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0화 (21)
남산의 등산로에서 일어난 <부시도 스피리츠>의 다이카와 <쇼군즈> 길드의 습격조 간의 대치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었다.
“후우…… 후우…….”
습격자들에게 습격을 받은 지 15분, 다이카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키고 있었다.
‘이 자식들, 나만 노리고 온 건가? 아닌가? 전부 다 노린 건가? 하지만 그렇다기엔 장비가 너무 나를 저격한 것 같은데?’
습격자들의 복장은 대부분이 일상복이었지만, 그 안에 껴입은 보호 장비나 장갑 등을 살펴보면 모두 절연 기능이 있는 것들이었다.
“이 자식들…… 시커먼 사내놈들이 이런 약한 미소녀 한 명을 위협하기나 하고……. 라이덴!”
타닥.
타앙!
주변으로 줄기줄기 뻗어 나가는 전격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총 쏘는 듯한 큰 소리.
다이카는 본인의 주위로 전격을 과할 정도로 튀겨 대며 엄청난 기술을 사용하려는 듯 주위를 위협했고, 사내들은 그런 다이카의 위협에 움찔해 뒤로 물러섰다.
“히히, 쓰는 줄 알았어? 아니었지롱.”
여유가 있다는 듯, 습격자들을 놀리는 다이카.
‘큰일이네……. 진짜 쓰려고 했는데……. 너무 지쳤나?’
하지만 위협은 나름 성공적으로 먹혀들어 갔다.
“약하긴 개뿔이, 괴물 같은 년. 장비까지 뚫다니…….”
남자들은 습격에 대비해 각 간부들의 특징에 맞춘 장비들을 마련하느라 상당한 지출을 감수했고, 그런 만큼 성능도 확실했다.
다만, 다이카의 화력이 장비의 방호 능력을 웃돌았을 뿐.
그것을 증명해 주듯 바닥에는 이미 쓰러져 통구이가 된 사내들이 몇 있었고, 그 외에도 감전된 건지 뻣뻣하게 쓰러져 꿈틀대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윽, 이런.”
하지만 그런 만큼 다이카의 체력 소모도 심했고, 결국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게 된 다이카.
사내들은 그 모습을 보고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건지 자신감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
그런 누군가의 외침에 용기를 얻은 듯한 습격자 중 한 명이 다이카에게 달려들었다.
“죽어라!”
강화계인지, 몸의 근육을 부풀리며 다이카에게 단검을 꽂아 넣으려 한 습격자.
“되기는 뭐가! 그대로 쓰러져!”
하지만 다이카는 아직 건재하다는 듯 그런 습격자의 손목을 잡아서 마비시켰다.
“으극, 그으으윽!”
털썩.
경련하며 쓰러지는 습격자를 보며 하나 더 줄였다고 생각한 다이카.
그녀는 곧바로 다른 사내들에게 고개를 돌린 뒤 외쳤다.
“후우, 다음!”
하지만, 남자가 쓰러졌다는 판단은 틀렸다.
덥석.
“잡……았…….”
마비시켰다고 생각한 습격자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고, 다이카는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 당황했다.
“자, 잘했다! 이와사키! 그대로 잡고 있어!”
다이카의 발목을 잡은 것이 신호라는 듯, 일제히 무기를 빼어 들고 달려드는 습격자들.
‘이렇게 된 거…… 아무나 한 놈은 죽여야……!’
다이카는 최후의 발악이라는 듯, 모든 힘을 끌어모아 일격을 날리려 했다.
“라이…….”
그러나 그때, 습격자들과 다이카의 사이에 갑자기 나타난 물체가 있었다.
퍼버벅-!
허공에서 나타난 듯, 갑작스럽게 상공에서 내려와 습격조원들을 치고 지나가는 마정석 바이크.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리고 그 바이크 위에 탑승하고 있는, 은색 헬멧을 쓴 남자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 어쩔 수 없잖아. 일단 멈춰야 할 것 같은 상황이긴 했고. 누가 봐도 상황이…….”
남자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 보였다.
“……누구? 아. 꺼져!”
