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4화 (25)
한국 방문 3일 차.
패트리어트는 이런저런 사진 찍기와 악수들을 마치고, 방송에까지 출연했다.
-한국에서 가장 마음에 드셨던 게 뭔가요?
-글쎄요, 누구라도 친절하게 대해 줬다는 것?
-그건 아마 패트리어트가 그만큼 유명한 사람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요.
-하하하, 그랬다면 제 이름을 불렀겠죠. 중년이나 노년의 어른들이 저에게 친절했던 게 인상이 깊더군요.
이런 인터뷰도 하고, 여러 매체를 타며 한국에 있는 그의 모습이 여기저기 퍼져 나갔다.
그리고 한 어두운 방에서 그런 그의 사진이 들어가 있는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띄워 놓고 회의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 패트리어트야. 이름이야 다들 알겠지.”
“당연하죠.”
물론, 이 자리에는 화상으로 참여한 인원들도 있었다.
-알고 있다.
-근데, 저 아저씨 이름은 왜 미사일이랑 똑같은 이름이야?
“그건 별명이잖아…….”
-당연히 알지, 난 농담도 못 해?
-네가 말하면 농담으로 안 들린다.
조금 시끄러워지기 시작하자, 한 여성이 그들을 제지했다.
“자, 거기까지. 계속 진행하죠?”
“음, 고마워. 아무튼 패트리어트 말인데…… 내가 전에 얘기를 안 한 게 떠올라서.”
이야기를 하는 남자, 선지자는 그 말을 하더니 자료 화면을 다음으로 넘겼다.
“자, 보이지? 스펙 표.”
패트리어트의 대략적인 신체 그림과 각 신체 부위에 이런저런 단위와 글이 적혀 있었다.
“……괴물이군요.”
-확실한가?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에…….
선지자는 간단한 설명을 위해 영상 화면까지 띄워 주었다.
“흠, 대충 미사일에 맞아도 멀쩡한 몸에 악력은 유압프레스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우리 텐징…… 권왕보다 조금 더 하이 스펙이지.”
패트리어트가 강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권왕보다 더 강한 것을 숨기고 있었다는 말에 모두가 충격받은 듯 말을 잃었다.
“그 정도……였습니까? 분명 제가 알기로는…….”
잠깐의 정적 이후,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이들 중 가장 정보가 많고 이성적인 샤오롱이었다.
“아아, 샤오롱. 그건 나도 알지. 해 봐야 최정상급이고 진짜 톱은 아니다…… 뭐 그런 말이 있지. 어느 정도 맞기도 하고. 근데 그건 ‘각성자’로서의 능력이야.”
선지자는 이내 자료 화면을 넘겼고, 거기에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사진들이 있었다.
-으으…… 저게 뭐야…….
-아, 이건 조금.
“개조, 한 건가.”
뼈가 있어야 할 자리에 느닷없는 금속들이 존재한다거나, 육안으로 봐도 식별될 정도로 과도하게 부풀어 오른 장기, 안구에서 뭔가 폭발한 듯 새카맣게 타들어 간 눈가와 그 주변, 그 외에 이런저런 장면이 찍혀 있는 사진들이 있었다.
“보이지? 저게 바로 각성자가 나타나던 시점에 미국에서 시작된 슈퍼솔저 프로젝트야.”
“음모론이…… 아니었군요.”
샤오롱은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그것들을 모두 눈에 담아 두려 하고 있었다.
“뭐, 그렇지. 그리고 그 슈퍼솔저 중에 가장 뛰어난 게 바로…….”
-정답! 패트리어트!
“딩동댕, 정답!”
선지자는 메리에게 미소 지으며 박수를 한번 쳐 준 뒤, 다음 자료로 넘어갔다.
“뭐…… 슈퍼솔저 프로젝트 같은 건 다른 국가에서도 시행했어. 하지만 저렇게 신체 개조를 본격적으로 한 건 미국과 중국이 유일했지. 특히, 미국이 신체에 마력을 과도하게 주입하는 실험을 많이 했어. 중국은…… 다른 쪽으로 더 심했지.”
으득.
선지자의 말에 화를 참듯 이를 악무는 샤오롱.
“아무튼 저렇게 괴악한 신체 스펙은 패트리어트 본인의 타고난 신체와 각성 능력, 개조를 통한 결과물이니까 알고만 있어. 그리고 나는 패트리어트가 우리의 권왕, 텐징과 맞붙는다면 무조건 텐징이 이길 거라 확신해. 패트리어트는 거의 다 주입된 마력이니까.”
