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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176화 (176/325)

#제176화 (2)

알림이의 도움과 앞사람의 적절한 도움(?) 덕분에 드워프…… 난쟁이들의 도시에 별 어려움 없이 들어온 영의.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과는 달리, 들어온 것과 직접 찾아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수없이 갈라진 작은 골목길들과 지하 도시라는 특성상 트이지 않고 차단당한 시야.

제3공방으로 찾아가기는커녕 어딘가 가게를 하나 찾기도 힘들어 보였다.

“흐음…… 역시 이럴 때는 지도가…….”

영의는 좁은 통로들을 보며 잠시 고민하다 이내 시야의 한구석, 지도 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언제나처럼 그에게 길을 찾는 데 큰 도움을 주던 지도에 의지하려 했던 영의는 지도를 보며 길을 찾으려 했다.

‘아, 이거…… 일 났네.’

하지만, 지도를 본 영의는 일이 복잡해졌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보통 지도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평면의 형태로 제작된다.

그편이 가장 알아보기도 쉽고, 만들기도 쉬우니까.

하지만 이곳은 땅굴을 파서 만든 지하 도시였고,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같은 위치라도 실질적 위치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었다.

건물 안의 1층과 3층에 있더라도 지도로 보면 같은 위치에 있다고 표시되듯이 지도에 안내되는 경로와 전혀 다른 환경을 두고 난감해하는 영의.

‘알림아, 혹시 이건 어떻게 바꿔 줄 수 없니……?’

[죄송합니다, 사용자. 대략적인 정보는 미리 처리해 두었습니다만 지하 도시의 내부 통로 정보에 대해서는 지금 불러오는 중입니다.]

알림이에게도 물어봤지만, 좁은 통로가 한두 개가 아닌지 시간이 걸리는 듯 보였다.

“……뭐, 일단 물어보면서 찾아가야겠지……?”

영의는 일단 통로들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간 것처럼 보이는 크고 오래된 통로를 향해 걸어갔다.

한편, 제3공방 안의 단조장실.

그룬은 누워 있는 상태로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으음…….”

나이를 먹어 갈수록 조금씩 몸에 활력이 없어지는 느낌을 매번 체감하는 그룬이었다.

예를 들면 예전엔 너끈히 해내던 일이 조금씩 힘에 부치는 때가 있다든가 하는 경우.

그리고 지금처럼 자다가 깰 때 몸에 기력이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 경우는 평소에 느끼던 것과 조금 다른 듯했다.

쿠웅.

“으윽, 몸이…….”

단순히 힘이 없어 무기력한 게 아닌,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듯한 느낌을 느끼는 그룬.

그는 지금껏 살아온 세월이 있었기에, 지금 자신이 어떤 이유로 이런 증상을 보이는지에 대해서 금방 판단을 내렸다.

‘뭐지……? 술 소화불량인가? 지금껏 살아오며 이런 일은 없었는데.’

술을 과하게 먹거나, 짧은 시간에 너무 급격히 들이켠 뒤에 찾아오는 어지럼증과 두통을 동반한 신체 이상.

흔히들 숙취라고 부르는 그 증상은 건강한 신체를 지닌 난쟁이들의 특성상 제대로 자라지 못한 아이들이나 간혹 허약하게 타고나는 난쟁이들이 종종 겪는 일종의 약골 인증 현상이었다.

술을 식사와 비슷한 수준으로, 때로는 식사보다 자주 마시는 난쟁이들은 그것을 과식이나 급체와도 같이 취급했다.

애초에 숙취라는 게 거의 없는 일족이었기에 그저 적합한 단어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아무튼 그룬은 지금 자신이 술 소화불량에 걸렸다는 사실에 묘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고, 자신이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더욱 심하게 체감하기 시작했다.

“끄응…… 끄흠.”

힘겹게 간이침대를 붙잡고 몸을 일으켜 바닥에 앉는 그룬.

“아이구, 머리야…….”

그룬은 욱신대는 머리를 붙잡고, 마찬가지로 울렁대는 속을 진정시키려 호흡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술 소화불량에 뭐가 좋았더라?’

숙취를 겪어 본 적도, 주변인들 중에 숙취로 고생하는 인물을 본 적도 없었기에 숙취에 뭐가 좋았던가에 대해 떠올리려 하는 그룬.

