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1화 (22)
다음 날 아침.
세계 각국의 언론은 수많은 기사들로 시끄러워졌다.
[한국에서 발생한 미공략 게이트 소멸, 아무런 전조 증상 없는 재앙…….]
[소멸 전 게이트 내부에서는 관측된 적 없는 신규 괴수 발견돼…….]
화연이 인터뷰했던 내용과 신화 길드에서 정부 쪽에 얘기한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며, 게이트가 생겨나던 10년 전과 비슷한 공포감이 사회에 다시 떠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과 한국에서는 다른 내용이 조금 주목받고 있었다.
[미국의 자랑, 패트리어트 방한…… 방한 목적은 관광?]
[패트리어트, 민항기로 입국해…… “수입도 많고 전용기나 군용기도 있지만 군인으로서 온 게 아니다”]
한국은 패트리어트에 대한 것들이 1면에 실렸다.
[<부시도 스피리츠> 길드, 휴가 도중 의문의 인물들에게 습격…….]
[부시(무사)와 라이진(뇌신), 여행 도중 습격당했으나 모두 격퇴…… 일본 1위의 위엄인가?]
일본 쪽은 <부시도 스피리츠>가 습격받은 것이 1면에 실렸다.
그렇게 각국이 집중하는 부분은 서로 달랐지만, 그 모든 내용이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다 보니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쇼군즈>, 한국에서의 습격 사건은 지시한 적 없다고 부인…….]
한 남자가 기사를 보던 태블릿의 화면을 끄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쇼군즈>가 너무 멋대로 행동했네…….”
“선지자님,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하오다가 우리 조직에 있는 만큼 일본의 다른 길드에 손을 쓸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지요.”
선지자는 꺼진 태블릿을 손으로 두들기며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흐음…… 일단 소란 피우라고 지시를 내려는 놨는데 아마 불발되겠지. 패트리어트가 버티고 있으니……. 철수시켜.”
손님이나 관광객으로 온 패트리어트였지만, 평소 그의 성격이나 대외적 이미지를 고려하면 그런 사건을 무시할 리 없었다.
“흠…… 무기 장인도 실패, 은색 헬멧을 불러내는 것도 실패……. 원래 계획대로라면 하오다가 제일 큰 소란을 일으켜 줬어야 하는데. <쇼군즈>가 굳이 인원을 쪼개서는……. 아니지. 단독 행동을 한 라이진이 문제인가?”
선지자는 이번 계획이 어그러진 데에 대해 생각하며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고, 파드레는 그 말에 슬쩍 질문을 했다.
“죽일까요?”
“아니, 그러지는 마. 보기엔 그래도 나름 사람은 착해. 세상이 망할 때 쓸 만한 인재는 하나라도 더 있어야지.”
라이진을 쉽게 죽일 수 있다는 듯 가볍게 묻는 파드레와, 인재가 필요하다며 그것을 만류하는 선지자.
“후우, 앞으로 5년. 그사이에 최대한 성과를 내야 해. 아, 신부님. 외출 좀 하려는데 옷 좀 가져다줄래요?”
“알겠습니다.”
파드레가 선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방 밖으로 나가자 선지자는 허공을 쳐다보며 양손을 모았다.
마치 기도를 하는 듯한 모습의 선지자는 이내 입술을 달싹이더니 혼잣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실패하였습니다. 다시 과거……. 아, 알겠습니다. 진행하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대화를 하는 것만 같은 모습을 보이는 선지자.
“멸망이……. 예, 알겠습니다. 모든 것은 찬란한 정의를 위해.”
이윽고 선지자는 허공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절을 하듯 고개를 숙여 땅에 이마를 박았다.
그런 일련의 행동들을 모두 마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의자에 앉은 뒤 태블릿을 조작하는 선지자.
“변경…… 변경이라니……. 아냐, 모든 건 나를…… 우리를 위해서……. 그렇지? 앨리스…….”
한편, 영의도 인터넷에 가득한 기사를 보고 있었다.
“음, 의외로 연애 사실이 알려지진 않았네?”
영의와 화연이 데이트를 하긴 했지만, 그날 벌어진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던지라 별로 주목을 못 받은 것이거나 사진이 찍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걱정했던 것이 해결되자, 여유를 가지고 다른 기사들을 살펴보는 영의.
“아, 그때 길드에 왔던 외국인 아저씨가 패트리어트구나. 그렇게 강해 보이진 않던데…….”
패트리어트에 대한 기사.
“흐음? 어려 보이는데, 벌써 A급 각성자라고? 세상 말세네. 그보다 일본에서 할 것이지, 굳이 한국 와서까지 칼부림을 해야 하나?”
<부시도 스피리츠>의 습격과 거기에 참여한 <쇼군즈>에 대한 기사까지 본 영의.
