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9화 (20)
각성자들이 나타난 이후로, 전 세계에서 각성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사회에서 의미 있는 위치로 자리 잡는 과정은 국가별로 각자 달랐다.
한국은 초기에 각성자들을 국가에 편입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국민들의 반발이 있었고 군대가 감당하지 못하는 새로운 무력 집단을 강압적으로 대함으로써 생겨나는 위험부담을 지기 싫어했다.
과거에 쿠데타 경험까지 있었던 정부는 이내 각성자들을 국가에 소속시키려는 생각을 접고 새로운 기업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였다.
중동은 각성자들의 등장으로 인해 국가별 분쟁이 순간 심화되었다가 더 큰 피해를 만들기 시작하자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이내 서로 눈치를 보며 각 국가의 게이트를 이용해 각성자들을 키워 내기 시작했다.
중국은 초인 특무대라는 비밀 부대가 만들어졌다는 소문이 이리저리 떠돌았지만, 중국에서 운용하는 각성자 부대는 따로 있었다.
사실, 평소에도 중국이 비밀스럽게 숨기는 게 한두 개가 아니었기에 각 국가는 신경을 곤두세우면서도 일단은 넘어갔다.
그 외에 러시아의 제2의 붉은 군대라든가, 유럽의 신들의 전쟁, 아프리카의 각성자 내전 등이 있었지만 그 사건들로 인해 국가들이 각성자를 대하는 방식이 바뀐 건 아니었다.
그리고 조금 특이하다면 특이하지만 일본스럽다고 할 수 있는 과정이 있었던 게 바로 일본이었다.
옛날엔 마약이나 무기 거래 같은 불법적인 일들을 주로 했고, 근래에 들어서는 합법적인 수단을 추구하지만 그래도 결국 돈 되는 일에 손을 대는 게 주된 목적인 야쿠자.
그런 야쿠자들은 각성자 시장이 돈이 될 거란 걸 빠르게 눈치채고는 곧바로 각성자들을 끌어모아 길드를 설립했다.
그것이 바로 <쇼군즈> 길드.
각성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초기 2년여간은 <쇼군즈>가 압도적 1위였고, 길드란 것이 제대로 자리 잡기 전이었기에 각성자들은 어지간해서는 대부분 <쇼군즈>에 들어왔다.
그렇게 1위로 수많은 돈을 끌어모으던 <쇼군즈>의 천하는 <부시도 스피리츠>의 등장 이후로 지위를 위협받기 시작했고, 2년 전, <부시도 스피리츠>는 쇼군즈를 제치고 일본 1위로 등극하게 되었다.
특유의 분위기와 수장인 하오다의 교토 고집이 있긴 했지만, <쇼군즈>보다 훨씬 대우가 좋고 자유로운 환경이었기에 새로운 각성자들은 대부분 <부시도 스피리츠>에 가기를 원했다.
그렇게 2위의 위치마저 위협받기 시작한 <쇼군즈>는 결국 특단의 대책을 세우기에 이른다.
<부시도 스피리츠>의 회의에서 하오다가 휴가를 가기로 결정한 날, <쇼군즈>의 본부 빌딩에서도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마치 강연을 들으러 온 듯, 회의실 내부에 많은 간의 의자를 가져다 두고 거기에 앉아 앞에 선 남자의 말을 경청하는 길드원들.
“습격이다.”
“예?”
길드원들은 그들의 앞에서 말을 꺼낸 야쿠자 출신이자, <쇼군즈> 길드에서도 지위가 높은 야마자키의 뜬금없는 발언에 놀랐다.
그들 중에는 야쿠자 출신이 아닌 이들이 더 많았기에, 습격이란 말에 어리둥절해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얼마 뒤, 부시도 녀석들이 한국으로 간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첩보, 말입니까?”
누군가의 되묻는 말에 그 말을 한 게 누구인지 찾으려는 듯, 길드원들을 스윽 훑어보는 야마자키.
“……그래, 첩보.”
야마자키는 얼굴에 칼자국이 나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이 느껴지는 인상이었고, 그런 얼굴로 길드원들을 매섭게 쳐다보자 몇몇 길드원들은 움찔했다.
“어쨌든, 녀석들이 한국에 있을 때 습격을 거행한다. 그렇게 알도록.”
“예? 대장…… 아니, 부장님! 그건 너무 위험한 것 아닙니까?”
