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8화 (4)
그룬이 안내한 구석의 창고에서 놀라운 것을 목격한 영의.
“와…… 진짜 의외인데……?”
영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창고를 둘러보았고, 그룬은 그 옆에서 영의의 반응을 보고는 못 보일 것을 보였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창고라고요?”
사람이 얼마나 오가지 않은 건지, 잔뜩 쌓인 먼지들과 구석에 쳐진 거미줄들.
그나마 먼지가 조금 치워지고 손을 댄 흔적이 보이는 곳은 입구 주변 반경 1미터에 불과했다.
그리고, 창고 안에 남아 있는 것은 절반이 잡동사니와 여분의 집기였고, 남은 절반은 상태가 썩 좋다고 말할 수 없는 무기들이었다.
“적어도 방치된 지 5년은 된 물건들이로군.”
“창고에 왜 이것밖에……. 그 이전에, 이것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없을 것이라면 아예 없든가, 아니면 가득 채워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영의는 애매하게 한 상자 정도만이 남은 무기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그러니까…… 흐음. 기억이 맞다면…….”
그룬은 잠시 과거를 떠올리듯 턱을 짚었다.
그러다 상자 속, 먼지가 쌓인 검을 하나 집어 들어 검집에서 빼어 들고 살펴보는 그룬.
“내 서명이 있군. 확실해. 5년 전에 만들어 둔 영웅을 위한 무기들이지.”
추억을 떠올리는 듯, 아련한 눈을 하며 상자 속 무기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그룬.
“영웅을 위한 무기요?”
영의는 이 무기들이 의외의 이름과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에 의문이 생겼다.
“한번 보게나, 아름답지 않나?”
사락-
그룬은 검을 검집에서 완전히 빼내어 불빛에 반사시켜 보였고, 오래되었음에도 여전히 번쩍이는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검은 영롱한 광채를 뿌리기 시작했다.
5년이란 세월 동안 방치되었음에도 새것처럼 보이는 그 모습은 별 지식이 없는 영의의 눈에도 상당한 명품으로 보였다.
“오, 멋지긴 하네요.”
“그래…… 이 검이 제대로 사용되기만 했다면, 더욱 멋졌겠지.”
그룬은 그 말을 하며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고, 그것을 영의에게 건네주었다.
“이제는…… 사용될 일이 없으니까. 아무튼 그게 내가 만드는 물품의 수준일세.”
검을 받아 든 영의는 검의 무게와 균형을 가늠해 보기 위해 들어 보려 했다.
“음, 되게 괜찮은데…….”
비록 화연이 사용하고 있거나 무림에서 사용하는 검과는 다른 형태의 검이었지만 자체적인 성능은 확실히 괜찮은 듯했다.
“균형도 잘 잡혀 있고. 튼튼하기도 하고.”
휘익-
영의는 직접 짧게 휘둘러 보기도 하며 검의 착용감과 사용감을 시험해 보고 있었다.
“아, 맞다.”
그저 찌르고 베고 휘두르는 일반적 검의 성능에 그치지 않고, 지연과 자신의 특수성을 고려해 뇌기를 한번 흘려 보기로 한 영의.
파직, 파지직-
뇌기가 흐르기 시작한 검의 끝에서 스파크가 튀어 올랐고, 바닥을 때리는 작은 전격들을 보자 그룬의 눈이 커졌다.
“아, 죄송합니다. 잠깐 실험해 볼 게 있어서. 그보다 이만큼 명품인데 왜 사용될 일이 없다는 거죠? 엄청 잘 팔릴 것 같은데?”
검술을 사용하지 않는 영의였지만, 이 검은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되게 균형도 잘 잡혀 있고. 뇌기도 잘 통하고. 근력을 조금 요구하지만 그건 뭐 해결 가능한 부분이니까.’
가끔 써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검이 상당히 마음에 든 영의.
“아, 근데 혹시 이거 모양만 좀 바꿔 주실 수 있나요? 검을 제가 쓸 게 아닌데.”
영의는 그룬에게 검의 형태와 길이를 조금 바꿔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그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룬은 영의가 쥐고 있던 검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검의 끝. 전격들이 방출되었던 부분을 바라보고 있었다.
“벼락이…… 검에서……. 자네가 한 건가?”
그룬은 시선을 천천히 돌려 영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른 것과 달리, 벼락이라는 그 자체에 집착하듯이 힘을 주고 발음한 그룬.