영의는 <쇼군즈>의 운영과 야쿠자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보고는 마음속으로 안도했다.
“어제 안 구해 줬으면 진짜 위험했겠네. 구해서 다행이야. 어때, 알림아? 가끔은 이런 충동적인 행동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니까?”
[사용자의 행동이나 의지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약간의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사고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래, 뭐…… 합리적 사고. 네 말도 맞긴 하지.”
영의는 알림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도 일단 내 판단이 틀리진 않았단 거잖아?”
[……맞습니다.]
자신의 선택이 완벽하진 않아도 적어도 틀리진 않았단 것에 만족한 영의는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났고, 늘 보던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럼 된 거지.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단 게 증명된 거면 만족해. 다만, 이 녀석들은 내 선택의 결과물이긴 하지만 왜 이럴까?”
“째릿. 노려봄.”
“구룩(이 녀석)…….”
딱, 딱딱!
부리로 딱딱 소리를 내면서 정령을 노려보고 있는 뇌영과 마찬가지로 뇌영의 앞에서 꼼짝도 않는 정령.
“응시함. 마주 본다.”
따닥, 딱!
“뇌영아, 전룡아. 둘 다 그만하고 이리 와. 바깥에 가게.”
늘 그렇듯 오늘도 기 싸움을 하고 있는 둘을 말리기 시작한 영의.
“휘익(알겠어요).”
“주인의 명령. 따름.”
빛나는 구체의 형태를 하고 있던 정령, 전룡은 영의의 부름에 뱀처럼 변하더니 영의에게 날아와 목 주변을 휘감았다.
빠르게 이동할 때 마치 뱀처럼 변해 움직이는 모습에 붙인 이름이 바로 전룡.
뱀 같다고 이름을 전사로 하는 건 조금 꺼림칙하고 어감도 별로인 데다 용이라고 붙이는 게 더 멋질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전룡의 옆, 영의의 어깨 위로 날아와 앉는 뇌영.
대형 맹금류와도 같이 큰 크기를 자랑하던 뇌영은 어느새 여느 올빼미나 부엉이와도 같은 작은 사이즈를 유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작아진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예전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하진 않았기에 영의는 그것을 영물의 능력 내지는 자연스러운 신체 변화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전룡은 영의가 부르기 전까지는 특유의 그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본다면 그저 조류 애호가 정도로 보일 법한 모습이었다.
“후우…… 그럼 가 볼까.”
영의는 뇌영을 대동한 채로 외출을 준비했다.
“휘요(어디로요)?”
목적지에 대한 정보를 묻는 뇌영.
“……그냥, 누구한테도 못 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한테 가는 거야.”
영의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뇌영.
“주인의 말. 모르겠다?”
뇌영과 마찬가지로, 전룡 또한 영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가 보면 알아.”
전룡과 뇌영, 영의의 두 애완(?) 존재는 그렇게 영의를 따라 어디론가 향하려 했지만 문득 떠오른 생각에 영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 그러고 보니 새장에 넣어야 하지.”
“휘약(새장)?!”
뇌영을 새장에 넣은 뒤, 이제 비로소 집을 나서는 영의.
뇌영은 새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이곳저곳을 부리로 콕콕 쪼거나 날개를 파닥거렸다.
“나. 자유로움. 너. 자유롭지 못함. 하.하.하.”
그리고 그런 뇌영을 놀리기 시작하는 전룡.
“쓰읍, 참아. 뇌영아. 네가 더 형이야.”
영의는 둘의 투덕거림을 말리려 하면서도, 뇌영에게 인내를 요구했다.
“구우욱.”
“하.하.하.”
뇌영이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다 못해 해탈한 듯 허공만을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쯤, 영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 왔다.”
“휘요(어디지)?”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장거리 여행길에서 드디어 멈춰 선 차 밖을 내다보는 아이처럼 새장 바깥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뇌영.
그리고 그런 뇌영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의외로 아는 얼굴이었다.
“이야, 행님! 새도 키우시네예!”
“형, 새 키우는 취미가 있었어요?”
영의와 가장 가까운 듯하면서도 가깝다고 말하기엔 애매한 병찬과 병민이었다.
“뭐, 그렇지. 집에 놔두고 오기에는 조금 걱정돼서 데려온 거야.”
사실 뇌영 혼자만 있으면 별걱정이 없는데, 뇌영과 전룡을 함께 두면 높은 확률로 사고가 벌어져서 데리고 온 것이다.
‘그냥 창문 열어 두면 알아서 나갔다 오고 그러겠지만…… 가끔은 같이 나올 때도 있어야지. 들어가기 전에 공원 같은 데서 잠깐 풀어 줘야겠다.’
반쯤은 산책하는 마음으로 뇌영을 데리고 나온 영의.