다이카는 그런 남자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품으면서도,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습격자를 떼어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파직-
“으극, 끄으으으!”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감전시킨 후, 발로 남자의 손목을 짓밟고 걷어차는 다이카.
우두둑, 퍼억!
다이카는 사내의 손에서 나는 뭔가 부러지는 소리에 잠시 움찔했으나,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죽이려 한 대가치고는 싸지.’
그때, 남자가 바이크에서 내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튼 죽은 사람은 없……. 음, 조금은 있어 보이긴 하지만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었겠지?”
기절한 습격자들과 통구이가 된 습격자를 쳐다보며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보이는 남자.
다이카는 그런 남자에 대한 경계를 하는 동시에 재빨리 도주 경로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날 도와줬다고 해서 내 편이란 법은 없지. 여기서 도망치려면…… 정상, 아니면 아랫길인가……? 사람이 안 오는 거로 봐선 양쪽 길을 다 막아 둔 것 같은데…….’
다이카가 열심히 도주를 고려하고 있을 때, 남자를 보며 소리치는 습격자들.
“넌 뭐냐!”
실제로 정체를 묻는 말도 아니고, 위협하듯 거의 습관적으로 한 말이었지만 남자는 그 대답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 보였다.
“나? 음…… 뭐라고 해야 하지? 아, 지나가던 차워…… 아니 그냥 라이더다.”
물론 대답이 고민할 때처럼 진지하지는 못했지만.
“이 자식이……!”
“저것도 죽여! 목격자가 있으면 문제가 커진다!”
습격자들은 그런 남자도 방해하는 요소라 판단한 듯, 무기를 고쳐 잡고 남자에게 덤벼들었고 다이카는 그 모습을 보며 남자에게 묘한 호의가 생겼다.
‘지나가던 가면 라이더다 대사! 저 남자, 나랑 동류인가?’
사실, 다이카는 언제나 까칠한 태도와 이미지와 달리 일본의 레인저 계열 전대물, 라이더 계열 특촬물들에 대한 애정이 상당했다.
일전에, 다른 간부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그녀가 밝히기를 꺼려 했던 그 취미가 바로 관련 물품 수집이었다.
그렇게 다이카가 갑자기 나타난 낯선 사람에게 묘한 호감과 동질감을 느끼고 있을 때, 낯선 사람인 영의는 한숨을 쉬고 있었다.
“하아…… 내가 왜…….”
뇌기가 느껴져서 와 본 건 좋지만 그가 본 것은 자신감 넘치는 청소년의 능력 발현 시험도 아니고, 능력자들 간의 대련도 아닌 범죄 현장이었다.
‘잘해 봐야 예전 지연이 때처럼 도시에 숨어 다니는 괴수들일까 싶었는데…….’
수십의 사내들이 한 소녀를 향해 무기를 꼬나들고 달려드는 것이 범죄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아니, 뭐 나쁜 쪽이나 강자인 쪽이 소녀든 남자들 쪽이든 둘 다 범죄는 범죄겠지.’
“그냥 집에 가서 쉬기나 할걸. 아니, 생각해 보니까 괜찮은데?”
사실 현장을 봤어도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잽싸게 소녀만 구해 도망치는 방식으로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사내들을 바이크로 치고 현장에 착지한 이유는 영의답다면 영의다운 이유였다.
‘사람을 보니까 구하려는 생각이 든 것도 있긴 한데, 저 남자들이 의외로 쓸 만한 모르모트가 되지 않을까……?’
[사용자, 사용자는 때로 이성적 사고와 판단을 적절히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자아 성찰을 위한 명상이나 의료 기관에서의 상담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영의의 그런 꼴은 알림이도 보기가 싫었던 건지, 영의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했다.
‘알겠어, 알겠다고. 그보다…… 일단 다 일본인 같은데? 국제 문제가 되려나? 적당히 무력화시켜야 할지도.’
영의는 그 부분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 죽은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보호구 덕분에 목숨은 부지했지만, 저대로 두면 죽습니다.]
알림이의 말에 쓰러진 사람들의 상태를 파악한 영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죽진 않았단 거네. 하긴, 죽으면 일이 조금 복잡해지겠지.”
