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배달은 나만 가능하다-175화 (175/325)

#제175화 (1)

모크레튼 산맥.

평범한 사람에게는 보는 것만으로도 경외심과 두려움이 일게 만들 만큼 높고 험준한 산맥이었고, 샤크라트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 있는 곳이었다.

산맥 주변에서 매일같이 생겨나는 뇌우와 갑작스러운 돌풍은 감히 산 위를 넘본 인간과 생물들에게 평등한 죽음을 가져다주었고, 그것은 이내 주변에 사는 생물들에게까지 확대되어 모크레튼 산맥 주변은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볼 경우 바람과 뇌우에서 안전해질 수만 있다면 그곳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천혜의 요새 지역이 된다.

그리고 그런 발상을 떠올리고 직접 실행으로 옮긴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모크레튼 산맥 지하에 거주하는 난쟁이들이었다.

본래 모크레튼 산은 그 거대함만큼이나 단단한 암반들이 가득했기에 굴착은커녕 채광도 거의 힘들었지만 난쟁이들은 그러한 작업들을 매우 간단하게 해냈다.

처음에는 동굴 속에서 살던 이들이었기에 대를 이어 갈수록 키가 줄어들었고, 크기를 줄이는 대신 더욱 강한 육체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발달한 신체 능력과 작은 키로 그들 스스로가 지나갈 만큼의 굴을 파는 것은 금방이었다.

난쟁이들이 모크레튼 산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채 100년도 되지 않아 난쟁이들의 왕국, 모크란이 생겼다는 것은 샤크라트 대륙에는 상식 수준의 사실이었고.

그들은 거주지를 넓히는 과정에서 모크레튼 산 지하에 있는 수많은 광석과 보석들을 채굴해 냈고, 그것으로 교역을 하며 부를 쌓아 갔다.

왕국의 번영이 300년이 되어 갈 무렵, 난쟁이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그것은 곧 국고로 옮겨지게 되었다.

교역은 하지만 국민의 대부분이 지하에 있는 걸 선호하는 난쟁이들의 특성상 소비 또한 국내에 한정되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국고에 쌓여 가던 황금과 보물들은, 이내 국가의 풍요로움의 상징에서 비극의 상징이 되었으니…….

“……할아버지, 정말 예전에는 다들 여유롭게 살았나요?”

덩치가 작은 한 소년이 수염과 백발이 성성한 노인을 올려다보며 질문했다.

“그랬었지. 모두가 맛 좋은 술을 원할 때 마실 수 있었고, 지상에서 교역으로 건너온 신선한 채소와 고기를 함께 먹었단다.”

노인은 소년을 내려다보며 인자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고, 소년은 노인의 말에 동경하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

“우와…… 채소…….”

제법 부유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오며 고기는 나름 자주 먹었던 소년이지만, 채소만큼은 특별한 날에나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노인은 눈을 빛내며 채소를 중얼거리는 손자를 보며, 작게 웃으면서 과거를 추억하기 시작했다.

“허허…… 그룬. 지금에야 힘들게 살지만…… 언젠가, 네가 다시 황금기를 맞이할 세대가 된다면 좋겠구나…….”

노인과 소년은 조손 관계로 보였고, 그들의 얼굴은 확실히 그만한 나이 차이가 있어 보였지만 키는 별 차이가 없었다.

“네, 할아버지! 언젠가 다시 채소를 자주 먹게 되는 날이 올 때까지 노력할게요!”

조부의 앞에서 채소를 먹는 일이 잦아지는 날이 오게 하겠다고 다짐하던 소년은, 세월이 흘러 보송보송한 솜털에 가깝던 수염도 억세지고 구불구불해졌다.

가느다랗고 상처 없던 팔은 탄탄한 근육으로 인해 굵어졌고, 팔 곳곳에 긁히고 베인 상처, 불에 덴 상처 등이 가득했다.

검고 윤기 나던 머리는 어느새 희끗희끗해지기 시작했고 종종 관절이나 뼈가 비명을 지를 때도 있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어릴 적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그의 눈빛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이게…… 이게 아닌데…….”

한참 두들기던 주괴를 집게째로 바닥에 집어 던지고는 허공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단조장, 그룬.

그리고 갑자기 무언가 내던져지는 소리가 나자 깜짝 놀라 달려온 그의 세 제자들과 조수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스, 스승님!”

“단조장님!”

평소의 그룬이었다면 작업물을 내팽개치기는커녕, 작업을 끝낼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을 거란 사실을 익히 아는 제자들은 그룬이 어딘가 아픈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스승님, 어딘가 편찮으십니까?”