야마자키와 같은 조직 출신의 길드원 한 명이 위험성을 강조하며 그를 설득하려 했지만, 야마자키는 그 말에 화를 냈다.
“위험? 위험한 건 우리들이지! 이대로 가다가는 2위는커녕 3위도 못 유지하게 생겼어!”
“……그건, 그렇지만.”
야마자키는 화가 단단히 난 듯, 품속에서 꺼낸 칼을 바닥에 던져 꽂으며 소리쳤다.
“참여를 강요하지는 않겠다! 다만, 어디서도 입을 열지 마라. 그리고, 나와 함께 습격을 거행하는 녀석들에게는 확실한 보상이 준비되어 있다.”
보상이라는 말에 길드원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보상?”
“보상이라니…….”
보상이란 말에 여론이 조금 술렁이기 시작하자 직접 보여 주기 위해 창문으로 다가가는 야마자키.
“자, 봐라!”
그는 블라인드를 걷어 내고 빌딩 아래에 있는 무언가를 가리켰다.
얼마나 광택을 낸 건지,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이 여기서도 보이는 붉은색의 고급 슈퍼카.
“저게 선금이다.”
“서, 선금……!”
각성자들이 아무리 벌이가 좋다지만, 저런 슈퍼카를 사려면 뼈아픈 지출을 감행해야 한다.
“그리고 일만 제대로 해내고 살아 돌아오면 저것의 10배를 보상할 것을 약속해 준다.”
“10배라니!”
야마자키의 말에, 몇몇 길드원들의 눈에 욕망이 가득 차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요즘 길드 평가도 떨어지고 있는데…….”
“다 같이 물량으로 한 번에 밀면…….”
옛 야쿠자들은 아무리 싸움을 잘하는 인물일지라도 기습으로 한 번에 습격하여 암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야쿠자 간부들이 항상 부하들을 데리고 보안이 철저한 곳에 살았던 것이고.
“……하겠습니다.”
“저도, 하겠습니다.”
어차피 게이트도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쟁터였고,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별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 길드원들은 야마자키의 제안에 응했다.
그렇게 결성된 5개의 습격조.
그 습격조들을 모두 통솔하는 대장이자 1조장인 야마자키는 습격조 인원들을 모아 두고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한국으로 들어온 부시도의 간부들은 도합 일곱이다. 하지만 그중 한 놈. 료라는 애송이는 제외한다. 도심의 고급 호텔방에 투숙 중이고, 절대 나오지 않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자신이 속한 1조와 그 옆의 2, 3조를 바라보며 손짓하는 야마자키.
“1조에서 3조까지는 나와 함께 간다. 우리의 목표는 하오다 그 녀석 하나다. 옆에 다른 간부 아카이 시즈카가 붙긴 했지만, 최종 목표는 하오다가 된다.”
1~3조까지 역할 편성을 끝낸 야마자키는 나머지 4, 5조를 가리키며 뭔가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4조, 5조는…… 라이진, 시라이시 다이카를 노린다.”
4조와 5조의 조장은 야마자키의 말에 깜짝 놀랐다.
“대장님, 어째서 라이진인 겁니까? 다른 간부들도 있는데…….”
다른 간부들은 머릿수로 밀어붙인다면 그럭저럭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능력의 특성상 라이진만큼은 껄끄러웠던 습격조.
“지금 단독 행동의 정황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간부들은 모두 뭉쳐 다니고 있다.”
야마자키는 작전의 성공을 위해 단독 행동 중인 인물을 골랐다고 설명했고, 그제야 습격조의 인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른 녀석들을 한 번에 상대하느니 차라리 몇 명쯤 다치더라도 라이진 쪽을 노리는 게…….’
‘시노비와 자이언트 겐지의 조합을 상대로 돌격이라니, 생각하기도 싫군.’
시노비는 야이바의 별명이었고, 자이언트는 겐지의 별명이었다.
그렇게 조 편성을 마친 야마자키는 4조의 조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제부터 활동을 개시한다. 라이진은 지금 서울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고, 40분 정도 남았으니 재빨리 따라붙도록.”
“예!”
야마자키의 지시가 떨어지자, 위장을 위해 각자 다른 복장을 착용한 사내들이 일제히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는, 경주로 간다. 모두들 준비를 단단히 하도록.”
야마자키를 비롯한 1, 2, 3조는 각자의 무기를 점검한 뒤, 하오다가 있는 경주로 출발했다.
* * *
서울, 남산.
