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화 (24)
병찬과 병민과 식사를 끝낸 뒤, 영의는 공원에서 뇌영을 풀어 주었다.
펄럭-
간만에 영의와 함께 바깥으로 나온 것이 기분 좋은 듯, 하늘을 누비며 바람을 만끽하고 있는 뇌영.
영의는 그런 뇌영을 바라보며 알림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알림아.’
[말씀하십시오, 사용자.]
‘진짜 국밥이 효과가 있을까?’
절대 영의가 병찬과 병민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다만 조금 더 정보가 있고 매번 확실하게 적중시켰던 알림이의 선택…… 아니, 조언도 고려하려 했을 뿐이다.
‘혹시나 싶어서 물어보는 거지. 혹시나. 지금까지 알림이가 먼저 제시한 게 안 먹혔던 적이 없으니까.’
[사용자가 본 개체의 의견을 듣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 사안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본 개체의…… 조언, 을 필요로 하는 이유에 대해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지금까지 계속 너랑 다니고 네 말을 들어 왔는데 갑자기 네 말을 무시하게 되면 조금…… 그렇달까.’
[본 개체는 모호한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본 개체에게 조금 그런 게 무엇인지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알림이의 말에 영의는 정확한 이유를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걸 잘 풀어서 설명하려니까 조금 애매해지네. 뭐라고 해야 하나? 아, 그래.’
이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한 영의.
‘우리 사이가 그렇게 쉽게 떨어질 사이는 아니잖아? 언제가 될지 몰라도, 아마 끝까지 함께할 것 같은데.’
독고휘를 시작으로 여러 명의 인물들을 만난 영의.
그리고 그 모든 것에는 알림이가 있었고, 최소한 그가 이 일을 그만둘 때까지는 알림이와 함께할 것 같았기에 한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저는 사용자의 의사를 확인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어어? 어.’
알림이는 그 말을 끝으로 침묵하기 시작했고, 영의는 알림이의 침묵에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뇌영이 그에게로 다가오자 그쪽으로 관심이 쏠렸다.
“휘약, 휙(즐거웠어요, 제법).”
“좋았어?”
끄덕끄덕.
뇌영은 오랜만에 영의와 외출한 것이 좋았던 건지, 영의에게 다가와 머리를 부비기 시작했다.
“집에 갈 때도 날아가자.”
“휫(네).”
그렇게 뇌영의 머리를 쓰다듬던 영의에게 갑작스러운 알림 창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알림 창이나 알림이의 갑작스러운 안내를 하루 이틀 본 것이 아니기에, 그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음, 그래. 뭐…… 드워프라 그런가 조금 특이하네. 지하 도시라…….’
영의는 위에서부터 천천히 훑어 내려가며 정보를 확인하던 도중, 맨 아래 칸에 적힌 글을 보고 깜짝 놀라 뇌영의 머리를 쓰다듬다 실수로 긁었다.
“삐요(아팟)?!”
“미, 미안. 아니…… 이게…….”
[주문인 : 제3단조장 ‘붉은 망치’ 그룬]
[주소지 : 모크레튼 산맥 지하 도시 대장간 제3공방]
[배달 물품 : 해장국(종류 무관), 공깃밥(종류 무관)]
[기대 보상 : 주문 제작 장비품, 드래곤 스케일, ???]
영의가 깜짝 놀란 보상은 바로 드래곤 스케일, 즉 용의 비늘이었다.
‘용의 비늘……? 보통 최상위 재료 같은 거 아닌가?’
여느 게임이나 판타지 세계에서 용의 비늘로 만든 장비는 국보를 넘어선 보물급이 되고, 그 재료를 구하기란 대부분 끝자락에서나 가능한 것 아니던가.
‘그보다, 비늘이 있으면 그 원산지(?)인 드래곤이 있다는 거 아냐……?’
영의는 묘한 기대감과 혹여나 드래곤을 마주치게 될 거라는 두려움이 반반 나뉜 두근거림을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림아. 알림아?’
무언가를 물어보기 위해 알림이를 부르는 영의.
[말씀하십시오, 사용자.]
알림이는 평소보다는 조금 늦긴 했지만 그의 물음에 반응을 했다.
‘이거, 오늘 당장 할 필요는 없는 거지?’
[맞습니다만, 저는 사용자가 빨리 다녀올수록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일단 시간제한은 없다는 거네……. 좋아, 준비를 조금 해 놔야겠어.’
지금까지와는 달리, 만연의 준비를 갖추고 배달을 수행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영의.
[준비…… 말입니까?]
알림이 또한 영의의 그런 모습이 낯선지,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 국밥 맛집을 찾아봐야지.’
[…….]
“보자…… 병찬이가…… 여기 있다.”
영의는 생각난 김에 곧바로 행동하기 위해 병찬에게 전화를 걸었고, 병찬은 전화벨이 두어 번 울리기도 전에 곧바로 영의의 전화를 받았다.
-행님?
“어, 병찬아. 혹시 국밥 맛집 아는 데 있니?”