“네, 제가 하긴 했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건가요?”
혹시나 검을 망가뜨리는 짓을 한 걸까 싶은 마음에 잠시 움츠러든 영의였지만 그룬은 영의를 달래듯 급히 부정했다.
“아니, 아닐세……. 벼락…… 벼락을 직접 몸에서……. 혹시, 방금 한 것보다 더 크게도 가능한가?”
“어어, 네.”
그룬이 갑자기 자신의 능력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자 영의는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독고휘 영감님도, 일라이저 영감님도 나한테 뭐 하나 꽂히고 나서부터는 되게 잘 대해 줬으니까…… 아마 그런 부분을 잡은 게 아닐까?’
그리고 그런 동시에 그룬에 대한 호칭을 무엇으로 해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나이대가 독고휘 영감님이나 일라이저 영감님만큼은 아니라도 제법 나이가 있긴 하겠지. 그냥 아저씨로 할까?’
영의가 그런 고민을 하는 동안, 그룬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자신의 간이침대로 달려갔다.
그그극-
쿵.
흔히 생각하듯 무게중심이 잘못 쏠리면 넘어지는 그런 간이침대가 아닌, 크고 평평한 바위가 그의 간이침대였다.
그리고 그런 바위의 윗부분을 몸으로 밀어내자, 마치 관이 열리듯 윗부분이 옆으로 밀리더니 바닥으로 떨어졌고 침대 안의 공간이 드러났다.
그 공간 안에는 천에 곱게 감싸진 큰 원반과도 같은 물체가 있었다.
“후우, 만약 가능하다면…….”
물체를 감싼 천을 풀어낸 뒤, 그것을 들고 영의에게 돌아오는 그룬.
영의는 그룬의 그런 모든 행동을 보며 어리둥절해 있었으나, 때마침 알림이의 설명이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사용자, 개체명 그룬이 들고 오는 저것이 보이시나요? 저것이 바로 드래곤 스케일입니다.]
영의는 알림이의 말에 그룬이 들고 있는 것을 보며 놀란 기색을 보였다.
‘저게……?’
그룬은 마치 거북이의 등딱지에서 곡면 부분을 없앤 듯한 납작하고 검붉은 덩어리를 들고 오고 있었다.
알림이에게서 드래곤 스케일, 용의 비늘이란 말을 듣지 못했다면 마치 대형 사이즈의 육포나 나무껍질이라고만 생각했으리라.
“이게, 뭔지 알겠나……?”
그룬은 드래곤 스케일을 조심스럽게 영의에게 내보이며 물었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멀리서 봤던 것과는 다르게 표면이 다소 거칠고 우둘투둘했다.
‘비늘이라는 말과는 다르게, 매끄러운 뱀이나 물고기랑은 천지 차이네.’
마치 암석을 연상케 하는 거친 표면을 눈으로 훑던 영의는 드래곤 스케일의 겉에 난 흠집을 발견했다.
“음, 여기 손상된 흔적이 조금 있는데요?”
영의는 흔히 있을 법한 생활 기스(?)와 비슷하게 파이거나 살짝 찍힌 자국들과는 달리, 곧게 일자로 나 있는 상처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게 바로 저 검이 남긴 흔적이지. 그래서 그것이 뭔지 알겠는가?”
“비늘이죠?”
영의가 물건의 정체를 정확히 알아맞히자, 그룬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그것도 회룡(灰龍), 칼라미트의 비늘이지.”
그룬이 회룡이란 이름을 꺼내자 영의는 의문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화룡, 흑룡, 뭐 그런 건 다 들어 봤는데…… 회룡은 뭐지? 돌아오는 용인가?’
“회룡이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죠? 왜 회룡이라고 부르는 건지…….”
회룡, 그대로 번역하자면 재의 용이다.
‘뭐 보이는 걸 죄다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는 용이라고 하면 화룡이 더 적절할 테고, 색이 회색이라고 하기에는 지금 이 비늘의 색이 다른데……?’
불을 뜻하려면 화룡이라 하면 될 것이고, 색이 회색이라고 하기에는 지금 영의가 들고 있는 비늘은 회색과는 거리가 먼 색이었다.
“……거기에는 조금 긴 이야기가 필요하겠네. 아무튼, 왜 회룡인지에 대해 알려거든 그 비늘에 대고 벼락을 약간만 흘려 보게나.”
