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2화 (23)
직업은 게임 회사의 원화가지만, 짬짬이 시간 날 때 만화를 그리는 게 취미인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어제 마감한 프로젝트의 성과물을 제출한 뒤였고, 프로젝트가 끝나고 잠깐 찾아온 휴일을 만끽하기 위해 대낮에 카페로 들어와 커피를 주문한 뒤 앉을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커플이 있는 자리 주변은 가만히 앉아 있기 그랬고, 뭔가 업무를 하는 듯 노트북의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양복 차림의 사람들 주변도 꺼림칙했다.
그리고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남자 2인조였다.
뭔가 게임이라도 하고 있는 듯, 바쁘게 위를 오가는 손가락을 보자 남자는 안도했다.
‘그래, 차라리 저렇게 조용하게 게임하고 있는 사람들이면 낫겠지.’
남자는 그렇게 판단하고는 조용히 휴대폰에 집중하고 있는 남자들의 근처로 가서 앉았다.
“후우…….”
한숨을 쉬며 의자에 몸을 편히 기대며 마음속으로 잠깐의 휴일을 어떻게 즐겨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하는 남자, 문주안.
‘간만에 쉬는데…… 뭘 하지? 생각해 놓은 만화? 아니면 그냥 게임? 친구들은 지금 연락해 봐야 같이 놀기도 힘들 테고.’
주안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였으나 이거다 싶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카페의 내부로 뜻밖의 물건을 들고 들어오는 손님이 있었다.
‘……새장?’
개나 고양이야 어지간해서는 매장 출입이 허가되지 않지만, 새는 그런 범주에 들어가는 성질의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한 주안.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어느새 새장을 들고 있던 남자는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그의 뒷자리로 향했다.
“이야, 행님! 새도 키우시네예!”
가만히 휴대폰에 집중하던 2인조가 새장을 든 남자에게 알은체를 하는 것을 보니,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한 것 같았다.
‘……제지를 안 하는 걸 보니까, 새는 문제가 안 되는 건가? 새장 안에 들어 있기도 하니…….’
호기심에 슬쩍 새장을 쳐다보았지만, 그가 쳐다보는 걸 알아챈 것인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 새장 안의 새가 그를 노려보았기에 주안은 급히 시선을 커피 잔으로 돌렸다.
‘……저거 맹금류 아냐?’
하지만 매 같은 걸 사육하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 있었기에, 주안은 그저 울지만 않기를 바라며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오늘 뭐 할 일 있어?]
혹여나 자신처럼 시간이 비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마음에 동료들에게 연락을 돌려 보는 주안.
주안이 커피를 홀짝이며 연락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때, 그의 뒤편 테이블에서는 상당히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드워프가 있을 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뭘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주제였던 데다가,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것도 아니고 시작부터 나온 주제다 보니 주안은 그 말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푸흡!”
순간적으로 자신의 실수를 눈치채고 주위를 둘러보며 눈치를 살피는 주안.
다행히도, 카페 내의 사람들 중 그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이 있지는 않았다.
그가 급하게 흘린 커피를 닦아 내고 있을 무렵, 뒤에서는 토론이 시작되고 있었다.
“흐음…… 그러고 보니, 의외로 드워프들이 선호하는 음식이 뭘까?”
“보통, 그…… 뭐고? 이미지적으로는 술을 밥 대신 먹는 이미지 아이가?”
주안은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놀랐으나, 계속 듣다 보니 생각보다 재밌는 토론에 계속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토론에 귀를 기울이던 주안은 때로는 맞는다는 듯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 조금 아니다 싶은 의견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는 등 다양한 리액션을 취했다.
그리고 그때, 운이 좋았던 것인지 때마침 그와 같은 시기에 휴일을 맞이하게 된 동료, 발그림이란 별명을 쓰는 작가가 연락에 응답했다.
[발그림 - 연락한 거 보면 너도 한가한가 봐?]
[발그림 - 심심하면 나랑 같이 놀러나 갈래?]
하지만 주안은 어느새 세 남자의 토론에 깊이 몰두해 있었다.
[주안 - 기다려 봐, 지금 중요한 대목이니까.]
[발그림 - 중요? 뭐가?]
[주안 - 잠깐만 있어 봐.]
[발그림 - 뭔데! 말을 해 봐!]
[주안 - 나중에 연락한다고.]
그렇게 휴대폰을 무음 모드로 해 두고 뒷자리의 토론에 다시 집중하는 주안.
어느새 토론은 식재료에서 조리법에 대한 것으로 넘어가 있었다.
“드워프하면 이미지가 뭐냐? 불이지! 무조건 직화구이나 고열로 끓인 그런 요리가 제일 보편적이지 않을까?”
