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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177화 (177/325)

#제177화 (3)

허름한 간이침대, 불 꺼진 용광로, 낡은 모루가 있는 좁은 방.

후룹-

그 내부는 마치 사용하는 사람의 습관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듯 일부 부분만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스읍- 쩝.

침대의 눕는 부분과 일부 걸터앉은 듯한 부분은 때가 타서 지저분해졌지만 그 외에 다른 부분은 멀쩡했다.

달그락, 탁.

낡은 모루와 그 위에 얹어진 망치의 손잡이는 손때를 심하게 탄 듯, 손잡이 주변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달각, 달각.

용광로는 자주 관리를 했는지 새것 같았고, 간이침대의 옆 탁자도 제법 새것 같았지만 지금은 사용 중이었다.

후루룹- 쯔읍.

타악!

마침, 탁자의 사용이 끝난 듯했다.

“크어어-! 후, 예아.”

시원하고 개운하다는 듯, 우렁찬 감탄사를 한번 내뱉어 주는 그룬.

눈을 감고 개운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룬은 문득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방금 내가 뭐라고 했지?”

자신의 앞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구경하던 한 인간 남성에게 질문하는 그룬.

“그냥 감탄사요.”

“으음, 그랬나…….”

그룬은 남성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고, 문득 그때 자신의 몸 상태가 나름 괜찮아졌다는 걸 깨달았다.

“……음? 몸이 제법 괜찮아졌군.”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며 상태를 체크하는 그룬을 보며 의외라는 듯이 작게 중얼거리는 남성, 영의.

“역시, 해장국이란 이름이 괜히 있는 게 아니네……. 응?”

그룬은 멀쩡히 걷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트레칭을 하거나 옆에 있던 철사로 공예를 하기 시작하는 등 방금 전까지 숙취에 시달리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뭐야, 저거. 왜 저렇게 멀쩡하지?’

해장국과 배가 해장에 좋긴 하지만 생각보다 빠른 효과를 보이자, 영의는 문득 자신이 가져온 해장국에 의구심을 품었고 그것은 알림이 또한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사용자, 본래 저 음식에 저러한 효능이 존재한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까?]

‘그게, 과학적 효능은 내가 잘 모르긴 하지만 적어도 경험으로는 입증됐어. 확실히 도움이 되긴 하는데…… 저게 저렇게 빠를 수가 없는데?’

영의는 알림이와 해장국의 놀라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철사로 장미를 만들어 낸 뒤 그것을 무심하게 옆으로 던져 버리는 그룬.

“흐음, 이제 좀 괜찮아진 게 맞군.”

그는 자신의 몸이 괜찮아진 것이 확인되자 영의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니까 해장이라는 게 몸 상태를 원래대로…… 아.’

알림이와 해장에 대한 의논을 하던 도중, 자신의 앞으로 그룬이 다가오자 대화를 멈추는 영의.

“나, 제3공방의 단조장 ‘붉은 수염’ 그룬은 자네에게 감사를 표하겠네. 이름이 뭔가?”

“음, 영의입니다. 성은 최 씨고요.”

영의의 자기소개에, 그룬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성이라, 인간들의 문화로군. 뭐 상관없겠지. 아무튼 자네는 여기에 찾아온 이유가 뭔가?”

그룬은 영의가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해 그저 눈앞에서 사람이 비틀대다 넘어진 것을 일으켜 주려는 것처럼 도의적으로 도와준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어, 방금 그것들이 목적이었는데요.”

그룬이 시원하게 먹어 버린 국밥과 배의 잔해(?)를 가리키며 대답하는 영의.

“뭐라고……?”

잠시 포장용기들과 영의를 번갈아 쳐다보는 그룬.

“그래서, 자네가 내게 원하는 건 뭔가?”

그룬은 영의에게 뭐라도 보답을 하려는 마음은 있었다.

일단 자신의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지만 금방 회복하게 도와주었던 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계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의는 그룬을 만나기 이전에 이런 상황을 한두 번 마주한 게 아니었기에 일단은 겸손하게 나가기로 했다.

“흐음. 딱히 없는데요.”

뭘 어떻게 하여도 결국에는 그에게 보상이란 형태로 돌아오게 될 거란 사실을 익히 아는 영의였다.

그룬은 그런 영의의 겸손한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작게 감탄하였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 것에 보답을 바라지는 않는 것인가……. 인간들 중에 의인이 종종 있다고 하더니, 사실이긴 한 것 같군. 그보다, 내가 먹은 것들이 목적이었다는 말은 대체……?’

지금껏 3단조장으로 살아오며, 이런저런 청탁과 무리한 주문을 해 오는 인간이나 타 종족들을 많이 봐 온 그룬.