“사모님한테 연락을 해야 하나?”

“신달…… 신달을 찾아와! 아버지가 쓰러졌다고 하고!”

세 제자들은 그룬을 부축하며 그를 쉬게 하려고 했고, 조수들은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조수들 중 가장 막내인 한 난쟁이가 바닥에 떨어진 작업물과 집게를 치우려는 듯, 그쪽으로 다가가자 제자 중 한 명이 그것을 발견하고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손대지 마! 스승님의 작업물이다. 살려 내는 것도, 죽이는 것도 스승님의 관할이다. 가만히 놔두도록.”

제자의 일갈에 고개를 황급히 끄덕이며 멀어지는 조수.

“네, 네! 알겠습니다!”

조수는 곧바로 공방을 나갔고, 제자들은 그룬을 조심스럽게 부축하여 공방 안에 마련된 간이침대로 데려갔다.

그룬을 눕힌 뒤, 두세 걸음 물러서서 얌전히 기다리기 시작하는 제자들.

스승이 어딘가 아프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아직 의식을 잃지 않았고, 그들에게 지시를 하지 않았으니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 모습이 평소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다른 이들이 평소에 그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 주는 듯 보였다.

“하아…… 나도, 나이를 먹은 건가.”

지금껏 수없이 들어와서 수많은 시간을 보낸 공방이었지만, 정작 그 공방의 천장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그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일어나서 식사를 하면 바로 공방에 와서는 지칠 때까지 망치질만 했었지. 그러다 피곤하면 공방 구석에서 곧바로 잠들었고. 내 인생에 가족과 보냈던 잠깐의 시간만 뺀다면…… 내게 남는 건 이 공방뿐인가.’

그룬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잠시 추억에 잠겨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이에 대한 짤막한 말을 내뱉은 뒤 가만히 천장을 응시하고 있는 그룬을 보는 제자들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어떡하지? 스승님이 많이 편찮으신 것 같은데.”

“사형. 어쩌죠? 납기일이 다가오는데…….”

“납기일은 우리가 어떻게든 하면 돼. 셋이 나눠서 작업한다면 충분히 스승님이 만드는 수준만큼은 돼. 하지만 그만한 속도가 안 날 뿐이지.”

그룬의 세 제자 아인, 스라인, 다인은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일단, 스승님의 몸 상태부터 호전시키는 게 우선이야.”

그룬이 작업을 중단한 것이 건강 문제로 인한 것이라 생각한 아인은 그룬을 회복시키는 데에 집중시키려 했고, 나머지 둘은 그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다인은 신달이 오면 둘이 함께…….”

“그럴 필요 없다.”

대책을 논의하던 세 제자들은 뒤에서 들려오는 스승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그룬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았다.

“스승님. 하지만…….”

“술이나 가져오너라. 잠깐 기운이 없어서 이렇게 됐으니. 별것 아니다. 아니면 내가 어딘가 아프다고 생각한 거냐? 이 붉은 망치님이?”

그룬은 제자들을 안심시키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술을 가져오라 얘기했다.

“……알겠습니다. 술을 챙겨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저흰 이만 하던 작업을 마저 하러 가겠습니다. 다인, 가자.”

제자들도 바보는 아니었던지라, 그룬의 그런 변명에 속아 줄 리 없었다.

하지만 스승인 그룬이 ‘자신은 아픈 게 아니라 단순히 술이 모자라서 그렇게 된 것이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끼익-

그렇게 세 제자들이 모두 나가자, 그룬은 바닥을 내려다보며 마른세수를 하거나 한숨을 내쉬는 등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후우…….”

마른세수를 하다 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그룬.

‘아직 손 떨림이 오지는 않았군……. 다행인 건가.’

그는 지금 무기력함과 묘한 두통, 갑작스러운 감정의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방금 전의 일을 발생시켰다는 것을 확신하는 그룬.

“나도, 조부님처럼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인가? 아니, 나는 지금 죽을 순 없다. 죽어서는 안 돼…….”

그룬은 죽음을 거부하려 하고 있었고, 거기에는 생물학적인 본능과 자신의 사후 주변인들에 대한 걱정 이외의 이유가 있었다.

“그래, 2년…… 아니 1년만 더 있으면 계획이 확실해진다. 그때가 된다면 누구에게라도…….”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룬은 이내 간이침대에서 일어나 작업대 앞으로 다가갔고, 바닥에 떨어져 흙먼지가 묻은 채 식어 버려 다시 굳어진 금속 덩어리를 들어 올렸다.

“일단은, 그 저주받을 녀석에게 잘 보이고 있어야겠지.”

