당을 떠나며 앞으로의 계획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획을 정리하던 와중, 돌연 그를 잡아채는 손길이 있었다.
“왜, 뭐 잊은 거라도…….”
지연이 하지 못한 말이나 수연의 또 다른 실없는 말일 거라 생각한 영의.
하지만 둘 중 한 명일 거라 생각하고 돌아본 영의는 그를 잡아챈 손길의 주인이 생각과는 다른 인물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를 붙잡은 것은 지연이나 수연도 아닌, 하다못해 선우 남매도 아닌 강당에서 신체검사를 진행 중이던 병원의 의료진들 중 하나.
영웅이 영의를 두고 데이터를 살펴보기 위해 향하던 의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