“어,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행님, 숯 굽는 장인들도 막 그 숯가마 열기에다가 삼겹살 구워 묵고 그칸다 카데예. 확실히 괜찮은 생각 같아예.”
드워프의 상징인 대장일에서 비롯된 뜨거운 화로에 중점을 둔 분석에, 주안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생각이네. 대장장이 민족인 만큼 일하면서 식사를 해야 하니 겸사겸사 해결할지도. 아, 아이디어로 써야겠다.’
주안은 발그림에게서 오는 연락을 무시한 채, 휴대폰에 아이디어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이름 모를 사람들. 좋은 아이디어 얻어 갑니다.’
새로운 단편 만화에 대한 구상과 대략적인 아이디어를 휴대폰에 기록하는 사이, 토론이 더욱 진행되었다.
“자, 그러니까 정리를 해 보자.”
세 명 중 가장 서열이 높아 보이는 청년이 내용을 정리하려는 듯했다.
“그러니까…… 버섯 같은 게 들어가고, 영양분도 많아야 하고…… 드워프가 술을 좋아하니 숙취에 좋은 음식인 동시에 안주로도 좋아야 한다 이거지?”
“하모예.”
“그렇죠.”
중간중간 다른 둘의 대립이 있었고, 그중에서 더 적합한 의견을 취합한 청년.
그들은 각자 선택받은 내용이 나올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생각보다 디테일한데……? 의외로 그럴듯해.’
주안은 이미 다 마신 커피 잔을 매만지며 뒤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계속 엿들었다.
“그런 다음…… 동굴이나 산 쪽은 습하니까 습기에 강하고, 불에 조리하는 음식. 뭐 이렇게 많아? 우리 주변에 그런 게 있기는 해?”
청년은 의견을 취합하던 도중, 본인이 생각해도 저 모든 것에 포함되는 게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음, 저 전부가 포함되는 음식이 있기는 한가?’
주안은 수많은 범주에 겹치는 음식이 없을 것 같다는 청년의 말에 공감이 갔다.
그러니까 버섯이 들어가고, 영양분이 많고, 술 먹은 뒤 숙취에 좋고, 술과 함께 먹기에도 좋고, 습기에 약하지 않아야 하고, 불에 조리해야 하는 음식.
그런 음식은 없다고 생각하며 발그림에게 답장을 하려던 주안은 그때 튀어나온 대답을 들었다.
“뼈다귀 해장국에 국밥이지예!”
전혀 생각지도 못했지만 의외로 말이 되는 듯한 대답에 자기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뱉는 주안.
“응?”
그리고 그런 마음은 그만 가진 것이 아닌지, 청년의 입에서도 나왔다.
“어?”
“행님, 들어 보이소. 영양분 많고!”
뼈다귀 해장국에 영양분이 많기는 하다.
“숙취에 좋고, 또 술이랑 같이 먹기도 좋고!”
탕 같은 음식류는 안주로 제법 좋고, 숙취에도 좋다.
“습기야 뭐 국이니까 별문제 없고! 뚝배기에 펄펄 끓이는 요리! 딱 해장국이랑 국밥 아입니까!”
의외로 모든 조건이 들어맞고, 버섯이 들어가지 않는 거야 끓일 때 넣어 주면 끝이다.
“괜찮은데……?”
“야, 의왼데?”
그 대화를 듣던 주안 또한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저 사투리 쓰던 사람, 허술한 의견을 많이 내서 은근히 무시했는데…… 의외로 통찰력이 있잖아?’
“야, 그럼 국밥 말고 뭐가 있을지에 대한 얘기나 좀 해 보자.”
주안이 의외의 감상을 품고 있을 때, 또다시 진행되기 시작한 토론.
[발그림 - 야! 연락받아!]
[주안 - 알았어. 이제 연락된다.]
더 이상 듣고 있기에도 눈치가 보인 주안은 커피 잔과 쟁반을 반납한 뒤, 카페를 나섰다.
“와, 생각보다 재밌는 관점이었네. 효율 중시의 국밥 빌런 드워프라니. 의외로 어울리는데?”
주안은 새로운 단편 만화의 소재를 찾았다며 기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안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한 쌍의 눈이 카페 안에 있었다.
“휘록(갔다).”
그 눈의 주인은 바로 뇌영이었고, 새장 안에서도 주변을 경계하다가 문득 영의 일행의 행동에 반응을 보이던 인간을 포착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만 들을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던 인간이었기에 뇌영은 경계를 조금씩 늦추었다.
그러다 남자가 이내 가게를 떠나자, 뇌영은 완전히 경계심을 내려놓은 뒤 부리로 깃털을 고르기 시작했다.