그룬은 그렇게 말하며 침대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고 그 위에 비늘을 올린 뒤 영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 그룬의 ‘비늘에 벼락을 흘려 보라’는 말에 당황한 영의.
“네? 조금 아깝지 않나요? 그래도 용의 비늘인데?”
난쟁이들이 영의가 알던 것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장일에 대해서는 진심인 민족인 건 오는 길에 봤었다.
하지만 그런 난쟁이들이 이런 엄청난 물건을 망치라고 하다니?
영의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었지만, 그룬은 확신이 가득한 눈빛으로 영의와 비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해 보게! 얼른! 걱정할 건 없네!”
“그럼, 조금만 해 볼게요.”
지금까지 보관해 온 것도 그룬이었고, 벼락을 흘리라 말한 것도 그룬이었기에 영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비늘에 뇌기를 흘려 보냈다.
‘그래도 용의 비늘이니까, 제법 강하게…….’
사람 하나 정도는 쉽게 기절시킬 수 있을 만큼의 전격을 비늘에 흘려 보냈지만, 비늘에서는 의외의 소리가 들려왔다.
틱.
‘……틱?’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동떨어진 소리에 영의는 비늘을 확인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멀쩡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 보이는 비늘.
“응?”
하지만, 거기에는 아주 작은 변화가 생겨 있었다.
영의의 손이 닿아 있는 부분이, 아주 약간이나마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던 것.
“이게…… 왜 색이…….”
비늘의 갑작스러운 변색에 놀라 그곳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손을 갖다 댔지만, 영의의 손이 닿기도 전에 그룬이 비늘을 낚아챘다.
“됐군! 됐어! 으하하하하!”
비늘을 들고는 회색으로 변한 부분을 바라보며 크게 웃기 시작하는 그룬.
“드디어, 드디어 확신이 섰다! 크하하하하!”
그룬은 마치 그 변색된 비늘이 자신의 보물이라도 되는 양, 껴안고 신명 나는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그런 그룬의 모습은 마치 미친 사람과도 같았고, 그걸 보는 영의도 내심 그룬이 미친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가졌다.
“……저기, 왜 그러시는지 이유라도 조금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영의의 질문에, 그룬은 춤추는 것을 멈추고 비늘을 영의에게 내밀었다.
“자, 이것 보게나! 여기!”
어디서 꺼낸 건지, 작은 송곳을 꺼내어 회색으로 변색된 부분을 긁어내는 그룬.
까득, 까드득.
변색된 부분은 송곳의 끝부분이 닿자 석고처럼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도 보게!”
송곳의 위치를 옮겨, 회색이 아닌 검붉은 부분을 긁어내기 시작하는 그룬.
툭.
스윽, 툭.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검붉은 부분에서는 송곳이 미끄러지기도 하고, 단단한 암벽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듯 아무런 흔적도 내지 못했다.
“……회색으로 변하면, 약해지는 건가요?”
“그렇네! 이런, 이 부분을 남기면 안 되지.”
마치 뭔가를 까먹기라도 했다는 듯, 그룬은 이마를 탁 치고는 송곳으로 회색으로 변한 부분을 모두 긁어냈다.
“음, 깔끔하군. 후우!”
그런 다음 입으로 바람을 불어 비늘에서 회색이란 게 있었다는 흔적을 모두 지워 내는 그룬.
영의는 꼼꼼하게 뒷정리를 하는 그룬의 모습을 보며 마음에 걸리던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그렇게 좋아하신 거죠? 새로운 특성을 알아냈다고 하기에는 크게 쓸모가 없어 보이는데요.”
“그래, 자네는 정확한 진실에 대해서는 모르겠지. 아니…… 대부분의 난쟁이들이 모르는 진실이지. 오직 몇몇만이 알고 있는…… 두렵지만 엄청난 진실을.”
그룬은 조심스레 단조장실의 바깥을 살펴본 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철컥, 탁.
평소에 절대 쓸 일이 없어 조금 뻑뻑한 잠금장치를 힘겹게 걸어 잠근 그룬은 비장한 표정으로 영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래, 내 자네에게 드래곤…… 용들의 비밀에 대해서 얘기해 주도록 하지. 거기다가 이 도시에 대해서도 말이지.”
그룬의 입에서 나온 말에, 영의는 다른 생각을 멈추고는 그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