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181화 (181/325)

#제181화 (7)

성공 확률을 점치는 것도 힘들 것 같은 일생일대의 계획을 앞두고 그 계획의 성공률을 획기적으로 높여 줄 인물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건 마치 깊은 밤 병에 걸려 열이 끓어오르는 아이를 두고 전전긍긍해하던 부모에게 의사가 찾아오는 것보다 더 희박한 확률이리라.

그리고 기회가 찾아오자 곧바로 그 기회를 잡기로 한 그룬은 영의에 대해 별다른 조사도 없이 곧바로 그에게 부탁을 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계획은 하늘이 돕지 않는 이상 무조건 실패한다!’

하늘을 필사적으로 믿고 계획이 성공하리라 기도하던 그룬이었지만, 바로 그 하늘이 칼라미트를 불러들이지 않았던가.

“이 무기들은 착수금으로 받아 주게. 어딜 가더라도 명품으로 인정받을 것이고, 나의 서명을 알아보는 이가 있다면 값어치가 배는 넘겠지.”

그룬은 무기와 같은 무게의 금을 두 배로 받아도 될 거라고 장담하며 무기가 든 상자를 건네주었지만, 영의는 그 무기들을 거절했다.

“무기는 감사하지만, 제가 딱히 무기를 쓰지는 않고 필요하지도 않아서요. 그…… 활이라든가, 창 같은 건 특히나.”

영의는 솔직하게 대답하며 무기를 거절했지만, 그룬은 그것이 완곡한 거절의 뜻이라고 이해했다.

“그런……가.”

하지만 그룬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본인과 조부의, 거기서 더 나아가 난쟁이들 모두의 운명과 미래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무기는 안 되더라도, 시간만 조금 준다면 내 재물을 최대한……!”

평소에 별로 눈치가 없는 영의도, 그룬이 이 정도로 이야기하자 상황을 파악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안 하겠다고는 안 했어요. 하긴 하는데, 이 무기들이 필요 없다고 한 거죠.”

영의의 긍정을 뜻하는 대답에, 다급하고 필사적이던 그룬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졌다.

“아암! 필요 없을 수도 있지! 영웅에게 무기는 하나면 얼마든지 충분하겠지!”

그룬이 매우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쳐 주자, 영의는 검을 가리키며 작은 부탁을 하나 했다.

“대신 검은 받을게요. 다만…… 개량을 조금, 해 주실 수 있을까 싶은데…….”

지금 그룬이 만든 검은 으레 생각하듯, 서양식의 롱 소드에 가까운 검이었다.

‘쓰기에 썩 나쁘진 않겠지만, 걔는 센스는 몰라도 신체적으로는 영 별로란 말이지…….’

운동 능력과 반사 신경은 그 나이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편이었으나, 그걸 뛰어넘은 괴물에 가까운 영의가 보기에는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그럼, 개량은 얼마든지 해 주지! 무얼 원하나? 증량? 감량? 아니면 더 길게? 예리하게?”

곧바로 검을 들고 모루로 다가가 용광로에 불을 지피기 시작하는 그룬.

그는 영의의 마음이 다시 바뀔세라, 최대한 열성적인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음, 대략적으로 팔 길이가 이 정도였으니까…….”

이내 영의는 그룬의 물음에 검을 받을 사람의 신체 조건과 근력을 고려해 검을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일단 무게는 조금 더 줄여 주시고, 예리함을 늘려 주세요. 그리고 양날에 찌르기가 있는 것도 좋지만 방어용으로 쓸 때도 있어야 하니 한쪽은 날을 좀 없애고…….”

무기를 다루는 능력은 별로였지만, 그것을 보는 눈만큼은 확실한 그룬이었기에 영의가 검의 무게를 줄이고 용도의 변경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개량의 목적을 눈치챘다.

‘본인이 사용할 것은 아니로군. 하긴, 직접 쓸 용도였다면 아까 저걸 처음 잡아 봤을 때처럼 어떤 검이든 능숙하게 썼겠지.’

그룬은 이내 영의의 요구 사항 중, 장인으로서 수정할 부분을 언급하며 영의의 의견을 바꾸려 했다.

“으음, 한쪽 날을 갈아 내기보다는 중심을 조금 두껍게 해서 눕히게 하는 것이 낫겠군.”

“아, 그게 더 괜찮겠네요.”