다시 용광로에 공기를 불어 넣고, 온도를 높이기 시작하는 그룬.

그의 망치질은 제자가 술을 가져왔을 때에도, 그를 걱정한 아들이 찾아왔을 때에도 무심하게 계속되었다.

* * *

모크레튼 산맥 주변 지하 도시의 입구.

한 남자가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들과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무슨 여행객한테 건국 시조의 이름을 묻다니!”

“우리 왕국에 오려는 관심이 있었다면 적어도 공부는 했을 테고, 그랬다면 모를 리가 없지! 네놈, 첩자냐!”

육중하고 튼튼해 보이는 방어구와 날카로운 창을 쥐고 있는 경비병들의 기세에도 밀리지 않고 자신이 할 말을 하는 남자.

“아니라고요! 그저 난쟁이들의 지하 도시란 게 있다는 말에 구경이라도 해 보기 위해 다른 대륙에서 온 여행객입니다!”

하지만 특유의 고집과 소임에 충실한 책임감이 강한 난쟁이들은 남자의 말에도 꿋꿋하게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다른 대륙에서 굳이 올 정도라면 관심과 애정이 있을 것 아닌가! 얼른 모크란 건국 시조님의 이름을 대라! 역사를 읊으란 것도 아닌 것을, 왜 그리 끄는 거냐! 네놈, 첩자가 맞군!”

그리고 그런 실랑이를 뒤에서 쳐다보며 도시의 출입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며 여러 가지 반응을 보였다.

“오늘도 조금 늦어지겠구먼…….”

파이프에 불을 붙인 뒤, 담배를 피우며 느긋하게 구경하면서 ‘오늘도 한 건 하는구나.’라는 모습을 보이는 상인 같은 이들.

“하아, 진짜…… 그냥 내가 쫓아내 버릴까?”

시간을 끌게 하는 남자가 짜증 난다는 듯, 원망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가벼운 차림의 사람들.

“뭐래?”

“나라를 건국할 때 당시 왕의 이름을 대라는데?”

“아, 그거 봤었는데…… 어느 부분이더라?”

“찾아봐.”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행객인 듯했지만, 공부해 온 게 있는지 자료를 찾아보는 사람들까지.

“자, 얼른 이름을 대 보아라!”

경비병은 마지막 기회를 준다는 듯, 창을 고쳐 잡고 남자를 노려보았다.

“어…… 이야신 2세?”

난쟁이들의 왕 중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업적을 세운 이야신 2세의 이름을 대는 남자.

남자는 답을 말한 뒤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경비병과 창을 번갈아 보았고, 이내 경비병들은 창을 잡은 손을 풀고 남자에게 다가왔다.

“아, 정답인가요?”

남자는 희망을 품고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물어보았지만, 경비병들의 표정은 남자와 반대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니, 틀렸다! 썩 꺼져라!”

남자를 맨손으로 들어 휙 내던지는 경비병.

자신의 두 배에 달하는 키를 가진 남자였지만 경비병은 작은 가죽 자루 하나를 던지듯이 쉽게 내던졌다.

“자, 다음!”

남자를 쫓아낸 경비병은 다음 대기자를 불렀고, 다소 특이한 복장의 청년이 경비병의 앞으로 다가왔다.

“자, 방문 목적은?”

“물건 배달이요.”

으레 대부분의 출입국 과정에서 하듯, 방문 목적을 묻는 경비병.

경비병은 청년의 차림새를 훑어보다 그가 메고 있는 가방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흠, 어디의 누구한테지?”

“보자…… 제3공방이라던데요.”

“3공방이라. 그렇다면 제3공방의 공방장은 누구지?”

경비병은 아까와 달리, 상당히 주요 시설에 들어가려는 사람이 나오자 질문을 바꾸었다.

정말 그러한 용무가 있거나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는 이상 알지 못하는 사실을 묻는 경비병들.

“……공방장은 없고 단조장만 있는 거 아닌가요?”

청년은 경비병들의 질문이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고, 그 말에 경비병들은 미소를 지었다.

“좋다, 통과! 공방은 공방일 뿐, 다스리는 사람은 없지. 들어가게나, 친구.”

그렇게 청년은 지하 도시의 입구로 들어섰고, 뒤를 돌아보며 넓은 굴의 내부를 구경하며 천천히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 참, 이상한 도시야……. 아무튼 정답 알려 줘서 고마워.”

[과찬이십니다, 사용자.]

지금껏 공중에서 날아서 무단(?) 침입을 일삼았던 영의가, 처음으로 합법적인 배달 절차를 밟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