선지자는 스펙이 상대적으로 약한 텐징이 이길 거라고 장담하였고, 그 의견에 모두가 의문을 표했다.
심지어 텐징 본인까지도.
“예?”
-흐음?
-왜? 스펙은 저쪽이 더 위라면서?
“스펙이 차이 나긴 하지만 벤치프레스나 데드리프트의 최대 무게가 5kg쯤 차이 난다는 정도의 느낌이지. 뭐 나는 90kg도 못 드는 약골이지만, 하하하.”
선지자는 스펙 차이가 나긴 하지만 미묘한 정도의 차이라 별문제가 없다고 얘기했다.
“최대 근력이 차이 나도 힘 싸움이 안 된다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텐징의 최대 장점은 바로 지구력이니까. 지구전으로 가면 무조건 이겨.”
텐징은 본래 각성 이전에도 히말라야에서 태어나고 자랐고, 구르카 용병 시험까지 합격한 인재였다.
그런 만큼 심폐 지구력만큼은 극에 달해 있었고, 각성까지 하며 신체능력이 발달할 때 그 부분도 함께 발달했던 텐징.
“그러니까, 아무리 비공식 강화계 세계 1위인 패트리어트라도 끝까지 가면 이긴단 거지.”
“흐음, 네. 알겠습니다.”
본디 알려지지 않았어야 할 비밀 정보들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회의.
선지자는 그런 정보들을 잡담 주제로 꺼내듯이 하고 있었다.
“아, 그리고 이거 어디 가서 말하지 마. 패트리어트 마력이야 정부가 마정석으로 지원해 준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긴 하지만, 신체 개조에 대한 건 바로 잡혀갈 정도니까.”
마력의 급격한 성장세와 정부의 예산 지원으로 추정했을 때, 패트리어트가 마력 주입을 지원받는다는 건 대부분 사람들이 추측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미 정부에서도 그 사실을 공식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고.
하지만 슈퍼솔저 프로젝트만큼은 정부에서도 특별 취급하는 기밀이었기에 발설하면 특수부대가 쳐들어오고도 남을 안건이 확실했다.
“음, 내가 말 안 해준 게 또 있었던가……?”
선지자가 고민하듯 턱을 짚고 있을 때, 메리에게서 질문이 들어왔다.
-나 묻고 싶은 거 있어!
“그래, 뭐지?”
메리는 화상 화면의 뒤쪽, 선지자의 옆 구석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 뒤에, 가면 쓰던 아저씨 맞지?
“응, 맞아.”
선지자의 옆에는 하오다가 기척을 숨긴 채 구석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아저씨 안녕!
“…….”
메리의 밝고 명랑한 인사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하오다.
선지자는 하오다가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메리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음, 인사를 안 받아 줘도 이해해. 휴가를 방해받았거든.”
-그래? 아저씨, 미안! 휴가를 못 보냈다니 불쌍해!
“……닥쳐라.”
하오다는 메리를 노려보며 짐승이 으르렁거리듯 위협했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싫은데!
“……빌어먹을 꼬맹이가.”
그렇게 서로 싸우기 시작하는 둘을 구경하던 선지자는 이내 둘을 무시하며 텐징에게 말을 걸었다.
“음, 내가 아주 작은 부탁을 하나 하려고 하는데…… 아마 네 입장에서도 마음에 드는 일일 거야. 들어줄 수 있을까?”
-……무슨 일이지?
선지자는 텐징을 보며 미소 지으며 한 도시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서울에 가 줬으면 해.”
* * *
샤크라트 대륙.
사람들은 이 대륙을 가리켜 ‘하나만 빼면 살기 좋은 대륙’, ‘목숨만 부지할 수 있다면 낙원에 가까운 곳’이라고 칭한다.
이곳에 거주하는 현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예기치 못한 사고가 생각보다 높은 확률로 발생할 수도 있지만 사고만 없다면 좋은 날씨에 좋은 환경이라고 칭찬한다.
다만, 그 ‘사고’란 것이 한번 걸려들면 살아남기 힘들 정도의 것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그래서…… 그 사고가 뭐라고?”
[다수의 토착 생물들로 인한 물리적 피해입니다. 쉽게 말해서, 살아 있는 산사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영의는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산맥과 아래에 있는 울창한 숲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와…… 그러니까, 지금 저기 보이는 저게…… 그 ‘사고’의 결과물이라고?”