그에게 희귀한 광석을 찔러주며 주문을 먼저 받아 달라고 요구한다거나, 인간들 사이의 신분이나 재력을 앞세워 그의 실력을 사려는 이들도 있었다.

그룬은 자신의 실력을 하찮게 보는 그런 이들에게 호통과 일갈로 돌려주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생겨난 인간에 대한 묘한 불신 또한 있었고.

하지만 눈앞의 청년은 의외로…… 호감이 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호감이 가는 것도 있었고, 자신을 보는 눈빛에 큰 탐욕이 없었다.

‘아니, 탐욕이 아니라…… 뭐랄까. 모르겠군. 그저 안면만 있는 지인을 보는 듯한 눈빛에 가깝군. 어쩌면 내 대인 관계가 좁아서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자신이 먹어 버린 음식들이 목적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나 무관심에 가까운 눈빛을 보아하니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적어도 싫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그 음식들도…… 확실히…….’

그가 정신없이 들이켰기에 잠시 까먹고 있었지만, 영의라는 청년이 자신에게 주었던 해장국이란 음식은 가히 대단했다.

물론 그걸 먹기 전에 먹었던 배라는 과일도 청량감과 아삭함, 그리고 풍부한 과즙과 단맛이 일품이었다.

수분을 갈구하는 자신의 몸에 수분을 채워 주고 물만 먹을 때엔 채워지지 않는 그 이외의 여러 가지를 한 번에 채워 주고 몸에 스며드는 느낌이랄까.

3공방의 단조장이라는 높은 직위에 있으니만큼 그에게는 여유가 있었고, 야채나 과일 같은 것을 먹을 때도 제법 많았다.

그런 것들의 품질이 나쁠 리도 없었지만, 방금 전 먹은 배는 그 모든 것들이 형편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훌륭했으니까.

‘정말이지, 술 소화불량일 때 먹으라고 만들어진 듯한 과일이었지. 아닐 때에도 맛있겠지만……. 내 생에 최고의 음식이었다. 국밥 이전까지만 해도.’

하지만 배의 감동도 거기까지, 해장국과 밥을 먹을 때는 그런 생각이나 마음이 깔끔하게 날아갔었다.

-뜨겁진 않아도 아직 따뜻하긴 하니까, 먹을 만은 할 거예요.

마치 뜨겁게 먹는 게 정석이라는 듯 얘기한 영의의 말에 의아해하며 음식을 살펴봤던 그룬.

첫 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마치 피나 녹물을 연상케 하는 붉은 국물의 안에 이런저런 것들이 흐물거리며 떠 있었으니까.

야채는 싱싱한 게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난쟁이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야채가 귀하다고는 해도 그렇게 흐물거리기 시작한 야채는 조금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가장 꺼려지는 것은 그것들 사이에 당당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뼈였다.

영의가 이번에 가져온 것은 바로 뼈다귀해장국.

난쟁이들은 뼈를 쓰레기나 재료라고만 생각하지, 먹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뼈를 보자 해장국을 먹을 마음이 싹 사라지는 그룬이었지만, 그의 몸은 아직도 수분과 영양분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래, 두 눈 딱 감고 저것만 빼고 먹자.’

흐물거리기는 해도 야채가 있었고, 국물이 있는 음식이었기에 영의가 건네준 특이한 소재의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은 그룬.

단 한 숟갈, 그 이후부터의 기억은 사라져 있었다.

다 먹고 나서 감탄사를 내지른 후, 그제야 정신을 차려 보니 뼈만 남기고 깔끔하게 비워진 그릇이 그의 앞에 있었다.

그런 음식들을 대접받았기에 영의에게 더욱 호감이 가는 그룬.

“흐음, 내가 직접 물건을 만들어 줄 수도 있고 제자들에게 일러 준비시킬 수도 있지. 나는 이 모크란의 제3단조장일세.”

그룬은 자신만만하게 제3단조장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내세우며 자랑하듯 얘기했다.

“네……에?”

그런 자신의 소개에도 떨떠름하게 반응하는 영의를 본 그룬은 순간 자신이 뭔가 잘못 말한 줄로만 알았다.

단조장이란 직책이란, 이 드넓은 지하 도시에 단 세 명뿐인 직책이었고 각 공방의 우두머리와도 같은 자리였으니까.

물론 영의가 도시에 들어올 때 거쳤던 질문에서처럼, 모두가 일하는 공방 그 자체에 정해진 책임자의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실력이 뛰어나고 가장 중요한 단조 부분의 장을 맡고 있는 단조장이 자연스레 가장 높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만큼, 단조장인 그룬이 뭔가 할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공방 하나가 전부 동원될 수도 있단 소리였다.