영의가 이런저런 상황 판단을 내리고 대응 방법을 결정했을 때, 습격자들은 이미 그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뭔 헛소리를 하는 거냐! 죽어라!”
“싫어.”
퍼억. 파직.
“음.”
“크헉!”
영의의 주먹에 맞은 남자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아, 이렇게인가?”
퍼억. 파직.
방금 곧바로 쓰러진 남자와 달리, 저항하려는 듯 손을 움찔거리다 똑같이 기절하는 남자.
“악!”
그렇게 한 대에 한 명씩, 턱이나 명치와 같은 급소를 정확하게 가격시킨 뒤 감전시키면서 습격자들을 기절시키고 있는 영의.
“크윽, 이 자식이!”
“어? 기절 안 하네? 이 방식은 아닌가?”
콰앙!
가끔 맷집이 좋거나, 보호구로 기절하는 것을 막아 낸 습격자들에 대해서는 친절하게 머리를 잡고 바닥에 내리찍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기절시켰다.
사실, 다이카나 <쇼군즈>의 습격자들이 약한 게 아니었다.
일본에서도 상위권에 위치한 각성자인 다이카와 그런 다이카를 잡기 위해 동원된 각성자들이니만큼 주먹 한 방에 쉽게 당할 인재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영의는 대인전에 있어서만큼은 평생을 수련해 온 인물이었고 무림에서 배운 무공은 그런 대인전이 살육전이 되는 기술들이었다.
그리고 그저 때리고 감전시켜 기절시키는 것으로 보여도 영의는 타격할 때마다 정확한 양으로 소량의 뇌기를 꽂아 넣어 대상의 마비를 유발시키려 하고 있었다.
‘……이런 감각이 아닌가? 어떻게 뇌기를 안 쓴 것처럼 마비시킨다는 거지?’
반쯤 망한 미래 무림 세계의 우형이 말해 주었던, 혼세궁의 공손환이란 자의 기술에 대해 연구하고 따라 해 보려는 영의.
소녀를 구하러 와 보니 때마침 눈앞에 그런 연구의 실험 대상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모든 습격자들이 쓰러지고, 마지막 남은 사내가 바닥에 주저앉아 영의를 노려보고 있었다.
“크윽, 으윽……!”
“후우, 성공인가?”
마침내 대상이 몸을 움직이지 않게 하면서도 정신이 적당히 아득해지는 수준으로 마비를 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대충 이런 방식? 쓰읍, 파훼를 어떻게 해야 하나……. 아니, 이 방식이 맞긴 한 건가?”
영의는 그나마 우형이 말해 줬던 느낌과 최대한 비슷하게 상대를 마비시켰으나, 공손환이 정확히 이 방식을 사용할 거란 장담이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아, 이런…… 이래 봐야 알아볼 방법이 없잖아. 그냥 신기술 하나 개발한 셈 쳐야겠다.’
그렇게 신기술, 테이저를 나중에 지연에게 가르쳐 보거나 개량해야겠단 생각을 하던 영의는 문득 뒤에 있는 소녀를 쳐다보았다.
“오오……!”
소녀는 영의를 반짝거리는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고, 영의는 그런 시선을 보며 문득 데자뷔가 떠오를 것만 같았다.
‘뭔가, 어디서 겪었던 느낌인데…….’
“저기, 혹시 다친 데는…….”
영의가 소녀에게 다친 곳은 없는지 물어보려던 찰나, 그의 귀에 구급차를 비롯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경찰인가?! 하긴, 신고가 들어갈 법도 하겠지!’
뇌기가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갔으니 총소리 비슷한 소리가 한참을 울려 퍼졌을 것이다.
사실 법에 저촉될 만한 행위는 하지 않…… 아니, 잔뜩 했지만 그 이전에 무의식적으로 위험을 느낀 영의.
바이크를 즐겨 타는 영의였기에 사이렌 소리에 반응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런, 가야겠네.”
영의는 곧바로 바이크를 타고 공중으로 도주했고, 결국 현장에는 소녀만이 남게 되었다.