-이야, 행님도 드디어 국밥을…….
영의의 국밥 맛집을 찾기 위한 전국 투어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한국, 대구.
경상남도와 경상북도 사이에 있는 도시로, 더위와 미식 등으로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경상도의 중앙에 위치한 만큼, 여러 교통편이 지나는 교통 중심이기도 한 도시인 이곳.
그런 이곳에 저녁 시간에 한가롭게 거리를 거닐고 있는 4인의 남녀가 있었다.
마치 관광객처럼, 이곳저곳을 여유롭게 구경하며 사진도 찍는 등의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관광객처럼 들뜬 것은 단 한 명이었고, 다른 세 명은 표정이 굳어 있었다.
“이야, 도로가 참 잘돼 있네. 계획도시였나? 부산은 이렇지 않았는데.”
들떠 있는 한 사내가 꺼낸 말에, 뒤에서 따라 걷던 이들 중 젊은 남성이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응? 아, 물어본 건 아니야. 그냥 혼잣말이지. 혼잣말. 하하하.”
그들은 제법 특색이 있는 구성원들이었는데, 일본인처럼 보이는 남녀가 한 쌍에 라틴계로 보이는 노신사 한 명, 그리고 혼혈로 보이는 남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하오다. 소란을 일으킨 게 하필이면 사람이 드문 곳이었다, 이거지?”
혼혈 남자의 얼굴 표정은 신난 관광객처럼 재밌어 보이는 간판을 가리키며 웃고 있었지만,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에는 싸늘함이 묻어 나왔다.
“……면목이 없습니다.”
자신의 상사이자 뒷배인 선지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하오다.
시즈카는 그런 하오다를 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도련님…….”
“가만히 있어라, 시즈카. 너까지 죽을 필요는 없다.”
하오다는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옆에서 느긋하게 산책하듯 걷는 노인과 선지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흠, 뭐. 근데 그래도 소득은 있었어. 오히려 좋아.”
“예?”
“은색 헬멧의 활동 반경을 알아냈거든. 적어도 확실한 건, 서울 주변에 사는 녀석이란 거야.”
선지자는 뒤돌아서 하오다를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
“서울…… 말입니까?”
“응. 근거지가 거기인지 거주지가 거기인지는 몰라도 나타났던 세 번 다 서울과 그 주변이었거든. 뭐, 큰 사건이 일어난 지역이 또 있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적어도 사건 발생 시각과 현장에 나타난 시각, 그 차이를 계산해 보면 최소한 서울 주변은 맞아.”
그들은 은색 헬멧이 속성계라고 알고 있었기에, 이동 수단이 한정적일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협력자의 존재를 고려해 볼 수도 있겠지만…… 나타나는 모습을 생각해 보면 그런 건 아니란 말이지.’
이내 휴대폰을 꺼내더니, 셀카 봉을 끼워 사진을 찍기 시작하는 선지자.
“확실한 건, 나타날 땐 혼자서 나타났단 거잖아? 네 부하를 구하러 나타났을 때도. 혼자 갑자기 바이크에서 내렸다고 했고.”
“앗, 네. 그렇습니다.”
“그럼 뭐, 확실한 건 위치가 서울 쪽이란 거지. 이제 반경이 싱가포르 수준으로 좁아졌으니, 남은 건 천천히 하면 돼.”
비록 천만이 넘는 인구수를 가지고 있지만, 선지자는 그 정도야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됐으니, 여유롭게 휴가나 즐기다 가.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신부님은 여기 여행하려다 중간에 취소하셨던가?”
“그렇습니다.”
하오다는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파드레와 선지자의 눈치를 보고는 이내 마음속으로 안도했다.
‘다행이군. 우연이긴 해도, 도움 되는 정보를 얻었으니 지금 죽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때, 안도하던 하오다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저거 대장님 아냐?”
“음? 정말이군. 시즈카까지.”
길드 설립 이후, 가장 많이 들어 온 목소리들 중 하나와 가장 믿음직한 목소리 중 하나.
‘이 목소리는……!’
<부시도 스피리츠> 길드의 여섯 간부, 풍림화산음뢰 중 화의 이오리와 림의 야이바였다.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어, 대장님이다.”
그리고 그 뒤에서 뭔가를 한 아름 든 채 걸어오는 큰 덩치의 사내는 산의 겐지였고.
“대장님~ 이것 참 우연입니다, 하하!”
나름 붙임성이 있는 이오리는 손을 흔들며 그에게 다가오기 시작했고, 야이바 또한 하오다를 만난 것이 좋은지 빠르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주군…… 아니, 대장님. 여기엔 어쩐 일로…….”
간부들은 그를 만난 것이 매우 반가웠지만, 하오다는 그들이 썩 반갑지 못했다.
‘이 자식들, 그러고 보니 중간에 대구로 온다고 했었지……! 하지만 이미 떠난 줄 알았는데!’
“이야, 하하. 대장님은 사찰 구경 가신다고 했는데. 이런 번화가에 오실 줄은 또 몰랐습니다.”