하지만 때로는 머릿속 지식보다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갈구할 때가 있었고, 그때가 바로 지금이었다.

“물…… 물이 필요해.”

술을 물 마시듯 마시는 난쟁이도 있었지만 그룬은 지금 술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휘청대며 일어선 뒤, 벽을 짚고 단조장실의 바깥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그룬.

‘제자들이나…… 조수들에게 물을 좀 갖다 달라고 하면 되겠지.’

어제 제자들이 술을 갖다 준 이후, 방해하지 말란 엄명을 내렸기에 자신이 직접 나가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오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는 그룬이었다.

그렇기에 일단 말이라도 전하기 위해 공방으로 통하는 문을 연 그룬.

“누구 손이 비는…….”

매 시간 바쁘게 작업을 하는 공방에서 손이 비는 한가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지만, 그룬은 뭔가 시키려 할 때마다 그런 식으로 말을 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본 공방의 내부는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대체.”

있을 수 없는 일에 잠시 정신이 멍해졌던 그룬이었지만 이내 대략적인 시간대와 날짜를 깨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정기 점검 날이었군. 게다가 점심시간이라니.”

분기에 한 번, 용광로와 대장간의 집기들의 노후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하루 정도 모든 공방의 활동을 중지하고 점검을 하는 날이 있었다.

단조장의 개인실에 있는 시설들에는 해당 사항이 없었기에, 그룬의 제자를 비롯한 3공방의 난쟁이들이 다 자리를 비운 것이리라.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가?”

하지만 지금은 점심을 먹을 때.

아침은 작업에 들어가야 하니 대충 먹고, 저녁은 작업이 한창일 때이니 거르는 일이 잦은 난쟁이들이었지만 용광로가 달아오르는 것이나 주물이 식는 것을 기다리는 때가 대부분인 점심때만큼은 확실하게 식사를 챙겼다.

그런 만큼, 제자들이 나간 지 조금 된 것 같아 보여도 당분간은 안 들어올 것이라 생각하는 그룬.

그룬은 숙취에 시달리는 몸을 힘겹게 이끌고 제자들이 사용하는 모루 쪽으로 갔고, 그 위에 슬쩍 손을 올려 보았다.

“……따뜻하군. 나간 지 얼마 안 됐어.”

못해도 두어 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된다는 판단이 서자, 그룬은 직접 해결하기 위해 공방을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을 막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숙취였다.

“우읍!”

그룬은 구역질을 참아 내며 벽에 손을 짚었다.

그대로 계속 공방을 나가려 했지만, 구역질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후우…… 조금만, 쉬어야겠군.”

구역질로 끝나지 않고, 거기에 두통까지 밀려오자 결국 굴복하고 만 그룬.

혹여나 누군가 들어와서 자신이 끙끙거리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기에,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어 단조장실의 안으로 다시 돌아가려 했다.

공방에서 나가고 또 거기서 물을 구하러 간다면 상당한 거리가 되지만, 단조장실로 돌아가는 것은 거리가 가까우니만큼 더 쉬웠으니까.

‘시간적 여유는 있다, 천천히 괜찮아질 때까지만 조금씩 움직인다면…….’

개인의 공방인 단조장실의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비밀로 할 수 있었기에 불상사가 생겨도 덮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그룬이 다시 돌아가기 위해 한 발짝을 떼는 순간, 공방 안에 누군가 들어왔다.

“계신가요? 사람이 없네.”

갑작스러운 방문자의 존재에 당황하며 고개를 돌리는 그룬.

“누구…….”

방문자는 공방에 들어와서 누군가 있지 않을까 둘러보다 때마침 안쪽에서 이곳을 돌아보는 그룬을 발견했고, 결국 둘의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아, 사람이 계셨구나. 여기가 그 3공방 맞나요? 두 번이나 잘못 찾아가서.”

“……맞네만, 자네는 인간 아닌가? 여기엔 왜 온 거지?”

평소였다면 인간이 들어오려 해도 바깥의 난쟁이들에게 제지를 당했겠지만, 하필 아무도 없을 때 방문하게 되어 공방 안쪽까지 들어온 듯했다.

두 번씩이나 길을 잃었다는 말에 방문 목적이 궁금해지기도 했고, 때마침 나타난 자신을 모르는 인물의 등장에 약간의 기대를 갖는 그룬.

여차하면 그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한 그룬이었으나 방문자는 그룬의 얼굴을 보더니 갑자기 미소 지었다.