자신을 도와줬던 의문의 사내가 떠나고, 다이카는 바닥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살았다…….”
은색 헬멧의 사내도, 갑작스러운 습격도 걱정되었지만 그녀는 이미 해결된 문제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타입이었다.
‘호텔에 왜 짐을 놔두고 나왔던 걸까……. 대장은 사찰 구경을 갈 때도 무기를 가지고 갔었는데…….’
괜히 하오다가 무장을 하고 오라고 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다이카는 문득 다른 동료들의 안위도 걱정되기 시작했다.
“저기다! 사람들이 쓰러져 있어요!”
구급대원들과 경찰들이 현장을 발견하고 등산로로 접근해 오기 시작하자, 다이카는 재빨리 동료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 * *
경주.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문화재가 많고 옛 유적들이 보존되어 있는 지역이다.
그리고 그런 유적이 가득한 아름다운 도시에, 피비린내가 가득히 퍼지고 있었다.
유적지나 번화가와는 거리가 먼 한적한 도로에서 일본도를 휘두르는 한 사내.
휘익-
후두둑.
사내의 손짓에 칼날에 묻어 있는 피가 바닥으로 튀었다.
그 일본도는 상당한 명검인 듯, 칼날에 묻어 있던 핏방울들이 털어 내기 한 번에 깔끔하게 사라졌다.
“조금은 기대했다만, 역시 잔챙이들이었나.”
탈의한 상체에 수많은 상흔이 있는 사내는 네 자루의 일본도를 차고 있었고, 그 모두가 방금 전까지 사용되고 있었다.
“크흑, 끄윽…… 하오다……!”
그리고 한 남자가 그 사내의 앞에 쓰러져 복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야마자키…… 쇼군즈의 뛰어난 칼잡이라고 들었다만, 결국 야쿠자 따위였군. 하.”
하오다는 야마자키를 비웃으며 깔보듯이 내려다보았다.
“이…… 괴물 놈……! 공격들을 죄다 베어 내고 되돌리다니……!”
“……네 검은 조금 괜찮군. 가져가야겠어.”
하오다는 야마자키의 말을 무시하며 그의 옆에 떨어져 있는 일본도를 집어 들었고, 그것을 칼집에 넣었다.
“감히, 조장님이 준 내 검을……!”
“……패자는 얌전히 죽음을 기다려라.”
하오다는 야마자키를 무시한 채 뒤로 돌았고, 그런 그에게 시즈카가 다가왔다.
“괜찮으신가요……? 어딘가…… 다친 곳은……?”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하오다를 걱정하는 시즈카.
“없다. 자, 받아라.”
하오다는 자신이 착용하고 있던 모든 일본도를 시즈카에게 건네주었고, 그녀는 상당한 무게가 나감 직한 그 일본도들을 수건을 받는 양 사뿐히 받아 내었다.
“예, 그럼…… 관광은…… 취소를…… 하실 건가요……?”
시즈카는 일본도를 보관용 가방에 집어넣으며 말했고, 그것은 피 칠갑이 된 주변 광경과는 썩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니, 그럴 수야 없지. 다만, 경찰 정도는 불러야 되겠지.”
“네, 그렇다면…… 경찰을…… 부르겠……. 거기냐!”
시즈카는 느릿느릿하게 대답하며 경찰을 부르려 했지만, 순간적으로 살기를 내뿜으며 아직 가방에 넣지 않은 일본도를 던졌다.
푸욱.
“윽……!”
시즈카가 던진 일본도는 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내에게 날아갔고, 사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었다.
“도망……치려던…… 사람이었군요. 불쌍해라…….”
본인의 손으로 죽인 사람이었건만, 불쌍하다며 고개를 젓는 시즈카.
그녀는 마치 뜻하지 않은 실수로 다치게 한 동물을 보듯, 사내의 죽음에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소란은 소란이었지만…… 쇼군즈가 뜻밖에 감정적으로 나왔군. 나를 노리는 건 힘들다는 걸 알았을 텐데.”
하오다는 하늘을 쳐다보며 상사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