“머무를 숙소를 찾기 위해 온 것이다. 내일은 다시 다른 사찰로 갈 것이고.”
하오다는 침착하게 간부들을 떼어 놓을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 겨우 죽을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했건만 눈치 없는…… 아니, 뒷배경을 모르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간부들이 실수로라도 선지자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그는 다시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에.
“흐음, 뭐 하긴 호텔은 도시에서 찾는 게 좋은 편이니까 말입니다. 그보다, 저녁 식사 하셨습니까? 안 하셨으면 저희랑 같이…….”
“미안하지만, 이미 식사는 끝냈다.”
하오다의 단호한 말에, 이오리는 무안한 듯 깔끔하게 빗어 넘긴 자신의 올백 머리를 긁적거렸다.
“으음, 네. 알겠습니다. 그럼 휴가 잘 보내십시오.”
이미 식사를 했단 이유로 거절한 식사 자리를 다시 권유할 마음은 없었는지, 이오리는 이만 떠나가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때, 하오다와 함께 있는 일행이 신경 쓰인 듯 다시 입을 여는 이오리.
“근데, 옆에 분들은 누구십니까?”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던 야이바도, 옆에 있는 낯선 인물들을 보자 조심스럽게 하오다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주군, 외람되오나 주변에는 안전이 확인된 인물만을 두셔야 합니다. 시즈카가 함께하지만 그래도 모르니…….”
그리고 그것을 모두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보고, 듣고 있는 선지자와 파드레.
“야이바, 조용히…….”
시즈카가 야이바에게 눈치를 주며 조용히 시키려 했지만, 선지자는 얌전히 서서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듣고 있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야, 반갑습니다. <부시도 스피리츠>의 여러분. 앨리스 코퍼레이션의 부회장 레이튼 커티스입니다.”
“네? 어어, 네.”
갑작스럽게 어떤 회사의 중역이 악수를 청해 오자 당황하면서도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악수를 하는 이오리.
“사실 계약을 하나 진행하려고 길드 본사를 찾아갔었는데, 휴가라지 뭡니까? 근데 저희로서도 계약 날짜가 미뤄지면 상호 간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민폐임을 알면서도 불구하고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찾아오게 된 겁니다.”
선지자의 뜻밖의 돌발 행동에, 하오다는 재빨리 장단을 맞춰 주기 시작했다.
“그, 그렇다. 나의 실책으로 생긴 문제기에 내가 책임지고 있던 중이었지.”
“어, 어이쿠. 이런. 그러셨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이봐, 야이바. 얼른 가자고. 원래 미팅 현장에는 끼어드는 게 아니야.”
전직 영업 사원 출신이었던 이오리.
영업 사원 당시의 습관과 인식이 아직도 남아 있어 평소에 양복을 입고 다니는 편이었고, 지금과 같은 업무 이야기가 나오자 얼른 자리를 비켜 주려 했다.
“으음, 알겠다. 실례했군요. 죄송했습니다.”
사실 이름 한 번 들어 보지 못한 회사와 의외로 젊은 부회장의 정체를 한 번쯤 의심해 볼 만도 했지만, 하오다가 직접 이야기를 했으니 그들로서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대장도 의외로 업무할 때는 하는 스타일이었구만……?’
‘주군, 대체 얼마나 급하게 한국으로 오신 겁니까?’
이오리는 빠르게 고개를 숙인 뒤, 뒤로 돌아 일행인 겐지를 붙잡고 떠나려 했다.
“이봐, 겐지. 가자고. 대장님은 저녁도 드셨고, 외부 손님이랑 할 얘기가 있다고 하신다.”
하지만 하오다에게 다가가는 겐지.
“어? 잠깐, 그래도 이건 드리고 갈 수 있잖아.”
“드리긴 뭘 드린다고……!”
“헤헤, 시즈카 씨랑 대장님. 그리고 손님들. 이것 하나씩 받으시죠.”
겐지는 들고 있는 짐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하오다를 비롯한 나머지 세 사람에게 나눠 주었다.
“……빵?”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겐지가 나눠 준 빵을 들고 살펴보는 파드레.
“이 주변에서 산 건데, 되게 맛있는 곳이더라고요. 하나 드셔 보시죠. 식사를 했어도 간식 정도는 괜찮지 않나요? 하하하.”
겐지는 빵을 나눠 주고는 넉살 좋게 웃기 시작했고, 이내 이오리와 야이바가 그를 붙잡고 끌고 가기 시작했다.
“이 멍청아, 빨리 가자고! 실례했습니다!”
“주…… 대장님, 부디 행운이 따르길 빌겠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떠나가고, 하오다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음, 맛있네.”
“그렇습니다. 확실히 맛은 좋군요.”
의외로, 선지자와 파드레는 빵을 받자마자 먹기 시작했고 그 맛에 호평을 했다.
‘그래도 이번엔 나름 어울려 주셔서 다행이군. 생각해 보니, 의외로 기분 좋으실 때는 그게 계속됐던 경향이 있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