[정확합니다. 대략적으로 일주일 전의 흔적으로 보입니다.]
그의 발아래에 있는 숲은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숲이었지만, 정확히 그의 발아래에 있는 부분은 얘기가 달랐다.
“……진짜 살아 있는 산사태나 다름없네.”
마치 전차나 벌목 단체라도 지나간 듯, 풀뿌리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쓸려 나간 숲과 그 아래 콘크리트처럼 단단히 다져진 흙들.
“숲을 진짜 바리깡으로 민 것처럼 줄이 그어졌잖아? 이런 게 있는데도 여기 사람들이 산다고?”
저렇게 숲의 나무와 풀들을 남김없이 쓸어버리는 재해가 있음에도 여기에 사람들이 산다는 것에 놀라움과 충격을 받은 영의.
[지금 사용자가 향하는 곳이 그것을 피하기 위해 이주한 이들이 모여 있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숲의 흔적을 구경하느라 잠시 멈춰 서긴 했지만 본디 그가 향하던 목적지인 모크레튼 산맥 속 지하 도시.
알림이는 그 지하 도시가 본디 이러한 재해를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래, 나도 알지. 드워프들은 다리가 짧으니까…… 피하기보단 안전한 곳을 찾는 게 더 좋았겠지.”
영의는 나름의 추측을 하며 알림 창을 훑어보았다.
[주문인 : 제3단조장 ‘붉은 망치’ 그룬]
[주소지 : 모크레튼 산맥 지하 도시 대장간 제3공방]
[배달 물품 : 해장국(종류 무관), 공깃밥(종류 무관)]
[기대 보상 : 주문 제작 장비품, 드래곤 스케일, ???]
산맥의 지하 도시로 향하는 지도가 그의 시야 한구석에 표시되고 있었고, 그것이 알려 주고 있는 경로는 산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저 ‘???’라는 부분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장비품 쪽이 더 낫겠지?’
머릿속으로 보상을 생각하며 산으로 날아가는 영의.
그가 그렇게 산으로 향하고 있을 때, 울창한 숲속 깊은 곳에서는 하늘을 나는 무언가의 기척을 감지한 존재가 있었다.
성인 남자 다섯 명이 둘러싸도 다 감싸지 못할 정도로 큰 나무들이 곳곳에 있는 공터.
그 공터 안에 그런 큰 나무마저 작아 보일 정도로 큰 덩치를 자랑하는 한 생물체가 있었다.
“대체 어떤 겁 없는 미물이 이 몸의 구역에서 날아다니는 거지……?”
의외로, 차분하고 낮은 중저음으로 언어를 구사하는 거대한 생물체.
생물체는 감았던 눈을 뜨고 무언가의 기척을 느꼈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으나, 이내 기척이 조금씩 멀어져 가는 것을 알아챘다.
“……흥. 아니었군. 다시 잘까.”
잠깐이지만 속도를 늦추고 주변을 맴돌기에 조금 경계했지만, 이내 다시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기에 생물체는 다시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았다.
“형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자신에게로 왔다면 직접 귀찮은 것을 치웠겠지만 저것이 가는 곳은 자신의 형제가 있는 구역이니 신경을 끄는 생물체.
이내 생물체는 잠들려는 듯, 몸을 둥글게 만 뒤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기 편한 자세를 찾으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조그마한 뒤척임에, 숲속에 있던 모든 생명체들이 겁을 먹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작게 보면 사소한 사냥감의 도주에 불과했지만, 그 사냥감들이 숲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렇게, 숲에는 또 다른 긁힌 자국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결국 나무들이 쓸려 나간 지역이 하나 더 생겨났다.
숲속 동물들의 움직임에 땅이 흔들리자, 그것을 느낀 주변 마을 주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숲의 왕이 노했구나, 숲이 흔들리고 있어!”
마을의 최연장자인 촌장의 말에 당황하는 몇몇 청년들.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벌써?!”
하지만 촌장은 그들이 살아온 세월보다 몇 배를 더 살아왔기에, 경험이 많이 쌓여 있었다.
“본래 왕의 분노에 규칙이란 건 없는 법이다! 다들 주의하거라!”
그리고 급하게 가재도구나 다른 사람들을 챙기는 와중에, 몇몇 노인들은 숲속을 보며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오, 숲의 왕이자 초목의 신이시여…… 저희를 지켜 주소서…….”
샤크라트 대륙.
그곳은 용이 사는 대륙이며, 용에 의해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죽음의 대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