토론을 시작한 지 2시간이 다 되어 갔고, 이제 슬슬 말하는 것도 지칠 법하건만 그들의 기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하지만, 토론의 소재 자체는 이미 사그라들었다.
“후우, 어떻게 한 시간을 국밥 말고 다른 음식 찾는 데에 투자를 하냐…….”
영의는 어떻게 머리를 굴려 봐도 결국 탕이나 국으로 끝나 버리는 결론에 한숨을 내쉬었다.
“형, 그보다 국밥이란 게 조건에 들어맞는 것 자체가 더 신기한 거 아닌가요? 대체 뭘 해야 저런 대답이 바로 나온 거지?”
“국밥이 그만큼 윽수로 끝내주는 음식이란 증거 아이가!”
병찬과 병민은 간만에 한 토론에 만족한다는 듯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래, 진짜 오랜만에 제대로 토론한 것 같네.”
영의 또한 그런 그들의 웃음을 보며, 이야기를 꺼내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조금 모자란 모습을 보이긴 해도, 역시 이 녀석들이 제일 믿음이 가고 편하다니까.’
사실, 병찬과 병민처럼 어느 정도 관련 지식이 있고 물어봐도 별문제가 없을 것 같은 인물도 없지 않은가.
‘수연이나 지연이는 잘 모를 것 같고, 화연이는…… 모르겠지. 매일 연습하기도 바빴으니까.’
알림이에게 물어보는 방안도 있긴 했지만, 영의는 병찬과 병민과 토론하는 것을 선택했다.
‘간만에 이런 시간도 가지고 해야지. 마침 알맞은 아이디어이기도 했고.’
영의는 그렇게 국밥과 해장국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그럼 간만에 떠드느라 배고파졌으니까 밥이나 먹으러 가자. 뭐 먹을래?”
“어, 형이 사는 거예요?”
영의가 사는 듯한 분위기에, 병민이 화색을 띠었다.
“행님, 그라믄 국…….”
“국밥은 말고.”
그리고 말이 채 나오기도 전에 국밥을 제지하는 영의.
“국밥 말고 다른 걸 먹어 보는 건 좀 어때?”
“그래, 병찬아. 너 가끔 보면 나랑 같은 20대의 입맛이 아닌 것 같아.”
병민은 진심으로 병찬이 걱정되는 듯 아련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 국밥이 내 입에 딱 맞는 거를 우짜라고!”
병민과 영의의 말에 격한 반응을 보이는 병찬을 보자, 영의는 대체 어디서부터 저렇게 된 걸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쓰읍…… 할머니랑 더 친해서 그런가……?”
“제가 봐도 그쪽이 원인 같은데요?”
“아니, 취미는 미소녀 관련 활동인 녀석이 주식은 국밥이라는 게 조금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아?”
“밥 먹을 돈을 아끼기 위해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영의와 병민은 병찬을 놀리려는 듯 서로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주고받았고, 병찬은 그런 둘의 말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내 집에 갈 끼다!”
“에이, 삐지지 말고.”
“삐진 거 아이다!”
“그래, 병찬아. 우리 그런 거로 타협하자.”
“타협은 무슨 타협이고! 치아라!”
병찬은 그의 팔을 붙잡은 병민의 손은 뿌리치는 데 성공했지만, 영의의 손만큼은 아무리 흔들어도 뿌리치지 못했다.
“이거!”
휙.
여전히 붙들려 있었다.
“좀!”
휙, 휙.
마치 옷과 하나 된 것처럼 병찬의 팔을 단단히 잡고 있는 영의의 손.
“……놓아주소, 행님.”
병찬은 영의를 최대한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그를 보며 웃고 있는 영의의 얼굴을 보자 이내 표정을 풀었다.
“병찬아, 고기 사 줄게. 같이 가자.”
“갈게예. 가면 되지예…….”
“그래, 잘 생각했어. 소고기 사 줄게.”
억지로 화를 참는 듯, 얼굴에 어렴풋한 울적함이 드러나 있던 병찬은 영의의 소고기란 말에 태도가 돌변했다.
“진짜로?! 소고기라 하신 거 맞지예?!”
“한우로 사 줄 테니까 화 풀고 가자, 응?”
“아유, 화는 무슨! 뱅미이, 내 화 안 냈제?”
병민을 부르며 자신이 화를 냈다는 사실마저 부정하는 병찬.
“어어? 어.”
“행님! 갑시더! 소고깃집으로!”
병찬은 언제 삐졌냐는 듯, 누구보다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단순한 녀석…….’
‘저런 모습이 은근히 귀엽다니까.’
그리고 그런 병찬의 모습을 보며 함께 미소 짓는 영의와 병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