그렇게 그룬과 영의의 대화가 오가고, 그룬은 검을 용광로에 넣고 달구기 시작했다.

“그만큼 고쳐야 한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 내야겠군.”

“네? 그 정도로 해야 하면 안 하는 게…….”

조금 깎아 내거나 갈아 내는 방향으로 생각했던 영의는 처음부터 다시 만든다는 그룬의 말에 그를 말리려 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영의에게 뭐든지 해 주겠다며 간절하게 부탁해 오던 난쟁이 그룬은 거기에 없었다.

“아니, 손잡이도 바꿔야 하네. 무게를 줄인다면 손잡이 부분도 바꿔서 균형을 다시 맞춰야 하니.”

지금 자신이 손을 봐야 할 작업물을 눈앞에 둔 한 명의 대장장이만이 있을 뿐.

그룬은 영의에게 매우 큰 부탁을 하는 입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집 센 난쟁이의 장인이기도 했다.

“얼마 걸리지 않을 걸세. 이미 철은 충분히 좋은 것을 사용하고 있으니…….”

이내 그룬이 용광로의 화력을 더욱 올리기 시작하자, 영의는 그 비장함에 잠시 뒤로 물러서기로 했다.

‘……그래, 뭐 얼마 안 걸린다고 했으니 얼마 안 걸리겠지.’

그렇게 가벼운 생각으로 뒤에서 구경을 하기 시작했지만, 제자와 도제들을 비롯한 공방의 일행들이 돌아오고 그들이 저녁을 먹으러 가기까지도 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결국, 취침 시간까지 지나 버린 뒤에 검이 완성되었고 영의는 준비해 두었던 또 다른 해장국을 꺼내어 그룬에게 대접해야만 했다.

“3일일세. 후룹. 3일 후에 거사를 결행할 생각이니, 크으. 부디 와 주도록 하게. 크허어!”

해장국에 밥을 말아 야무지게 탄성을 터트리며 먹던 그룬은 영의에게 거사의 날짜를 알려 주었고, 영의는 피곤했던 나머지 일정을 전해 듣자마자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잠들었다.

그런 다음 날.

영의는 눈을 뜨자마자 달라진 시야에 잠시 놀랐다.

“……이게 뭐야.”

마치 SF 영화나 VR 기기를 사용하는 듯이, 시야의 구석구석에 이런저런 정보가 뜨기 시작했다.

물론 평소에도 지도라든가 사소한 기능 같은 것이 있기는 했지만 시야의 구석이었고, 예전에 사용하던 헬멧과 거의 동일했기에 위화감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바뀐 것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AR…… 같은데?”

종종 눈에 띄는 것이 보여 그것을 집중해서 쳐다보면 그것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 표시되며 가끔은 보이지 않아야 할 장애물 뒤의 물건이 보이기까지 했다.

“쓰읍, 바닥에 있는 거 건드리는 거 아니야.”

때마침 영의의 눈을 피해 바닥에 있는 과자 조각을 먹으려던 뇌영을 제지하고는 신기한 듯 방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영의.

[에어컨 - 구매 기간 5년 전. 최근 사용 7개월 전. 전원 코드가 헐겁게 꽂힘.]

[생수통 - 생산 연도 및 유통기한, 표기와 다름. 그러나 오차 범위 1일 이내.]

에어컨에 대해서 앞부분은 영의도 충분히 아는 사실이었지만, 뒷부분은 모르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생수통의 경우, 별로 알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을 보여 주었다.

“……조금 통일성이 없는데.”

영의가 설명을 표시하는 기능이 공통된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지 않다는 감상을 품자, 알림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로운 기능은 만족하십니까, 사용자?]

“응, 괜찮긴 한데…… 조금 어지럽고 복잡하네.”

조금이라도 초점을 잡고 쳐다보기 시작하면 정보가 표시되는 통에 시야가 어지러웠다.

[사용자에게 기능을 알리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사용자의 요청이 있기 전까지, 정보 표시 기능은 해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알림이의 말 이후, 영의의 눈에 보이던 정보들이 싹 사라졌다.

“……고마워.”

[과찬이십니다.]

이제 눈을 어지럽히던 정보들이 사라지자, 영의는 조금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동시에 깨끗해진 시야의 구석에 한 물건이 들어왔다.

“그래, 저게 있었지.”

바로 어제 드워프…… 난쟁이 장인인 그룬에게서 받아 온 개량형 검이었다.