시간이 어느덧 흘러 해가 지기 시작하고, 주변을 오가던 사람들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한 저녁 시간대에 한 소녀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등산로를 거닐고 있었다.
“하아…… 저녁은 룸서비스로 먹겠다니, 틀어박히는 거에 되게 진심인 거야? 아니면 그냥 먹는 거에 대한 관심이 없는 거야?”
소녀, 다이카는 약간의 불만을 품은 채 저녁 식사를 고민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짜증을 내던 그녀는 홧김에 다른 간부들을 두고는 곧바로 서울로 올라왔고, 이내 료에게 연락을 취해 그가 머물고 있는 호텔에 방을 잡았다.
‘그 녀석, 딴 건 몰라도 방만큼은 까다롭게 선별하니까…….’
료의 다른 것은 좋게 평가할 마음도 들지 않았지만 거처를 선별하는 그의 안목만큼은 믿는 다이카.
‘하아…… 뭘 먹지? 하필 점심에 그런 게를 먹어서 기대감이 높아졌잖아…….’
평소라면 어린 나이에 걸맞게 길거리 음식이나 편의점 도시락 같은 것도 개의치 않고 먹는 그녀였지만 저녁 또한 점심에 먹었던 것과 비슷한 수준의 것을 먹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 고민을 안고 호텔을 나선 그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무의식적으로 마음이 편해지는 환경을 찾다 남산으로 오게 된 것이고, 케이블카 대신 등산로에서 홀로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등산로를 걷던 그녀는 문득 주변에서 느껴지는 불쾌하면서도 익숙한 기운에 정신을 차렸다.
“……뭐야, 거기 숨어 있지 말고 나와.”
다이카는 마치 누가 있기라도 하다는 듯, 주변 풀숲에 대고 말을 걸었다.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듯 반응이 없는 풀숲.
“……또 짜증 나네.”
다이카는 오늘 조금씩 쌓이기 시작한 스트레스와 짜증을 풀기 위해 바닥에 있던 작은 조약돌을 집어 풀숲으로 던졌다.
퍼억!
나무나 다른 무언가에 맞았을 때의 소리 대신, 살아 있는 생물체에게서 나올 법한 소리가 울렸다.
“나와. 세상 어디에 그런 소리가 나는 나무가 있어?”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말에, 등산로의 양옆 숲과 그녀의 뒤에서 여러 명의 사내들이 나타났다.
마치 이 상황을 미리 알고 준비한 듯, 손에 무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사내들을 보며 다이카는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하, 이것 봐라? 누군지는 몰라도…… 잘못 걸렸어. 다 덤벼!”
다이카의 외침과 함께, 남산의 등산로에는 일기예보에 없는 천둥과 번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한편, 그때 서울 상공을 지나고 있던 영의.
“다 좋았는데 부산이 날이 조금 흐려서 별로였단 말이지…….”
[오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용자.]
화연과의 바닷가 데이트를 즐기고 온 영의는 부산의 기상 사정이 조금 아쉬웠다는 말을 알림이와 하고 있었다.
“뭐, 그 말도 맞지. 하지만 다 좋았는데 마지막에 조금 어그러지면 사람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잖아?”
[본 개체는 기분이란 것을 알지 못하므로 거기에 대해서는 조언을 해 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세상 어디에도 완전한 것보다는 불완전한 것이 섞인 게 더욱 ‘인간적’이라고 일컬어진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려 드립니다.]
알림이의 대답에 영의는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뭐, 네 말도 맞는 것 같네. 세상살이 그렇게 다 깔끔하면 또 인간미가 없…….”
‘뇌기?! 그것도, 지상에서?’
영의는 알림이에게 대답을 해 주다 문득 느껴지는 강한 뇌기에 고개를 휙 돌렸다.
지상에서 뇌기가 느껴지는 거야 별로 이상하지 않다.
사람은 전기가 없으면 삶에 큰 불편함을 느끼니까 그런 만큼 보편적이고 가까우니.
하지만 그 세기가 일상적인 수준이 아닌 데다가, 방출되는 방향이 직선적이고 번개보다 약한 경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누군가가…… 능력, 그것도 전격 계열을 쓰고 있다?’
영의는 순간 남 일이라고 생각하여 무시하고 집에 가려고 했지만, 알아 둬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해 뇌기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아, 옷도 갈아입어야지. 타면 좀 그러니까…….”
날아가는 와중에 공중에서 옷을 갈아입는 묘기까지 부리는 영의였다.