“음? 아, 맞네. 찾았다.”

“응?”

이내, 확신에 찬 표정으로 빠르게 그룬에게 다가오는 방문자.

그룬은 방문자가 갑자기 거리를 좁히기 시작하자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곧바로 자신의 단조장실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 아니, 도망가지 마시고! 이봐요, 아저씨!”

갑자기 도망치기 시작하는 그룬을 보자 방문자는 더더욱 빠른 속도로 다가왔고, 그룬은 목소리가 더욱 가까워지자 기겁하여 숙취도 잊고 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으윽, 윽…….”

안으로 들어온 것까지는 좋았지만, 급격한 움직임에 두통이 심해져 바닥에 쓰러지는 그룬.

그는 문을 닫기 위해 팔을 들어 올렸지만 난쟁이의 팔은 길이라는 면에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휴, 왜 도망가신대? 응?”

방문자는 그를 뒤쫓아 단조장실까지 따라 들어왔고, 바닥에 쓰러진 그룬을 보며 의아해했다.

“……혼자 쓰러지셨네?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룬은 방문자를 쳐다보며 혹여나 자신을 해코지하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에 두려움을 품기 시작했다.

평생 쇠를 두들겨 온 장인으로서, 제자나 조수들 앞에서는 누구보다 위엄 있고 두려운 존재였으나 무력에 있어서만큼은 이제 갓 경비병이 된 초짜들보다 못했던 그룬.

하지만 그룬의 생각과는 달리, 방문자는 그에게 별다른 해를 가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조심스럽게 들어 간이침대로 옮겨 주기까지 한 방문자.

“에휴…… 어떻게 매번 볼 때마다 멀쩡한 상태인 사람이 없어? 아니, 사람이 아니라 드워프인 데다 숙취 정도면 그나마 멀쩡한 상태이긴 한데.”

방문자는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메고 있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고, 그룬은 그것을 홀린 듯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방문자, 영의는 그런 시선을 받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자신이 하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알림이와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용자, 과일에 대한 선택은 매우 적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 매번 살찌는 음식만 갖고 다니니까, 과일도 좀 넣어 봤는데 어떻게 딱 맞았네.’

평소에도 주머니에 간식류나 음료수를 들고 다녔지만, 이제 거기서 더욱 나아가 간단한 생필품까지 넣어 다니기 시작한 영의.

보온 박스에도 공간 확장을 적용하고는 이제 그 범위가 넓어져 과일에 조리 식품까지 넣어 다니고 있었다.

‘아니, 드워프가 숙취는 조금 웃기지 않나? 술을 물보다 좋아하는 종족이란 인식이 퍼져 있는데 숙취에 몸을 못 가누고 있다니.’

물론 술을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숙취를 피해 갈 순 없다. 숙취의 정도가 다를 뿐.

‘아무튼, 때마침 배를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네.’

영의는 보온 박스에서 해장국과 공깃밥을 꺼내어 대충 올려놓은 뒤, 과일들 중 배를 꺼내어 깎기 시작했다.

“조금만 기다려 봐요. 숙취에 직빵인 걸 드릴 테니까.”

집에서 냉장 보관하던 것을 그대로 보온 박스에 넣었기에 아직 시원함을 유지하고 있는 배.

영의는 배를 다 깎은 뒤, 그것들을 조각내어 그룬에게 건네주었다.

“한 입 해요. 겨울 배가 맛있는데. 배가 달아요.”

물론 영의가 거주하는 서울을 기준으로 봐도 겨울은 아니었지만, 봄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날씨였다.

그룬은 낯선 이가 건네주는 알 수 없는 흰 물체를 보며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먹어도 되는 건가? 아니, 그 이전에 저건 뭐지? 안 먹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저 손에 든 칼로 찌르려나? 그보다, 표면에 맺힌 물이…….’

낯선 이가 건네주는 배를 먹어도 되는 걸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자신을 공격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다가 이내 배의 표면에 맺힌 물기를 보는 그룬.

그의 몸은 물을 갈망하고 있었고, 눈앞에는 물기가 가득한 과일이 그를 유혹하듯 향을 풍기고 있었다.

그렇게 그룬은 결국 내면의 욕망과 본능에 몸을 맡겼고, 낯선 이가 건네준 의문의 과일을 덥석 물어 입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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