[사용자, 검을 선물하실 생각이십니까?]

“응, 그렇지 뭐. 나는 검이 잘 안 맞고…… 또 내 장비는 지금 만들고 있으니까.”

그룬에게 부탁해도 됐겠지만, 영의는 출처가 불분명한 특이 무기를 사용하고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당장 지금 은색 헬멧으로 돌아다녀도 상당히 눈에 띈단 말이지.’

대신 지석이 만들어 준 장비라면 비록 무명 제작자이긴 해도 최소한 사람이 만들어 준 물건이지 않은가.

‘뭐, 나중에 그룬이 만들어 준 물건이 더 좋다면 그걸 보여 주고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만 해도…….’

그렇게 일단 생각을 정리한 영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검을 집어 들었다.

[사용자, 곧바로 나가실 계획이십니까?]

“응. 그렇지.”

영의는 오늘따라 알림이가 유독 말을 많이 걸고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딱히 놀랄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신기능 추가도 했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요즘 대화를 많이 안 한 것 같기도 하고.’

알림이는 영의의 대답에 곧바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개체명 신화연에게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 메시지와 비슷한 말을 하며 영의의 시야에 반투명한 화살표를 띄우는 알림이.

영의는 화살표를 보자 마치 VR 프로그램이나 게임의 내부에서 길을 안내하는 UI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게 신기능이야?”

[그렇습니다. 사용자가 모크란 내부에서 길을 찾지 못한 것을 반영하여, 새로운 길 안내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물론 이전처럼 평면 지도형 안내 방식도 사용 가능합니다.]

일전보다 훨씬 간편해지고 응용 범위도 좋아진 기능 개선에, 영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최고야.”

[과찬이십니다.]

영의는 알림이를 칭찬했지만, 늘 든든한 알림이도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근데, 화연이한테 가는 건 아니야.”

[아니었습니까?]

진심으로 의문이라는 듯, 안내하던 것도 멈추고 되묻기 시작하는 알림이.

“응, 지연이한테 가야지. 초보자한테 좋은 무기는 안 좋은 버릇을 들이는 시작이지만…… 뭐 걔네 집은 부자니까. 이왕 구해 줄 거 제대로 된 무기를 구해다 주려고.”

맞춤 제작이야 하겠지만, 실제로 들고 휘두르는 무기를 만드는 것에 있어서는 경험으로 보나 응용력으로 보나 난쟁이들이 더욱 잘할 것 같았다.

“자, 그럼 지연이한테 가자. 아카데미 수업 시간이긴 할 것 같은데…… 점심시간에 맞춰서 가면 되겠지. 형한테 얘기해도 될 거고.”

영의의 말에, 알림이는 곧바로 경로를 변경하고는 다시 화살표를 표시해 주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개체명 전지연에게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추천 경로는 교실로의 직행 루트입니다.]

“……직행? 민폐 아닌가?”

생각보다 의외인 추천 경로에 당황하는 영의였지만, 시간과 상황을 언제든 적절하게 맞추던 알림이의 능력을 믿고 가 보기로 했다.

‘잘못되면 어쩌지……? 아, 몰라. 아는 애들도 넷이나 있고…… 뭐 어떻게든 되겠지. 집에서 두고 간 거 전해 주라고 했다고 해도 되고.’

기간제에 불과하지만 강사의 동생이자, 교육생의 오빠이니만큼 두고 간 걸 전해 주러 왔다고 변명하기로 한 영의.

참고로 아카데미는 초청 행사 등을 제외하고는 사전에 허가를 받고 출입증을 발부받지 않은 외부인의 출입을 엄금하는 것이 규칙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영의는 한가롭게 바이크를 몰고 아카데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음, 근데 드워프들…… 그룬이 있는 세계는 시간선이 어떻게 돼?”

[이곳과 동일합니다. 실제로 3일 후에 방문하면 됩니다.]

의외로,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는 무림과 그에 못 미쳐도 비슷한 수준을 자랑하는 다른 세계들과 달리 그룬의 세계는 이곳과 시간 흐름이 같은 듯 보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추후에 반영하여 개선하겠습니다.]

그렇게 영의는 아카데미의 경비에게 가로막힐 거란 사실도 모른 채, 옆에서 묘기 비행을 하는 뇌영을 구경하거나 아래의 도시를 한가롭게 쳐다보는 등 여유를 부리며 아카데미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