“이야…… 이게 그 뭐냐? 올빼미나 매? 그런 건가?”
“부리 보면 일단 맹금류 쪽이 맞는 것 같긴 한데…… 나도 모르겠다.”
병찬과 병민은 뇌영을 이리저리 구경하며 생김새로 종류를 유추해 보려 했으나, 관련 지식이 짧아 제대로 된 해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뭐, 그건 넘기고. 아무튼 오늘은 할 얘기가 있어서 불렀는데.”
병찬과 병민은 영의의 말에 곧바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뭐든 간에 말해 보이소! 빚내 달란 거 말고는 다 들어 드릴게예!”
“들어만 주는 거겠지. 해결은 못 하고.”
“그보다, 뭐 어떤 말이길래 행님이 직접 이래 만나자 캤는데예?”
굳이 직접 대면할 이유가 없어 보였음에도 이렇게 그들을 부른 이유에 대해 묻는 병찬.
“음, 현장에서 직접 빠르게 토론하려고 불렀지. 아무래도 휴대폰으로 하면 조금 그렇잖아.”
“음…… 맞지예. 사람이 얼굴 보고 해야 하는 얘기도 있으니까는.”
“그럼 조금 중요한 이야기라거나…… 그런 거겠네요?”
병찬과 병민은 조금 모자라고 눈치가 그리 빠르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센스는 있었다.
“그래. 그럼 우선 이 얘기부터 해 볼게.”
영의의 입을 바라보며 긴장하는 병찬과 병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되게 중요한 걸까?’
‘연애 상담 아이가? 그런 거는 내가 도울 방법이…….’
병찬과 병민이 긴장하고 있을 때, 영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로 맥 빠지는 주제였다.
“드워프가 있을 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뭘까?”
“푸흡!”
그 말을 들은 것인지, 건너편 자리에 있던 한 사람이 웃음을 참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주변의 다른 반응과는 달리, 생각보다 진중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는 병찬과 병민.
“흐음…… 그러고 보니, 의외로 드워프들이 선호하는 음식이 뭘까?”
“보통, 그…… 뭐고? 이미지적으로는 술을 밥 대신 먹는 이미지 아이가?”
사실 병찬과 병민, 영의는 종종 별 쓸데없는 주제로 심도 깊은 토론을 하던 경우가 있었다.
흔히 있는 남자들의 ‘그거참 멍청한 생각이네. 당장 하자.’ 같은 것들.
“그렇지? 어제 자다가 문득 생각난 건데 너희하고 얘기하면서 토론 좀 해 보려고.”
사실 자다가 떠올린 것도 맞고 토론을 위해 병찬과 병민을 부른 것도 맞긴 하지만 이번에는 토론이 끝이 아닌, 실행 계획까지 가지고 있는 영의.
그런 사실을 모르는 병찬과 병민은 간만에 흥미로운 주제가 생겼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
“이야, 행님. 간만에 제대로 된 주제 나왔네예.”
“그러니까. 이거 적어도 두 시간짜리다.”
“저번에 뱀파이어가 태닝 기계 갖다가 몸에 지지면 뒤져 부리는지, 그렇게 뒤져 불면 선크림을 바른다면 햇빛에도 버티는지만큼 괜찮은 주제 아이가?”
참고로 지난번 토론의 결론은 2시간의 의논 끝에 자외선만이 효과를 발휘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끝으로 흐지부지되었다.
“그럼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까, 마실 거 하나씩 시키고 시작하자.”
“하모예, 행님.”
그렇게 한낮의 카페에서는 새장을 옆에 둔 남자 셋이서 ‘드워프는 무엇을 먹으며 무엇을 가장 좋아할까’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었고, 음료의 얼음이 모두 녹아 물이 될 때까지도 토론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보통 산에 사니까 산나물을 캐 먹는 그런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 건데?”
“아니, 버섯을 재배해가 먹고 산다는 게 더 이상한 거 아이가?”
“어두운 곳에서 버섯이 자라는 특성을 이용한 건 지하철에서 살아남는 아포칼립스물에서도 나오긴 하지.”
세 명의 토론이라고 했지만 병찬과 병민의 의견 대립과 그걸 정정하거나 보충해 주는 영의의 모습은 마치 일대일 토론의 사회자 같았다.
“맞죠? 형! 거봐!”
“아이, 드워프라 카면 일단 판타지 세계 아이가! 그라믄 무역도 하겠지! 드워프산 장비랑 철제품이 최고라 카는데!”
“음…… 교역으로 먹고산다라…… 그것도 맞겠네.”
“그라믄 신선한 채소가 영양 보충용으로……!”
현실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병민과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판타지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병찬의 팽팽한 의견 대립은 영의에게 좋은 아이디어들이 되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