하지만 눈앞의 영의는 단조장인 자신이 물건을 만들어 준다는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았다.

“……자네, 혹시 물욕이나 그런 게 없는 건가?”

혹여나 욕구란 것이 약하거나 무언가의 깨달음을 얻어 욕망이 없는 게 아닐까 싶어 묻는 그룬.

“아뇨, 당연히 있죠.”

“그런데, 어째서 거절하지? 나는 빈말을 하는 남자가 아니네. 조금 늦어질 수는 있어도, 만들어 주겠다 약조한 것은 만들어 줄 수 있네.”

그룬의 말에 영의는 잠시 흔들렸다.

‘만들어 준다고 하는데…… 알겠다고 해야 하나?’

영의는 딱히 방어구를 필요로 하지도 않았고, 보상에 있던 다른 항목들도 관심이 있지만 잘 생각해 보면 꼭 필요하진 않았다.

다만, 드워프가 만들어 주는 장비 그 자체에는 상당한 관심이 생겨났다.

‘내가 쓸 일이야 별로 없지만 실제로도 상당히 쓸 만하면 옥션에 내다 팔아도 되겠고…… 되게 좋은 경우에는 화연이나 지연이한테 쥐여 줘도 될 것 같은데.’

물론 화연이 사용하고 있는 검은 해외의 장인에게 직접 제작을 의뢰한 명품이었고, 지연 또한 길드장인 아버지를 통해 그런 검을 구할 방도는 있었다.

하지만 드워프, 그중에서도 장인 중의 장인에 가까운 그룬이 직접 만드는 검이라면 그것을 훨씬 뛰어넘을 거라고 생각하는 영의.

“혹시, 검 같은 건 어느 정도인지 봐도 될까요? 제가 원하는 수준의 물건이면 그걸로 할게요.”

명검을 감별하는 일이나 대장일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라고는 하지만, 영의는 검술을 쓸 줄 알았고 들고 휘두르기에 적합한 검을 찾아낼 방법은 있었다.

‘직접 휘둘러 보면 되는 거지. 독고휘 영감님 초식도 몇 개 써 보고.’

그리고, 독고휘의 검도 한 번쯤 만져 본 적이 있었기에 제대로 된 명검이 어느 정도의 것인지에 대한 기준도 조금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철방에서 철에 불순물이 없게 한다만, 본좌의 무공 중 뇌기를 섞어 사용될 검에는 그런 불순물이 일절 들어가지 않아야 하느니라. 그래서 현철과 한철을 섞어 만든 명검도 일반 철검에 비해 효능이 떨어질 때가 있지. 뭐? 검을 안 쓰겠다고? 쓰면 더욱 좋은 것을!

화연의 경우에야 검이 보조 격이지만 지연의 경우에는 검이 주가 될 수 있었기에 제법 까다롭게 고르려 하는 영의.

‘……뭐, 적어도 불순물은 없겠지.’

“검이라…… 흐음, 검…… 일단은 보여 주는 것이 낫겠지.”

그룬은 검이라는 말에 조금 고민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영의를 데리고 단조장실의 구석으로 갔다.

“그런데, 어째서 검을 찾는 건가? 물론 사내이니만큼 검에 대한 마음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적어도 검을 수련한 자국은 있어야 할 손이 너무 깨끗하군.”

‘검만 수련하지 않았지, 다른 것은…… 상당히 수련한 듯하군.’

영의의 손을 보고는 검을 수련한 흔적이 보이지 않자 검을 찾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냥, 한번 보려는 마음도 있었고…… 검을 잘 만든다면 다른 것도 잘 만드실 것 같아서요.”

영의는 뭐 하나라도 잘 만든다면 다른 것도 잘 만들겠지 싶은 생각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룬은 그 대답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렇지. 검에는 단조와 연마, 그 이외에 다른 대장일의 기초들이 들어가 있다. 기본기 중의 기본기를 보겠다는 건가.’

물론 조수들이 도제로 올라와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은 화살촉같이 작은 것들을 담당하게 되는 일이지만 난쟁이들 사이에서 전체적인 대장일의 기본이자 끝이라 함은 검이었다.

균형도 잡아야 하고, 모양도 대칭을 이루어야 했으며 주조 작업에서부터 단조, 연마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는 것이 바로 검이었으니까.

이내 단조장실의 구석, 창고 앞에 다다라 멈춰 서는 그룬.

“후우, 자네에게 말하기는 조금 부끄럽지만 여기가 바로 제3공방의…… 물건이 든 창고일세. 만들어 두고 남은 것들이 들어 있지. 당장 보여 줄 물건이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었네.”

그룬은 창고의 문을 열었고, 영의가 그 안을 들여다보자 창고 내부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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